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탁이라고 하면 부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서울에 장수막걸리가 있다면 부산엔 생탁이다. 부산사람들은 롯데를 응원하는 것처럼 생탁에 대해서 은근한 애정도 가지고 있다. 타 지역 사람들에게 부산에선 생탁이라며 권하는 부산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런 부산시민의 애정 덕분인지 생탁은 부산을 넘어 경남까지 판매망을 확장하면서 부울경 대표 막걸리로 오를 기세다.
그런데 부산이 자랑하는 막걸리 생탁이 언제부턴가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생탁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한 것이다. 보통의 파업이라면 그러려니 넘기겠는데 생탁 노동자들이 든 피켓에 적힌 문구들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들이 부산시민에게 호소한 내용은 불편함을 넘어 경악스런 것이었다.
생탁 노동자들에게 주 5일 근무는 언감생심이다. 생탁 노동자들은 한 달에 단 하루만을 쉬고 일을 했다. 휴일에 일을 한다고 휴일수당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생탁 노동자들이 혹사 당하며 만든 생탁을 팔아 얻은 이익은 고스란히 41명의 사장들이 챙겨갔다. 사장들이 매달 2천만원 정도의 배당금을 챙겨갈 때 생탁 노동자들은 휴일도 어김없이 공장에 나와 고구마와 계란을 먹으며 일을 했다.
7월 15일 생탁 노동자들이 파업캠프를 차리고 있는 생탁 장림공장을 찾았다. 경악스런 생탁의 근로조건을 그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었다. 공장에 들어섰을 때 파업 노동자들은 해운대 거리 선전전을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파업캠프를 지키는 송복남 조직부장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7월 8일 지방노동위원회의 5차례 조정이 있었지만 회사 측이 전에 인정했던 부분까지도 부정하면서 협상은 최종 결렬되었다. 노조는 이런 회사에 대해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휴가는 없다. 공휴일은 한 달에 단 한 번
파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겁니까?
작년 11월 회사가 사규집을 바꾼다고 식당에 한 부 던져놔서 읽어봤는데 거기 이상한 문구가 있더라구요. 연차를 저희는 한번도 받아본 일도 없는데 연차를 쓰지 않으면 소멸된다는 문구를 만들어 놨어요. 그래서 도대체 우리는 왜 연차를 못쓰게 하느냐? 못썼으면 그걸 수당으로 줘야 하지 않느냐? 그랬더니 포괄임금제라며 당신들 월급에 그게 다 포함되어 있다는 거예요. 시간외 수당, 휴일근무수당, 연차수당 그런 게 월급명세서 어디에 있냐고 하니까 지금이라도 그렇게 작성을 해주겠고 해요.
그렇게 해서 1월 월급명세서가 나왔는데 이게 웃긴 거예요. 짜집기를 하다보니까 입사한지 2달 된 사람한테 연차수당이 8만원 들어가 있는 거예요.(연차휴가는 1년에 80% 이상 근무한 사람들에게 휴가를 부여하는 제도다. 신입사원들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이게 노조의 시발점입니다. 이건 아니다. 이 회사는 해도 너무한다. 사람이 회사 사정상 근무를 시키면 그에 합당한 수당을 줘야지 월급이나 많이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그때부터 기사 5명이 중심이 되서 민주노총에 노동법 공부하러 다녔습니다.
한 달에 한 번만 쉬고 매일 일한다는 게 솔직히 잘 이해가 안됩니다.
이 회사가 어떤 체계냐면 365일 돌아갑니다. 술 출하가 안되는 날이 5일입니다. 설날과 추석 명절 각 이틀, 신정 하루. 그땐 술이 안나간다고 통보를 하죠. 그외엔 공장이 계속 술이 나옵니다. 여름휴가도 교대로 가는데 대체인원 뽑아주는 게 아니라 7명이 할 일을 6명이 하는 거죠. 예전엔 월 1회도 쉬지 못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처음엔 넉달만에 쉬었습니다. 처음 들어온 놈은 한 번 굽힌다 해서 넘어가고 밀려서 넘어가다 보니 넉닥만에 휴일을 가지게 되더라구요.
한 달에 한 번 쉬면 그날은 잠만 주무실 거 같은데.
한달에 한번 쉬면 그날은 어짭니까? 그동안 못가본데 가봐야 합니다. 가령 네번째 주에 친구 딸네미 결혼이다. 그럼 노는 날을 바꿔야지요.
장례식 상주라도 휴가는 없다. 버스비 주고 새벽4시에 출근하라는 회사.
그럼 사람 만나기도 힘들겠는데요.
인간구실을 못합니다. 집안에 대소사는 거진 못가보죠. 아주머니 한 분은 고향이 충청도인데 어머니 팔순에도 못갔습니다. 더 가슴아픈 거 얘기해드릴까요. 제 막내삼촌이 돌아가셨는데 제가 출상을 못봤습니다. 그 삼촌은 딸밖에 없습니다. 제가 집안에 장손이라서 상주가 되야하는데 휴가를 달라니까 사규집 뒤적거리더니 삼촌 돌아가셨는데 휴가 없다는 겁니다. 경남 고성과 부산을 왔다갔다 하면서 상주를 하긴 했는데 근무 중이라 상주인 제가 장지도 못가고 일을 하러 왔습니다.
출퇴근 시간은 잘 지켜집니까?
여긴 새벽 4시 출근입니다. (운전)기사들은 그날 주문들어온 술을 다 갖다주면 퇴근이거든요. 11시 30분에서 12시 30분 사이에 퇴근합니다. 현장은 24시간 근무합니다. 새벽 4시 출근해서 그 다음날까지 근무합니다. 24시간 근무가 요즘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새벽 4시 출근이면 야간수당이 적용되는데 받으십니까? 그리고 버스도 없는 새벽에 어떻게 출근하죠?
새벽 6시까지 심야수당이거든요. 그런 거 없습니다. 교통비는 주는데 기사는 9만원 현장은 7만 5천원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 교통비가 버스비 기준입니다. 말이 됩니까? 새벽 4시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게. 그래서 대부분 차로 옵니다. 카풀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교통비가 기름값엔 택도 없죠.
일상생활이 어렵진 않나요?
남들 같은 라이프싸이클로 살수가 없어요. 직장인들 6시 퇴근하면 7시부터 술자리 시작해서 1차끝나면 9시잖아요. 우린 그때 집에 가야합니다. 다음날 출근 때문에 저녁 9시 이후에는 술자리를 가질 수 없어요. 제가 예전 직장처럼 밤늦게 술도 먹고 해봤거든요. 몸이 못견뎌서 안돼요.
휴일수당도 없이 일요일에 고구마 먹고 일하는 노동자와 매달 2천만원씩 배당 받아가는 41명의 사장들
젊은 사람들은 이런 근무조건을 못견딜텐데.
그러니까 젋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새벽에 출근하지 노는 날 없지. 반나절만에 나가는 사람도 봤습니다. 여기 노동자들 나이가 다들 많습니다. 현장에 70 넘으신 분들도 있습니다. 평균연령이 50대 후반입니다. 이 회사는 55세가 정년이거든요. 그 이상은 촉탁계약입니다. 지금 촉탁이 40명 정도 되고 나머지 21명이 그 이하입니다.
일요일 고구마나 계란을 먹고 일하신다던데.
일요일 관리자는 안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식당 근무하는 사람이 아침밥만 해주고 퇴근하는 거예요. 그런데 현장은 노동강도가 똑같거든요. 똑같이 근무하는데 아침만 주고 점심은 안 주니 배고파서 일을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식당 이모가 고구마나 감자를 삶아줘요. 그것도 머릿수대로 두 당 딱 한 개씩만 줍니다.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입니까?
명절에 3일을 18시간씩 근무하거든요. 내일이 설이라면 오늘부터 3일 앞에서부터 날밤을 샙니다. 잠은 대기하고 있는 동안 차 안에서 졸음으로 해소합니다. 그렇게 하면 둘째날은 비몽사몽입니다. 그땐 도로가 U자로 보입니다. 제가 그걸 몇번 경험했습니다. 도저히 안되면 도로 옆에 차를 세워놓고 30분 정도 알람 해놓고 잡니다. 그럼 도로가 다시 펴집니다.
사측에 문제가 많아보이는데요. 이런데도 사측이 직전 협상안까지 부정하는 건 이해가 안되네요?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요?
생탁 사장이 41명입니다. 연산동과 장림 공장이 두갠데 장림에 사장이 25명입니다. 장림공장 대표 사장은 자기가 대표권을 갖고 왔다 말하는데 우리가 봐서는 아니거든요. 장림공장 사장 25명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거 같거든요. 지노위 조정위원도 놀라는 게 사측이 어제 했던 말 다르고 오늘 했던 말 다르다고 해요. 사장 자기들끼리 조율이 안되는 거 같아요.
70년대 부산의 양조장들이 모여 합동양조를 만든 게 생탁의 원조다. 당시 모였던 양조사장들이 지금 생탁의 41명 사장의 토대다. 생탁의 사장들은 당시 지분으로 현재 매달 2천만원 정도의 배당금을 받아가고 있다. 생탁이 지노위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생탁의 연매출은 206억으로 나와있다. 그들이 받아가는 배당금은 생탁 매출의 34.4% 정도 된다. 반면 노동자의 인건비는 10%가 안된다고 한다.
현재 생탁 사장들은 1세대가 물러나고 2세대로 많이 넘어갔다. 생탁의 적잖은 사장들이 부모대의 지분으로 아무 일도 안하고 월급 2천만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초고수익의 배당권리를 상속받으려면 상속세를 얼마나 납부해야 할까? 참고로 30억 이상의 재산을 상속받을 경우 최고 상속세 50%를 적용 받는다.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는 더러운 휴게실과 못쓰는 술탱크에 물 받아 쓰는 목욕탕.
신 사옥은 언제 지은 겁니까? 여기에 노동자를 위한 샤워실이나 휴게실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작년에 완공된 사옥입니다. 한 200억 이상 들은 걸로 알고 있는데 노동자를 위한 휴게시설 이런 건 일체 없어요. 사장실은 대기업 회장 방만하게 꾸며놨데요.
그럼 샤워실이나 휴게시설은 없습니까?
80년대 지어진 구건물에 가면 자는 공간이 있는데 그냥 이런 공간에다 도끼다시만 올려서 전기장판 깔아놨어요. 여기 사진 보시면 기가찹니다. 천정에 곰팡이가 피어있잖아요. 이게 사람 사는 뎁니까? 파업하고나서 지금은 수리를 해놨어요. 목욕탕도 있는데 이게 목욕탕이 아니고 못쓰게된 술탱크에 지하수를 받아서 오토바이 화이바 같은 걸로 물 뒤집어 쓰는 거예요. 거기서 샤워하고나면 몸이 더 간지럽습니다. 저는 거기서 안 씻었어요. 이것도 파업 후에 수리했어요.
파업 후에 생탁 근로조건이 좋아진 거 같네요.
지금 일요일 다 쉽니다. 우리가 파업 들어가니까 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일요일은 술 안 만듭니다. 파업 덕분에 좋아진 게 한 두가지 아닙니다. 우리끼리 하는 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떼놈이 번다고. 목욕탕 수리했지요. 식당 개보수 했지요. 생일날 파티 해주죠. 지난 4월은 파업 동안 욕봤다고 월급을 두 배로 줬어요. 6월엔 우리랑 협약도 안하고 임금을 30만원 인상시켜줘요. 격려금도 50만원 주고요.
조경태 의원 사무실이 공장 바로 앞에 있는데 조경태 의원이 파업현장에 들린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온다고 해도 오지마라고 할 겁니다.
생탁의 근로조건 개선 어려운 일 아니다. 아주 단순하다. 매달 2천만원씩 배당받는 41명 사장의 배당금을 줄이고 그 돈을 근로조건 개선에 쓰면 된다. 생탁 노동자는 120여명이다. 사장이 100만원을 내놓으면 노동자를 위해 일인당 33만원을 쓸 수 있다. 200만원을 내놓으면 66만원을 더 줄 수 있다. 아무일도 안하고 수천만원대 돈을 받아가는 사장들이 그 돈을 아까워 하기 때문에 생탁 노동자들이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지옥 같은 공장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거다.
지금 같은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열악한 노동조건이 있을 수 있을까? 정말 지옥 같은 근로조건이다. 이 물음에 송복남 조직부장은 생탁 노동자들이 나이가 많기 때문일 거라고 답한다. 나이가 많아 잘 모르니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고 회사가 노동자들을 무시한 것이다.
찾아갔을 때 선전전을 나서는 노동자들은 50대에서 60대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었다. 생탁의 열악한 환경을 참고 일해온 이 분들이 과연 인생을 살아오면서 승리했던 경험이 얼마나 있었을까? 거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이번에야 말로 이겼으면 좋겠다. 그들이 승리의 기쁨을 반드시 맛봤으면 좋겠다.
원문: 거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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