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뭔가 이상한 소식을 들었다. 최근 국민의힘 대변인으로 뽑힌 A씨의 성범죄 전력이 드러났다는 뉴스이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 8일 국민의힘은 전원이 2, 30대 남성으로 구성된 8명의 대변인을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다. 이후 4일이 지난 뒤 이 중 한 명의 성범죄 전과가 소소하게 언론을 탔다.
일단, A씨의 죄질이 매우 나쁨에도 집행유예에 그쳤다는 점이 짜증을 불러온다. 2017년 5월 A씨는 그와 이별을 원하는 여성 B씨의 스토킹 신고를 통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헤어진 B씨를 지속적으로 미행하던 A씨는 불법 촬영했던 B씨의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SNS에 게재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성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는 와중에 또 다른 여성 C씨를 불법 촬영하고 추행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법원은 죄질이 나쁘다고 하면서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선뜻 이해가 안 되는 솜방방이 처벌이다.
더욱 짜증 나는 것은 차기 집권당이 대변인을 뽑으면서 성범죄 전과자를 사전에 거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상대 당의 성추문에 대해 온갖 파상공세를 퍼부어온 이들이 아예 성범죄 전과자를 대변인으로 내놓는 것은 뭐 하자는 짓일까? 이준석의 조롱 정치가 너무 좋아 국민을 우롱하겠다는 이야긴가? 업무차 성범죄 조회 확인서를 요구처에 제출해본 경험에서 볼 때 성범죄 전과 여부는 쌍방 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일이다. 국민의힘은 그 간단한 확인을 왜 하지 않은 걸까?
국민의힘은 청년 정치에 주력하겠다며 갖은 공을 들여왔고 대변인 오디션은 그 역점 사업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기본도 안 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짜증이 난다. 뒷수습도 형편없다. 당 차원의 언급은 일절 없고, 몇 안 되는 기자의 취재에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저 A씨가 알아서 대변인을 관뒀다는 말뿐이다.
2.
국민의힘 청년 정치의 위대함은 다음 사건이 더하다. 이번 사안도 성범죄인데 앞서보다도 죄질이 훨씬 나쁘다. 사건의 시작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으로 올라간다. 지난 10월 부산지역 유력 청년단체의 대표로 있는 20대 남성이 연쇄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미투’ 사건이 보도되었다. 첫 보도에서 3명이었던 피해자는 이후 5명으로 늘어난다.
정치권 행사의 단골이었던 청년단체 대표 A씨는 술자리를 범행 장소로 택하고는 강압적인 키스와 같은 성범죄를 넘어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마저 저질렀다. 대학생 B씨는 술자리에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뒤, 술잔의 알약을 발견하고는 이를 꺼내어 촬영했다. 그 자리에서 A씨는 무려 비염약의 수면유도제 성분이 궁금해서 그랬다며 평생 사죄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대학생 C씨는 술자리에서 쓰러졌다가 깨어나 보니 옷을 다 벗은 채로 모텔에 있었고 도망치듯 나왔다고 증언했다.
청년단체 대표 A씨는 첫 보도 이후 취재에서 자신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되면 무고죄로 대응하겠다고 응답했다. 첨부한 캡처는 그가 억울함을 호소했던 페이스북 글이다.
그동안 무고한 남성들이 여성의 강제추행 피해 주장만으로 어떤 명백한 증거도 없이 처벌될 수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맹세코 그 누구도 강제로 추행한 사실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도 임하여 제 결백을 꼭 밝힐 것입니다.”
“저와 같이 무고한 남성들이 여성들의 일방적인 강제추행 주장만으로 처벌되는 일이 결단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첫 보도 이후 경찰 수사가 시작되었고 한 달 보름 뒤 대표 A씨는 성폭력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마약류 혐의가 들어간 것은 그가 비염약이라고 발뺌했던 알약이 국과수 분석 결과 성폭행 수면제로 악명높은 ‘졸피뎀’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 중 한 명의 모발에서 졸피뎀 성분마저 검출되었다.
피해자가 술잔의 알약을 증거로 남겨두지 않았다면, 시간이 너무 흘러 피해자에게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의 재판은 증언의 타당성을 핵심 근거로 다투는 양상이었을 것이다. 아예 기소가 성립되지 않거나 무고죄 재판으로 변이될 여지 또한 컸다. 무엇보다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며 꼬리가 더욱 길어지기 전까지 이 청년단체 대표는 연쇄 성범죄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무죄라고는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건 초기 가해자는 자신과 같은 무고한 남성들이 여성들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처벌되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며 무고죄 역고소를 주장했다.
가해자는 홍준표 대선캠프에서 부산선대위 대학생 위원장으로 몸담았던 인물이다. 당시 캠프 관계자는 원래 국민의힘 대학생위원회 소속이었던 친구이며 그래서 의심이나 검증 없이 임명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성범죄 기사를 일일이 챙겨보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특정 정당에 속한 2030 남성 정치인들의 성범죄가 몇 달 사이에 연이어 터진 적은 없었다.
3.
국민의힘은 이준석이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청년 남성 일변도의 정치 노선을 펴고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자유지만, 성범죄에 대한 젊은 여성의 불안을 피해망상이라며 하찮게 여기는 그들이 죄질이 매우 나쁜 성범죄 전과자와 피구속인을 청년 정치의 이름으로 품으려 했다는 사실은 국힘식 청년 정치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보여주는 징후이다.
성범죄로 처벌받거나 구속되지 않았을 뿐 국힘에는 SNS에 성희롱 발언을 대놓고 하거나 극단적인 주장을 일삼는 이준석 마이너 버전의 청년남성 정치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배설물 같은 행태를 재현하거나 극단적인 주장을 표현만 살짝 순화하여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 또한 국민의힘의 자유이고, 내심 그들은 표 계산에서 득이면 득이지 손해는 아니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자랑하는 청년남성 정치는 기성정치의 추함을 더욱 나쁘게 구현해 가는 중이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증거들로 인해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철퇴를 맞게 된다.
한국에 시급한 과제들이 정말 많지만 20대의 성별 대립 해소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격화된 전쟁의 중재자로서 아직 어느 정당도 낙점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내세우는 이준석류 청년 정치가 해답으로부터 가장 멀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원문: 장제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