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중요한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저마다 신념 같은 것이 생긴다. 자신이 듣고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구축한 하나의 통계치다. 그것을 기준으로 상대의 말과 행동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탐색하는 시간을 갖는다. 10대와 20대, 30대 때까지만 해도 이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소통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순진했다. 직장이란 공간에서 내 속을 함부로 꺼내 보이면 안 된다. 그건 내 약점을 노출하는 것과 같다. 직장은 치열한 전쟁터인데 내가 바보 같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공간에서 협업하면서 나아가려면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려고 애쓰는 이들도 많다. 연인 관계를 빗대어 말하면, 처음에 서로의 호감을 사기 위해 장점만을 찾아 칭찬하고 아껴주고 하며 부단히 노력한다랄까.
하지만 노력이 소홀해지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상대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상대가 내게 의지한다고 믿는 시점부터 변하는 것이 인간이다. 상대의 장점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 줄어들고, 자신이 해왔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싹트면서부터… 단점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협업은 깨진다. 그를 믿고 말했던 나의 약점들이 날카로운 칼날로 에워싼 부메랑이 되어 나를 향해 돌아온다.
이제부터는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내 단점을 크게 보는 그, 그의 단점이 눈에 거슬리는 내가… 올 한 해를 마지막으로 서로 다른 업무를 찾아갈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더 많이 노력하며 함께 나아갈 방법을 찾을지… 이때부터는 말수를 줄여야 한다.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마구마구 눈에 띄는 단점들에 대해… 굳이 불필요한 말을 보태며 내가 상대에게, 상대가 나에게 쏘아대는 순간,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시간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본인만 모른다. 자신이 내뱉은 말 속에 드러난 가시를. 그로 인해 자신이 초반에 그토록 더 나은 협업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이들이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어느 순간부터 상대와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좋았던 순간, 잊지 못할 순간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현실 속 스트레스를 감내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이 오는 것은 한순간이다. 내 마음 속 인내의 끈은 끊어지고 만다.
이 순간 떠오르는 이가 있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 계신다. 그는 말수가 극도로 적다. 후배들 앞에서 그 어떤 빈 소리도 하지 않으신다. 그저 주로 듣고 웃어 넘기신다. 물론 말을 꼭 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면 정말 꼭 필요한 말씀만 하신다.
그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0여 년 전, 그분이 차장이셨을 때다. 어느덧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셨다. 매월 한 번은 찾아뵈려고 한다. 만나 뵈면 늘 나의 신세 한탄이 이어진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만나곤 하지만 그분 앞에만 서면 어린아이처럼 거침없이 현실 속 직장 내 분통을 토해내듯 쏟아낸다.
요즘 그분이 이토록 말수가 적어진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직책이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말이 많아서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요새 말수가 줄고 있다. 정말 어릴 적부터 본 사람이 아니면 쉰 소리를 안 하려고 한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불가피하고,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기 위해 뇌를 거치지 않고 내뱉은 말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때가 많다는 것을 알아서다.
원문: 광화문덕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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