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이자 두산중공업 회장이 조선일보의 6월30일자 칼럼, 인문학이 바로 서야 대학이 산다를 썼다. 제목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차있는 이 칼럼을 나는 몰랐는데 가끔 가는 블로그인 내마음의 풍경에 그에 대한 비판글이 올라와서 알게 되었다.
칼럼의 요지는 사회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요구가 있지만 취업률에 있어서 뒤지는 인문학과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문학은 중요하지만 인문학과와 인문학과 졸업생은 이대로 둘수 없다는것이다.
인문학, 학생에게 돈이 안 되는 걸까, 대학에 돈이 안 되는 걸까
이 글을 접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인문학에 대해 논하지 말라는 위 비판글에 동조하는 생각이 들었고 애초에 이성이 힘을 쓰지 못하는 한국분위기에서 학문이 돈버는 기술로만 여겨지는 풍조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이것은 악어의 눈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체글을 보면 진짜 뜻이 무엇이든지 간에 칼럼의 논조는 어디까지나 우리나라를 걱정하고 대학생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차있다. 즉 사회는 이공계출신 인력을 원하고 학생들도 졸업해서 취직하자면 인문학전공으로는 안되니 이걸 바꿔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위의 컬럼은 기본적 관점에서 장사, 돈의 느낌이 강하다. 취업과 회사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거기서 나는 묘한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칼럼은 이건 내가 이익보자는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라와 대학생들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씌여져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장사꾼이 이거 손해 보고 파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느낌이랄까.
내 글솜씨가 부족해서 이 묘한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렇게 말해보자. 요즘 대학도 기업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대학은 기업이라 그저 졸업장 왕창 팔아서 돈 많이 벌고 그렇게 번돈으로 대학의 소유주가 부자되고 대학을 더 키워서 더 유명한 대학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렇게 하는데 아주 좋은 학과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학과가 있는데 그 학과의 졸업생은 단 한명도 취직을 못한다. 그런데도 그 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만 가지고도 그 학교가 부자될 판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위의 컬럼에 짙게 드리워진 장사꾼, 사업가의 가치관에 따랐을때 졸업해도 취직도 못하는 이런 학과 유지해서는 안된다는 컬럼이 나올까? 이렇게 등록금 많이 내도 취직도 못하는 학과 유지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나올까. 오히려 학문은 취직을 위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이 학과를 아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컬럼이 나올것같은것은 나의 착각일까?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국가, 사회 그리고 대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는 컬럼의 주장들은 진짜일까. 그것은 악어의 눈물이 아닐까? 실제로는 인문학과를 유지해 봐야 대학에 돈이 안되니까 없애고 싶은 것이 본심이 아닐까.
이 질문의 답은 컬럼을 쓴 본인도 100% 확실히 모를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욕심내는 것에 다른 핑게를 붙여서 이유를 만들어 낸 다음 자기를 세뇌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자기를 잘 살피지 않으면 내가 무슨 욕심이 있고 사심이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행동은 그렇게 되기 쉽다. 그런가 안그런가를 답하는 한가지 방법은 위의 예처럼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고 어떤 논조를 말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기본적 일관성을 완전히 상실한 대표적 신문이기 때문이다. 보지 않지만 가끔 나오는 기사를 보면 거의 예외가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이처럼 성실히 실천하는 신문도 없다고 느낀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지식인을 자부하기 위한 기본이 안되어 있다.
사람들을 쥐어짜는 한국 경제 구조, 인문학이 들어설 자리가 있을까
악어새의 눈물 다음에 나온 생각은 적반하장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참 인건비가 싸다. 인건비 비싸다고 난리치는 기업들이 있지만 내가 보기엔 한국에서는 돈과 인맥의 가치가 제일 크고 인력과 노동의 가치는 매우 약하다.
한국의 많은 것들은 특히 의식주에 관련된 것들은 이미 선진국 이상의 물가에 도달했다. 집값은 물론 밥값 옷값이 다 그렇다. 차값은 더 비싸다. 다만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월급, 알바하는 사람의 알바비만 선진국과 크게 다르다. 그때문에 너도 나도 미친듯이 부동산 투기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 돈을 굴리지 않고 월급을 저축해서 잘 살수 없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독과점이 잘일어난다. 그래서 대기업에게 중소기업과 개인은 힘을 잃는다. 본래 모두에게 공평한 게임의 법칙이 지켜지려면 독과점이 시스템 전체를 쥐고 흔들면 안된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다. 안그래도 작은 나라인데 어딜가나 사람들이 인맥으로 뭉쳐서 독과점을 만들어 버린다.
한국은 절대 자유시장의 나라가 아니다. 오직 1등이 2등이하의 사람들을 잔혹하게 다룰때 이건 모두 내탓이 아니라 그저 냉혹한 자유시장의 법칙에 따라 그렇게 되는거라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 그 말이 자꾸 돌아다닐 뿐이다. 자유시장인데 세금 퍼부어서 대기업살리고 은행살리는일은 그렇게 많이 한다는 사실의 모순은 잘 지적되지 않는다.
이 독과점 구조가 중소기업을 약하게 하고 취업할수 있는 사람수를 줄인다. 원고료를 줄이고 예술에 지출되는 비용을 줄인다. 무엇보다 도무지 철학과 역사따위를 배우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런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이 하는것인데 독과점 구조가 만들어 내는 독재가 권장하는 것은 말없이 복종하는 군인이기 때문이다. 까라면 까는 인간이 독과점 구조에 어울리는 인간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대기업은 바로 왜 한국의 인문학 전공자들이 취업할 자리가 없는가의 근본적 원인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몫의 파이 이상을 차지해 버리고 무식한 군대같은 나라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성따위는 별로 가치 없는 나라가 유지된다.
그래서 이성따위를 배우는 학과 졸업생들은 취직을 못하거나 대우가 나쁜 것이다. 그저 텅빈 머리로 기계를 조립하는 로보트들만 필요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 사회를 만든 대표적인 세력이 이런 현실을 개탄하면서 인문학과가 안팔리니 없애버리자고 등록금 낭비가 아니냐고 말하는 것은 적반하장이 아닐까?
지식이 권력의 고용자로 일해온 한국의 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있는 것은 대중들이 도저히 이대로는 못살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엄청난 자살률과 경악할 수준의 출산률이 한국인들의 행복지수를 보여준다. 아무리 자장가를 불러도 살자니 자꾸 눈을 떠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국이 학문을 수입해 온지는 오래되었지만 21세기의 한국도 여전히 지적으로 외국에 종속되어져 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국내의 사상이 국내의 지식인이 한국을 장악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식은 반대로 주로 권력의 고용자로 일해 왔다. 교수니 석학이니 해도 무식하고 돈많은 어떤 회장님이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면 그에 끼어맞춘 논리를 개발하느라 복무하는 손발처럼 보이기 쉽다.
예를 들어 4대강 개발에 관련한 논의를 보면서 그 결론이 어떻건 그 과정이 합리주의, 이성주의적 과정이라고 느낄수는 없다. 기본적 검증과정이 갑자기 다 생략된다. 권력없는 누군가가 이야기하면 턱도 안먹힐 이야기들이 밀어부쳐진다. 권력앞에서 인맥앞에서 어느정도 이리저리 휘어지는게 인간의 한계일지 몰라도 정도가 있다. 기본적 일관성과 담쌓은 사람들이 애초에 합리주의를 말할 자격은 없다. 그런데 국내의 지식인에게 무슨 권위가 있겠는가.
만약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이 보다 학문적인 토대가 깊었고 그들이 정권을 계속 유지했으며 한국의 대학을 개혁할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들의 철학과 정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크게 주목받았을 것이고 일자리도 늘었을 것이다. 유학자들이 세운 조선에서 유학하는 사람들이 굶던가? 우리나라 특유의 기괴한 극우가 아니라 일본의 극우처럼 자기나라가 뭐든지 최고라고 생각하는 극우파가 이나라를 장악한다면 한국의 역사를 그렇게 기술하는데 많은 돈이 쓰여질 것이다.
지금이 일제시대라면 조선민중을 수탈하고 싶어하는 점령군들은 여러분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면서 조선인이 인문학같은거 해봐야 취직도 못하니 인문학과 같은거 없애고 기술이나 배워서 열심히 일하라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문학과 졸업생이 굶는 나라란 것은 그 나라는 독재국가이며 그나라의 지배세력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따위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문학이 바로 서야 대학이 바로 선다는 말은 옳다. 사람들이 철학과 자기 정체성과 가치에 관심을 두는 사회에서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접받고 성공하는 사회에서 대학의 인문학과를 없애자고 하는 말이 나올리가 없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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