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역사 옥션의 가장 황당한 중고거래 Top5에 각종 대통령 휘호들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실제 대통령 휘호가 얼마 정도에 거래되는지 살펴 보았다.
전두환: 학살도 잘 하고 독재도 잘 하고 글씨도 잘 써요
“고진감래 1100만원~!! 더 없습니까? 네~ 전화 응찰자에게 낙찰되었습니다. 1100만원~!!”
2013년 12월, 대표적 미술 경매사 k옥션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서예가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1600억 원 추징금 환수 언급 이후 압류된 전두환 가문 미술품 중 하나로 99년 수능을 앞둔 자신의 처조카를 위해 고진감래… 즉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글을 써준 것이다.
광주 학살로 인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자신의 조카에 대한 지극한 아름다운 마음씨다. 80만원에서 시작된 경매는 본래 추정가 200만 원 정도로 예상했으나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1100만원이라는 경이적인 가격까지 올라갔다. 이로써 과거 뜬금없이 경매에 한 점 등장하여 1100만 원에 낙찰된 이후 다시 그 최고가를 건드린 전두환 작품으로 공동 최고기록을 쓴다.
그렇다면 누가 산 것일까?
옥션 제도상 낙찰자가 직접 자신이 구입했음을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는 한 비밀일 수밖에 없다. 다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족 또는 추종자가 구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본래 미술품은 그 작가(?)의 추종자가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작가의 추징금으로 고통 받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던 열기가 추정가의 5배 정도의 낙찰가를 만들었으니 당시 추종자들도 무언가 단단히 마음먹었던 것 같다.
여기서 또 다른 궁금증… 과연 역대 대통령 글씨는 얼마정도 할까? 해당 인물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순수하게 가격에 대한 의문을 지금부터 풀어보고자 한다.
노태우: 정치도 휘호도 존재감이 없지요
우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보통 사람인 노태우 전 대통령… 따로 서예가 스승을 두는 등 노력하면서 많은 서예 작품을 남겼지만 경매에서는 거의 거래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돈으로 교환되는 가치가 부족하다는 의미.. 시장 가격은 80~100만 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친구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시장가 절반 정도라 하겠다. 대통령 시절 위상도 딱 그 정도였던 것 같다. 열혈한 추종자 확보도 실패하고 정치적 업적도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김영삼: 내 멋에 산다! 대도무문!
전두환과 노태우가 결성한 군대 조직인 하나회를 때려잡으며 강한 인상을 주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옳은 길을 가는 데는 거칠 것이 없다.” 라는 의미의 대도무문이라는 글을 무척 좋아했다. 거칠고 강한 힘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작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듯 보는 이에게 시원함을 선사한다.
다만 서예 전문가들은 기본기가 부족하고 자신의 멋에 따라 쓴 글씨라 평가하고는 있다. 즉 작품으로 가치보다 누가 썼느냐에 의미 부여를 준다는 것이다. 그래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나름 마니아층이 있다. 이것이 한 점 당 300~ 400만원까지 꾸준히 경매에 낙찰되는 전력의 바탕이 된다. 최고 기록은 560만 원.
김대중: 철학과 정치행보의 일치
한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의 라이벌로 인식되었으나 이제는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자 IMF의 위기를 해결하며 어느 정도 성공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구축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작품은 인기가 좋은 편이다. 미술 경매에서도 단골손님으로 나오고 있는데 초서, 행서체를 기반으로 하여 민주주의, 통일과 관련한 휘호 작품들이 많다. 보통 500만 원 정도이나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2000만 원까지도 낙찰된 경력이 있다. 그러다 최근 전두환 컬렉션 경매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 작품이 등장한다.
김구가 남북협상을 위해 삼팔선을 넘으며 읊은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라는 시를 쓴 작품으로 전재국의 1992년 결혼을 축하하며 선물로 보낸 것이다. 자신을 사형 선고시킨 상대의 아들에게 “눈 내린 들판을 걸은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는 내용의 시를 보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여하간 이 작품은 이런 저런 흥미로운 스토리가 결합되면서 가격도 상당히 높은 2300만 원을 기록하였다. 같은 경매에서 작가 최고 가격에 오른 전두환 작품 1100만 원의 2배 이상의 가격이다.
그러나 김대중 작품 최고가는 4100만원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민주회복조국통일”이다. 그를 상징하는 문장이 연달아 붙여진 만큼 대단한 가격이 만들어진 듯싶다. 여기서 휘호에 작성자의 철학이 담겨있으면 가격도 월등히 높아짐을 알 수 있다.
박정희: 팬클럽의 힘
지금까지의 예와는 가격 면에서 독보적인 작품 군이 있다. 누구보다 두텁고 열정적인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힘으로 자신의 딸까지 대통령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예 작품이다. 무엇보다 18여 년을 대통령을 지내면서 최대 규모인 1200여 점의 휘호를 남긴 그는 남아 있는 풍부한 기록으로 개인 서예실력의 발달사도 파악이 가능한 드문 경우라 하겠다.
위 사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순국충혼”으로 1964년 작품이다. 61년 5.16 쿠데타 이후 그의 서예는 인기가 폭등하게 되는데 여기저기서 그의 글을 원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보다시피 아직까지는 작품의 격이 높지 못했다. 자신감과 힘은 가득했는데 표현된 글은 작가의 생각대로 나오지 않아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래도 이 작품은 2010년, 2500만 원이라는 가격에 낙찰된다. 열혈 추종자들에게는 초기작으로서 가치가 더해진 듯 보인다.
허나 오랜 기간 실전을 통해 연습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만의 필법을 완성한다. 이를 조선말 서예가 김정희의 글씨를 “추사체”라 부르는 것처럼 “사령관체”라 부르기도 하는데 명필이냐 아니냐를 넘어 나름 자신만의 개성적 경지를 구축한 것이다.
사진의 “국민총화 총화전진”은 1977년 작품으로 1979년 김재규의 총탄에 사망하기 2년 전 작품이다. 그만큼 만년의 숙련됨이 느껴진다. 한 획 한 획 칼처럼 날렵하면서도 숙달한 표현력은 “사령관체”의 완숙미를 보여주며 문장에는 그가 자랑하는 국가주의적 가치관도 잘 표현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글 간격, 날짜 및 작가 이름과 낙관의 배치도 프로 서예가 못지않다.
이 정도 작품이라면 당연히 가격도 다를 수밖에 없다. 많은 추종자의 혼을 뺏은 이 작품은 2003년, 6200만 원에 낙찰되었고 다시 경매에 등장한다면 현재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 정권 시대이므로 이전 가격의 2배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매 최고가는 1억 1천만 원이다.
이승만: 내 앞에서 감히 서예 이야기도 하지 마
그러나 단일 작품으로 최고가는 따로 있다.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지인용(智仁勇)이라는 작품으로 대통령 글씨로는 최대인 2006년 1억 5500만 원의 낙찰가를 받아낸 이승만 작품 세계는 예술성으로만 본다면 다른 대통령들의 작품과 비교 불가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영향 덕분인지 경매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나올 때마다 가격은 상당하다.
서예를 한학을 통해 접한 그는 양녕대군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으로 과거시험에 수차례 도전했으나 7차례 정도 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과거를 포기하고 신학문으로 관심을 옮긴 후 영어공부를 연마하여 결국 초대 대통령이 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역시 인생이란 모르는 거다. 과거에 합격했으면 우리가 아는 이승만은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여하간 이승만 전 대통령은 태어났을 때부터 조선시대 사람인지라 서예의 접근도와 숙달도도 타 대통령과 현격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취미로 즐긴 사람과 생활로 한 사람과는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의 서예에 대한 각별함은 다음과 같은 일화로도 알려져 있다.
“붓글씨를 쓰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며 근육의 긴장을 푸는 데도 도움이 된다. 훌륭한 학자가 구비해야 할 요건으로서 서예가를 만들려고 했던 부모님에 대한 의무감에서 붓글씨를 시작했다. 간수들의 회의로 붓과 잉크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을 때 이것이 서예의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의 손가락 셋이 굳어져 내 손을 망쳐 불구화되었다.”
오죽하면 세 손가락이 굳어질 정도로 서예에 매진한 이승만 전 대통령…. 이는 추사 김정희가 자신의 서예에 대한 노력에 “벼루 열 개가 구멍이 뚫리고 붓 천개를 망가뜨렸다.”고 표현한 만큼 노력이 가미되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도 오랜 대통령 기간만큼 곳곳에서 볼 수 있으니 가장 유명한 것이 “청간정” 현판이다.
물론 앞에서 보듯 글씨 수준보다 추종자가 많이 있기에 그의 글씨가 인기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독교 사상과 미국 동맹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정치 철학에 동조하는 추종자들에게는 이승만은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을 옳은 방향으로 설정한 성공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소통하는 젊은 대통령이라 관심 없어요
그렇다면 영화 변호인을 통해 1000만 이상의 관중을 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떨까?
현재 대한민국에서 추종자 숫자로는 최고를 자랑하고 있는 대통령이지만 그는 휘호를 통해 뜻한 바를 보여주는 행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사실 서예로 글을 쓰는 것은 정치인에게는 또 다른 정치적 표현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 대통령의 이미지와 더불어 소통을 강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터넷을 이용한 화두 설정에 관심을 두면서 이전 시대와 달라진 정치 풍토를 열고자 한다.
즉 휘호처럼 위에서 내려지는 것이 아닌 쌍방향의 정치를 꿈꾼 것이다. 다만 그가 국회의원 시절 남양주 음식점에 올려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글씨가 인터넷 경매에 나와 501만원으로 낙찰된 경력이 있기는 하다. 큰 의미 부여는 안 될 듯싶다.
이명박: 경매 실적 없음
마지막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언급하자.
휘호의 시대를 다시 열고자 한 그는 청와대 시절 나름 서예를 열심히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 미술 경매에 작품이 등장하지는 않았다. 물론 새로 지어진 관청과 관료들에게 그의 휘호가 전달되기는 했다. 중국인들이 그의 서예를 보고 칭찬을 했다고 하며 그만큼 수준이 높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단순히 중국 내 인터넷 댓글 반응이다. 무엇보다 글의 예술성보다 정치적 업적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작품 가격이 정해지는 현 분위기에서 그리 인기를 얻을 상황은 아닌 듯 보인다. 가격은 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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