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나와 앉았다. 구리 이순신 동상 아래에서 “천개의 바람“이 울려 퍼진다. 노란 바람개비는 쉼없이 돌고 밥을 굶는 사람들의 검은 빛은 살피지 않아도 눈에 든다. 서명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목과 팔은 멈추지 않고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은 가끔 그 앞에 머문다. 칸칸이 채워지는 사람들의 이름을 본다. 어느 손팻말에 이렇게 적혀 있다.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스타의 사인보다도 훨씬 더 소중해요.”
저 사람들의 이름이 담긴 서명 용지가 오늘 땅에 팽개쳐졌다. 갑자기 들이닥친 늙은 개와 마녀같은 여자의 손에 책상이 엎어지고 스타보다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이 거리에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국회의원은 의사자니 뭐니 엉뚱한 이야기를 돌리며 자식 잃은 사람들 가슴에 못을 박았고 도대체 내 자식들이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누구 책임이며 얼마나 큰 책임인지를 밝히자는 요청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되고 있다.
묻고 싶다. 이런 전례가 있는가. 망망대해도 아니고 육지가 빤히 내다보이는 섬과 섬 사이의 바다에서 수천 톤 규모의 배가 자빠지고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말 속에 기울어 가는 배 안에서도 구원될 거라 굳게 믿으며 V자 그리며 웃던 아이들이 생으로 물에 묻혔는데, 선원들은 도망가고 경찰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대통령은 비서실장도 모르게 7시간 동안 행방을 감췄고, 300명이 넘는 생명들이 아우성도 지르지 못하고 물에 삼켜진 전례가 있는가. 한국사에 있는가 세계사에 있는가.
가라앉은 뒤에도 경찰은 언딘만 찾고 있었고, 언딘은 우리가 먼저 시신 찾았다고 해 달라고 설레발을 치고, VTS는 교신 내용을 조작하고 CCTV는 사라지고, 선주는 도망가 잡지도 못하고, 선장은 경찰 아파트에서 자고 현관 앞 CCTV도 삭제되고, 최대의 구조작전을 한다고 떠들어 놓고 잠수는 한 명도 못하는 상황. “시늉이라도 하자”는 흰소리가 경찰 간부의 입에서 나오고 대통령은 배가 뒤집힌 지 몇 시간 뒤에 나타나 “구명조끼 입었는데 그게 발견이 안됩니까?” 하는 얼뜬 소리를 하는 나라가 우주 역사에 또 있겠냐 말이다.
이건 나라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이 아닌가. 대통령 유고가 버젓이 일어나는 나라의 정부가 무슨 힘을 쓰겠으며 수백 명 아이들이 꼬르륵거리며 버둥거릴 때 아무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두 손만 버르적거리는 정부가 어떤 일을 한단 말인가. 과연 이 나라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겠으며 그 법이 올곧게 설 수 있겠는가.
이것은 일종의 계엄 상황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대통령부터 해경의 말단까지, 언론부터 검찰까지 제대로 된 노릇을 하지 못하고 나라 사람들을 속이고 은폐하고 둘러치고 겁박하고 심지어 대못까지 치는 이 상황이 어찌 계엄 상황이 아니랴.
세월호 특별법은 그래서 필요하다. 전례 없는 일을 당했을 때는 전례를 만들어 내는 법이다. 특별검사 제도 자체가 나라의 위임을 받은 민간인이 수사권을 행사하는 것이며 기소권을 보유하는 것이 아닌가. 국회가 임명한 인사들과 유가족이 포함된 위원회가 이 ‘계엄’ 상황에서 특별검사 정도의 역량을 가지는 것이 어찌 불가능하며 무엇이 그리 위험한가. 적어도 그 위원회는 대통령도 수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통령의 직무 유기부터 캐낼 수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죽어갈 때 당신 일곱 시간 어디 가서 뭘 했는지 물어야 하는데! 그로부터 말단 해경과 국회 출석도 거부하는 건방진 오보 언론사까지 다 들쑤셔야 하는데! 이런 수사가 전례가 있는가. 전례가 없는 수사에 전례를 따지는 것은 결국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가.
세월호 사건을 그냥 넘어가는 것은 결국 칼날 위에 놓인 얼음을 베고 자는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 얼음은 녹고 칼날은 다시 우리 목덜미에 박힌다. 우리 아이들의 목줄을 끊을 수 밖에 없다. 그 칼날은 우리 스스로의 무관심과 무책임과 무심함이 시퍼렇게 갈아 놓은 것이었다.
이제 그만하자는 말은 다시 얼음을 베고 누우라는 말이다. 그 칼날이 시퍼렇게 눈에 보여도 당장은 괜찮지 않느냐며 한숨 자라는 소리다. 그 칼의 뿌리를 뽑으려면 눕는 게 아니라 일어서서 얼음을 걷어차야 한다. 뻔히 들여다보이면서도 손에 닿지 않는 칼날을 뽑으려면 얼음을 깨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전례’를 따를 수 없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나와 내 새끼의 머리맡의 얼음이 좀 더 두껍기만 바라며 전전긍긍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세월호 계엄령을 선포해야 하지 않을까. 국가의 음산한 포고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언제 세월호에 탈지 모르고 하루 아침에 새끼를 잃어버릴지 모르고 아버지를 불길 속에 보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더 이상은 우리의 안전에 대한 위험을 허용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계엄령을 선포해야 하지 않을가 말이다. 전례 따위 개나 줘라. 지금은 비상한 상황이다. 그렇지 않은가? 정말로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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