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경제의 「일본도 한국에 호감으로…BTS가 국가이미지 올린 일등공신」을 참고한 글입니다.
1.
한국의 글로벌 위상과 관련하여, 2020년 연초에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4관왕을 했다. 곧이어 코로나 사태가 터졌는데 뉴욕타임스, BBC 등 저명한 외신을 중심으로 ‘K-방역’에 대한 엄청난 호평이 쏟아졌다.
불과 2015년경만 해도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2020년은 국뽕의 원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대한민국’의 호감도 상승은 왜 일어난 것일까? 혹은 누구의 공으로 봐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해답을 제공할 수 있는 조사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됐다.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은 해마다 대한민국에 대한 국가 이미지 조사를 한다. 2021년 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2.
한국 이미지에 대해 <긍정 평가 요인>을 물었다. 2021년 기준으로 열거해보면 아래와 같다.
K-pop, 영화 등의 “문화적 요인”이 22.9%로 가장 많다. 그러나, 2위를 차지하는 한국산 제품 및 브랜드, 3위를 차지하는 국민소득과 경제 수준은 ‘경제적 번영’이라는 같은 카테고리로 볼 수 있다.
2-3위에 해당하는 ‘제품 및 브랜드’ ‘국민소득과 경제 수준’을 합치면 23.4%로 1위가 된다. 결국 ‘제품 및 브랜드’ ‘국민소득과 경제 수준’이 23.4%로 1위가 되고 k-pop과 영화, 드라마 등은 22.9%로 2위가 된다.
2017년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한국의 민주주의’ 등 정치 상황은 6.2%이고, 2~3위를 합친 것을 고려하면 7위에 해당한다.
3.
흥미로운 부분은 한국인의 한국 호감도 평가와 외국인의 한국 호감도 평가가 보여주는 간극이다. 한국인의 한국에 대한 긍정 평가는 48.5%였다.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긍정 평가는 80.5%였다. 한국인들 자신은 긍정 평가 비율이 절반이 안 된다. 매우 인색한 평가다.
어떤 나라들이 한국을 긍정 평가하는 것일까? 한국을 긍정 평가하는 나라를 국가 순위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오른쪽부터 상위 13개 국가는 주로 동남아, 남미, 개발도상국 국가들이다. 14위부터~21위는 대체로 ‘서구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이다. 한국에 대한 긍정 평가가 가장 낮은 국가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과 일본이다. 22위가 중국, 23위가 일본이다.
4.
논의를 정리해보자. 글로벌 대한민국에 대한 해외에서의 호감도 상승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제품, 소득, 경제력 수준’ 때문이다. 비중은 23.4%.
둘째, BTS와 봉준호, 오징어 게임으로 상징되는 ‘K-콘텐츠’ 때문이다. 비중은 22.9%.
그럼, ‘제품, 소득, 경제력 수준’의 상승 원인은 누구의 공이 가장 컸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최대의 공헌자를 꼽는다면, 대한민국 대기업 총수들이었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이병철, 정주영, 이건희, 박태준 같은 사람들이 해당한다. 이병철-이건희가 1980년대 초반에 삼성 그룹 전체가 어려워질 각오를 하고 반도체 투자를 하지 않고 설탕과 양복만 팔려고 했다면, 지금과 같은 ‘글로벌 대한민국’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주영이 현대중공업을 만들던 시점은 1972년이다. 당시는 한국의 1인당 GDP가 1천 달러가 되지 않았다. (한국의 1인당 GDP 1천 달러는 1977년에 달성된다.) 그런데, 정주영은 현대중공업을 만들던 시점부터 세계 최대 규모로 만들었다. 나쁘게 말하면 ‘과잉투자’이지만, 좋게 표현하면 매우 장기적인 시야를 가진 것이었고 투자 스케일도 장난이 아니었던 거다.
이는 5.16 군사 쿠데타에 참여하고, 이후 박정희의 요청으로 포항제철 사장을 맡게 되는 박태준의 경우도 같다. 박정희와 박태준 역시 포항제철을 만들던 시점부터 세계 최대 규모로 만들었다.
슘페터 경제학은 “혁신의 경제학”으로 유명하다. 슘페터, 혁신, 창업을 다룰 때 중요한 키워드가 앙트레프레너쉽(Entrepreneurship)이다. 굳이 번역하면, ‘기업가 정신’ 혹은 ‘벤처 정신’ 쯤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이건희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경영학 교과서, 혹은 기업가 정신 관련 책에 나오는 앙트레프레너십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들이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이 제창한 사훈은 사업보국(事業保國)이다. “기업을 일으켜 나라에 이바지하다”는 뜻이다.
냉전과 군부 독재를 겪어야 했던, 제3세계 후발 공업 국가인 한국의 현실에서 재벌 총수들은 한편으로는 정경유착을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사업보국’의 애국심이 있었기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고 볼 수 있다.
5.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복기해보면, 우리 민족 스스로의 선택보다 외부 환경의 강제에 의해 이뤄진 일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조선의 식민지화,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이다.
근대(Modern)의 원래 뜻은 ‘최근’이라는 시간적 개념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진행된 근대의 진행 과정은 유럽의 세계사적 팽창이었다. 즉, 유럽적 질서의 공간적 확장이었다.
식민지, 분단,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해 한국민들은 한국을 깔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한국 우파(보수)는 일본과 미국을 ‘모방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한국 좌파(진보)는 스펙트럼이 더 넓었는데, 60년대~70년대는 제3세계 이론을 모방하려 했고, 80년대에는 소련, 중국 것을 모방하려 했고, 사회주의가 붕괴한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유럽 복지국가를 모방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 보수는 오랫동안 주류 세력이었기 때문에, 즉 자기가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굳이 비판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한국 진보는 오랫동안 비주류 세력이었기 때문에 한국을 깔보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하게, 그리고 오래 남아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사회 문화적으로도 ‘추격의 시대’를 지나고 ‘추월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추격의 시대에는 ‘추격형’ ‘모방형’ 경제였다. 추격의 시대에는 사회 과학 역시 ‘모방의 사회과학’이 중요했다.
그러나, 추월의 시대가 되면, 추월의 경제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세계와 물질에 대한 인식 역시 ‘추월의 사회 과학’이 되어야만 한다.
추월의 사회과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핵심은 서구와 한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제대로 비교하는 것이다. 동북아와 동남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제대로 비교해야 한다. 같은 동북아 국가 중에서도 한국, 일본, 중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제대로 비교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보편’으로서의 세계사와 ‘특수’로서의 한국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야만 한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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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미지 출처: 아시아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