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대업자라는 초딩의 꿈
최근 SNS를 비롯한 많은 매체에서 이 나라의 비정상성에 대해 지적할 때 많이 쓰는 말 중에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것중의 하나는 “임대업자가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인 나라”인 것 같다. 이 말이 주는 현실에 대한 씁슬함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말에 살짝 떨떨음한 구석이 있어서 살짝 파보았다.
대충 다음과 네이버에서 초등학생 임대업자 정도로 해서 기사를 검색했을 때, 가장 오래된 2013년 8월 7일의 경향신문 칼럼이다. 이 칼럼은 “얼마전 한 기사에서 초등학생 장래희망이~”라고 시작하지만, 이 칼럼이 어떤 기사를 지칭하는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 2013년 9월 5일 머니투데이의 기사는 역시, 한국의 기사들이 습관적으로 그렇게 시작을 하듯, 익명으로 처리된 정말로 존재하지 안하는지는 모를 것 같은 사람의 “깜짝” 놀라는 경험으로 시작을 한다. 이 기사에서는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이 아니라 중학생의 장래희망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찌되었던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이 부동산 임대업자라는 것에 대한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사실”로서 유의미한 데이터는 찾을 수 없었다. 하도 말이 많아서 적어도 어떤 초등학교에서 조사한 결과 1위가 부동산 임대업자라는 정도의 팩트 정도는 있을 줄로 알았는데 내 부족한 인터넷 검색 실력으로는 찾지 못했다.
어쨌든 이것이 인터넷에서 삽시간에 퍼지면서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통해서 투영되는 절망적인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라는 “증거”로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14년 7월 MBC 피디수첩이 1000회 특집으로 2탄 부동산 임대업이 꿈인 나라가 방영되면서인듯 하다.
7월 8일 방영된 방송에서 방송 첫 부분에 진행자는 최근의 한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조사한 결과 한 학생이 임대업이라고 하였다, 그 학생이 장난으로 했을지는 모르지만 어른들의 현실을 투영하는 것 같아 참으로 씁쓸하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물론 이 피디수첩의 1000회 특집 시리즈는 아주 잘 만들어진 시사프로그램이었긴 하다.
2. 초딩 – 그 절망의 대상이여.
장난이었든 진심이었든, 한 명의 초딩이 응답했든 만 명의 초딩이 응답했든, 내가 이 글에서 주장하고 싶은 단 한 가지는 이러하다. “어른들의 이미 준비된 절망의 증거’로써’ 초딩의 꿈을 팔아 먹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개탄할 현실들을 앞에다 주고서 그 개탄의 정당성을 입증할 증거로써 청소년을 포함한 초딩의 꿈이 동원되는 건 요근래 익숙한 장면이다. 장래희망이 교사여도 개탄하고, 공무원이어도 개탄하고, 연예인이어도 개탄한다. 나 또한 확실한 데이터는 갖고 있지 않지만, 개탄하는 대부분의 이들은 자신이 혹은 자신의 자식이 교사가 된다면 환영할 것이고, 공무원이 된다면 기뻐할 것이며, 잘 나가는 연예인이 된다면 좋아할 것 같다는 예상을 해본다.
장래희망이 부동산 임대업, 교사, 공무원, 혹은 연예인이라는 것에 개탄을 할 때 동시에 반대항으로 설정되는 “낭만적인 과거”는 대통령, 현모양처, 과학자가 꿈인 아이들이 많았던, (내 느낌에는) 1997년 경제위기가 있기 전의 교실에 있는 초딩들의 꿈이다. 내 눈에는 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애들이 반에서 다섯명은 넘었던 그 시절도 비정상적이긴 매한가지이다.
89년 우리 옆반의 아이는 대통령 되겠다는 애들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다가, 대통령보다 높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써 낸 것이 유엔총장이었다. 자기 생각엔 대통령의 대통령이니 자기가 이 학교에서 젤 높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했었다. (전해듣는 바로는 그 친구는 그의 아버지와 같이 직업군인이 되었고, 유엔 총장의 역사를 생각해볼 때 직업군인이 될 확률은 거의 없기에 이룰 수 없는 꿈이 된 것 같지만. )
어쨌든 현재의 장래희망이 안정성과 돈이 키워드라면, 그 당시에도 힘과 돈에 대한 열망이 결국 (그들이 낭만적이라고 기억하는) 그 시절 국딩들의 꿈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 국딩들이 과학자/학자가 얼마나 돈도 별로 못벌고 생각보다 별로 힘도 없는 현실을 모른 채 쓰는 그 나이브함을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증거로 볼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대통령이 꿈인 아이들이 많은 사회도 제정상은 아닌 사회인 건 분명하다. 물론 더 이상한 것은 서너개의 “직업”이 꿈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시절이나 이 시절이나 공유하고 있는 비정상성이다.
3. 몇 글자의 명사에 갇힌, 지워버려진 “장래”
초딩들의 장래희망에 현실을 개탄하기에 앞서 모두들 잊고 있는 것은 그 장래희망이라고 언급된 몇 글자의 명사 앞에 지워져버린 수식어이다. 사실 장래희망을 보여주는 명사보다도 그 명사를 수식하고 있는 수식어가 훨씬 더 중요하다.
배우 윤여정이 전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그 큰 아들은 장래희망이 우편집배원이었단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준비된 현실 개탄으로 그 꿈을 해석하자면, 안정적 삶을 살겠다는, 모험과 도전이 가득한 꿈을 꾸어야할 초딩이 안정적 공무원을 꿈꾼다는 절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DKNY쪽에서 패션일을 하고 있는 그 큰아들은 미국 생활 당시 경제난과 남편의 헛짓으로 고통스러웠던 엄마가 유일하게 행복해 하는 일이 집배원 아저씨를 기다리는 일이었단다. 오랜 친구인 드라마작가 김수현과 거의 매일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 편지를 배달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때, 그 역시나 마음 고생이 컸을 그 아들은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직업이 집배원이라고 생각해서 그 당시 장래 희망을 우편집배원이라고 했단다.
다시 말해, 우편집배원이든 공무원이든 그 명사를 떠나서 그 명사 앞에 그 초딩들이 무엇을 상상하고 무슨 일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상상 – 그 일이 왜 중요하며 자신이 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바로 그 지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부동산 임대업도 마찬가지이다. 도쿄 신주쿠에서 약간 벗어난 한 거리는 소비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삶을 살고 사회운동을 하며 소박하게 살겠다는 일본의 청년들이 살고 있다.
헌책도 계속해서 돌려보고, 여러 생활 용품들도 재활용하고 나눠쓰고 아껴쓰며, 자그마한 술집의 다락방 같은 곳에 모여서 해적 라디오도 진행하면서 사는 이들이다. 이들이 그 비싼 동아시아의 소비도시 도쿄, 그중에서도 신주쿠지역에서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삶을 응원하는 건물주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노년이 된 그들이지만, 젊은 시절 사회운동에 참여하였고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인해서 어쩌다 보니 돈을 벌게 되어 도쿄 시내에 건물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건물주 노인들은 그 청년들의 삶을 지지하고 그들의 소박한 삶을 지켜주고 싶어서 시세에 비해 말도 안되는 돈으로 그들에게 집과 가게를 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건물이 계속해서 그런 청년들을 위해서 쓰이길 바라고 있었다. 그 노인들의 직업 또한 부동산 임대업자일 것이다.
4. 준비된 개탄을 위해 초딩의 장래 희망을 이용하지 말라
명사 몇 글자로 표현된 초딩들의 장래 희망을 현실 개탄을 위해 쓰려는 어른들은 이미 그 명사 앞에 수많은 수식어를 상정하고 있다.
세입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면서 불로소득으로 떵떵 거리며 사는 악덕 부동산 임대업자,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거룩한 소명은 잊은 채 방학 때 해외여행이나 갈 궁리만 계속하고 있는 철밥그릇 교사, 복지부동을 인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안으로는 의전에만 힘쓰며 밖으로는 무능력을 보여주는 땡보 공무원, 최첨단의 소비주의를 이끌며 한탕 번 돈으로 삐까뻔쩍 사는 연예인…
장래희망을 두고 개탄할 수식어는 초딩들이 넣은 게 아니라 바로 그 해석을 준비하고 있던 그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초딩들이 상상했던 것은 (물론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할지라도) 열심히 일하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의 주거 안정성을 지켜주는 부동산 임대업자일 수도 있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교사일 수도 있으며, 부정부패을 저지르지 않는 공무원일 수도 있으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자원과 명성을 열심히 쓰는 연예인일 수도 있다.
몇 글자의 명사에 개탄하기에 앞서, 삶이란 단지 어떤 한 가지의 직업으로 설명되거나 끝나는 것도 아니고, 결국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위해 죽는 날까지 꿈을 꿔야하는 게 인간이라면, 몇 글자의 명사보다 그 명사 앞에 생략되어 있는 삶의 방향에 대한 수식을 더욱 생각하고 신경써야한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이미 준비된 개탄을 하기 위해 초딩의 장래 희망을 마음대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스무살 넘어서도 하루에 열다섯번도 바뀔 수 있는 “그깟 장래희망”을 두고 현실을 개탄하는데 유용한 증거로써 굳이 동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울러 더욱 중요한 것은 직업으로서 나온 명사가 아니라 그 명사 앞을 수식하고 있는, 그리고 거의 모든 경우에서 생략되고 있는 삶과 직업에서의 추구하는 지향점이 삭제된 채, 그들의 장래를 현실의 투영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현실을 개탄하는 것을 오히려 개탄해야한다. 더 많은 직업의 종류가 아니라, 더 많은 삶의 지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louis vuitton bagsFord increases production as demand surges for Explor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