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 : 엔드게임 (Avengers: Endgame, 2019)〉 이후 새롭게 시작되는 MCU 페이즈 4의 첫 번째 영화(드라마로는 이미 공개된 ‘완다 비전’ ‘팔콘과 윈터 솔저’ ‘로키’가 있다) 〈블랙 위도우 (Black Widow, 2021)〉.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제작 스케줄이 연기되거나 변경되면서 새로운 마블 영화를 아주 오랜만에 극장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 첫 번째 작품이 블랙 위도우라는 점이 반갑고 또 아쉽다.
어벤저스의 원년 멤버인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히어로 블랙 위도우의 솔로 무비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는데, 보고 나니 그런 아쉬움은 더 커졌다.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지만 가장 많은 자본과 관심이 집중되는 MCU 작품들은 어쩌면 시대정신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대두되었던 흑인 인권에 관한 관심이 반영된 〈블랙 팬서〉가 그러했듯 〈블랙 위도우〉 역시 전 세계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여성인권 이슈와 맞물려 있다. 하지만 조금은 영화 외적인 분위기에 등 떠밀린 느낌이 없지 않다. 그 말인즉슨, 이미 이를 대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를 갖고 있고 대중에게 일찌감치 선보였음에도, 앞서서 이 이슈를 선도하지 못하고 분위기에 조금은 편승한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전에 〈캡틴 마블〉 솔로 무비가 존재하긴 했다).
시대정신에 편승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전 마블 영화, 더 나아가 마블 코믹스 작품들이 시대정신에 영향을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기도 한 주체였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확실히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아쉬움은 물론 높은 기대치에 반하는 것이다. 이를 제거한다면 MCU의 작품들은 엄청난 규모의 상업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변화에 (상대적으로) 아주 민감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는 지난 10년간 MCU 작품들 속에서 블랙 위도우 캐릭터의 의상이나 역할 변화들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민감한 시대상의 반영은 페이즈 4에서 더 가속될 전망이다 (영화 〈이터널스〉나 〈상치〉, 드라마 〈미즈 마블〉 등의 면면이 그렇다).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이 연출한 〈블랙 위도우〉는 만족감이 들수록 아쉬움은 더 커지는 영화다. 이 과거의 이야기가 관객 모두가 알고 있는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아쉬운 점은 사실상 더 이상의 블랙 위도우 영화는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이 한 편에서 많은 이야기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블랙 위도우에 관한 이야기가 이전 영화들에서 조금씩 소개가 되기는 했지만 솔로 무비는 없었기에 이번 영화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들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를 짧은 시간 내에 풀어내야 하다 보니 아무래도 각 이야기의 깊이가 부족하다.
이전 영화들에서 아주 가끔씩 드러났던 나타샤의 어린 시절과 블랙 위도우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솔로 영화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였다. 또한 블랙 위도우 이전에 나타샤를 설명하기 위해 꺼내든 가족(그리고 유사가족) 이야기도 있고, 영화가 주제 의식을 가지고 던진 페미니즘과 여성연대, 해방이라는 메시지도 있다. 마지막으로 마블 영화로서 책임감 있게 해결해야만 하는 전체 세계관 속 역할에 관한 지점과 영화 외적으로는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오락적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가져야 한다는 것도 이 영화가 갖게 된 여러 요소 (혹은 부담) 중 하나다.
결론적으로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요소들은 아쉽지만 단 한 가지도 100%에 이르지 못하고 중간에 그친 듯한 느낌이다. 나타샤와 블랙 위도우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반드시 완벽하게 설명했어야 했는데(앞으로 기회가 없기 때문에), 서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충분한 공감대를 일으키지 못했다. 가족이라는 테마를 꺼내든 건 여러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다른 재미를 주는 작용을 하기는 했지만, 그 자체로도 결말에 이르지 못했고 무엇보다 오래 기다려온 블랙 위도우의 기원의 관한 이야기의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다. 여성의 관한 주제의식 역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으나, 조금은 이미지로만 전시하는 데에 그치는 느낌이라 그 깊이가 아쉬웠다.
만약 블랙 위도우의 솔로 영화가 더 일찍 찾아왔더라면 첫 편에서는 다른 히어로의 첫 번째 영화가 그러하듯 기원에 관한 완벽한 서사를 풀어냈을 것이다. 속편쯤에서는 이번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여성해방에 관한 메시지를 좀 더 깊고 본격적이고 선동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을 거다. 이러한 아쉬움은 솔로 영화가 너무 늦었기 때문이고, 앞으로 이어갈 수 있는 여지도 (사실상) 없기 때문에 이 한 편에서 모든 걸 그럭저럭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던 한계 때문이다(물론 멀티버스라는 카드가 있지만 스칼렛 요한슨의 인터뷰를 보면 그가 연기하는 블랙 위도우 영화는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하나 위안거리가 있다면, 플로렌스 퓨가 연기한 옐레나라는 캐릭터를 얻었다는 점이다. 옐레나는 MCU에서 다시 등장하게 될 것 같은데, 블랙 위도우 와의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상쇄시켜주길 기대해본다.
원문: 아쉬타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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