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이네요. 이번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감성 가득한 카페 말고 근현대사와 관련된 장소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3호선 독립문역 근처에는 ‘딜쿠샤’라는 미국 가정집의 형태가 잘 보존된 곳이 있습니다. 포근하게 느껴지는 붉은 벽돌과 마치 미국에서 볼 법한 형태의 건축 양식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곳은 연합통신 통신원이었던 앨버트 W. 테일러 부부가 생전 살았던 가옥입니다. 여기가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을 거에요. 추운 날씨에 따뜻한 느낌도 받고, 지식도 채울 겸 한번 떠나보겠습니다.
앨버스 W. 테일러는 원래 광산업자였습니다. 사업가이지만 기자로서 조선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죠. 연합통신(AP)에 의해서 고종이 승하할 당시 이를 취재할 특파원으로 임명되었다고 해요.
당시에는 일본인이 취업 시장에서 훨씬 우대되었기 때문에 일반 조선 서민들은 복지 면에서 매우 열악한 환경에 있었지만, 테일러는 조선인들에게도 기회를 많이 주고 차별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들 부부는 조선인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었다고 합니다. 아내인 메리 테일러는 영국 출신의 연극배우로,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죠. 그녀는 가정일을 도와주던 ‘공서방’과 ‘김주사’라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 남겼습니다. 이외에도 딜쿠샤 내부에는 조선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입니다만, 딜쿠샤와 앨버트 테일러가 조명을 받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3.1운동 독립선언서와 제암리 학살사건이에요.
1919년 2월 28일, 아내인 메리는 아들을 출산하고 세브란스 병원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3월 1일, 앨버트는 우연히 침대 속에 숨겨져 있는 독립선언서를 발견했습니다. 한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앨버트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아챘고, 몰래 빼돌렸습니다. 그 후 그는 3.1운동에 대한 기사를 작성해서 독립선언서와 함께 동생인 윌리엄에게 전달했습니다. 윌리엄은 일본으로 건너가 이를 전신으로 미국에 전달했죠.
그해 4월 15일, 수원 제암리에서 만세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조선인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이 역시 앨버트가 사건 다음 날 현장을 방문해서 촬영하고, 생존자를 취재한 기사를 전파했습니다. 이후에도 조선에 우호적이었던 스코필드, 언더우드와 같은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총독부에 항의 차 방문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었다고 해요.
조선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힘을 쓰던 테일러는, 결국 1942년 일본에 의해 강제 추방됩니다. 외국인 추방령에 저항하다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간 수감되기도 했죠. 수감생활 이후에는 미국으로 추방당했습니다. 해방된 이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원했지만, 1948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한국에 묻히길 원했기 때문에, 메리는 그의 유해를 양화진외국인묘원에 안장했습니다.
이후 메리 테일러는 『호박 목걸이』라는 회고록을 썼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이죠. 그런 만큼 이 책은 당시 조선의 결혼, 장례식 등의 생활 풍속을 잘 그려내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 희망, 이상향’이라는 뜻입니다. 메리가 희망을 담아 붙인 이름이죠.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붉은 벽돌을 쌓아 벽체를 만들었는데, 이 벽체가 건물의 뼈대 역할을 하며 무게를 지탱하는 벽돌 건물입니다.
이 과정에서 ‘공동벽’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취했습니다. 공동벽은 벽돌로 벽체를 세울 때 안쪽 벽과 바깥쪽 벽 사이에 공간을 만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벽 사이의 공간을 가로지르는 벽돌이 양쪽 벽에 맞물리도록 쌓는 건축 방식입니다.
공동벽 쌓기의 장점은 벽이 구조적으로 일체화되어 안정성이 높아지고, 벽돌과 접착 모르타르의 사용량을 줄인다는 것입니다. 주로 미국의 소규모 저택이나 창고에서 사용되는 기법으로, 한국 근대 건축에서는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고 희귀한 기법이죠.
서울시는 2018년 딜쿠샤의 복원 공사에 착수하여, 2020년 12월 ‘딜쿠샤 전시관’으로 공사를 완료했습니다. 내부 1층과 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 거주 당시의 1920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나머지 공간은 한국에서의 생활상과 언론 활동 등을 조명하는 전시실로 구성했죠. 유물은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인 제니퍼 L. 테일러가 기증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죠.
이번 개관으로 한국의 독립투쟁에 동참한 서양인 독립유공자가 재조명받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딜쿠샤는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관람료는 무료이지만 사전 예약이 필요합니다. 예약은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http://yeyak.seoul.go.kr/)’에서 가능합니다.
직접 가서 보시면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장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근처에 갈 일이 있다면 시간을 내서 꼭 방문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원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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