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 정의할 수 없는 단어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대한민국 땅에 무분별하게 막 들어온 용어 중 하나가 바로 오타쿠이다.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타쿠 혹은 오덕이라는 말은 일반화되었다. 근데 오타쿠에 관한 정의가 각각 다 다른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
A : 아니 이거 만화잖아! 너 오타쿠냐?
B : 헉~ 무슨 솔~ 난 만화를 좋아할 뿐이지 오타쿠는 아녀~
여기서 B가 자신이 오타쿠임을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A는 B가 오타쿠임을 더욱더 확신한다.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인데, 사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 다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A가 정의 내리는 오타쿠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다른 사람들보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 중에서도 미소녀 그림 같은 거 좋아하거나 하면 무조건 오타쿠 취급을 한다. 그에게 있어서 오타쿠는 ‘만화, 애니, 게임을 좋아하는’ 조금 별난 사람 내지는 약간은 변태 같은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반면 B는 자신을 오타쿠라고 여기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오타쿠라고 불리는 수준까지 만화를 좋아한다고 스스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오타쿠는 보다 일반적인 정의 즉, ‘어떤 한 가지에 지독하게 빠지는 경우’를 뜻한다. 이런 일반적인 정의에 따르면 오타쿠 대상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낚시에 필요이상으로 빠져서 그 쪽 방면에 전문가가 되면 낚시 오타쿠가 되는 것이고, 라면을 좋아하면 라면 오타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 ‘애니메이션은 좋아하지만 오타쿠는 아니에요’라는 말은 충분이 성립가능한 명제가 되는 것이다.
사례를 더 들어보자. 어느 분이 나를 오타쿠로 보고 했던 질문이다.
“여친 있으세요?”
“없는데요.”
“아, 그럴 것 같았어요.”
“아니; 그럴 것 같은 건 뭡니까?”
“여친이 있으면 오덕이 아니잖아요.”
…(…)
이 충격적인 발언 이후 같이 있던 분들의 엄청난 항의가 이어졌다. 농담이랄 수도 있지만 이 경우는 어느 정도 진짜 그렇게 믿고 물어 본 것이었다. 즉 오타쿠는 ‘여친이 없는 사람’이라는 어떤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오타쿠라도 여자친구/남자친구를 사귀면 오타쿠가 아닌 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 오타쿠라는 용어를 정확히 정의내리지 않으면 실제로 진지하게 대화할 때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오타쿠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자기가 속한 위치에 따라 용어 정의가 달라져 대화 흐름이 끊기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유달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상대방은 ‘중독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서 대화가 어색해지기도 하고, 또 어떤 상대는 ‘미소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오타쿠에 여자도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하기도 했다.
어쩌면 구체적 실체로서의 오타쿠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즉 ‘오타쿠’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각자가 지닌 오타쿠의 관념들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타쿠가 ‘어떤 사람이다’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타쿠’는 1983년 나카모리 아키오(中森明夫)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단어로 특정 부류의 마니아층을 총칭해서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연속 유아 살인 사건이나, 이후 생겨난 오카다 토시오(岡田斗司夫)의 오타쿠 긍정론을 비롯하여 2000년대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된 <전차남(電車男)>(2005)이후에는 모에(萌え)문화가 오타쿠의 주류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지난 30여년간 일본에서 오타쿠의 의미는 계속해서 변화했고, 경계가 허물어지며 재생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오타쿠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님에 주목하자. 본래 오타쿠 출신인 오카다를 제외하면 오타쿠에 대한 시선은 대부분 철저히 타자에 의한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오타쿠에 대한 총체적인 논의는 필연적으로 사회학적인 것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으며, 오타쿠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오타쿠에 대한 일반 사회의 시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오타쿠가 항상 사회의 시선에 휩쓸리기만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카다 토시오가 그랬지만, 오타쿠라 규정지어진 장 안에서 그들 스스로 어떠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을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한 움직임이 오카다처럼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사회적 이미지 자체를 스스로 내면화 시켜버린 경향도 있지 않을까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두가지 측면(타자로부터 명명받아 인식으로서만 존재하는 오타쿠라는 사회적 위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 이루어갔던 오타쿠의 생활양식의 변화)은 현재의 ‘오타쿠’의 이미지를 형성함에 있어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본 글에서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이론으로 사회적인 환경과 그 환경 속에 있던 오타쿠들의 실천이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났는지를 통시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핵심개념인 장과 아비투스를 살펴보고, 시대순으로 오타쿠의 변화상을 살펴보며 하나씩 고찰한다.
장과 아비투스에 관한 간단한 정리
마르크스와 그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은 문화라는 상부구조가 경제라는 하부구조에서 환원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문화는 경제적인 상황에 지배받는다. 따라서 문화는 자유스러워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 계급적 특징 등에 귀결된다. 이 말을 조금 더 확대시키면 행위자는 자유스럽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적인 환경에 따른 것이므로 그 행동은 예측가능하다. 대량화된 문화산업은 그야말로 민중의 아편처럼 대중을 현혹하고, 대량으로 생산되는 음악은 비슷한 수준으로 대중을 그 속에 안주하게 한다.
그러나 사회 속의 한 개인(행위자)의 행동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대중의 취향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탄생된 아이돌이 실패하는 경우도 많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영화가 의외의 성공을 거두기도 하며, 대중화된 음악이 저항을 노래하며 운동을 끌어내기도 한다. 따라서 문화는 그 자체로 자율성도 가진 것 같아 보인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에 관한 구조주의적 분석과 실존주의적 분석 모두를 비판한다. 그는 레비스트로스나 소쉬르와 같은 구조주의 관점은 연구자가 우월한 위치를 점하여 참여 관찰을 하게 되며, 연구 대상 속의 행위자는 결과적으로 전체 구조 속에 생각 없이 휩쓸리는 ‘문화적 얼간이(cultural dope)’에 지나지 않게 한다. 반대로 실존주의적인 접근을 ‘주관주의’라며 비판한다. 실존주의는 행위자의 창조적인 의지와 주체적인 실천을 강조하지만 행위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그들을 낳은 사회 구조적인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았다.
부르디외는 사회적 공간(social space)[1]에서 벌어지는 행위자의 ‘실천’과, 또한 그것의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 ‘아비투스(habitus)’와 ‘장(field)’개념을 도입한다. 장이 가지는 속성 중에는 투쟁공간으로서 장이 있다. “각각의 장은 특수한 내기물과 게임의 규칙을 가지는데 이는 다른 장들의 그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 공간은 다양한 위치를 점유하는 여러 행위자들 사이의 투쟁의 공간이다. 투쟁의 목표는 장에 고유한 자본의 전유와 정당한 독점, 혹은 자본의 재정의이다. 행위자와 기관들은 내기물이 되는 특수한 자본을 전유하기 위해, 장을 구성하는 규칙과 규칙성에 따라서, 또 때로는 그 규칙성에 대하여 상이한 힘을 가지고 투쟁한다. 서로 대립하고 투쟁한다 할지라도 장 안의 행위자들은 장의 존속에 공통의 이해를 가지며 일종의 객관적 공모관계를 맺고 있다.”(이상길, 2000:11)
“행위자들 특히 지배자들이 지배의 정당성(legitimacy)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투쟁에 동원하고 활용하는 모든 ‘수단’이자 ‘소유물’이 바로 자본이다. 자본의 유형을 도식적으로 분류하자면 문화자본(지식, 지적 기술), 사회자본, 경제자본(물질적 기술, 부), 그리고 상징자본(축적된 위세와 명예감)으로 구분할 수 있다.”(김현준, 2009:6) 또한 장 내의 경쟁관계를 다루는 게임의 정당성에 대한 집단적인 신념인 ‘일루지오(illusio)’가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인간은 장 속에서 행동하고 장에서 탄생한 규율을 내면화하는데 이것은 강제적인 어떤 무엇이 아니라 자발적인 순응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두고 아비투스라 부른다. 한국인은 김치를 좋아하고, 윗사람에게 존대를 한다 같은 어떤 문화적인 현상은 바로 한국이라는 특별한 장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 안에서 개혁 세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 특수한 장에서 돌출되지는 않는다.
정리하면 어떤 한 사회 안에서의 장안에서 서로 경쟁을 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생성된다. 이 때 장 내부의 경쟁을 하는 게임의 룰을 개인마다 내면적으로 익히는 데 이것을 아비투스라 한다. 즉 행위자들은 사회 구조의 영향을 받지만, 행위자 스스로는 그 같은 규율이 완전히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행동한다.
오타쿠의 탄생
아즈마 히로키(東浩紀)는 오타쿠를 크게 3세대로 나누었다. 1세대 오타쿠는 1960년을 전후하여 태어난 세대, 2세대는 1970년, 3세대는 1980년을 전후로 하여 태어난 세대를 뜻한다.(東浩紀 2001:13-14). 여기서는 각세대별의 사회적 변화와 사회적 인식, 동시에 그로 인한 오타쿠 내부의 자의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먼저 1세대 오타쿠가 10대와 20대를 보낸 1970년대와 80년대는 일본현대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70년은 일본이 만국박람회를 개최하고 본격적으로 경제 성장을 하기 시작한 해이다. 또한 60년대까지 활발하던 좌익 학생운동이 잠잠해지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오타쿠의 탄생에는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이 관련되어 있다.
무엇보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TV시리즈 물을 중심으로 한 다작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송락현, 1997:111). 당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마징가Z(マジンガーZ)>(1972), <그레이트 마징가(グレートマジンガー)>(1974), (1975),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戦艦ヤマト)>(1977), <베르사유의 장미(ベルサイユのばら)>(1979), <은하철도999(銀河鉄道999)>(1979)등의 작품이 있다.(구견서, 2008:242) 또한 <고질라(ゴジラ)>로부터 본격화된 일본의 괴수 특수촬영 영화가 <울트라맨(ウルトラマン)>(1966)이나 <가면 라이더(仮面ライダー)>(1971), <비밀전대 고렌쟈(秘密戦隊ゴレンジャー)>(1975)와 같이 TV용 드라마로 시리즈화 되어 인기를 얻은 것도 이 시기에 해당한다.
경제적 풍요로 인한 생활의 안정화와 대중 문화 수준의 급격한 발달은 1960년을 전후하여 태어난 1세대 오타쿠들을 탄생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 분포되어 있었고, 사실 이것은 경제 환경이 안정적인 사회라면 어디에나 있음직한 마니아들에 더욱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이들이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인 1970년대 후반의 일본은 석유위기와 엔고불황을 극복하고 사회 분위기도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오타쿠’라는 단어는 나카모리 아키오가 1983년 만화 잡지 <만화 부릿코(漫画ブリッコ)>에서 명명하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당시 그가 말했던 오타쿠들이 어떤 이들을 지칭했었는지 다음을 살펴보자.
뭐라고 할까? 뭐, 학교 다닐 때 어떤 반에서든 있지 않았나? 운동은 전혀 못하고,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 틀어 박혀서, 컴컴한 곳에서 우물쭈물 장기나 두고 있는 녀석들이.(중략)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되기 전날 밤에 줄서서 기다리는 녀석, 블루 트레인[2]을 자신이 자랑하는 카메라에 담는다며 선로에 뛰어들어 치어 죽을 뻔하는 녀석하며, 책장에 SF매거진의 백넘버와 하야카와(早川)문고의 SF시리즈가 꽉차 있는 녀석이라든가, 마이컴숍(マイコンショップ)에 모여든 우유병 밑둥같이 동그란 안경을 쓴 과학 소년들, 아이돌 탤런트 사인회에 아침 일찍 일어나 자리 확보 하는 녀석, 유명 진학 학원을 다니면서도 공부하면 단순한 멸치눈의 바보가 돼 버리는 쭈뼛쭈뼛한 태도의 남학생, 오디오에 있어선 좀 시끄러워지는 형님들 같은 것 말이지.(http://www.burikko.net/people/otaku01.html)
나카모리가 ‘오타쿠’[3]라 명명한 특정부류의 사람들은 일단은 코믹 마켓[4]에 오는 중고등학생들을 지칭하지만, 뿐만 아니라 아이돌 가수의 열렬한 팬이나, SF마니아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그들을 패션감각이 없고, 남성적 능력이 결여된 계층으로 비꼬고 있다. 즉 다시 말하면 자기의 취미생활에 몰두하여 사교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통칭하여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각각 별개의 영역이 묶여서 오타쿠라는 이름의 새로운 장이 탄생한 것이다. 나카모리의 글은 그 지나친 표현 등이 문제가 되어 독자들의 항의를 받고 연재 3회만에 중단된다.
1세대 오타쿠들은 일반화할 수는 없었지만 그 무언가를 창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실제로 마니아들이 모여서 만든 ‘다이콘 필름(DAICON FILM)’은 아마추어 창작 동호회로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짤막한 애니메이션클립을 만들어 SF관련 대회에 공개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들은 이 외에도 전대물같은 아동용 특수촬영을 패러디하는 형식의 작품을 만드는 등,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재창조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5]
이러한 1세대 오타쿠의 장 내에서 문화 자본이라 할 만한 것이 있는가? 나카모리는 일방적으로 오타쿠를 비난한 것과는 달리 오타쿠 이전의 마니아들의 장 안에서는 어느 정도의 프라이드라 할 만한 것이 있었다. 실제로 SF마니아들 사이에선 선대의 권위에 반항하며 SF소설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SF마니아 문화에 끌어들이려는 등 세대간 투쟁의 모습도 있었다.(岡田斗司夫, 2008:123-124) 이것은 SF마니아라는 하나의 장안에서 정당한 게임을 가능하게 하는 일루지오가 작용하여 내면화 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SF 소설의 지식을 쌓는 것으로 다른 이와 나를 구분시키는 상징 자본과 문화 자본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1세대 오타쿠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작품들의 숫자나 혹은 얼마나 희귀한 것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 서로의 수준차이를 만드는 경향이 강하다. 오카다 토시오의 말에 따르면 오타쿠들은 질리지 않은 향상심과 자기 과시 욕구를 가지고 있다(岡田斗司夫, 2000(1996):41).
이것이 오타쿠의 수준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를 부르디외의 개념을 따와서 문화 자본 혹은 상징 자본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보통 문화 자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간접적인 배제를 통한 계급 계층의 재생산 즉 자본의 재생산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최샛별・최 흡, 2009:263) 따라서 오타쿠들의 이 같은 계급 구분은 부르디외가 말하는 자본 개념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오타쿠들의 향상심을 오타쿠라는 장내에서 게임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하나의 아비투스로 보기로 한다. 적어도 1세대 오타쿠들에게 있어서 앞에서 언급했던 SF마니아들처럼 자신들이 의욕적으로 만드는 일련의 무리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이 가시적인 효과로 나타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2세대 – 사회적 차별에 노출된 오타쿠
1988년 여름부터 4살에서 7살에 이르는 4명의 여자 어린이들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미야자키 쓰토무(宮崎勤)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었는데, 미야자키의 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미야자키의 방에는 무려 6,000개에 이르는 비디오 카세트가 쌓여있엇고, 만화 잡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언론에서는 미야자키를 ‘오타쿠’라고 소개했었고, 그 이전까지 일반에게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던 오타쿠의 문화가 공개되었다.(에티엔 바랄, 2002(1999):269)
앞서 나카모리의 글에서 보았듯이 본래 오타쿠는 그리 좋은 이미지의 단어가 아니었으며 어디까지나 상대적 차별을 위해 창조된 단어였다. 그러나 미야자키 사건을 통해서 오타쿠가 일반에 알려지면서 이 단어는 ‘잠재적인 살인마’이자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이것은 1994년의 오움진리교의 사린 가스 사건으로 인해 더욱 확대 된다. 왜냐하면 오움진리교가 가상현실을 실제 현실이라 착각한데서 비롯된 사건으로 비춰졌었고, 이것이 일본 사회내의 오타쿠 문화와 일정정도 연계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는 오타쿠가 심하게 핍박과 오해를 받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시기 오타쿠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오타쿠를 옹호했던 것은 그 자신이 1세대 오타쿠인 오카다 토시오였다. 그는 도쿄대학에 오타쿠가 되는 방법을 강의하는 강좌를 개설했고,『오타쿠학입문(オタク学入門)』(1996)을 비롯한 서적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우선 기존에 히라가나로 쓰이던 おたく를 가타가나 オタク로 바꾸고, 편견을 뒤집어 오히려 오타쿠가 일반인들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증명하려 하였다.
이를 위해 일반인들은 남들이 좋아하는 유행을 따라가는 주체성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에 대비하여 오히려 오타쿠를 주체성이 높은 사람들로 격상시켰고, 일본 문화의 직계 계승자이자 장인정신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였다. 오타쿠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서 일정 수준이 되어서 오타쿠들 세계에서 인정을 받아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또한 해외의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이 스스로를 OTAKU라 불렀던 사실에 주목했다. 이같은 이색적인 주장은 언론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정리하면 미야자키의 연속유아살인사건이 일어난 1989년부터 1990년대 중후반까지는 오타쿠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긴 하였으나 그 이미지가 극도로 나빴진 시기에 속한다. 원래 오타쿠들이 주로 몰두하던 대상들이 아동용 작품들이 많았고, 자신의 세계에 지나치게 몰두함으로 인해 인식이 나빴으나 실제 이상의 오해와 차별을 받자, 오타쿠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옷을 단정하게 입는 등의 변화를 겪는다.(‘영챔프’, 12호(2000), 미야다이 신지 인터뷰 중) 그러나 80년대의 1세대 오타쿠들 중 일부가 스스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 것에 비하면 90년대의 오타쿠의 실천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각종 차별에 대한 변명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카다 토시오에 따르면 1세대는 귀족주의, 2세대는 엘리트주의가 있었다고 하는데,(岡田斗司夫, 2007:144) 이것은 사회로부터 받는 차별에 대처해서 자기를 보호하려 했던 정신적 방어기제에 가까워 보인다. 따라서 이 시기의 오타쿠들은 심한 사회적 차별에 대처하여 자기를 보호하려 하는 피해자 의식의 아비투스를 어느정도 내면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같은 오타쿠 장 안에서도 외부에 돌출적인 행동을 하는 자들을 비판하는 자기 비판적인 태도로도 이어진다.
3세대 이후, 오타쿠문화의 대중화와 포스트 모던
1995년, 오카다와 같은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가이낙스에 있었던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는 <신세기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1995)이라는 작품을 만든다. 안노는 오카다와 동일한 1세대 오타쿠였지만, 오타쿠에 관련한 태도면에서는 상당히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이른바 오타쿠의 포괄적 특징을 열거하면 내성적이고 커뮤니케이션 부족, 쉽게 말해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적절히 잡지 못한다든지 자신의 정보량과 지식량이 주체성을 떠받치고 있다든지, 집착이 엄청나다든지, 독선적이고 자기 보전을 위해 배타적이라든지, 대화가 일방적이어서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든지, 자의식이 지나쳐서 자신의 척도로밖에 사물을 판단하지 못 한다든지, 자아도취를 좋아한다든지, 동경하는 대상과 동일화되고 싶어한다든지, 공격받으면 약해진다든지 등이 있습니다.(중략)에바이후로 한 때 탈 오타쿠를 의식한 적이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만화 팬과 업계의 지나친 폐쇄성에 염증을 느꼈을 때입니다. 당시엔 굉장한 자기혐오를 느꼈지요. 자포자기 상태였습니다. – 안노 히데아키의 인터뷰(安野モヨコ, 2005:141-142)
그러나 안노는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는 오타쿠였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안에서도 수많은 오타쿠적인 패러디가 등장한다. 즉 문화 자본과 상징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 수많은 암시와 코드가 작품 속에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세기말 적인 독특한 분위기와 미소녀가 등장하였고, 로봇과 괴수들이 등장한다. 단, 주인공의 성격이 폐쇄적이며 나약했는데, 이 같은 주인공상은 기존의 로봇애니메이션과의 궤를 달리하는 모습이었고, 그의 자폐적인 독백은 당시의 청소년들에게 신선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일본에서 사회적 현상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의 큰 성공을 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이 기존의 오타쿠의 지지를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안노의 오타쿠에 관한 강한 비판이 들어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는 극장판 <Air/진심을 그대에게(Air/まごころを、君に)>(1997)에서 직접적으로 오타쿠들에게 ‘현실세계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충격이후 안노의 바람과는 달리 새로운 오타쿠들이 이 작품 이후로 급증하는데 이들이 바로 3세대 오타쿠에 해당하는 계층이었다.
2000년대에 20대를 보내는 3세대 오타쿠들은 대부분 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직접적 영향을 받거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보고 있다. 이 시기에는 이전의 세대와는 다른 사회 환경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로 심야 방송의 일반화 이다. 원래 TV애니메이션은 주로 아침(오전 6~9)과 오후 골든타임(5~7시)에 집중적으로 편성되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종영 이후 애니메이션의 방영시간대가 다각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1998년에는 TV토쿄에서만 주 10편 이상의 작품이 심야시간대에 방영되었다고 한다.(김태용, 2009:53) 반면 그만큼 개별 애니메이션의 시청률은 오히려 감소하여 2000년에 6.5%를 정점으로 2001년에는 6.2%, 2002년에 5.8%, 2003년에는 5.2%의 시청률을 나타내었다.(선정우, 2007:911)
이와 같은 시청 형식의 변화와 다각화는 시청자들의 취향을 보다 세분화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다시 말하면 1990년대까지는 오타쿠들이 주로 보는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따로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비록 소비형태가 오타쿠와 일반인의 차이를 갈라놓았지만, 한정된 시간안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TV애니메이션의 특성상 어느 특정 계층을 위한 애니메이션은 생산되기 힘들었다.[6] 그러나 심야 애니메이션 방송이 일반화 되면서 특정층을 노린 TV용 애니메이션이 생산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둘째, 애니메이션 작품의 경향 변화이다. 이것은 앞의 환경변화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심야에서 방송되는 특정 층을 방영한 애니메이션의 경향과도 연결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표면적으로는 로봇이 나오는 SF애니메이션에 속하지만 실제 내용을 이끌고 있는 것은 캐릭터의 내면세계다. 특히 소통이 없는 일본 사회가 반영된 폐쇄적인 캐릭터들에 청소년 시청자들은 강한 감정이입을 한다. 실제로 이 작품 내부에서는 폐쇄적인 성격을 가진 오타쿠들에게 현실세계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작품에 빠져들었던 청소년들은 작품 속 독백에 공감하고 그 세계 안에서 안주하려는 경향이 일어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종영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한 작품 일부는 이러한 정서가 강하게 스며들어 있는 경우가 있었다(<레인(lain)>(1998),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ブギーポップ笑わない)>(2000) 등). 그러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열광했던 세대는 단지 그것만을 즐기지는 않았다. 이 작품 안에는 다양한 ‘취향’을 즐길만한 코드가 담겨 있었다.
캐릭터들의 강한 개성은 2000년대 유형화 된 캐릭터의 테이터베이스의 시초처럼 보인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아야나미 레이’라는 여성 캐릭터는 그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 계보로 이어진다(<기동전함 나데시코(起動戦艦ナデシコ)>(1996)의 루리,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涼宮ハルヒの憂鬱)>(2006)의 나가토 유키 등). 또 어떤 이는 에반게리온의 독특한 세계관이나 메카닉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같은 현상이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세기 에반게리온>만큼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는 작품은 드물었다. 이것은 똑같은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기존의 담론이나 흐름에 빠지기 보다, 자신의 ‘취향’을 찾을 수 있는 작품 독해 방식을 내재화하도록 하였다.
셋째로 오타쿠를 학문적 담론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전까지의 오타쿠들은 세상 속에서 일방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오타쿠들은 일본 대중 문화 산업의 한 영역에서 분명히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오타쿠들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났다. 먼저 정신분석학자 사이토 다마키는『전투미소녀의 정신분석(戦闘美少女の精神分析)』(2000)이라는 책을 통해 오타쿠가 단순히 현실과 허구를 구분 못하는 존재가 아님을 입증하려 했다.
그는 오타쿠의 섹슈얼리티에 주목하여, 현실과 허구를 혼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구이기 때문에 섹슈얼리티를 느끼는 현 세태를 지적했다. 이어서 데리다에 관한 저작으로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한 바 있는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가 쓴『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사회(動物化するポストモダン-オタクから見た日本社会)』(2001)는 오타쿠를 통하여 포스트모던한 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일본 사회를 들여다 본다.
아즈마는 근 10년동안 오타쿠와 관련한 저서를 지속적으로 출판하고 있고, 현재 오타쿠와 관련한 담론의 상당수에 아즈마가 관여되어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상당하다. 2003년에는 건축학자인 모리카와 카이치로(森川嘉一郎)가 오타쿠의 성지가 된 아키하바라를 연구한『취도의 탄생-모에루도시 아키하바라(趣都の誕生-萌える都市アキハバラ)』를 펴냈다. 이어서 일본국제교류기금 주최로 이탈리아에서 ‘오타쿠: 인격=공간=도시’라는 건축박람회를 개최했다.
넷째, 이 같은 담론의 흐름은 이전 학계에서 오타쿠를 일방적인 사회 부적응자, 혹은 잠재적인 살인자라는 편견을 벗겨내고 보다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오타쿠를 둘러싼 재현에도 변화를 주었다. 특히 인터넷 게시판을 원작으로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전차남(電車男)>(2005)은 오타쿠를 주인공으로 한 이색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일본에서 최종화 시청률이 25%에 달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오타쿠상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오타쿠의 취미를 유지하면서도 예쁜 여성과 사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기까지 하다.
뿐만 아니라 <현시연(けんしけん)>과 같은 만화에서도 오타쿠의 실제적인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져있다. 무엇보다 2005년 ‘유우칸 유행어 대상(ユーキャン流行語代償)’에서 3세대 오타쿠들의 코드를 담고 있는 단어 모에(萌え)가 순위권에 들어가는 등 오타쿠는 사회의 차별적 타자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1998년에는 오타쿠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가졌던 경우가 62%에 달하고 긍정적인 평가는 17%에 그쳤던 반면, 2007년에는 42%가 부정적, 35%가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이 변화하였다.(菊地聡, 2008:66)
그러나 이 같은 사회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3세대 오타쿠들이 자신의 취미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은 쉽게 보이지 않느다. 3세대 오타쿠들은 1, 2세대들에 비해 자신들의 욕망에 솔직하다. 오카다는 1, 2세대와 대비하여 이들을 ‘나 중심 주의’라 불렀다.
이러한 경향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모에문화이다. 유행어가 될 정도로 대중화된 단어이지만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7] 일반적으로는 ‘귀엽다’라는 감탄사에 가까운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실제로 ‘모에를 느낀다’라는 것은 주관적인 감정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정의할 만한 대상이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모에’라는 것은 대상 그 자체에 특성이 아니라 그것을 볼 때의 자신의 반응을 포함합니다. 즉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SF도 애니메이션도 아니라 ‘그것에 방응하고 있는 자신’입니다.(岡田斗司夫, 2007:152)
이것은 1, 2세대가 작품을 공부하며 탐구했던, 그래서 이론 인해 장내에서 문화자본과 상징자본을 두고 경쟁했던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1, 2세대 오타쿠들이 더 많은 지식을 모으는 것에 집중했다면 3세대 오타쿠들은 지식보다 감각이 우선한다. 아즈마가 3세대 오타쿠들이 데이터베이스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으로 지적한 것과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능하다.
기존의 오타쿠들이 커다란 이야기를 가진 작품을 분석하고 재구성하였다면, 3세대 오타쿠들은 거대한 서사는 약해진 대신 캐릭터의 특징을 이어붙이기만 해도 인기가 있다고 하였다. 오타쿠의 폐쇄성은 계속 이어져 오는데 기존의 오타쿠가 지식으로 자신과 타인을 구분짓기 하였다면 3세대 오타쿠는 캐릭터 데이터베이스를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로 구분짓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1, 2세대 오타쿠가 오타쿠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식이었다. 지식은 공부할 필요가 있었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신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오타쿠라는 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기 싫은 작품도 갖추어야 하는 필수 교양이라 할 만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만 남은 3세대 오타쿠는 오타쿠 장내에서 경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3세대 오타쿠가 일반인과 구분되는 점은 ‘지식’이 아니라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베이스이다. 이 캐릭터 데이터베이스가 오타쿠들 내에서 강한 친밀감을 느끼게 하지만, 오히려 일반인과는 더욱 거리를 떨어뜨린 결과를 낳았고, 오타쿠들은 폐쇄성이 더욱 짙어진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는 앞에서 살펴보았던 첫째와 둘째 이유와 이어진다. 인터넷이 발달하여 점점 개인생활 공간이 확대된 상황에서 타인과 접촉하지 않고도 취미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탄생했다. 즉,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방송되고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동안 굳이 다른 세계에 접촉해야할 이유가 사라진다.
오타쿠의 시장이 확대되고 사회적인 시선은 변화하였지만, 오히려 오타쿠 스스로는 내향적이고 더욱 자기 세계에 빠져드는 모순적인 사태에 빠졌다. 이것은 위와 같은 사회 구조적 요인 외에도 90년대 오타쿠에게 가해졌던 강한 차별이 2000년대의 오타쿠의 장 속에서도 아비투스로 남아서 스스로를 그러한 한계 속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타쿠의 장도 상징자본과 문화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는 요소가 불명확해지면서 오타쿠라는 장 자체가 붕괴할 조짐도 있다. 대신 ‘모에’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미소녀 문화가 대외적인 오타쿠의 아이덴티티로 작용하면서 1983년 나카모리의 명명 당시의 불명확한 경계는 오히려 2000년대 들어서 일반인과 오타쿠의 경계를 더욱 굳게 만들었다.
마무리를 지으며
구 분 |
1세대(1960년대생) |
2세대(1970년대생) |
3세대(1980년대생) |
사회적 배경 |
・경제 고도 성장기/안정기 ・대중문화/매체의 성장 |
・버블경제 붕괴 ・오타쿠에 대한 차별 ・로리콘 문화의 맹아 |
・인터넷 매체 발달 ・심야 애니메이션 방송 ・오타쿠문화의 대중화 |
취향 |
・만화 ・애니메이션 ・특촬물 ・SF물 |
・만화 ・애니메이션 ・특촬물 ・게임 ・성우 |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라이트노벨 ・아이돌 성우 |
실천 |
・코믹마켓 |
・코믹마켓 ・코스프레 ・성우팬덤 |
・코믹마켓 ・코스프레 ・성우팬덤 ・모에문화 |
특징 |
전문가, 프라이드, 행동가, 창조적 |
엘리트의식, 자기보호의식, 이야기 소비 |
자기 중심주의, 자기연민, 데이터베이스 소비 |
오타쿠 내부에서는 1세대 2세대 시절에 사회적 박해의 경험이 있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오타쿠의 부정적 이미지를 3세대에 새롭게 오타쿠가 된 자들은 오히려 내면화시켰다. 이것은 오타쿠 스스로 서로를 부정적으로 그리거나 하며 ‘돌출적 행동을 하는 오타쿠’들을 비판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즉 3세대 오타쿠는 그만큼 자기 연민이 강한 만큼 혐오 또한 강하다.
그리고 동시에 인터넷이 발달하고, 개인이 자신의 세계에서 살기에 더욱 편리한 세상이 된다. 또한 일본 사회전반적인 로리콘 풍의 아이돌의 열풍이 오타쿠 문화계에서 유행하여 급기야 어느정도 패턴화 된 모에문화가 탄생한다. 이 모에라는 것 자체가 대개의 인터넷 유행어가 그렇듯이 정확한 의미 없이 주관적으로 소비되는 용어다. 그들은 이전세대에 비해서 ‘자기 취향에 맞는 작품만’ 보려 하고, 사회적인 거대 서사보다는 보다 개인적이고 호흡이 짧은 것을 선호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이 두 가지 요인이 합해져 오타쿠의 결정적인 어떤 이미지를 재창출해내고, 오타쿠계 문화가 수면위로 떠오르자 이것은 또다른 형태의 스테레오 타입이 되어 이미지화된다. 이들은 SF마니아 계열, 고전 특촬 계열의 1, 2세대 오타쿠들과는 이질적으로 보인다.
‘오타쿠’라는 장은 타자에 의해 성립된 장이었지만, 적어도 2세대 까지는 그 속의 세력 다툼이 존재하고, 우월성을 가릴 수 있는 하나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러나 3세대 오타쿠로 넘어가서는 2세대까지 쌓아온 아비투스의 일부가 남아있지만(여기에는 동인지, 코스프레 문화 같이 실천/신체화된 아비투스도 포함된다. 단 그 중에서 사회적으로 박해받는다는 오타쿠의 이미지를 여기서는 더 강조한다),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선배 오타쿠와는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다.
포스트모던한 사회를 대표한 3세대 오타쿠에게 일루지오는 성립할 수 없다. 각자의 개인이 하나의 룰이 되어버리기 때문이고, 특별한 중재자나 대표가 없어도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3세대 오타쿠는 또하나의 스테레오 타입형의 인간으로 자리잡았지만, 정확히 규정지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장으로서의 오타쿠는 상당부분 붕괴되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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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챔프 12호(2000)
- 사회적 공간은 사회 세계를 실체론적 방식으로 생각하는 경향과 단절하고 관계적인 원리로서 이해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Bourdieu, 1998:31) ↩
- 청색으로 도장한 고정편성객차에서 나온 JR의 야행침대특급・급행열차 ↩
- ‘오타쿠’라는 호칭의 근거는 코믹마켓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오타쿠(お宅)라고 부르는 것에서 기인한다. 10대들답지 않은 이 표현은 오타쿠들이 타인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꺼리기 때문에 간접적인 2인칭 대명사를 사용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또 한편으로 애니메이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超時空要塞マクロス)>(1982)의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오타쿠’라고 부른 데서 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岡田斗司夫, 2000(1996):11) ↩
- 1975년부터 시작한 아마추어 만화 축제로 2009년 현재 약 50만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로 발전하였다. 본래 좌익 성향의 정치적 색체가 강했으나, 그러한 요소는 점점 사라지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패러디를 담은 동인지가 판매되고 있다. 또한 코스츔 플레이 문화도 이 행사를 통해 발전해왔다. 오타쿠의 상징과도 같은 행사이다. ↩
- 다이콘 필름은 이후에 가이낙스(GAINAX)라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성장하여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不思議な海のナデイア)>(1989), <신세기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1995)과 같은 애니메이션이나 프린세스 메이커(Princess Maker)>(1991)와 같은 게임 시리즈를 제작했다. ↩
-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감독의 <달로스(ダロス)>(1983)를 시작으로 OVA(Original Video Animation)시장이 형성되었고, 오타쿠의 취향이 반영된 애니메이션이 많이 생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OVA는 일정 이상의 구매력을 지닌 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
- ‘모에’의 생성배경에 관해서는 다음의 자료를 참조할 것. 은수진(2007)「오타쿠(オタク)의 문화경제적 잠재력에 관한 연구-모에(萌え)시장을 중심으로-」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pp.1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