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이것은 평범한 크리스마스 캐롤로 들리지만, 사실상 어린이들의 빅브라더나 다름없는 산타클로스의 실체를 폭로하는 노래다. 까놓고 말하자면 산타의 근본적인 존재 의의는 어른이 아이의 버릇을 들이기 위해 “말 안 들으면 산타가 선물 안 준다!”는 전형적인 상벌 시스템의 상징이다. 지금이야 코카콜라와 자본주의와 아동 인권의식의 상승 등의 효과로 ‘상 (선물)’ 쪽만 강조되는 편이지만 원래는 ‘벌’도 수행하는 존재였다. 그것도 못된 아이 양말에 석탄 넣어주는 정도가 아닌, 훨씬 가혹한 형벌집행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산타의 다크사이드에 대해 파헤쳐 보자.
산타클로스의 기원
산타클로스의 기원은 유럽으로, 그리고 성 니콜라우스=세인트 니콜라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 니콜라우스는 4세기 터키에서 살았던 미라의 주교였으며 선원, 해운업, 어린이, 상인, 도둑, 학생, 오스트리아, 벨기에,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네델란드, 스위스의 수호성인이다. (참고로 도둑의 수호성인이라는 것은 도둑질을 도와준다는 것이 아니라 착한 길로 개심시켜준다는 의미.)
생전에 자선을 베풀어 빈곤퇴치에 힘을 쓴 행적으로 사후에도 매우 인기 높은 성인으로 남아 수많은 전설이 덧붙여졌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이야기는, 어느 가난한 아버지가 딸 셋을 시집보낼 돈이 없어 사창가에 팔아버리려고 하자 니콜라우스가 밤중에 집안으로 몰래 돈주머니를 던져 넣어 세 명을 다 무사히 출가시킨 이야기다. 왜 도둑놈처럼 그랬냐면 니콜라우스가 겸손한 인품의 소유자고 그 아버지의 자존심을 배려해서라나. 아무튼 한밤중에 몰래 들어와서 선물을 놓고 가고, 소녀=아이들을 보호하는 점이 산타클로스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 밖에 억울한 누명을 쓴 사형수들을 구하거나, 배를 풍랑에서 구했다던가 (생전에 구했다는 이야기와 사후에 천국으로 승천 중 선원들의 비명을 듣고 유턴해서 구해주었다는 이야기 두 종류나 있음), 잔인한 강도살인마에게 사지가 토막 나 양념에 절여진 소년들을 부활시키는 등등 다양한 기적이 전해진다. 사실 대부분의 근대 이전 성인 이야기가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보다는 성인의 삶과 가르침을 전달하는 목적과, 기독교 전 이도교 이야기와 합쳐진 오락적 성향이 뒤섞여있다. 그런 점에서 성 니콜라우스의 키워드는 어린이, 자선, 바다라고 할 수 있다.
성 니콜라우스는 12월 6일 사망했기에 축일이 12월 6일인데, 성 니콜라우스의 축일과 크리스마스가 같은 12월에 겹치기에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철의 중요한 행사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12월에 선물을 나눠주고 잔치를 즐기는 축제 자체는 기독교 전의 동지 축제에 기원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자체도 기존의 이교도 겨울축제를 대체하기 위해 12월 25일로 정해진 것이지, 실제로 예수의 생일은 아닌 것처럼… 이렇게 기존의 풍습을 기독교 상징으로 대체하는 과정에 성 니콜라우스와 북구신화의 신 오딘이 섞인다.
오딘은 긴 수염을 휘날리는 노인의 모습으로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말 슬레이프니르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전사들을 이끌고 다녔다고 한다. 북구의 아이들은 밤에 슬레이프니르를 위해 장화에 당근을 넣어 굴뚝이나 집 밖에 매달아 두고, 오딘은 답례로 선물을 넣어주었다는 겨울 풍습이 있다. 선한 노인, 하늘을 나는 짐승, 겨울밤에 선물을 주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섞여 세인트 니콜라스, 신터클라스, 파더 크리스마스, 그리고 신대륙에 건너가서 산타클로스를 낳은 셈이다.
다크 사이드의 산타클로스의 역사
그런데 이것이 대대적인 동지 축제와 섞이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부분이 강조되면서 원래는 매춘의 위기에 처하거나 토막살해 당하거나 기타등등 가엾은 아이라면 착하든 못됐든 따지지 않고 선행을 베풀던 성 니콜라우스나, 말 먹이를 주는 상냥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던 친절한 오딘이 더러운 어른들의 노골적인 아동교육용 수단으로 탈바꿈한다. 원래는 ‘자선’이나 ‘답례’였던 선물이 ‘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당근만 있으면 되나, 채찍도 있어야지. 그래서 미국의 초기 산타클로스 전승에도 못된 아이에겐 선물이 아예 없거나 석탄이 들어있던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아예 징벌자로써의 산타클로스의 측면-다크사이드 자체를 아예 의인화한 전승을 물에 탄 것에 불과하다. 고귀한 성자의 이미지 유지를 위해서 아예 새로운 징벌 전문 캐릭터를 만들어졌다. 일명 산타클로스의 검은 도우미들이다. 산타클로스 장난감 공방 일을 돕는 엘프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무서운 친구들이다.
이런 ‘검은 도우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크람퍼스Krampus라는 악마다. 그야말로 고전적인 악마의 모습으로, 염소 뿔과 다리에 시커먼 털과 흉악한 얼굴로 못된 아이들을 때리고 자루나 소쿠리에 넣어 지옥으로 끌고 간다고 전해졌다. 그렇다…산타클로스의 도우미는 유럽판 망태기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죽이거나 채가는 범인류적 아동교육(협박을 통한)용 캐릭터의 전형이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여전히 독일과오스트리아에서는 성 니콜라스 역의 배우 뿐만 아니라 크람퍼스로 분장한 청년들도 거리를 돌아다닌다.
크람퍼스들은 긴 나뭇가지를 회초리처럼 들고 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때리기도 하고, 아이들을 안아 들고 납치하는 시늉을 하기도 하며, 젊은 여성들을 희롱하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남의 집에 들어가 술을 달라며 땡깡을 피우기도 한다. 할로윈 술이 사탕이었다면 할로윈의 트릭오어트리트와 비슷하다.
그래도 인기는 많았는지 (아마도 어른들에게) 20세기 초에 크람퍼스가 그려진 독일 카드가 다량 유통되어 이민자들을 통해 미국에도 들어왔는데,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산타가 악마와 동행하거나 때로는 악마만 나와서 못된 아이들을 괴롭히는 카드들이 영 껄끄럽고 당시의 유머감각에 맞지 않아서 결국 크람퍼스라는 독은 빠진 산타클로스가 정착하게 되었고, 이 미국 버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검은 피터Zwarte Pete는 네델란드의 검은 도우미다. 네델란드에서는 성 니콜라우스를 신터클라스라고 부르는데, 설정상 스페인에 살며 11월 말 즈음 배를 타고 네델란드에 건너 와서 회색 말을 타고 행진을 한다. 그러면서 검은 도우미들도 끌고 오는데, 크람퍼스에 비하면 인간의 형태니 무섭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다른 의미로 불편하기는 하다. 아무리 봐도 흑인+하수인이라는 점에서 인종차별적인 느낌이 강하고,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백인이 흑인분장을 하는 블랙페이스 분장이니 특히 미국인에게는 3배로 충격일 듯.
일각에서는 굴뚝을 타고 내려와서 숯 때문에 얼굴이 검다고 하지만 스페인의 무어족을 희화화했다는 해석이 더 정확한 것 같다. 이 검은 피터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흥을 띄우며 착한 아이들에게 과자와 선물을 나눠주는 등 신터클라스를 도와주는 역할이지만, 동시에 못된 아이들을 혼내주는 역할도 담당한다. 못된 아이들을 회초리로 때리고 걷어차고 자루에 넣어 스페인으로 데려간다고 한다. (요즘은 그냥 걷어차는 시늉만 한다.)
사실 요즘 스페인 하면 휴양지로 나쁘지 않을 것도 같지만, 일단 네델란드에 있어서는 구 식민 지배국이자 구교의 본산지로 머나먼 미개한 적대국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다. 구교의 상징이었던 신터클라스는 받아들이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지만.
이렇게 유사한 징벌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로 독일 지역의 크네크트 루프렉트 Knecht Ruprecht나 벨스니켈Belsnickel, 프랑스 지역의 페레 푸타르 Père Fouettard 등이 있다. 크네크트 루프렉트의 경우 성 니콜라우스의 하인으로 따라다니며, 몇 십 년 전만 해도 동네 아이들의 잘못을 일일이 열거하며, 주기도문을 외우지 못하면 자루에 넣는 시늉을 하는 풍습이 남아있는 마을도 있어서, 크리스마스 철에는 선물 이전에 지옥에 끌려가지 않을까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이 좀 있었다고 한다.
페레 푸타르의 기원설은 조금 섬뜩한데, 위에서 언급한 성 니콜라우스 전설 중에서 아이들을 토막 낸 살인범이라고 전해진다. 아까부터 성 니콜라우스라면서 악마니 살인마니 등등을 부하로 끌고 다니는 걸 보면 수상쩍어 보이지만, 성인 이야기의 패턴을 보면 원래 대부분의 성인들은 악마를 간단하게 굴복시키니까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동양식으로 생각하면 지체 높은 고승이나 도사가 못된 짓을 하는 요괴를 퇴치한 뒤, 혼이 난 요괴가 굽실거리며 부하로 들어오는 패턴.) 생각해보면 자기 손 더럽히기 귀찮아서 악마나 범죄자를 부려먹는 음험한 성자로도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행진하기도 하고
가끔 행인을 습격하기도 하지만 당해도 좋댄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악마적인 도우미들은 미국의 신흥 자본주의나 부르주아 계급의 취향과 맞지 않아서 미국에는 정착하지 못했지만, 유럽에는 여전히 전통행사로 남아있다. 그리고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는 산타클로스의 상벌 속성의 중요한 반쪽-징벌 쪽을 상징한다는 점에서는, 지금의 지나치게 희석화된 산타클로스 이미지보다 오히려 더 솔직한 점이 있습니다. 특히 이교도 축제의 전통이 강하게 들어나는 크람퍼스의 경우 경건함과 행복함, 가족적 화목함의 지나친 강요에 (한국에서는 커플명절이지만 서양에서는 추석이나 설 못지않게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가족명절이기에) 피곤함을 느끼는 미국인들에게 긍정적인 스트레스 분출구로써 기능하는 점이 있으니 일각에서는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 도입되면 길거리 커플들을 쳐부수고 다닐 것 같기는 하지만, 유투브 동영상에서 크람퍼스의 회초리를 웃으면서 피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이런 블랙유머적이고도 유쾌한 크리스마스 풍습도 재미있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크람퍼스 크리스마스 카드 몇 개 추가.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