날씨가 풀리는 것과 동시에 격리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쇼핑 앱을 켜서 탄산수 한 박스를 주문했다. 밍밍한 생수보다는 마시기 편하고, 운동을 못 하는 상황에서 칼로리 걱정 없이 마실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답답한 집콕생활을 뻥 뚫어주는 시원함까지. 봄이 왔(었)는데 꽃놀이를 못 가는 슬픈 짐승에서도 탄산수가 있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탄산수를 찾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2020년 국내 탄산수 시장 규모는 약 1500억 원으로, 10년 만에 30배 이상 증가했다. 제로 칼로리, 건강한 음료를 찾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어서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탄산수 붐이 일어난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오늘은 미국에서 가장 힙한 탄산수 브랜드, ‘라크로이’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탄산수, 라크로이를 아시나요?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된 키워드는 ‘건강’이다. 사람들은 더 건강하고, 더 무해한 마실 거리를 마신다. 그 중심에 ‘탄산수’가 있다. 탄산수는 지난 10년 동안 시장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250%까지 확대되었다. 특히 세계에서 판매되는 탄산수의 1/3 이상이 미국에서 소비될 정도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탄산수는 무엇일까? 그것은 페리에도, 산펠레그리노도 아니다. 바로 ‘라크로이(La Croix)’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미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스파클링 워터 브랜드. 라크로이는 어떻게 미국 2030의 갈증을 사로잡았을까?
쾌락적인 건강함, 21가지 맛의 물이라고?
이름만 봤을 땐 프랑스 출신처럼 보이지만, 사실 라크로이의 고향은 미국이다. 미국 위스콘신에 있는 라크로스(LaCrosse)라는 동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마치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덴마크와 1도 상관없는 것과 비슷한 전략이랄까?
사람들은 라크로이를 ‘맛있는 물’이라고 말한다. 무려 21가지 맛의 라인업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블랙베리 오이맛(!)이나 코코넛맛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독특한 맛부터 레몬, 오렌지처럼 기본적인 맛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제로 칼로리, 제로 슈가다. 덕분에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 특히 다이어터들에겐 생명수와 같은 존재가 된다. 부담 없이 속세의 맛(?)을 즐길 수 있어서다.
실제로 라크로이는 미국의 인기 다이어트 프로그램 ‘whole 30’의 공식 음료로 선정이 된다. 다이이어터는 물론, 방송 작가나 직장인 등 오랫동안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받게 된다.
단순한 마실 거리가 아닌 오락이 되다
재밌는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시작은 한 트위터였다. 누군가 이런 질문을 올린 것이다.
만약 라크로이에 이런 새로운 맛이 생긴다면 어떨까? 답변으로 ‘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라즈베리 솜털 맛’, ‘스키틀즈 한 개를 빠트린 맛’ 같은 것들이다.
심지어 누군가는 아예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다양한 색상, 원하는 맛으로 나만의 라크로이 캔을 가상으로 만들어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 이벤트에 참여하고 즐겼다. 본격적으로 사람들은 라크로이를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160만 유튜버 대니 곤잘레스(2 Danny 2 Furious), 아티스트 라킴(Rakeem)은 라크로이를 주제로 음원을 공식 발매한다. 단순한 팬심으로 시작한 일이 어쩌다 보니 작곡, 작사부터 뮤직비디오까지 제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들의 노래는 전국에 숨어있던 샤이한 라크로이 팬들을 자극했다. 그런데 왜 듣다 보니까 노래가… 좋은 거야?
제2의 포카칩 논쟁? 코코넛 파와 자몽 파의 난
진짜 포카칩은 무엇인가. 단짠단짠 매력의 초록색 포카칩? 짭조름한 맛의 파랑색 포카칩? 얼마 전 한국에서는 ‘포카칩’ 과자의 근본을 두고 초록 파와 파랑 파의 양보 없는 대결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포카칩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마치 대변인처럼 항변했다.
2016년,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터진다. 라크로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두 가지 맛, 코코넛 맛과 자몽 맛을 두고 근본 대결이 펼쳐진 것이다.
사람들은 각종 짤(사진)에 좋아하는 라크로이를 합성하고, 추억을 공유했다. 특히 자몽파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15만 명의 팔로워를 모으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렇게 자몽 맛 라크로이에 미친 사람들이 많았단 말이야?
이쯤되니 궁금해서 마셔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몽 맛 라크로이를 주문해보았다. 예상보다 가벼운 맛이 났다. 한국에서 맛본 자몽 맛 탄산수들이 ‘자몽!!!!!!’을 외친다면, 이것은 ‘ㅈㅁ…’이라고 나지막히 읊조리는 것 같달까. 향이 부드럽고 은은하게 다가왔다. 말하자면 물에 가까운 탄산수랄까?
이번에는 키라임 맛이다. 자몽 맛에 비해 훨씬 달큰하고 진한 라임향이 느껴졌다. 어디선가 멜론의 분위기가 얼핏 느껴지기도 했다. 달달한 걸 좋아하는 에디터의 취향은 이쪽이 더 가까웠다.
두 가지 맛의 개성도 이렇게나 다른데, 하물며 21가지 종류가 된다니. 왜 라크로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맛을 가지고 취향 논쟁이 벌어지는지 알 것 같았다. 이제 나머지 19가지의 맛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다만 내 지갑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진정한 재미는 온도차에서 온다
라크로이는 겉과 속이 달라서 더 매력적인 브랜드다. 겉으로 보기엔 건강하고 싱그러운 라이프스타일을 팔지만, 인터넷 속에서는 과몰입의 대상으로 팬들에 의해 각종 사악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사람들은 이런 이중인격자 같은 모습에 환호한다.
단순히 ‘모범생’ 같은 모습으로 제품을 팔던 시대는 지나고 있다. 이제 브랜드들은 남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모습을 고민해야 한다. 마치 뽀로로 캐릭터 ‘루피’가 10년이 지나 ‘군침이 삭 도는’ 얼굴로 나타나 다시 흥행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에서도 라크로이처럼 재미난 일들을 펼치는 브랜드는 무엇이 될까? (얼른 나와주면 좋겠다. 내 통장이 바닥나기 전에…)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The Untold Truth Of LaCroix, CAT LAFUENTE, Mashed, 2020.12.13.
- An Epic Facebook Meme War is Waging Between LaCroix Coconut AND Pamplemousse, Cheezburger.com
- Why LaCroix sparkling water is suddenly everywhere, Libby Nelson and Javier Zarracina, vox.com, 2016.6.20.
- Sparkling Water Market Share, Sales & Trend Reports 2015-2022, Eric Phillips, Dripfina, 2022.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