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주전 까지는 그리스의 유로 탈퇴 여부가 뉴스를 뜨겁게 달구었다면 저번 주 부터는 스페인의 경제위기 특히 ‘은행 시스템의 붕괴 위기’가 헤드 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스페인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며 어떤 경로를 거쳐서 발전했는지를 살펴보는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물론 똑같지는 않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및 경제 상황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서론에서 괜히 시간 잡아먹지 말고 바로 들어가 볼까요?…^^
장기 호황의 급작스런 종말
스페인의 2007년 GDP성장률은 3.6% 였습니다. 이는 2008년 0.8%로 급감했으며, 2009년은 -3.6%로 마이너스로 반전했습니다. 한편 2007년 8% 정도였던 실업률은 2008년 11% 다시 2009년 18%로 상승했으며 현재는 20%를 초과한 상태입니다.
사실 스페인은 1996년 부터 글로벌 경제 위기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던 2007년 상반기까지 유럽 평균을 1~1.5% 상회하는경제 성장률을 실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높은 경제성장률의 몇가지 원인을 살펴보면 이들이 반대로 현재 위기의 씨앗이었다는 기묘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a. 이민에 의한 인구 성장
스페인은 1996년 대략 4000만명 이었던 인구가 2010년 4700만명으로 증가하는 높은 인구 성장률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1950~60년대 스페인 국민들이 라틴 아메리카와 서유럽으로 대규모 이민을 떠났던 추이를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1996년 이후 스페인으로 이민온 사람들의 수는 5백만명을 상회했는데 이에 따라 1996년 2% 수준이었던 외국인 인구 비중은 2009년 12%까지 상승했습니다. 특히 스페인은 모로코를 위주로 한 북아프리카 지역, 라틴 아메리카 지역, 루마니아를 위주로 한 동유럽의 거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민 유입 국가가 되었습니다.
b. 대규모 고용 창출
이민에 의한 인구 증가와 병행하여 대규모의 고용도 창출되었습니다. 1996년 1300만명 이었던 스페인의 고용자 수는 2007년 2000만명으로 증가했습니다. 동 기간동안의 고용자 수 증가는 부분적으로는 1970년대 탄생한 후기 베이비 부머들과 여성인력의 경제활동 참여의 증가등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급격한 고용자 수의 증가는 앞서 말한 이민자를 흡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스페인의 고용 창출이 강력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에 따라 스페인의 실업률은 1993년의 25%에서 2007년 8%로 지속적으로 감소했습니다. 한편으로 이민자들은 대개 스페인 국민들이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C. 건설과 부동산 boom
이런 장기간의 성장 사이클은 건설과 부동산의 호황을 동반하고 있었습니다. 이민으로 인해 급격히 증가한 인구에 주거 공간들 마련해주는 것은 주요한 경제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정점이었던 2006년 스페인은 단독으로 597,632호의 신규 주택을 완공하였는데, 이는 1996년 유럽 연합 전체의 신규 주택 완공수 194,871호의 거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였습니다.
건설 노동자는 스페인 고용의 13%를, 건설업은 GDP의 10%를 차지했습다. 그리고 건설업과 부동산의 호황은 다시 주택 가격의 거품을 동반하게 됩니다. 즉, 스페인 국민들은 부동산의 호황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하자 미래의 추가적인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차입을 통해서라도 자가 주택(또는 제2, 제3의 주택)을 구입하며 전형적인 버블 생성의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d. 무역 수지 및 경상 수지의 지속적인 적자
상기 과정은 스페인 경제의 구조적인 특징이었던 무역수지의 지속적인 적자와 동반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스페인은 무역 수지의 적자를 관광업을 통해서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관광업은 2006년 GDP의 11%와 고용의 11%를 차지할 정도로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 호황과 동반한 국내 수요의 증가는 무역수지 적자 규모를 1996년 GDP의 2.6% 수준에서 2007년 8.7%로 확대시켰습니다.
게다가 스페인 국민들의 해외여행 확대와, 이민자들의 본국 송금 액수의 증가 등으로 경상수지 적자의 규모 마저도 2007년에는 GDP의 10% 규모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는 스페인이 자국내 부동산 버블로 증가하는 자금 수요를 충족하려면 결국 외부에서 돈을 끌어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e. 민간 부문의 외부 차입의존의 증가
위에서 서술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국내 경제가 외부로 부터의 차입에 의존하는 경향을 심화시켰습니다. 스페인의 순 금융부채* 비율은 1997년 GDP의 24% 수준에서 2007년 78%로 증가하였는데 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부문이 바로 은행들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동 기간동안 스페인의 은행들은 각종 금융 수단을 동원하여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을 부동산 붐에 발맞추어 자금 수요가 증가했던 스페인 민간 부문으로 공급하는 채널 역활을 매우 효율적으로 수행했던 것입니다.
*순 금융부채 : 총 부채 – 금융자산
f. 겉으로는 성공적으로 보였던 결과들
적어도 2004년 까지 위에서 언급했던 일들은 모두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성공 사례였습니다. 거주 공간을 비롯한 사회기반시설의 개선, 이민으로 인한 인구 구조의 변화, 더욱 개방적인 경제 구조, 기술적 발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금융기관의 성장 등은 모두 스페인인들이 자랑스러워한 경제적 성과였습니다.
축적되고 있었던 불균형
한편 2004년에 접어들면서 스페인 경제에 거대한 불균형이 축적되고 있다는 여러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 경제의 주택 건설에의 과도한 의존, 실망스러운 생산성 지표의 하락, 점점 상실되고 있는 경쟁력, 고정 계약에 의한 피고용자(일종의 비정규직)의 증가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지속가능할 것으로 생각될 수 없는 주택가격의 상승은 스페인 중산층에게 ‘매우 쉽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여전히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a. 정책적 대처의 미흡
스페인 정책 당국은 이러한 불건전한 진행 과정을 파악하고는 있었습니다. 스페인 중앙은행(Banco de Espana)과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수년에 걸쳐 지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적절한 정책적 대응으로 연결되었느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노동시장을 예로 들면 많은 경우 정책 당국의 개혁 시도는 강력한 산업별 노조에 의해 반대되었으며, 한층 더 나아가 이는 임금 상승과 이미 획득한 권리를 더 강화하는 기회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b. 불가능했던 통화 정책
통화정책은 부동산 버블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처 수단(예: 이자율의 상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선 포스팅에서 몇 번 언급했듯이 유로존 이라는 통화 동맹에 가입된 스페인은 독자적인 통화 정책을 실시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유로존 내의 국가들은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신용의 경우에도 스페인과 아일랜드 등은 급격한 팽창을 경험하고 있었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는 적절한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적어도 스페인의 경우 유로존의 통화정책은 부적절한 것이었고, 주택 버블이 절정에 이르는 기간에 오히려 스페인의 실질 금리(명목 금리 – 인플레이선율)은 (-)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c. 재정 상황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스페인 국가 자체의 재정상황은 매우 건전했습니다. 복지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추구하고 있었지만 유럽 경제-통화동맹(EMU) 가입 이전에 실행하였던 재정 건전화 조치와 장기간의 성공적 경제성장은 적어도 지표상으로는 스페인의 재정을 매우 건전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직시하지 않았던 위기의 징조
그러나 장기간의 경제 호황기 동안 좋게만 보였던 그 지표들은 사실 어두운 진실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건설 및 부동산 업종에의 과도한 의존은 적어도 이들이 활황인 동안에는 정부의 세수 증가를 통한 재정 건전화에 기여했습니다.
또한 건설업의 호황은 고용 창출을 통해 낮은 실업률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통한 민간 가계의 부의 증가는 스페인 경제에 대한 과도한 낙관주의를 만들어 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규모 이민은 점점 노령화되는 인구 구조 변화에 대비한 사회복지제도들에 대한 개혁을 연기하는데 기여했습니다.
a. 중앙정부, 자치정부, 지방정부
스페인은 과거 장기간 동안 중앙정부, 자치정부, 지방정부 모두가 점점 관대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평가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의 유권자들은 이런 점점 느슨해지는 정책들을 경제 호황기의 소득과 부의 수준에 비추어 보아 적절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b. 복지국가 지향
20세기 스페인의 복지는 과거 가족과 카톨릭 교회와 같은 자선 단체의 역할을 점점 더 정부가 책임지는 것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정치인들은 자주 국가의 역할을 부의 재분배를 통한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는 기회의 평등과 경쟁 보다는 결과적 평등을 목표로 하는 공공 정책을 실시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c. 지속 불가능한 국가 연금체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많은 스페인 국민들은 그들의 세대간 소득 재분배에 의존하는 국가 연금체계를 조속한 시일내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지속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국가 재정 집행의 역학 관계
경제 호황기에 스페인은 정부의 분권화를 가속화시켜 진행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스페인의 정부는 중앙정부(Estado 또는 Administracion Central), 자치정부(Comunidad Autonoma), 지방정부(Ayuntamiento)라는 세개의 층위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뒤 2개의 지방 정부는 정부 지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또한 지역과 관련된 수 많은 공공 사업을 집행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한된 재정 자치권
그러나 자치정부 및 지방정부가 직접 부과 가능한 세목은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중앙정부가 거둔 수입을 분배받는 형식으로 운용되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은 중앙정부 입장에서 볼때는 지출이 발생되는 곳입니다. 즉, 중앙정부는 지방 정부에 대한 예산 집행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제공되는 공공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고,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하며, 이를 통해 의회 선거에서 충분한 정치적 지지를 받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정치 게임 – 그 결과는 확대 일변도의 재정정책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간 정치적 게임의 결과는 대개 정부 지출의 증가를 야기하는 쪽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즉, 정부 지출에서 자치정부 및 지방정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으며, 이러한 느슨한 재정 운영은 다시 자치정부와 지방정부의 연체규모를 확대시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스페인 은행 시스템의 문제
앞서 말씀 드렸듯이 스페인 주택 버블과 그에 따른 낙관적 경제상황을 즐기고 있던 스페인 민간 부문이 필요로 하던 자금을 성공적으로 공급했던 것이 스페인의 은행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의 은행은 크게 상업은행(bancos)와 저축은행(cajas) 부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저축은행은 대개 그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비록 지배구조는 소유주 대부분이 지방정부·교회 등 비영리 조직이지만, 지역 정치인·노조 간부·가톨릭 성직자 등 소수 이해집단이 공격적인 영업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이 때문에 여신 편중 현상 – 주로 부동산 버블에 편승한 부동산 관련 대출 – 이 발생하고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속 불가능 했던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부동산 관련 대출 중심으로 공격적 영업을 지속해왔던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스페인 국민들 의식의 문제
경제 호황기 동안 많은 중년의 스페인 국민들은 스페인의 유럽 평균을 상회하는 경제 성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득이 지속적으로 증가될 것으로 생각했으며그 결과 점점더 고급스러운 해외 여행, 자동차, 그리고 주택(많은 경우 제2, 제3의)을 빚을 내서라도 구입했으며 한편 특히 주택 및 부동산의 가치 상승을 통해 쉽게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같은 경제 호황기에 경제 전선에 뛰어든 젊은 세대들은 고정기간 고용계약(일종의 비정규직) 형태로 제공되는 고용, 1000유로 수준(혹은 그 이하의)의 월별 급여, 감당할 수 없게 치솟은 주택 가격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이는 일종의 세대간 갈등으로도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스페인 국민들 – 높은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는 정규직 노동자, 산업단위 노동조합, 건설업과 같은 호황의 중심에 있던 기업들, 그리고 이에 편승하고 있었던 은행들 – 은 여전히 그 당시의 상태가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제 및 정책 시스템의 많은 불완전한 요소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지지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페인의 국민들은 장기간 경기 호황기 동안 부동산 버블에 편승한 주택 소유자, 부동산 개발업자, 부패한 지방 정치인들에게 가장 큰 이득을 가져다주는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었던 셈입니다. 다시 말해 재능과 이에 상응하는 노력, 그리고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지속적인 훈련 없이 쉽게 인생을 살아가는 쪽을 스페인 국민들은 선택했고 그 결과가 이번 경제 위기인 셈입니다.
맺음말
또 쓰다보니 너무 길어진것 같은데 잘 보셨나요? 이번에서 스페인에서 발행한 은행 시스템의 위기는 단순한 은행 시스템의 결함으로 인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유야 어찌됬던 스페인 정치인들 그리고 국민들은 약 10여년간 스페인 경제의 경쟁력 향상을 통한 다소 고통스럽지만 건전한 길 보다는 쉽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스페인 국민들은 이제 쉽게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여야만 합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좋은 날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찾아올 스페인의 좋은 날은 자산 가격의 버블, 노력없는 기적, 또는 느슨하고 관대한 정부의 도움에 기대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스페인의 정책 입안자들은 미래 복지국가 목표의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유권자에게 솔직히 말해야 합니다. 또한 각종 제도에 대한 조정과 개혁은 결코 완화되어서는 안됩니다.
한편으로 스페인의 이러한 모습은 아직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는 우리나라의 정치 및 경제 상황에도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페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결국 공짜를 바라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고, 상황이 좋을 때 안주하거나 포퓰리즘적 정책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미리미리 문제점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너무나 교과서적인 그러나 잊어버리기 쉬운 교훈인 것입니다.
[참고문헌]
Miguel Fernandez Ordonez (2011), “The restructuring of the Spanish banking sector and the Royal Decree-Law for the reinforcement of the financial system”, Banco de Espana
Javier Suarez (2010), “The Spanish Crisis: Background and Policy Challenges”, CEMFI and CEPR
Francisco Carballo-Cruz (2011), “Causes and Consequences of the Spanish Economic Crisis: Why the Recovery is Taken so Long?”, PANOECONOMICUS
원문 : Orca의 잡상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