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전공했다면 근심이 크실 겁니다
철학과 팩폭으로 알려진 위 짤은 코난 오브라이언이 2011년 다트머스 대학 졸업식에서 진행한 축사입니다. 사실 위 축사에는 비교적 덜 알려진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코난 자신은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기 위해 20여 년 동안 투나잇 쇼를 진행하겠다는 목표하에 살아왔지만, 결국은 직업과 목표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그는 말합니다. 꿈이란 건 결국 바뀌기 마련이고, 비록 이상향에 다다르는 것에 실패한다고 해도 그 실패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정의하게 된다고. 그러니까 그 실패가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코난의 이 말은 우리에게 철학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웁니다. 비록 철학이 성공을 보장하진 않더라도, 성공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만의 철학이 있었다는 점을요.
철학이 있는 기업가
이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성수동에 한국 1호점이 열리던 첫날, 수백 명이 새벽부터 줄 서게 만들었던 블루보틀의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은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와이파이는 주의를 분산한다. 고객이 커피와 함께 하는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뭘 더하기보다 뭘 뺄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그의 이런 철학을 보면 왜 블루보틀이 와이파이와 콘센트를 제공하지 않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객들이 다른 요소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오직 커피 맛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죠. 이런 ‘빼기 전략’은 정확히 적중해 블루보틀을 세계 곳곳에 매장을 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커피업계의 애플이라는 별명까지 안겨주었습니다.
이렇듯 본질적이지 않은 것을 계속해서 빼 나가다 보면 최종적으론 더 이상 뺄 수 없는 것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가 말했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의 의미입니다. 모든 지식과 인식을 의심하고 회의하더라도, 지금 그 순간 회의하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죠.
사장을 위한 쓸모 있고 친절한 철학 수업
이처럼 철학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토대입니다. 철학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지만, 특히 사장이라면 더더욱 중요합니다. 판단과 선택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사장의 선택은 가깝게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고, 멀게는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훌륭한 사장의 제1덕목은 새롭게 생각하는 힘과 올바르게 질문하는 능력입니다. 즉, 철학이죠.
『사장의 철학』은 기업을 경영하며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판단과 선택의 순간을 여러 철학자들의 이론과 격언을 통해 풀어내는 책입니다. 저자인 안상헌 작가는 KBS 1TV에서 ‘문화공감’을 진행하며 알려졌고,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고 써먹을 수 있는 철학을 알리고자 오랫동안 애써왔습니다.
이 책 역시 ‘사장을 위한 쓸모 있고 친절한 철학 수업’을 표방합니다. 성공한 기업들이 어떻게 철학을 활용했는지, 성공하는 사업가는 어떤 철학에 집중하는지를 설명하는 한편, 철학의 여러 개념들이 사업과 어떻게 연결되며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일선 사장들을 위한 철학 매뉴얼인 셈이죠.
지금부터는 책이 전하는 다양한 통찰 중 몇 가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넷플릭스와 형이상학
형이상학이란 ‘존재란 무엇인가?’ ‘인간의 의지는 자유로운가?’와 같이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형이상학의 핵심은 종전의 개념에 의문을 품고 이전의 생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넷플릭스의 사례로 들어가 봅시다. 코로나-19 시대, 이제는 세계인의 안방을 차지한 넷플릭스는 원래 DVD 배달 대여업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넷플릭스가 처음 출범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 기업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는 배달보다는 집 근처 대여점에서 직접 영상을 고르기를 원했으니까요.
그런데 넷플릭스는 ‘배달이란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 사고를 통해 DVD 대여업을 새로이 정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배달이란 상품을 고객이 원하는 곳으로 배송하는 것입니다. DVD를 배달하는 것 역시 나름의 아이디어였죠. 그런데 배달의 목적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과연 DVD를 직접 배송하는 것만이 배달일까요?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영화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배달이 아닐까요?
형이상학적 사고에는 이처럼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근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이끈 ‘파괴적 혁신’은 기존 개념을 재정의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경우가 많았죠. 당신에게 ‘사업’이란 무엇인가요?
유튜브와 패러다임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고는 우리 시대의 일반적인 인식 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대표적인 예가 천동설과 지동설이죠. 중세 이전 사람들에게 천동설은 당연한 상식이자 진리였고, 외부 세계를 관찰하고 판단하는 것 역시 이러한 틀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틀을 바로 패러다임이라고 합니다.
어떤 새로운 사실이나 문물이 나타났을 때,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패러다임의 전환이 나타납니다.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등장은 산업과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끕니다. 그리고 유튜브는 그 변화에 재빠르게 올라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두죠.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던 무렵 X세대는 궁금한 게 생기면 네이버 지식iN에 질문을 올렸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혁신이었죠. 그런데 요즘 세대는 궁금한 게 생기면 네이버나 구글보다는 유튜브를 검색합니다. 활자에서 인터넷으로, 문자에서 영상으로 다시금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든 혼돈의 시기이지만, 동시에 무궁무진한 기회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피처폰의 절대강자인 노키아가 순식간에 몰락하고, 삼성전자가 글로벌 모바일 시장의 강자로 올라선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 다음 패러다임 전환은 과연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레고와 스토리
현대사회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상품과 서비스가 탄생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모든 곳에는 광고가 있습니다. 이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 이상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광고가 홍수처럼 넘치는 세상에서 스토리를 고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유용한 수단입니다. 훌륭한 스토리는 제품을 더욱 빛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제품의 흠결조차 새로운 가치로 승화시키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는 좋은 가치와 진정성, 그리고 스토리가 결합되어 품절대란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이처럼 스토리를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책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플롯’, 즉 사건의 결합입니다. 그러니까 인물이 행동하면 그 행동으로 인해 결과가 나타나고, 결과가 행복과 불행을 만드는 구조인 거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스토리의 조건으로 고난과 갈등,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는 반전을 제시합니다.
잘 짜인 스토리는 객관적 사실이나 통계자료보다 훨씬 더 사람들을 잘 설득할 수 있습니다. 보는 이에게 몰입과 체험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후반 비디오 게임에 밀려 위기를 맞던 레고는 2000년대 스토리가 담긴 제품을 출시하면서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됩니다.
‘닌자고’는 일반적인 건물이나 상황을 그리던 기존의 레고 콘셉트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자체 애니메이션과 병행해 출시되었습니다. 나아가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같은 시리즈의 명장면을 재현한 제품을 출시하며 새로운 고객들의 유입을 이끌었습니다. 그 결과 파산 위기에 몰렸던 레고는 10년 만에 매출이 6배로 늘며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이 모든 게 스토리의 힘이었죠.
우리 회사 제품에는 어떤 스토리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철학으로 돈 버는 기업, 사업으로 철학하는 사장
위 소제목은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실제 사례와 고전, 그리고 역사를 넘나들며, 또 사업 구상부터 관리, 위기 대처를 오가며 경영 일선의 사장들에게 필요한 철학에 대해 안내합니다.
저자는 여느 개발서처럼 섣부르게 정답이나 진리를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어떻게 질문하고 통찰해야 하는지를 여러 철학자를 통해 전합니다. 요컨대 이 책은 사장의 철학이란 무엇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현장의 사장들이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취업이나 창업을 준비하는데 어디선가 막혀 계신가요? 사업을 운영하는데 무언가 잘 안 풀리는 느낌을 받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이 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