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는 없다. 죽어도 여기서 죽는다.”
새로 부임한 사령관은 전임자의 작전계획서부터 북북 찢어버렸다.
1.
1942년 8월 13일, 이집트에 주둔하던 영국 제 8군은 새 사령관을 맞이했다. 좋은 일은 아니었다. 전임 사령관이 패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다음이었으니까.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제 8군은 상당히 궁지에 몰려있었다. 여기저기서 사정없이 털리고 또 털렸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19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유럽 대륙을 석권하자, 지중해에 주둔하던 영국군은 그리스 군과 손잡고 독일의 동맹국인 이탈리아 군과 싸우게 됐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본진이었던 이집트를 공격하려던 이탈리아군을 두들겨서 쫓아 버리고, 그리스로 쳐들어온 이탈리아군도 박살을 내버렸다.
이렇게 링 위에 올라간 영국군은 이탈리아군을 신나게 밀어붙였지만, 상대 선수가 독일군으로 교체되자 전세는 당장 뒤집어졌다. 1941년 4월, 독일군은 영국군을 쫓아내고 그리스를 완전히 점령했다. 이어서 5월에는 크레타 섬이 독일군 공수부대의 손에 떨어졌다. 북아프리카에서도 나을 것이 별로 없었다. 북아프리카에 나타난 독일군은 영국군을 크게 패배시키고, 세 명의 장군을 포함한 수만 명의 포로를 잡는 전과를 올렸다. 1942년 4월, 독일군은 이집트 눈앞까지 몰려왔다.[1]
1942년 10월경의 이집트 전선 배치도. 빨간 선 왼쪽이 독일군+이탈리아군, 오른쪽이 영국군이다. 영국군 배치 사이사이에 독일에 의해 점령당한 그리스군과 프랑스군이 보인다.
신임 사령관 몽고메리 중장이 제 8군의 지휘를 맡은 것은 이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딜 보나 안구 건조증에 효과 직빵일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너절한 패잔병 무리가 되버린 영국군도 대책이 안 섰지만, 이 신임 사령관도 대책이 안 서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부터 부하들을 매섭게 갈궈 재훈련시키 시작했다. 이제 막 훈련소에서 나온 신병이든 고참병이든 안 가리고 말이다. 바로 건너편에서 독일군이 지켜보고 있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한술 더 떠서 사령관은 주둔지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면서 잔소리를 시작했다. 식사 전 식기는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어야 했으며 병사들도 항상 깨끗하게 빨아 각을 세운 군복을 입고 있어야 했다. 신병훈련소의 군기담당 부사관이 해야 할 일을 장성이 챙기고 있으니 볼멘소리가 나올 법 했지만, 사령관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 양반이 자기 행동에 덧붙인 말이 걸작이었다: “총을 맞아 죽어도 단정하고 깨끗한 시체가 되는 것이 영국군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이쯤 되고 보니 본국에서 전쟁을 지휘하던 처칠 수상도 부하들만큼이나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 됐다. [2] 하기야, 독일군 쫓아내라고 애써 보내 놓은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열이 뻗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틈만 나면 전화를 해서 몽고메리를 닥달했다. “신병도 보내 주고 새 탱크들도 보내 줬잖아! 대체 언제 공격을 시작할 겐가?” 몽고메리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 그의 행동으로 봐서 별 신통한 대답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그가 한국 사람이었더라면, 오히려 이런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때가 되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 딴 사령관 알아보시우. 나는 안 맡겠수.”
2.
작년 10월, “블랙베리”로 유명한 RIM의 데이터 센터에 사상 최악의 전산사고가 발생했다. 블랙베리는 스마트폰이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부터 이미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email을 주고받을 수 있던, 말하자면 스마트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메일 송수신을 담당하는 핵심 서비스가 바로 데이터 센터였다. 그런데 그게 망가졌다는 것이다.
블랙베리 이용자 수백만 명이 4일 동안이나 이메일을 이용하지 못했으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놀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아니, 오히려 의아했다: 왜 이제서야 저런 사고가 터진 거지?
내가 저런 생각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미 2007년에 같은 사고가 터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블랙베리의 제조사인 RIM이 최근 보여 준 행보가 영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애플 아이폰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RIM의 시장 점유율은 갈수록 낮아졌다. 화제를 차지하는 제대로 된 신제품 하나 내놓지 못한 지도 꽤 됐다.
회사 사정하고 전산센터가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본 RIM 직원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뻔하다 – “애플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 저렇게 비싸게 팔아도 너도나도 사는걸.” “거리에 나가 보면 어디든 아이폰 얘기 뿐이야.” 이쯤 되면 어딜 가도 인정받을 수 있는 똑똑한 직원들이 먼저 짐을 싸기 시작한다: “일 잘하기로 소문난 애들은 다 나가버리네?” “우린 뭐 안 옮기고 싶나. 갈 데가 없으니까 여기 붙어있는 거지.”
이렇게 되면 조직 전체가 무기력증에 빠지는 건 순식간이다. “어차피 못 이길 텐데 뭐. 대충 하고 월급이나 받자.” 정신 바짝 차리고 상대에 맞설 궁리를 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그 다음은 볼 것도 없다. 실제로 눈앞에 뻔히 보이는 문제점에 4년이 넘도록 대처를 안한 걸 보면, 이 추측이 맞는 것 같다.
3.
그런데, 이건 현상은 RIM만의 일도 아니다. 오히려 아주 흔한 축에 든다. 1996년 발매된 애플의 퍼포마 6400 컴퓨터는 시리얼 포트가 하나밖에 없어서 모뎀과 프린터를 동시에 사용할 수 없었던 제품으로 악명이 높다. 지금으로 치면 usb 포트가 하나뿐이라 마우스와 메모리 스틱을 동시에 못 쓰는 상황(…)이다. 도대체 뭘 먹고 설계를 하면 이런 제품이 나오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당시 애플에서 있었던 일화를 보면 이 막장 상황이 이해가 간다. 새로 부임한 ceo가 부서장들한테 미래 계획에 대해 보고하라고 몇 주 전에 공지를 했는데, 아무도 준비를 한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적자가 눈더미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부서장이라는 사람들이 근거도 없이 “뭐 잘 되겠죠” 라는 말이나 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조직 전체가 위아래 할 것 없이 비관주의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거다.
입 밖으로 내지만 않았을 뿐이지, 머릿속은 뻔하다: “IBM 호환 기종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 저긴 MS 오피스도 있는걸.” “뉴스만 틀면 너도나도 윈도우 95 얘기 뿐이야.” 이렇게 되면, 그 다음은 안 봐도 뻔하다. “어차피 안 되. 대충대충 하자.” 실제로 애플은 컴퓨터만 말아먹은 게 아니라 당시 진행하던 운영체제 프로젝트도 끝을 못 봤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는가?
따지고 보면, 이집트 주둔 영국군이 처한 상황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온 지중해를 배경으로 떡이 되도록 두들겨맞은 영국군 장병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독일군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 보급도 못 받는데 [3] 저렇게 잘 싸우잖아?” “별들이 세트로 포로로 잡힐 지경이면 말 다했지 뭐.”
방어진지를 치고 지키고 앉았다만, 이 정도까지 오고 보면 말단 졸병이건 간부건 머릿속은 뻔하다. “상황이 안 좋으면 방어선을 포기하고 카이로로 후퇴한다.” 입 밖으로 내지만 않을 뿐, 머릿속 한켠으로는 후퇴 계획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거다. 이 정도면, 백만 대군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4.
어느 조직의 성공에 있어 구성원들이 더 중요한지, 리더가 더 중요한지는 오랜 세월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아직 인생 경험이 미숙한 내가 이 해묵은 논쟁에 답안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리더가 혼자 출충하다고 해서 할 수 없는 게 있는 반면 리더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일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머릿속에서 비관주의를 걷어내는 일이야말로 리더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조직 전체에 한꺼번에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리더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현대전 쪽이 아니기 때문에, 몽고메리가 명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오히려 “당신 작전 한번만 더 성공하면 나라 말아먹겠다.”는 악평을 듣거나 “부하들을 사정없이 갈궈서 이기는 스타일[4]”이라는 평을 듣는 걸 보면 그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은 것 같지가 않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몽고메리는 자신만이 해낼 수 있었던 일을 결국 훌륭하게 해냈다는 점이다. 남들이 뭐라 하건, 그의 지휘 아래서 제 8군은 무력감에 빠져 잃어버렸던 긴장감을 회복했다. 아니, 그가 후퇴 계획서를 찢어버리고 적군 앞에서 훈련하라고 내몰던 순간부터 영국군은 머릿속에서 후퇴라는 말을 지워야 했다. 적어도 두달 뒤, 독일군을 향해 반격의 포문을 열던 영국군은 더이상 장성까지 포로로 잡히면서 두들겨 맞던 이전의 영국군이 아니었다.
5.
“거기 남아 있는 사람들이 오죽하겠어요.”
얼마 전, 트위터에서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냐는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이 문제에 대한 답도 사람 따라 백인 백색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일전에 트위터에서 다른 분(A씨라고 하자)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A씨의 배우자 분(A’씨라 하자)이 다니는 회사가 다른 회사를 인수해서 A’씨가 거기 책임자로 가게 됐단다. 그런데, 그 회사 직원들 사기가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인수한 회사 입장에서 그런 곳에 평소 능력을 인정받던 A’씨를 책임자로 내려보낸 건, 아마도 이런 의미일 게다: “그 조직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엄청나게 어려운 일에 속한다. 조직이 그 정도로 망가졌다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암세포가 온 몸에 퍼져서 숨쉬는 것조차 힘겨운 상황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어려운 수술을 성공시켜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의사가 명의로 칭송받는 만큼이나 죽어가는 조직을 살려 낸 리더가 진정 비범한 리더로 칭송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명장이 아니어도 좋다. 잔소리가 심해도 좋고 혼자서 천연덕스럽게 방망이를 깎고 앉아 있어도 좋다. 패배감에 젖어 의기소침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 줄 수만 있다면.
원문: gorekun’s log
-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은 수에즈 운하 때문이다. 당장 독일군이 북아프리카에 또아리를 틀면서, 영국 본토에서 이집트 주둔 영국군에게 가는 보급품은 지중해를 따라서 바로 못 가고 남아프리카를 빙 돌아서 가고 있었다 – 무려 45일이 더 걸렸다. 게다가 수에즈 운하가 독일군의 손에 떨어질 경우, 인도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고 있던 영국군이 직격탄을 맞는다. [본문] ↩
- 처칠 수상은 당시 승리가 절실했다. 영국의 동맹국인 미국은 1942년 6월 7일, 일본군 제 2 기동함대를 대파하는 큰 승리를 거둔다. 또다른 동맹국인 소련도 독일군을 맞아 막대한 희생자를 내면서 버티고 있었다. 그러니까 영국군만 영 전과가 신통찮았던 셈인데, 이래 가지고서는 대내외적으로 전쟁 수행 능력을 의심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7월 1일, 영국 의회에 상정된 불신임안이 부결되면서 처칠 수상은 겨우 자리를 보전한 상태였다. ↩
- 전선이 이집트 근처에 형성되면서, 독일군이 보급 물자를 양륙받던 항구에서 전선까지 1900km가 넘었다. 이것은 단순히 수송 시간이나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전선의 부대에 보급되는 보급품이 크게 줄어든다는 문제도 된다 – 수송 대열을 본 영국 공군이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시당초 지중해를 건너오는 동안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아 잃어버리는 물자부터가 엄청났다. ↩
- 이 말은 유명한 군사학자 존 키건 경의 『제 2차 세계대전』에 직접 나오는 표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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