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피해자들에 대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이 논의되면서, 세월호 특별법의 내용이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개중 현재 넷스피어를 달구고 있는 가장 큰 이슈라면, 단원고 3학년생과 세월호 희생자 직계 형제자매에 대한 대학 특례입학이다. 야당은 대학 정원 외 3%를 주장했고, 여당은 난색을 표하다 결국 이완구에 의해 1%로 여야 합의가 타결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논란이 되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우리가 언제 그런 특례를 주장하였는지 되물으며 진상규명과 재발방지가 최우선임을 주장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특례입학 논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며, 이런 식의 보상에 회의적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2학년생도 아닌데” 내지는 “그깟 일로 대학도 공짜로 가서”는 아니다. 나는 그런 식의 누가 누가 더 힘든지 경연하는 것을 공정함이라고 포장하는 것을 혐오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 방식의 문제는 그것과 다르며, 오히려 ‘군가산점 제도’에 관련된 논의와 비슷하다.
군가산점 제도, 위헌 판정을 받은 이유
과거의 군가산점 제도가 갖고 있던 핵심적인 문제는 두 지점에 걸쳐 있다. 하나는 현실적인 이유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가치지향에 관련된 이유다.
첫번째로, 공무원 시험의 합격선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합격 기준이 100점에 이르는, 즉 가산점이 없이는 아예 합격이 불가능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군가산점이 없으면 아예 공무원에 임용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결과가 등장했으며, 이는 군 입대가 불가능한 장애인 응시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차별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여성은 직업군인 복무가 가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계 일각에서도 여성에 대한 권리 침해가 지나치다는 주장을 내놓았으며, 헌재는 여성계 및 장애인 응시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였다.
두번째로, 군가산점 제도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현실적인 이유로 노역에 대한 합리적 임금 지불 없이 특혜를 배분하는, 즉 돈 대신 복권을 찍어 나누어준 제도였다. 또한 그 보상이 예비역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닌 공무원 응시를 준비해야만 적용되는 것이라는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임금으로 노역을 보상하지 않고 무형의 권리로 노역을 보상하면서, 군가산점 제도는 강력한 상징성을 띄게 되었다.
이를테면 군가산점이라는 지대로 인해 사회에서 이루어져야 할 군복무 보상의 현실화에 관련된 상상력이 막히고, 법적 논리에 의해 군가산점 제도가 위헌 판정을 받자 그대로 사회적 대립구도가 남녀대결 구도로 변질된 것이다. 그로 인해 실제로는 군가산점 따위로 갈음할 수 없는 병역의무에 대한 사회적 보상 확대에 관련된 논의가 꾸준히 억압되었다. 동시에 국방부는 이런 돈 안드는 일을 통해 마치 병역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고 있는 양 홍보하기 바빴으며, 사실상 남녀대결로 문제가 변질되는 데에 기여하였다.
세월호 대입특례, 부당한 3가지 이유
여기서 두번째 문제와 세월호 특별법의 대입특례는 내가 생각하기에 꽤 강한 연관이 있다. 몇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1) 군가산점이 공무원에 관심이 없는 예비역을 병역 보상에서 배제한 것과 같은 현상이 대입 특혜에서 발생하지 않는가? 물론 대입은 절대 다수의 고교생에게 일생에서 첫 번째로 맞는 중요한 일이며, 단원고 3학년생과 세월호 희생자의 직계 형제들은 실제로 학업에 상당한 지장을 받았기에 그에 따른 보상을 대입 특례로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정 부분의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원칙적인 차원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모두 대학에 갈 여건이 되고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며(더군다나 대입 특례가 특별법 대상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한 적은 없다), 군가산점보다 정도는 약하지만, 대입 특례라는 지대(Rent)를 만들어 배분하는 과정에서 과연 관련자들이 모두 보편타당하고 공평한 보상을 받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물론 혹자는 대입에 방해를 받은 것이니 대학에 갈 사람이 아니라면 문제가 안 되므로 특례입학이라는 형태에 별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 대입은 교육이 제공하는 하나의 결과물일 뿐 근본적으로 특별법 대상자들은 정상적인 고교 교육 수료에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것을 대입과 연계시키는 것은 또 하나의 고교 교육을 왜곡시키는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2) 세월호 특별법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특별법이라면, 대입 특례는 사실상 정치권에서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편의주의적인 방식이다. 특례입학은 어디까지나 대학에게 정원외 입학으로 등록금 장사를 허용하는 것이며, 정부를 포함한 국가는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 인정에 따른 보상을 하지 않고서도 마치 그런 것처럼 일종의 정치적 ‘봉이 김선달’ 행위를 수행하여 그것으로 피해 보상을 갈음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국가가 손해배상을 하는데 윤전기로 돈을 고스란히 찍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건 말건 보상을 하려 들면 그것이 이치에 맞겠는가? 교육 과정의 사고로 인한 왜곡을 용인하더라도 국가의 책임을 정치권력을 통해 과거에 없었던 지대를 만들어 보상하려고 하는 행위는 매우 정치권 편의주의적이며 대학의 의미를 끝없이 대학과 야합해 격하시키는 방법이다.
3) 군가산점 제도 위헌 논란에서도 일어났던 현상이지만, 노역이나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손실에 대한 보상을 하기 위해 정부가 특례와 같은 지대를 택할 경우, 실제 그 지대가 갖는 경제적 가치가 정확히 얼마인지 관계없이 지대 자체가 상징성을 갖게 된다. ‘명문대’를 손쉽게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실제로 그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와는 별개로, 학벌사회의 질서에 대한 우회책이자 ‘꼼수’로 인식되면서 지금과 같이 유족들이 마치 자식 장사를 하는 것처럼 부당한 비판을 받게 된다. 실제로 유족들은 그러한 것을 요구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졸렬한 편의주의 발상
이는 유족과 관련 피해자들의 상처를 회복시키고 일상 생활에 정상적으로 복귀하도록 하는 목적에 위배될 뿐더러, 오히려 넷스피어를 통해 무차별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행위다. 물론 돈으로 문제를 갈음하더라도 원론적으로는 같으나, 대입이라는 한국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소재에 관한 특례를 편의주의적으로 만들어 배분하는 것은 그 현실적인 목적이 무엇이든 부당한 비난에 휩쓸리게 하기 더욱 쉽다.
이 세 측면과 별도로, 한국의 제도정치권이 일으키고 있는 상황 왜곡은 심각한 수준이다. 세월호 유족들이 최우선으로 요구하는 것은 의사자 지정이나 대입 특례가 아닌 진상의 완전한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의 수립이며, 엄밀하게 말하면 돈으로 해결할 일도 아닌, 철저한 정치의 영역이자 정책의 영역이다.
그러나 막상 그 최우선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끝없이 정당과 행정부 모두 공회전만 하고 있고, 분노한 유가족들에게 일단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유가족들을 무차별적인 비난의 대상으로 미리 내몰고 있으며 누구 하나 그 비판이 부당하다고 앞서 주장하고 있지도 않다.
입법부가 보상에 대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임의로 특혜를 만들어내 김선달 흉내를 내며 대동강 물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징벌적인 손해배상 체계를 확립하고, 유족들이 명백한 진상을 알고 시시비비를 규명해 원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그 바람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는 일이다. 행정부 역시 국가안전처와 같은 쇼맨쉽이 아니라 하다못해 사고 책임을 지고 사임하려던 총리를 유임시키는 촌극만큼은 보여주지 말았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차원에서 정당은 완전히 유가족들의 희망과는 전혀 따로 돌고 있고, 정부는 아예 그것을 ‘무시’하는 상태다. 정홍원의 표정이 보여주듯이.
세월호 사건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인사쇄신 촌극과 정부 조직개편만 있을 뿐 전혀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진상과 원인, 구조가 분석되고 대책이 수립되고 있지 않으며, 유가족이 ‘막말’을 듣는 것과 함께 정보를 공개하고 대책을 수립해 달라는 희망 역시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의도가 갈린 대접을 받고 있다. 특례입학과 의사자 대우가 그러하며, 그렇다고 유가족들이 특별법을 통해 그와 같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의원 중 누구 하나 그 필요성을 명백히 대중 앞에 주장해 유가족들에게 쏟아지는 자식 장사라는 비난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지도 않다.
졸렬하다는 표현만이 가능한 한국의 제도정치 앞에 세월호는 점차 묻히고 있다.
원문: 잉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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