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의 양심고백” 웹툰에 대한 내 생각을 묻는 페친들이 계셨다. ‘대체 무슨 만화길래?’ 하며 링크를 타고 들어가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동성애자 였던 분이 과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얼마나 동성애가 심각한 문제인지를 역설하는 내용을 담은 만화였다.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이 만화에 담긴 내용은 동성애자들을 향한 편견화 혐오 서린 시각이 노골적으로 스며있었다. 흡사 기독교 믿은 뒤로, 섹스와 자위, 야동을 끊었다는 어느 신앙인의 간증 처럼 동성애를 중단하고 새 삶을 살고 있단 김정현 씨의 고백은 약간의 기독교 색체만 가미한다면, 미국에서 열풍을 일으키다 이젠 과오를 반성하고 자진해산한 엑소더스 인터네셔널의 동성애 치유사역 (ex-gay ministry)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동성애자들이 누굴 만나든, 누구와 어떤 성생활을 하든 그것은 그들의 사생활이다. 문란함의 기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겠지만, 성적으로 문란하든 그렇지 않든 타인의 성생활에 대해 언급하는 것, 더구나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을 일반화하여 비난하는 것은 인종주의와 다름없는 폭력이다. 게다가 동성애자들을 에이즈를 퍼뜨리는 사람들로 매도하고,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은 잘못된 펙트에 기반한 혐오발언이다.
“동성애자의 양심고백”이란 웹툰을 정독한후, 내가 느낀점과 생각들을 몇가지 굵직한 논지에 따라 필요하다면 약간의 자료를 제시해사며 조금은 두서없이 적어볼까 한다.
동성애자는 문란하다고?
미국에 유학 와서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교회, 학교 등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며 교제하게 되었다. 처음엔 좀 어색하고 낯설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 성소수자들과의 만남은 낯선 경험이었다. 그들과 교제하고 생활하며 평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동성애자들 역시 이성애자들과 다를바 없는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일요일 아침이면 교회가기 싫단 아들과 실랑이를 버리는 엄마와 아들, 기말 페이퍼를 쓰며 한숨을 푹푹 내쉬는 대학원생, 결혼기념일에 첫 데이트를 추억하며 재현하는 낭만커플, 싸우고 다투기도 하며,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는 이들,
빌 마허가 “모닝커피, 태닝샵, 헬스장 이게 동성애자 라이프 스타일이야” 라고 말한 것 처럼, 성적지향에 관계없이 인간의 일상이란 대체로 비슷하며, 그중에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는 걸, 성소수자 친구들과의 사귐을 통해 경험 하게 되었다.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가 되었다고 간증하는 엑스게이(ex-gay)들은 문란한 삶을 살다 예수 믿고, 변화했다는 크리스천들의 고백처럼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의 전환이 성적 타락으로 부터의 회복이라 주장한다. 그분들의 주관적인 경험과 간증을 통째로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의 전환이 바른 성윤리 회복이란 주장은 동성애자들을 성적으로 문제있는 이들로 일반화 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친구 중 한명은 동성애자인데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했다. 한번은 혼전순결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 친구는 성인간에 합의된 성관계라면 혼전이라도 상관없단 내 입장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것은 죄악이라고.. 중학생 시절 순결서약을 했한 친구는, 결혼한 남편 외엔 누구와도 성관계를 맺어선 안된다고 열변을 토했다.
“동성애자들은 게이바에 출입하고, 모텔이 드나든다. “식성”이란 게 있어서 스타일에 따라 마른 혹은 근육질, 털 많은 동성 파트너를 찾아나선다.” 라는 식의 주장들은 동성애를 이성애로 바꾸어써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나이트 클럽에 다니고, 모텔에 출입하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 마음에 드는 이성 파트너를 찾는 것은, 동성애자나 이성애자나 별반 다르지 않다. 무엇이 문란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겠지만, 성적인 문란함은 각 개인의 삶의 방식이지 특정한 성적지향의해 결정지어지는 요인은 아니다.
동성애자들은 성적으로 문란하단 주장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동성애자 라이프 스타일, 이성애자 라이프 스타일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각 개인의 고유한 라이프 스타일이 존재할 뿐이다. 다만 동성애자들의 경우 이성애자들 처럼 공개적으로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것은 그들이 문란하거나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을 향한 사회적 편견과 혐오, 차별 때문이다. 차별과 혐오는 동성애자들을 더욱더 벽장으로 몰아놓고, 문제있는 이들로 일반화 하여 낙인 찍는다. 정말 문제가 있는건 동성애도 아니도 그들의 삶의 방식도 아니다. 차별이란 이름의 폭력이다.
동성애는 위험하다?
남성이 남성에게 혹은 여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성폭력 또한 성폭력의 문제지 성적지향으로 다루어질 문제가 아니다. 이를 성적지향의 범주와 엮는 것은 흑인일 수록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인종주의적 논리와 다를 바 없다.
군대나 감옥에서 발생하는 동성간의 추행, 성폭행은 동성애자 보다 이성애자들에 의해 자행된다. 성폭력 문제의 본질적 문제는 성욕해결 보다도 수직적인 상하구조에서 발생하는 지배욕이다. 성폭력은 근절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 전반에 만연한 상명하복에 근거한 수직적, 권위주의적 문화를 수평적이고 민주적으로 전환하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군형법 92조 6항, 동성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에 대해선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미국에서도 통일군사법전(The Uniform Code of Military Justice, UCMJ)에서도 한국의 군형법 92조 6항과 같이 군인들의 항문성교를 처벌하고 있었다. 동성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이 법은 “소도미 법”이라 불렸고, 군대 뿐 아니라 텍사스 주에서도 주법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2003년 연방대법원에서 ‘소도미법’이 위헌으로 판결남에 따라 군내에서 사실상 동성 간 성관계에 대한 처벌은 중단되었다. UCMJ에 규정된 소도미조항 제 125조는 2013년 통과된 국방수권법(NDAA)에서 삭제되었다.
오바마 민주당 정부는 2011년 ‘Don’t Ask, Don’t Tell’ 즉 동성애자에 대한 군복무 금지 정책을 폐지하였고, 전통적 결혼보호법(DOMA)가 위헌판결이 난 이후에는 미 국방부와 군내의 동성부부에게도 이성부부와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는 등 LGBTQ 친화적 군대로 성소수자 인권 보장에 앞서가고 있다.
군형법 92조 6항의 폐지가 군기강을 흔들고,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분들께 묻고 싶다. 그런 미군에게 전작권을 통째로 맡겨 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게 하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에 따르면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90%는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들에 의한 것이며, 이는 권력관계에서 발생한 것이다. 언론에 등장하는 무수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이 이성애자라고 하여 이성애자들을 잠재적 성폭력자로 규정하지 않는다. 동성애라고 하는 성적지향을 가진 이들을 잠재적 성폭력자로 규정하는 것, 사회문화적 차별이다.
동성애자들이 위험한게 아니라 그들을 잠재적 성범죄좌로 규정짓는 사회적 폭력이 위험하다.
에이즈, 성병은 동성애 때문이다?
에이즈의 근본 원인은 성적지향이 아니라 위생 그리고 의학지식 부재다. 2008년 유엔 에이즈 계획 (UNAIDS)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전 세계 HIV 또는 에이즈 환자는 3300만명 정도 였다. 유엔 보고에 의한 분포지도를 살펴보면, HIV, 에이즈 환자중 67%가 아프리카 남쪽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즉 에이즈의 원인은 바로 가난, 위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우석균 보건의로단체 연합 정책실장(의사)이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 연합’ (바성연)이 에이즈의 원인을 동성애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반박하는 주장을 했는데, 프레시안에 기고한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세계보건기구가 이야기하는 “안전한 성”(safe sex)에 대해 알아보자. 간단히 줄여 말하면 안전한 섹스는 4가지다. 1) 평생 동안의 금욕 2) 이성애든 동성애든 평생 동안 상호 단 한 사람의 성적 배우자와의 성행위 3) 성기를 사용하지 않는 성행위 4) 콘돔이나 페미돔을 사용하는 모든 성행위.
1번은 넘어가자. 2번 즉 ‘평생 동안 상호 단 한사람의 성적 배우자’라고 할 때 중요한 점은 두 가지인데 ‘상호’라는 것과 동성애와 이성애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동성애자라도 평생 두 사람만 잘 살면 HIV 감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반대로 ‘바성연’이 말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바른 성문화’인 이성애자라도, 또 그/그녀가 평생 동안 혼자 ‘정절’을 지킨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지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결국 상대방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면 해답은 4번 즉 콘돔이나 페미돔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엔 즉 세계보건기구와 UNAIDS에서 이야기하는 “안전한 성”이다. 여기서 동성애와 이성애의 구별은 안전한 섹스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
730배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무지를 조장하는 ‘바성연’과 같은 사람들이 HIV 감염을 퍼뜨리는 주범들이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바로 이러한 무식함에 근거할 때만 성립된다. 그러나 무식한 것도 정도가 있다. 동성애만 안하면 HIV에 감염될 확률이 730분의 1 밖에 안 된다고 주장하는 정도까지 되면, 이성애자들이 HIV를 예방하지 않게 만들어 HIV를 널리 퍼뜨리는데 기여하게 된다.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는 무식함이다.
더욱이 ‘바성연’의 광고가 죄질이 매우 나쁜 것은 에이즈에 대한 편견까지도 동시에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HIV/에이즈는 간염이나 고혈압처럼 단순히 질병일 뿐이다.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FIV 감염이 간염과 마찬가지로 성행위로도 옮겨지지만 수혈로도 전염된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말이다. (프레시안 기사링크)
동성애는 치유할 수 있다?
엑소더스 인터네셔널이란 기독교 선교 단체가 있었다. 그들은 동성애를 치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여러 동성애자들을 데려다가 이성애자로 만들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이 과정에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되었다.
“당시의 경험은 너무나도 끔찍했어요. 동성애 치유는 저 자신을 증오하고 타인을 정오하게 한다는 걸 가르쳐주었어요. 그곳에 교회 가르침에 부합하는 ‘사랑’은 없었어요. 제가 제 자신을 부정하려는 시도들을 그만두었을 때, 전 다시 저 스스로를 긍정하게 되었고 현재는 매우 좋아요.” – Lee Sinclair on Prodigy in a public post states
모어랜드 목사는 서버번 침례교회의 목회자였다. 그는 마이클 라킨의 죽음으로 1994년 6월22일 유죄판결을 받는다. 마이클은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총을 들어 자신에게 방아쇠를 당겼고 상해를 입었다. 결국 사망했다. 마이클은 자살하기 전 몇 달 간 모어랜드 목사에게 목회 상담을 받고 있었다. 마이클의 집에는 그가 남긴 노트와 일기들이 있었는 데, 친구들과 가족들의 증언에 의하면 모어랜드 목사는 마이클이 가진 동성애자로서의 성적지향을 바꾸려 했고, 결국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로스엔젤레스 지역 변호사인 레인지 페이지는이 상담이 마이클을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도록 했고, 그의 목숨을 앗아간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주장했다.
전 국내의 한 방송사에 TV쇼에서 일했어요. 우리는 여러 단체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과거에 동성애자 였고 현재는 “치료 되었다”고 주장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우린 이 사람들의 이름을 모아 정리했고, 한명씩 이름을 불러 대면한 뒤 질문을 했어요. 함께 있던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물었어요.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당신은 스스로를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라고 생각했나요?” 우리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모두 양성애자였다고 말했다. 우리가 만난 120명의 사람들 중에서 과거에는 동성애자 였고, 현재는 이성애자인 사람은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치료 되었다”고 주장하는 양성애자들에게 동성에게도 여전히 성적인 끌림이 있는 지에 대해 물었다. “치유 되었다”고 주장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적인 끌림을 느낀다고 답했다. “완전히 치료 되었다”고 주장한 극소수의 사람들의 경우 “치료”받은 지 2달 이상된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동성애 “치유” 프로그램으로 치료된 사람들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양성애자들만 만날 수 있었다. – Prodigy Richard Kennedy Jr
엑소더스 인터네셔널은 2013년 지난날 자신들의 사역은 상처만을 주는 일이었다며 사죄하고 자진 해산했다. 개인의 성적지향을 강제로 바꾸려는 시도들의 위험성 때문에, 캘리포니아주와 뉴저지 주에서는 법적으로 이런 시도들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동성애 치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적지향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 반대 진영에선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성애가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특정한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문제가 된다. 이성애를 논할때, 이성애가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를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동성애에 대해서는 선천성, 후천성을 검증하여 전자의 경우는 불가항력이란 이유로 도덕적 무결함을 후자의 경우는 선택가능한 것임으로 도덕적 책임을 물으려 한다. 바로 이를 검증하기 위해 동성애자들이 실험대에 올라 전기고문 등 끔찍한 인체실험 대상이 되었다는 역사적 만행을 기억한다면, 우린 문제의 본질이 타고난 것이냐 선택이냐가 아니라 차별적 인식과 다름에 대한 배타와 폭력이란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
우리 목사님은 오랜 세월을 이성애자로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날 자신이 동성애자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지기로 했고, 동성애자인 자신을 긍정하기로 했다. 현재 우리 목사님은 멋진 남자친구와 여느 연인들과 다름없이 때론 싸우고, 화해하고, 언제그랬냐는 듯 다정하게 살아가고 있다.
동성애가 치유될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렇다면 이성애자도 동성애자가 될수 있겠네요” 라는 주장에 대해선 논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이들에게 중요한 진실은 “성적지향이 변할 수 있는가?” 라고 하는 질문이 아니라 “동성애는 나쁘기 때문에 변해야만 해” 라고 하는 차별적 당위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 세계 보건기구 (WHO), 미국 심리학회, 미국정신의학회 등에서는 이미 동성애를 질병목록에서 삭제한지 오래이며, 동성애 치유라 불리는 시도들이 사회적 편견과 차별 그리고 개인에게는 정신적 고통을 야기할수 있음으로 이를 지양하는 노력을 당부하기 까지 했다.
동성애는 치유될수 있는가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 오히려 치유되어야 할 것은 성소수자들을 향한 차별과 편견, 혐오다.
마무리하며
건사연 블로그에 기재된, 김정현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웹툰, “동성애자의 양심고백”은 위에 나열한 비판들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웹툰이 특히 크리스천들을 중심으로 레이디 가가, 차별금지법 논란 때 처럼 급속도로 공유되며 동성애자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증폭될 때마다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다. 동성애 치유(?) 사역(ex-gay ministry)으로 유명했던 엑소더스 인터네셔널은 사죄하고 자진해산 했지만, 그들이 마침내 사죄했던 그 과오, 비슷한 논리들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나도 성소수자들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있었다. 낯설음과 어색함, 그리고 무지로 상처되는 말들을 내뱉기도 했고, 그들의 권리 보호에 반대하는 견해를 지지하기도 했다. 이런 내 편견의 벽을 조금씩 조금씩 허물었던 것은 다름 아닌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 젠더 친구들과의 만남과 사귐이었다.
조심스레 권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그대로 그들을 한번 바라봐 달라고, 동성애와 관련된 어떤 주장들에 대해 10분만 투자해서 펙트를 구글링 해보시라고 (물론 나의 글도 포함해서), 그리고 내가 상대라면 어떤 느낌일까고 입장바꿔 한번만 생각해 봐달라고..
내가 성소수자 친구들과 만나며 발견한 공통분모는 “우린 사람이다” “우린 사랑을 한다” 다양한 삶과 모습들이 성적지향에 관계없이 공존하며, 그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다채롭게 존재할 때, 우릴 풍성하고 아름답게 한다.
우리,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함께 살자는 고백을 듣고 싶다. 그런 고백이 여기저기 공유되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기대하긴 힘든걸까..
원문: 홍신해만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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