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작품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한국어 더빙과 함께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그 외의 신극장판 시리즈 〈에반게리온: 서〉 〈에반게리온: 파〉 〈에반게리온: Q〉 또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구작 TV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주지의 사실은, 세기말의 음로론적 정서와 오타쿠 문화를 훌륭하게 결합해 서브컬처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TV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95년도에 방영을 시작해 97년도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으로 끝을 맺었다.
근 10년이 지난 2006년, 〈에반게리온: 서〉로 시리즈의 리메이크(제작사와 감독은 Rebuild로 불러 달라고 했다), 4부작 신극장판의 제작을 알렸다. 2009년 〈에반게리온: 파〉, 2012년(한국은 2013년) 〈에반게리온: Q〉로 이어질수록 매 편마다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스타일과 전개에 평가는 크게 갈렸다. 그리고 9년이 지난 2021년에 이르러서야 마지막 완결편인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이 개봉했다.
필자가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처음 접한 것은 2009년 겨울이었다. 당시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는 개봉하는 영화를 30초 동안 짧게 소개해주는 단막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서 〈에반게리온: 파〉를 소개해주는 영상을 보고 흥미를 느꼈고, 시리즈를 감상하며 팬이 되었다. 우습게도 당시 내 나이는 작중 주인공인 신지, 레이, 아스카와 똑같은 14살, 중학교 1학년이었다.
2013년 〈에반게리온:Q〉를 감상하고, 그 충격적인 전개에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완결편이 개봉하겠지 하고 생각을 했지만 개봉은 요원했고, 점차 관심 속에서 잊혀갔다. 이후 꽤 오랜 기간 동안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끊고 지내기도 했고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가 2016년에 제작한 실사영화 〈신 고지라〉를 일본에서 감상하기도 했지만, 이 시리즈에 대한 감정은 추억, 애증 그 이상은 남지 않은 지 오래였다.
2020년 제작이 거의 완료되었고 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뭐 개봉하면 극장 가서 봐주지 정도의 생각뿐. 코로나19로 인해 일본 국내 개봉도 연기를 거듭해 2021년 3월이 되어서야 겨우 개봉을 했다. 당시 현지 평은 예상외로 무척 호의적이었으며, 오히려 팬덤 내에서는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양상이었고 평론가들의 평이 긍정적이라는 데에서 흥미를 느꼈다. 애니메이션을 멀리하고 살던 지난 몇 년 동안 내 미디어 소비는 주로 영화에 치우쳐 있었기에, 어쩌면 내가 만족할만한 결말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기대했다. 그리고 국내에는 8월 13일에서야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서 공개되었다.
최근 이번 작을 감상하기 전에 TV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부터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과, 신극장판 3부작을 모두 시청하였다. 철없던 14살에 봤던 이후로 처음 하는 재감상이었다. 당시의 나는 신지와 동갑이었지만, 지금은 미사토의 나이에 가까운 성인이 되었다. 때문에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요소들을 이제야 볼 수 있었고 감상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건 14살짜리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다는 사실이다.
왜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지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뭐 내 글쓰기 스타일이 원래 그렇다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은 감독이 자신의 세계를 작품에 접목한, 자전적인 메타픽션에 가깝기 때문이다. 감독은 자신의 현실을 작품에 투영했고, 나 또한 내 현실을 작품에 투영할 수밖에 없었다. 애시당초 작품의 메시지부터가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고 이번 작에서는 그게 더욱 노골적이다. 그러니 현실적 요소와 맥락을 완전히 배제한 본 작품의 비평은 기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는 대다수의 팬들은 설정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끼워 맞추며, 불친절하게 표현되는 극 중 서사를 명확하게 해석하려 하는 시도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없이 많은 종교적, 철학적 메타포들을 접목해 그럴듯한 해석과 이론을 도출해내고는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이러한 시도들을 즐기던 팬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그렇게 많은 걸 치밀하게 생각하고 계산하며 각본을 작성하지 않았고, 실제 제작 환경은 쪽대본에 가까웠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혀졌다. 신극장판 또한 다를 바 없이, 개봉을 1년 남짓 남기고 각본을 갈아엎고 연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이는 신극장판 시리즈가 감독 본인의 자회사에서 제작하는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런 분석론적인 접근이 무의미한 시도였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분명히 노골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들이 존재하고, 메타포들이 넘친다. 감독이 그를 의도하지 않고 넣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며, 만약 있어 보이는 척하기 위해, 단순히 좋아하는 고전들의 오마주를 위해서 넣은 게 절대다수라 하더라도 그 모든 요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허나 우리는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본질적인 테마는 자아와 성장, 관계, 소통에 대한 이야기임을 상기해야 한다. 이를 간과한 해석은 작품의 중심에서 한참 비껴난 것이다.
TV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즉 구작(이하 구작이라 통칭함)은 ‘껍질을 깨고 나아가라’, ‘너 자신을 찾으라’는 메시지였다. 미성숙하고 어린 주인공 신지, 어른스러워지고 싶은 아스카, 감정을 모르는 레이, 나이는 먹었지만 아이처럼 애정을 갈구하는 미사토, 여전히 과거 속에 갇혀 있는 겐도까지. 에반게리온을 대표하는 대사인 ‘도망치면 안 돼’라는 대사는 반복해서 나오지만, 신지는 자신으로부터, 아스카는 부모로부터, 레이는 인간으로부터, 미사토와 겐도는 과거로부터 계속해서 도망치는 것을 반복할 뿐이다.
주인공 신지, 레이, 아스카는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에바에 탄다. 얼핏 보면 자신이 원해서 타는 것 같은 아스카 또한 사실은 사회적인 압박에 의한 것이며, 이러한 주체성이 결여된 도피는 지하철, 하강하는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등의 이미지로 반복적으로 표현된다.
작 중에서 말하는 인류 보완 계획, 서드 임팩트 같은 개념은 인간의 육체와 자아를 모두 LCL이라는 하나의 액체로 환원해 서로 간의 갈등이 없는 온전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작에서는 서드 임팩트의 발현 직전, 신지 본인이 내면적인 성장을 이룩하면서 서드 임팩트가 중지되며 영화(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가 끝난다.
그 중간에 보이는 극장 관객들의 실사 촬영 영상, 현실의 길거리에 섞여 있는 레이와 아스카의 코스프레, 그리고 마지막 “기분 나빠”라는 대사까지. 진정한 자신을 찾으라는 메시지는 좋았지만 전달 방식이 너무 투박했으며, 결국 변화를 위해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은 따로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안일하다는 인상 또한 있었다(그래서 더 좋았다).
신극장판 시리즈는 얼핏 보면 전개가 기존과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작의 커다란 플롯은 꾸준히 답습했다. 〈에반게리온:서〉는 두말할 것도 없고, 〈에반게리온:파〉 또한 연출 톤이 변화했을 뿐 큰 틀에서는 차이점이 없으며, 시리즈의 중요한 변곡점이라고들 말하는 〈에반게리온:Q〉도 사실은 구작의 21–24화의 커다란 플롯에서는 크게 비껴가지 않는다. 이에 걸맞게 본작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또한 TV시리즈의 25–26화, 그리고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플롯을 어느 정도 유지한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극초반 뷜레의 파리 탈환 작전 이후, 영화는 초반의 50분가량을 니어 서드 임팩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소중한 일상을 단조롭게 조명한다. 그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전작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따스함이 스며들어 있으며, 흡사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관객들은 그러한 일상 속에서 감정을 되찾게 되는 레이와 상처를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게 되는 신지의 모습을 덤덤하게 지켜본다. 초반부터 에반게리온답지 않은 방식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고, 감독의 내면적인 세계관이 크게 변화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후 전과 비슷한 상실을 겪지만 신지는 매우 빠르게 다시 일어서고, 도망쳤던 과거와 다시 마주하고 매듭을 짓기 위해 분더에 오른다. 지상에서의 소중한 일상을 경험한 신지는 비로소 전작에서 자신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던 등장인물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잘못을 똑바로 마주하며 사과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신지는 에바의 주박에서 벗어나 바카(바보), 가키(애송이)에서 어엿한 한 명의 성인으로 거듭난다.
그 뒤에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현학적 설정과 용어들이 나열되며, 훌륭한 퀄리티의 박력 넘치는 전투씬들이 전개된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전작들에서 에반게리온이 싸우던 목표는 사도, 적들이었지만 본 전투 시퀀스에서 파괴하고자 하는 대상은 네르프 본부, 에반게리온 그 자체라는 점에서 분명하게 다르다. 이 지점에서부터 영화는 기존의 에반게리온을 철저하게 해체하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신지는 마침내 자기가 계속해서 도망쳐오던 대상인 아버지, 이카리 겐도와 일대일로 마주하게 된다.
싸움의 배경은 여태까지 에반게리온 시리즈에서 등장한 주요 장소들이다. 이러한 장소들을 하나의 촬영장, 무대로써 정신적으로 구현한 세계 속에서 신지의 초호기와 겐도의 13호기가 맞붙는다. 1화의 에반게리온 케이지, 사키엘과의 결전 장소, 삼시엘과의 결전 장소, 미사토의 집, 2학년 A반, 레이의 방, 네르프 본부 등 작중 주요 무대들을 하나씩 부숴 나간다. 종국에 전투는 그들의 내면인 열차 내부에 도달한다.
전투 도중 겐도가 AT필드를 생성하면서, 사실은 겐도 또한 신지를 두려워했음이 밝혀진다. 에반게리온 시리즈 전체에서 신지와 겐도는 일대일로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유이의 무덤 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긴 하지만, 이야기의 대상은 단지 어머니, 부인과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고 서로의 마음이 맞닿지는 못했다.
영화의 최후반 전투에서, 겐도는 자신이 왜 이러한 일들을 벌였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자신 또한 너랑 별 다를 바 없는 어린아이였다며 고백한다. 신지는 세상과의 단절, 아버지를 향한 결핍을 상징하던 카세트를 겐도에게 건네준다. 미사토의 희생으로 새로운 창이 신지에게 전해지고, 신지는 미사토의 죽음과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겐도는 자신만의 포스 임팩트를 마무리한 뒤 열차에서 내리며 이야기 속에서 퇴장한다.
이제 신지는 작중의 주요 인물들과 직접 마주하며 못다 한 이야기들을 마무리한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마지막 씬과 똑같은 구도에서, 아스카에게 “고마워, 나도 너를 좋아했어”라며 구작에서는 차마 전하지 못했던 말을 건넨다. 그리고 에반게리온으로부터 아스카의 엔트리 플러그를 분리하며 아스카는 완전히 퇴장한다. 이후 〈에반게리온: Q〉 극 내내 신지가 의지하던 존재인 카오루에게도 진솔한 마음을 전하며, 카오루가 나가고 셔터는 닫힌다.
마지막으로 신극장판 시리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아야나미 레이가 남았다. 신지는 초호기의 엔트리 플러그 속에 녹아있던 레이에게 ‘너는 더 이상 에바에 탈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그들 뒤편의 벽에는 신극장판 시리즈와 구작 시리즈의 컷, 타이틀들이 영사된다.
신지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 이야기하고(Neon Genesis), 이제 아야나미 레이 또한 퇴장한다. 모든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창에 꿰어지며 활동을 멈추고, 포스 임팩트는 중단된다. 이제 새로운 세계에서, 신지는 기존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인물과는 관계없는 신극장판 시리즈의 새로운 등장인물인, 마리와 함께한다. 이카리 신지의 에반게리온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분명 구작의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와 신극장판의 시키나미 아스카 랑그레이는 다른 인물임에 분명하지만, 아스카와 신지의 마지막 대화는 시키나미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것을 통해 소류에게 속죄를 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와 비슷하게 이번 영화의 수많은 시퀀스와 이미지들에서 구작의 기시감이 느껴지며, 구작에서 아버지에게, 미사토에게, 아스카에게, 레이에게, 카오루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직접 전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루프물임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에반게리온을 두 번, 아니면 그 이상 감상하듯이, 신지와 카오루도 몇 번의 반복을 해왔을 뿐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 전해지느냐는 거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의 서드 임팩트의 결말은 비극에 가까웠지만, 신극장판에서의 포스 임팩트는 성공적으로 저지되었다. 그럼 이 둘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신극장판의 신지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사람의 따스함을 느꼈다. 감독 안노 히데아키는 동일본 대지진과 아내와의 만남을 통해 가치관의 변화, 개인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성장하기 위해서는 내 솔직한 마음을 부딪혀야 된다고, 우리는 좀 더 서로 솔직해져야 될 필요가 있다고, 영화는 두 시간 반이나 되는 러닝타임 동안 줄기차게 이야기한다. 좀 전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껍질을 깨고 나아갈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감독은 답을 찾을 수 있었지 않나 생각한다.
세트는 부서졌고, 등장인물들은 모두 퇴장했으며, 영사기는 꺼졌다. 지금까지의 에반게리온은 끝맺어졌지만 이제는 신세기 에반게리온(Neon Genesis Evangelion)의 시작이다. 당신이 내리자 문이 닫히고 열차는 떠났으며 에바의 주박(DSS 초커)은 풀렸다. 14세였던 소년은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어린 시절 에반게리온을 봐오던 우리는 과연 그 시절에 비해서 조금이라도 성장한 것일까. 이제는 우리가 계단을 뛰어 올라갈 차례다.
안녕, 나의 모든 에반게리온.
원문: 범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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