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애니메이션을 꿈꿨던 청년이 있었다. 세계를 동경하던 청년은 배낭여행을 통해 자유롭게 지구를 구경하기도 했고, 그것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청년이 만든 애니메이션은 국제 무대에서 수상도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됐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마주한 애니메이션 생태계는 그가 꿈꾸던 곳과는 전혀 다른 논리가 적용된 세계였다. 절망의 끝에서 청년을 다시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렌티큘러’였다. 자신이 배우고 익힌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렌티큘러’를 습득해나갔다.
렌티큘러를 통해, 청년은 세상에 또 한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던 돈키호테처럼, 세상 사람들이 무모하다 비웃을지언정, 청년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꿈’이 있었고, ‘열정’이라는 동력이 있었다. 다윗의 돌팔매가 골리앗을 이길지는 이전에는 아무도 몰랐다.
물론, 세상이 아름답거나 공평하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걸 어느덧 그도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만의 돌팔매를 들고, 거인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을 막을 수 있는 벽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온갖 상상에서 오는 내면의 두려움에 맞서서, 도전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이란 절대 생기지 않는 법이니까 말이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애써서 다른 길로 가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그래서 ‘세계’라는 골리앗을 향해, ‘렌티큘러’라는 돌팔매를 들고, 최초로 동화책을 만든 ‘이수철’ 작가를 몹시 만나고 싶었다. 국내 최초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세계 최초였던 렌티큘러 동화책 <에펠과 레피>를 작업한 이수철 S3D 다아트 대표와의 즐거웠던 수다, 인터뷰 전문을 이곳에 싣는다.
인터뷰이 이수철 / 인터뷰어·사진 수다쟁이쭌 (문준희)
수다쟁이쭌(이하 쭌) : <에펠과 레피>는 세계 최초의 렌티큘러 동화책인데, 내용을 말하기 전에, 우선 렌티큘러가 생소한 분들도 있을 텐데, ‘렌티큘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수철(이하 이) : 사실은 사진이 처음에 나왔을 때, 렌즈가 두 개였어요. 왜냐하면, 사람 눈이 두 개니까요. 사진의 역사와 렌티큘러의 역사가 거의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렌티큘러는 19세기 초 미국의 물리학자가 개발했는데요,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3D 입체 안경을 착용하지 않고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끔 착시효과를 주는 거죠.
지금 사실 입체 모니터 시장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3D 안경을 착용하고 봐야 하잖아요? 렌티큘러는 보조장치를 통하지 않고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입체 콘텐츠를 구현하는 기술이에요. 예전에 과자에 들어있었던 ‘따조’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시기 편할 거 같아요.
쭌 : 애니메이션 학과에 재학하실 때, 다양한 창작 기법을 배우면서 좋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드셨는데요, 이후에 렌티큘러에는 어떻게 꽂히셨길래, 렌티큘러로 동화책까지 만들게 되셨나요?
이 : 얘기를 다 하자면 조금 길어질 수 있는데요,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예전에는 정부에서 애니메이션 산업 지원을 많이 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도 줄어들고, 청소년들이 애니메이션을 볼 시간이 없어지니까, 유아용 애니메이션 시장만 살아남게 되었어요. 저도 애니메이션 업계로 취업하고 싶었지만, 제가 원하는 형태의 작품을 만드는 회사도 없는 것 같아서, 영화사에 취업을 해서 다니는데, 영화 업계도 박봉에 야근을 하면서, 사람을 건전지와 같은 소모품처럼 사용하니까 너무 힘들고, 비전도 안 보이더라고요.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었기 때문에, 관련 상품군을 개발해서 동화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에펠과 레피>는 원래 제가 경기대학교 애니메이션 학과 졸업작품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는데요, 큰 상도 받고, 자신감도 생겼는데, 문화콘텐츠 업계에 보면 ‘원소스 멀티 유즈’ 용어가 있거든요. 하나의 콘텐츠를 잘 만들어 관련 상품군을 개발해서 다양한 부가가치를 올리는 걸 말해요.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었기 때문에, 관련 상품군을 개발해서 동화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기존의 입체 동화책 시장은 ‘적청안경’ 방식이라고 빨간색, 파란색 안경을 쓰고 보는 방식인데요, 그렇게 만들어진 동화책을 서점에 가서 직접 봤는데 너무 못 만든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만들면 이거보다 더 잘 만들 자신이 있겠다 싶어서 시작했죠.
사실, 처음에는 ‘렌티큘러’가 있는 줄 몰랐어요. 지인이 소개를 시켜줘서 찾아봤는데, 너무 좋았고, 매력에 확 빠져들었어요. 평생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국내에 렌티큘러 업체가 10개 미만이고, 거의 없는데요, 업계에 동화책을 만들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했더니 반응이 너무 차가운 거예요.
그나마 [렌티ENP]라고 전 직장생활을 했던 대표님께 찾아가서 부탁을 드렸더니, 처음에는 걱정을 하셨지만 나중에는 ‘한 번 해보자!’고 하시면서 엄청 잘 도와주셨어요. 거기에서 렌티큘러 기술을 배우고, 큰 도움을 받으면서 입체 동화책을 출판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쭌 : 어떤 매체로 창작을 하든 다양한 소재로 작업을 하실 수 있을 텐데요, ‘에펠탑’을 소재로 <에펠과 레피>를 작업하셨는데, ‘N서울타워’도 있고, ‘도쿄타워’도 있는데…(웃음) 굳이 에펠탑을 소재로 작업하시게 된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파리 여행에 대한 낭만이 있으셨던 건가? (함께 웃음)
이 : 요점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에펠탑을 사랑합니다. (웃음) 왠지 모르겠어요. <에펠과 레피>에서는 에펠탑이 처음부터 사랑받는 콘셉트로 나오지만, 실제 에펠탑은 파리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어요. 미운 오리 새끼처럼… 대중들이 싫어했어요. 저런 쇠로 만든 건물은 철거해 없애야 한다고 했죠.
대표적으로 모파상이 에펠탑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는데요, 그 이유가 유일하게 파리에서 에펠탑을 안 볼 수 있다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탑이 되잖아요.
에펠탑을 생각하면서, 저도 미운 오리 새끼처럼 처음에는 인정을 못 받지만, 나중에는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요. 개인적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요, 에펠탑 모형을 ‘조명’으로 만든 적도 있어요.
그렇게 에펠탑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도 했죠. 여행기간에 생일까지 있었는데요, 에펠탑 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려고 계획을 했었는데, 너무 비싸서 못 가고, 센 강에서 유람선을 타면서 생일파티를 했었어요. (웃음)
처음에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새벽에 도착했는데요, 숙소도 잡기 전에 에펠탑부터 보러 갔어요. 지하철에서 나와서 둘러보는데도 에펠탑이 없었는데, 등 뒤에서 약간 느낌이 나는 거예요. ‘아! 여기 있을 거 같다.’ 싶어서 돌아봤더니, 진짜 에펠탑이 있는 거예요.
그때 사랑하는 여자를 만난 것처럼 설렘이라든지, 두근거림이 있었고, 제가 에펠탑을 좋아하다 보니까 <에펠과 레피>를 만들면서 그것과 관련된 소재와 시나리오를 구상하게 되었죠.
△ <에펠과 레피> 원작 애니메이션 ⓒ 이수철
쭌 : 경기대학교 애니메이션 학과 졸업작품으로 <에펠과 레피>를 영상으로 작업하신 다음에, 나중에 렌티큘러 기법을 적용해서 동화책으로 만드신 건데요, 영상이라는 매체에서 물성을 가진 렌티큘러 동화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이 : 사실은 제가 교육을 많이 받았어요. 학부에서만 배운 게 아니라, [SF 필름스쿨], [한국콘텐츠진흥원], [영화진흥위원회] 등에서도 특수효과 교육을 받았어요. 나름 교육을 많이 받은 우수한 인재인데, 제가 과연 뭘 잘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 거예요. 제가 배운 것들을 잘 조합하면 뭔가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건데, 그렇게 연구하던 중에 [렌티큘러]를 알게 되었는데요, [렌티큘러]가 제가 지금까지 배웠던 그 모든 것들을 알고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거더라고요.
애니메이션도, 영상도, 입체효과도 알아야 하니까, 제가 다할 수 있는 것들이 총집합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렌티큘러의 매력에 빠져서 작업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기존 동화책은 정지된 스틸 이미지인데, 렌티큘러는 ‘모션’이라고 애니메이션 동작을 표현할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영상이랑 똑같은 장르라고 생각하면 되거든요. 하나의 정지된 장면이 아니고, 움직이는 동작을 부여할 수 있으니까요. 렌티큘러로 자연스럽게 흘러왔던 거 같아요.
쭌 : <에펠과 레피>의 애니메이션 버전에는 대사가 없는데요, 대사 없이 애니메이션을 작업하신 이유가 있나요? 렌티큘러 동화책으로 변환하면서는 텍스트를 다시 넣으셨는데..
이 : 제가 <에펠과 레피> 전에 라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상을 많이 받았는데요, 그때도 대사가 없었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대사가 없으면 언어를 초월해 글로벌하게 누구든지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동화책으로 넘어가면서 텍스트를 넣은 건, 영상에서는 대사가 없이도 음악이나 상황으로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지만, 책에서는 핵심과 엑기스만 뽑아서 담아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내용이 빈약하고, 점프가 심한 것 같다고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동화책 뒤에 QR 코드가 있는데요, 세부적인 내용은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면 되니까, 동화책에 그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하면 분량이 너무 늘어나버리기 때문에, 핵심적인 컷만 골라내 서 담은 거거든요. 대사가 없는 방식을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냐하면, 단편 애니메이션 중에서 <키위새>라는 작품이 있어요. 그걸 보고 1억 명이 울었는데, 대사가 없거든요.
저도 뭔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바꾸고 싶은데요, 대사 없는 좋은 콘텐츠 하나를 만들었을 때 파급력이 세계적으로 엄청 커질 수 있는데, 대사가 있으면 자막도 달아야 하고 아이들이 감상하기에도 힘들어서 <에펠과 레피>를 대사 없이 만들게 되었어요.
쭌 : <에펠과 레피>에서 ‘에펠’의 스펠링을 뒤집었을 때 ‘레피’가 되고, 작품 안에서도 에펠이 만든 건 ‘똑바로 선’ 에펠탑이고, 레피는 ‘거꾸로 선’ 에펠탑을 만들잖아요. 그런 대칭적인 구조가 인상적이거든요. 또, 두 사람이 각각 체제에 순응한 사람과 반골 기질이 있는 체제에 의문을 가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요, 그래도 그 두 사람이 싸우거나 전쟁을 하지 않고, 거꾸로 선 에펠탑과 바로 선 에펠탑이 맞물리면서 ‘수평적으로 공존’을 하게 되잖아요.
작품 속에 담긴 그런 철학들에 아름다운 가치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에펠과 레피>에서 그런 걸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이 : 핵심을 잘 잡으신 것 같은데요, <에펠과 레피>에 대칭구조가 있어요. 에펠탑을 만든 에펠은 ‘정’, 레피는 ‘반’. 이를테면 ‘정반합’ 같은 거 있잖아요. 서로 상충되는 그런 대립 구조가 있는 건데요, 비하인드스토리가 뭐냐 하면 둘이 라이벌이 된 계기가 ‘에펠’은 부잣집 아들에 엘리트이고, ‘레피’는 혼혈 민족에 못 사는 빈민층인데, 어렸을 때 에펠이 레피를 왕따를 시켰어요.
왜냐하면 맨날 튀고, 반항적으로 행동하고, 레피가 호기심에 ‘왜 남자는 치마를 못 입지?’하고 치마를 입고 간 거예요. 에펠은 그걸 보고 미친놈이라고, 친구들 시켜서 괴롭히고 했던 그런 아이였죠, 그렇게 원한 관계를 가진 과거가 있었어요. 레피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에펠탑을 거꾸로 세울 수 있다고 나오는 거죠. 세상에 반기를 들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요.
피부색도 다른데요, 에펠은 하얀색, 레피는 약간 검은색, 그런 식으로 대응되는 재미가 있고, 레피가 에펠을 거꾸로 한 이름이잖아요. 그래서 바지를 상의로 입히려고 했는데, 이게 언밸런스하니까, 상의를 거꾸로 입혔어요. 레피를 자세히 보면 넥타이가 등 뒤에 붙어있거든요.
처음에 감상할 때는 ‘목이 돌아가있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뭔가에 미쳐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옷의 앞뒤를 거꾸로 입힌 거예요. 이처럼 동화책 곳곳에 숨겨진 코드를 찾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쭌 : 결국 <에펠과 레피>가 서로 ‘네가 잘났다, 내가 못났니’ 이런 식이 아니라, 거꾸로 세운 에펠탑이 쓰러지면서, 기존의 에펠탑과 수평적으로 맞물리면서, 전쟁이나 이런 느낌이 아니라, 평화나 수평적인 느낌을 자아내는데, 어떻게 그런 설정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이 : <에펠과 레피>의 주제가 ‘시너지 효과’인데요, 에펠도 좋은 작품을 만들고, 레피도 나름대로 뛰어난 사람인데, 둘이 합쳐졌을 때는 더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한 거거든요. 수학시간에 간단하게 ‘1+1=2’라고 배우는데, ‘1+1=3’이라는 학습 콘텐츠가 제가 봤을 때는 없어요. <에펠과 레피>를 아이들한테 보여줄 때, ‘너도 뛰어나고, 다른 친구도 뛰어난데, 서로 힘을 합치면 더 뛰어난 게 나온다.’라는 걸 가르쳐주기 위한 주제가 있고요.
‘에펠탑’은 프랑스 파리에서 유명한 작품인데, ‘에펠레피탑’이 되었을 때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됐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거꾸로 세운 에펠탑이 천천히 쓰러지면서, 기존 에펠탑과 레고처럼 맞물리며 힘의 균형을 맞춘 거죠. 처음에는 ‘공존의 탑’이라고 지었는데요, 동화책에는 ‘에펠레피탑’이라고 나와요. 세상에는 다 나름대로 자기 개성이 있고, 능력이 있잖아요. 각자의 힘을 더불어서 함께 사용하면 더 좋은 것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쭌 : 이제껏 학습 받으셨던 것을 발전시켜서 ‘영상’으로 작업하셔도 되는데, ‘렌티큘러’의 세계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계시는데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남들이 가지 않는 그런 길로 꼭 가셔야 하나요?
이 : 사실 우리나라만큼 공무원에 목을 매는 나라가 없는데, 직장 특성상 안정성이 있잖아요. 지금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사실 언제 잘릴지 모르고 버틴다고 해도 명예퇴직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평생 할 수 있는 직장이 거의 없는데, 렌티큘러는 제가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다고 느꼈어요. 왜냐하면, 렌티큘러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요.
렌티큘러 초창기 멤버 중에 환갑이 넘은 할아버지가 한 분 계세요. 15년, 20년 경력이 되셨는데도 아직도 현역에서 작업하고 계시거든요.
사실 저는 처음에 영화 CG를 하고 싶었는데요, 할리우드처럼 할아버지가 돼서도 계속하고 싶은데, 우리나라는 40대 이상의 CG 작업자가 살아남기 힘들어요. 자기 회사를 창업하지 않는 이상, 퇴직하고 예를 들어 치킨집을 오픈한다던가 해요. 저는 그런 것보다는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배운 것으로 계속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요. 혼자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렌티큘러가 매력적인 소재라고 생각해요.
쭌 : 렌티큘러 콘텐츠도 결국 ‘문화콘텐츠’의 한 영역인데, 사실 말씀하신 대로 공무원을 꿈꾸는 것이 안정성과 함께, 자본 획득의 수월함 때문인데요, 정년퇴직까지 망할 리가 없잖아요. 중간에 고용불안도 없고요. 렌티큘러 콘텐츠 생산도, 다른 문화콘텐츠와 마찬가지로 중간에 망할 수가 있단 말이에요.
콘텐츠 개발기간 대비, 자본 획득의 효율성도 미약하고, 망할 위험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분야에서 죽을 때까지 작업하시려는 그 이유가 과연 어떤 건지… 영상이 아닌, 렌티큘러라고 중간에 하다가 망하지 않으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런 부분이 궁금하네요.
이 : 삶의 목적에 대해 말하자면, 저로 인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해요. 저는 창작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인데요, 회사에 소속되면 회사에서 원하는 것을 기계처럼 만들라고 하지, 제가 원하는 걸 만들 수가 없잖아요.
혼자 작업하고 창작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저는 신이야말로 창조하는 것을 가장 즐거워하는 분이라고 느끼거든요. 인간도 신처럼 새로운 것을 만들고, 남들과 공유하는 것과 피드백에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만든 작품이 ‘부천 국제 만화 애니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았는데요, 자원봉사를 하면서 극장에서 상영되는 제 작품을 보고 나오는 관객들을 봤는데요, 연인 관객 중 남자분은 ‘재밌다.’라고 하고, 여자분은 ‘징그럽다.’라고 하셨거든요. (웃음) 호평과 악평이 함께 나왔음에도 카타르시스라고 하나? 마약 같은 매력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경험 때문에 콘텐츠 작업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고, 말씀하신 대로 정부에서 창업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하는데요.
스타트 업이 1년 안에 매출을 내기 힘들고, 절반 이상이 3년 안에 망하거든요. 정부에서는 창업을 장려하지, 그걸 유지할 수 있는 정책은 미흡한 편이에요. 저도 마찬가지로 동화책에만 목을 매면, 망할 수 있거든요. 장기 프로젝트와 단기 프로젝트를 함께 가져가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수익성 사업도 단기로 진행하고, 중장기적으로 동화책 같은 콘텐츠를 개발해서, 두 가지를 함께 진행하려고 하고 있어요.
쭌 : ‘먹고사니즘’이라고 해서, 요즘에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잖아요. 급여는 잘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계속 오르니까 더 그런 게 심해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문화콘텐츠의 경우에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만 불렸을 때도 있는데요, 그런 종류의 것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당장의 필요성은 없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콘텐츠가 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이 : 철학적이고 원론적인 문제인데요, 사람이 밥만 먹고살 수는 없잖아요. 문화예술이라는 게, 인간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거잖아요. 어떤 분이 예술을 빛과 소금에 비유하시더라고요. 있으나 마나 느낄 수 없는 거지만, 저는 그게 있음으로 해서 삶이 더 윤택해지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죽을 때까지 문화콘텐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웃음)
그게 없으면 심심하지 않나요? 무미건조하고, 기계적인 삶을 살 거 같아요. 지금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보면, 감수성이 메말라 있고, 강력 범죄들도 생기는데, 감동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많이 보고, 애니메이션도 가끔씩은 본다면 삭막한 것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다고 희망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도 그런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쭌 : 문화콘텐츠 중에서 ‘렌티큘러’ 기법을 선택하셨는데요, 콘텐츠 생산만 하면 ‘땡’이 아니잖아요. 그걸 판매하셔서, 수입적인 부분이 해결이 돼야지 지속 가능한 창작 활동이 가능할 텐데요. 그래서 독자적으로 콘텐츠를 유통하시려고 하시기도 하셨잖아요. 그러다 다시금 대형 유통망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 : 동화책을 만드는데 천만 원이 들었다고 하면, 홍보와 마케팅에도 그만큼의 비용이 드는 거거든요. 제가 자본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마케팅에 힘을 많이 쏟지 못했어요. 렌티큘러는 온라인으로는 광고효과가 미비한 것 같아요. 직접 보고 구매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오프라인 마케팅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하고요. 올해 파주출판 단지에서 ‘파주 어린이책 축제’가 있어요. 거기에 참가해서, 렌티큘러를 체험하고, 동화책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게끔 하려고 계획 중이고요.
렌티큘러와 관련된 특허권도 많이 출원할 예정이고요. 부채나 완구류, 액자 등 많이 개발하고 있어요. 회 사 이름이 다아트인데, 뜻이 4가지가 있어요. 다아트를 영어로 하면 ‘Everything is Art’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은 아트다, 두 번째로 ‘우리 회사에서 만든 건 다 아트다.’, 세 번째로 다아트를 빠르게 발음하면 ‘다트’예요, 던지는 다트처럼 고객의 필요를 콕 집어서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돈이 되는 ‘아트와 관련된 일은 다한다.’, (웃음) 살아남아야 하니까 너무 작가주의로 가지 않고, 고객들이 물건을 사서 자금순환이 될만한 아이템을 개발하고 있어요. 어차피 창업을 했고, 회사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금이 들어오고, 수익이 발생해야 하니까요.
쭌 : 장시간 인터뷰하시느라 수고하셨고요, 성실한 답변 감사드려요. (웃음) 마지막 질문을 드리자면, 우리가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결국 언젠가는 이 지구를 떠나야 하잖아요. 지구를 떠나기 전에,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꼭 하고 가야겠다, 이것만큼은 하고 가야지 싶은 게 있을까요?
이 : 사실은 제가 역마살이 있어서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는데요, 제가 돈 벌어서 간 거죠. 유럽 배낭여행도 가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캐나다에서 1년 동안 살다 오기도 하고요. 뉴질랜드, 동남아도 여행하고 했는데요, 제가 정신적 지주로 생각하는 분이 ‘류시화’ 시인인데요, 작품 중에서 <지구별 여행자>라는 산문집이 있어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지구로 여행 와서 언젠가 떠난다고 생각하면, 지구를 많이 둘러봐야 하잖아요.
요즘 직장인들 꿈 1순위가 그거더라고요. 세계여행! 저도 마찬가지로 크루즈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고 싶거든요. 죽기 전에 세계를 한 번쯤은 다 둘러보고 싶어요.
영화 트루먼쇼를 보면, 내가 사는 곳만 존재하고, 나머지는 다 가짜로 존재하는 게 아닌가? 직접 가서 물리적으로 보지 않으면, 프랑스 파리에 에펠탑이 있는 줄 모르는 거거든요. 그 사람에게는 사진으로만 존재하는 거죠.
죽기 전에 세계 명소들을 다 둘러보고 싶고, 오로라도 보고 싶네요. 정말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예전에 자전거를 타고 우리나라 전국 일주를 한 적이 있는데요, 왜냐하면 해외여행을 하고 싶은데 우리나라도 다 안 둘러봤는데, 해외여행을 한다는 게 말이 안되는 것 같아서, 우리나라부터 한번 싹 둘러보고, 첫 해외여행을 떠났어요. …사는 게 하루하루 여행인 거죠. (웃음)
‘애니메이션’이라는 세계를 여행하던 그는 ‘현실이란 벽’을 만나서도 결코 도망치거나,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렌티큘러’라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났고, 그것을 누구보다 열렬하게 사랑하고 탐구했다. 그 결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자신의 작품을 동화책으로 옮길 수 있었다.
이미지, 텍스트, 영상을 비롯해… 기록되는 모든 것에는 ‘이상’이 담긴다. 나 역시 그를 통해 인터뷰에 작은 ‘이상’을 담았다. 그런데 왠지 이것이 단순하게 ‘기록된 이상’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 순간 우리가 함께 경험하게 될 ‘오늘’이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수철 대표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삶이 주는 피로함에 쉽사리 무릎 꿇지 않고, 자본 논리의 폭력 속에서도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아내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구조적 모순 속에서도 ‘긍정’을 잃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걱정하는 것은 늘 세상이고, 타인이다. 정작 긍정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은 누가 뭐라 든 어떻게든 자기 길을 걸어간다. 다른 길을 꿈꾸기가, 다른 선택을 하기가, 무척 어려워진 시대지만, 이수철 대표의 걸음이 또 다른 누군가의 길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본 논리의 폭력과 구조적 모순이 또 한 번 그를 공격할지라도 한없이 절망하기보단, 작디작은 긍정으로 결국에는 돌파할 것을 믿는다.
긍정의 사람! 유쾌한 작가! 건투를 빈다!
[S3D 다아트] 대표 이수철, <인사> 영상
ⓒ 수다쟁이쭌
원문 : 수다쟁이 쭌의 산뜻한 문화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