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리학자 조너선 스쿨러에 의하면, 공상에 많이 빠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창의성이 높다. 달리 말하면, 주의력이 산만하고 집중을 잘 못하며 곧잘 공상에 빠지는 성향은 창의성이 높은 것과 꽤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하나 더 덧붙이기를, 단순히 공상에 빠지기만 하는 것은 창의력 자체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핵심은 공상에 빠지되, 공상에 빠진 상태를 인식하면서 자각을 유지하는 것이다.
술에 만취하면 사람은 공상에 빠지지만, 그것이 곧 창의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술을 마시면서 생겨나는 ‘공상 상태’거 공상 자체를 자각하는 능력도 같이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무언가 현실에 깊이 몰입하고 집중하는 대신 ‘느슨한’ 상태로 긴장감 없이 공상을 헤매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러한 공상을 하고 있음은 인식하고 자각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 ‘창의성의 순간’이다. 발명, 영감, 창조의 순간이다.
2.
나는 이런 상태를 일종의 ‘분열 상태’라고 말해왔다. 특히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의 감정, 환상, 이미지가 폭발하며 헤매더라도 그것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응시하며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자아가 곧 ‘글 쓰는 자아’라고 이야기해 왔다. 공상하는 자아와 글 쓰는 자아의 분열, 그것이 글쓰는 일의 핵심 중 하나라고 생각해 왔다. 여기에 스쿨러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것이 일종의 창조적인 상태와 비슷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개 공상할 때 신체는 긴장감이 풀린 채 느슨해져 있고, 뇌에서는 알파파가 폭발한다고 한다. 산책을 하거나 목욕을 할 때, 혹은 침대에 누워 있을 때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게 느슨한 상태에서도 우리의 자아는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축 처진 휴면 상태가 아니라, 창조적인 시발점이 된다고 한다.
3.
그래서 3M이나 구글 같은 선구적인 회사들은 그런 ‘창조적인 순간’들이 발현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둔다. 많은 회사들이 딴짓 못하게 막으면서 철저하게 자리에 앉혀 놓는 것과는 매우 다른 셈이다. 경직된 상태를 강요하는 노동은 억지로 수행할 수 있게는 만들더라도,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새로운 일을 해낼 수는 없게 한다.
아마 모든 일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종류의 느슨함은 게으름이 아니라 창조성이다. 창조성은 그런 순간에만 탄생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화나 부분들은 여전히 이런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다. 경직된 긴장감과 느슨함을 허락하지 않는 문화, 일종의 군대문화 같은 것이 더 정당하고 좋은 것이라 믿는다. 그게 아직도 사회 전반에 깔려서 개개인의 창조성을 깊이 갉아먹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