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죽음’이다. 직접적으로 다룬다기보다 우회적으로 죽음을 다룬다. 부제가 말해주는 것처럼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하는 회사인 ‘무브 투 헤븐’의 주인공 그루의 눈을 통해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적인 느낌은 굉장히 다크 한 것 같지만, 신기하게 그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삶은 달콤 해진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은 늘 사랑받는 명언이었으며, 구약성서의 전도서에도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칫집에 가 있다 (새번역)’라는 말씀이 있다. 죽음을 기억하고 가까이 갈수록, 삶은 생기로 뚜렷해지며 지혜로 풍성해진다.
근데 분명 <무브 투 헤븐>은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질적인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답을 찾았다. 머릿속에서 노래가 울려 퍼진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미디어가 죽음을 다루고 있다는 그 사실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애초부터 미디어란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것과는 상극이 아니었는가. 눈에 보이는 것이 최고라고,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집어치우고 지금 이 순간이 주는 기쁨에 몰입하라고, 멍하니 보고 멍 때리면서 다 잊어버리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미디어의 속삭임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채널을 통해서 ‘죽음’을 말하다니, 이건 마치 떡볶이집에서 파는 스테이크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난 스테이크보다 떡볶이를 더 좋아한다)
유투브로 인해서 이런 죽음에 대한 망각이 한층 더 가속화된 시대를 맞이한 것 같다. YouTube라는 명칭은 사용자를 가리키는 ‘유(You, 당신)’와 미국 영어에서 텔레비전의 별칭으로 사용되는 ‘튜브(Tube)’를 더한 것이다. 과거 텔레비전이 브라운관(Cathode-Ray ‘Tube’, CRT)를 사용했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미국 영어에서 다른 말로 ‘튜브’라고도 부른다. 즉 ‘YouTube’라는 명칭의 뉘앙스는 ‘당신을 위한 텔레비전’, ‘당신이 곧 텔레비전’ 정도이다. (나무위키 참고)
우리나라에서는 ‘유’튜브를 ‘너튜브’라고 부르는데, 그야말로 ‘너를 위한 티비’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으니 매우 적절하다. ‘너를 위한 TV’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사람들은 죽음을 효과적으로 망각한다. 오직 현실, 오직 현재, 오직 현질(?)뿐이다. 그렇게 해서 오직 현타 밖에는 남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무브 투 헤븐>은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소리를 듣기 충분하다. 우린 다 죽음을 잊어버리라고 외치고 있는데, 왜 너는 다른 목소리를 내느냐고 말이다.
총 10회, 1회당 50~60분, 고요한 밤 10시에서 11시 사이, 불 꺼진 방에서 티비를 통해 죽음에 젖어 들었다. 이질적인 느낌은 지울 수 없었지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스토리를 가진 드라마를 통해 이렇게 편하게 앉아서, 죽음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한 회 한 회가 끝날 때마다 삶은 적절히 깊어졌고 풍성해졌고, 마침내 고요해지기도 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는다. 잊어보려고 해도, 피해 보려고 해도,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숙제다. 죽음은 책으로 공부한다고 해서 답을 찾기는 어려운 과목이다. 이렇게 미디어를 통해서 친절히 쏴주는데, 이걸 안 본다는 건 좀 아깝지 않나 생각해본다.
삶은 삶에 대해 생각할 때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풍성해지고 달콤해진다. 달콤한 인생을 꿈꾸는 누군가에게, <무브 투 헤븐>을 추천한다.
작성: 세상 모든 B급들을 위한 작은 시, 김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