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질병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우리는 한 번쯤 아파본, 또는 아플 수 있는 ‘누구나 환자’이다. 나는 이 평범한 사실을 첫째 아이가 1형 당뇨를 진단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이는 2012년 1월, 4살 때 1형 당뇨라는 질환을 진단받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모 잘못이라고 했다. 성인이 돼 진단받은 사람들에게는 자기 관리를 못 해서라고 한다. 1형 당뇨는 자가면역질환으로 2형 당뇨와도 발병기전이 다르고 식습관·운동부족·비만과 관련된 질환이 아니다. 개인의 잘못으로 진단받은 질환이라도,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에 집중해야 해결책이 보이는데 우리 사회는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해왔다.
아이가 1형 당뇨를 진단받았을 당시, 1형 당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열악했다. 혈당 관리 수준은 세계 표준보다 뒤처져 있었다. 외국에서 사용하는 신약이나 혁신적인 의료기기들을 한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고, 환자가 자발적으로 사서 쓰는 것도 불법이라고 했다. 많은 1형 당뇨인은 자신의 질환을 숨겼다. 숨기다 보니 관리를 못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1형 당뇨인과 가족들은 2015년 인터넷 커뮤니티 ‘슈거트리’를 만들었다. 2017년에는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라는 환자단체를 만들었다. 환우회는 우선 환우들 간에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온·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했다. 1형 당뇨에 대해 제대로 알고 관리할 수 있도록 자료를 공유하고 간담회와 교육도 했다.
이어 혈당 관리 환경을 개선해 나갔다. 정부에도 목소리를 전했지만, 우리 자신도 ‘우리는 기다리지 않겠다(We Are Not Waiting)’을 외치며 해외 의료기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에 대해 불법 의료기기 수입이라고 고발이 들어왔는데,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데 국내 허가가 없어 쓰지 못했던 의료기기를 도입하고 의료기기법도 개정했다. 이런 의료기기를 국가나 개인이 수입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이런 의료기기와 소모품 구매 시 국민건강보험 요양비로 지원받을 수 있게 했다. 의료기기도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애플리케이션 이외에 글로벌 1형 당뇨 커뮤니티에서 공유하는 오픈소스를 통해 다양한 앱을 활용했다. 앱에서 수집한 의료 데이터는 진료와 연구에 활용되도록 자체 자료 수집 플랫폼도 만들었다.
이렇게 혈당 관리 환경이 나아지니, 자신을 드러내는 1형 당뇨인이 늘어났다. 목소리를 모아야 할 때 함께 할 환우회원들이 많아졌다. 1형 당뇨 아이들의 교육 기관 입소 거부나 학교·직장 내 차별의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영유아보육법이나 학교보건법 등을 개정하고, 매년 인식 개선 캠페인도 진행한다.
환우회원들도 인식 개선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언론에서 잘못 다루는 1형 당뇨에 대해 시청자 의견이나 기사 댓글로 올바른 정보를 안내하며 수정한다. 의료기기 규제 완화 주체도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의료기기 회사나 의료진들과 같은 공급자들이 주도해왔다. 최근 환우회는 1형 당뇨인의 의견을 모아 인슐린 자동 주입기의 경고음에 대한 규제 완화를 요청했고, 식약처는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우리는 안다. 환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직접 당사자이자 문제 해결 열쇠를 지닌 주체라는 것을! 지난 10년간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증명을 거쳐 많은 문제를 해결해 왔다.
우리 스스로는 깨달았어도 아직 환자를 보는 사회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인식을 바꾸고, 다양한 전문가와 협력해 1형 당뇨뿐 아니라 의료 분야에서 진정한 ‘환자 중심’을 실현할 수 있도록 ‘We Are Not Waiting’을 계속 외칠 거다.
원문: 이로운넷 / 글: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