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중반 일본 해군의 입장
1930년대 중반까지 일본 해군은 몇 가지 기술적, 전술적 혁신을 성취했거나 계획 중이었다. – 8인치 포 장비 순양함, 함대형 구축함, 산소어뢰, 은폐된 장거리 포격, 수중탄, 중뢰장함(重雷装艦), 소형 잠수정(갑표적) 등 – 이들은 모두 해군 조약에 의하여 부과된 일본해군 주력함의 수적열세를 만회하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었다. 동시에 해군 참모본부에서는 일본 자신의 기술 및 전술의 발전 뿐 만 아니라 그 당시 알려진 미 해군의 세력을 고려한 해상결전의 시나리오를 끊임없이 연구중 이었다.
이들 연구는 참모본부가 재차 야전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1920년대 전반에 걸쳐 참모본부는 주간 해상 결전을 앞두고 벌어질 야간 작전은 구축함 선도 경순양함 및 구축함들로 이루어진 수뢰전대의 영역으로 간주했다. 이들의 임무는 미국의 전열을 불구로 만들어 일본의 전함 및 순양전함에 의한 최후의 일격에 취약한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었다.
전투강령 4차 개정안(案)은 일본의 주력함 들에게 야간 전투임무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 주력 부대의 위치를 최후의 순간까지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력함대의 함정들의 크기가 야간기동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30년대 까지 야간작전은 단지 해상결전의 전주곡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몇가지 상황의 변화로 인하여 일본 해군 참모본부는 야간작전을 새롭게 강조하게 되었다.
첫번째는 미국 해군 중순양함 세력의 증가였다. 특히 강력한 6척의 노샘프턴급 중순양함의 취역은 일본 함대가 분쇄할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던 미국의 원형진을 강화시켰다. 그렇지만 다른 변화들은 일본해군이 야간에 적함대를 발견할 수 있는능력을 강화시켜준 우수한 광학장비의 개발이었다.
일본은 자신들의 잠수함 개발과 병행하여 광학장비의 개발에 큰 진전을 이루어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일 해군은 전적으로 서구 국가에서 수입된 광학장비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러나 전후, 일본 해군의 광학장비의 설계 및 제조에 대한 짧은 개발 사업 이후에 일본의 민간회사들은 일 해군이 필요로하는 모든 것들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1920~30년대 일본 광학공업社 (現 니콘社) 는 측거의, 쌍안경, 잠망경, 조준경 등과 같은 일련의 광학장비들을 제조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세계최고 수준이었다.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우수한 고배율 및 집광(集光) 능력을 지니고있는 쌍안경들이었다. 그 중에는 렌즈 직경이 최고 21cm에 달하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널리쓰인 것은 12cm 직경의 렌즈를 가진 88식 1형 쌍안경 이었고 이는 야간 시인능력을 강화시키는 효율적인 장비로 여겨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해군은 그들의 광학장비가 다른 해군들의 장비보다 우월하다고 믿게되었다.
야간 조명을 위한 새로운 장비들도 야간 피아 식별능력을 개선시켰다. 1차 세계대전 까지 일 해군은 연속적인 조명을 제공하여 주지만 자신들 함정의 위치를 노출시킬 우려가 있는 서치라이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1921년 적함대의 상공에서 조명을 제공하는 조명탄의 실험이 실시되었다.
최초의 조명탄은 상당한 조명범위를 제공했지만 그 시간은 매우 짧았다. 이 문제는 1935년 낙하산을 조명탄에 부착함으로서 근본적으로 해결되었으며, 이렇게 개량된 조명탄은 기동중에 매우 효과적임이 입증되었다. 1930년대 말에 이르러 일본 해군은 타국 해군에 비하여 더욱 강력하고 효율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야간 전투장비를 지니게되었다. 그러나 하나의 중요한 예외가 있었으니 그것은 레이다였다.
수뢰전대의 편성과 개량
따라서 일본 해군이 자신의 주력함 세력들 중 일부를 야간 작전에 전개시킬 것을 고려하기 시작한 이유는 함대 야전의 필요와 야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둘 다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순양함과 구축함은 여전히 야전을 위한 주력 함정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강력한 야전부대에 편입되게 된다. 미해군의 전열 중심으로 뚫고 들어가기 위한 강력한 화력을 지원하기 위하여 각 수뢰전대에 적어도 한개의 중순양함 전대가 추가되었다. 이 전투집단은 야전군을 구성했으며 전시에는 4개의 야전군이 편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야전을 중시하게된 일 해군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야전집단과 동행이 가능하며 그들을 대구경 화포로 지원해 줄 주력함을 야전세력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해군 조약에 의하여 이러한 목적을 위한 신조 주력함의 건조가 제약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공고(金剛)급 전함을 주목했다. 이들은 1927~32년의 대개장을 통하여 장갑 갑판의 강화, 주포의 앙각 증대, 어뢰 방어용 벌지(bulge) 추가, 그리고 수상기 운용 설비 등의 개량이 이루어졌다.
다시 7년(1933~40)의 기간에 걸쳐 이 클래스 중 3척 공고(金剛), 하루나(榛名), 그리고 키리시마(霧島)는 고속전함으로 재개장 되었다. 새로운 중유 연소식 칸폰(艦本) 보일러와 터빈은 이들의 출력을 2배 이상으로 강화시켰다. 여기에 더불어 선미 부분의 연장 및 형태 변경으로 이들의 속도는 26노트에서 30.5노트로 증가되었다. 전에 제2함대의 주력이었던 이들은 이제 제3전대 소속이 되었으며 최근에 건조되었거나 건조중인 중순양함 들은 거의 모두가 야간 작전의 책임을 맡은 제2함대에 배속되었다.
여하튼 1936년에 들어서면 일본 해군은 야간 작전을 결전을 위한 대규모 도입부로 간주하게 된다. 이 해에 우리는 고속전함의 지원을 받는 새롭고 더욱 의강력한 일본의 야전 부대를 볼 수 있다. 이들의 주임무는 미 해군의 원형진 외곽을 돌파하여 수뢰전대가 미국의 전함 전열에 어뢰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1936년에 걸쳐 이러한 야간 전투의 대략적인 시나리오는 연합함대 연례 기동훈련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재개장을 완료한 하루나(榛名)와 키리시마(霧島)도 참가하였다.
1930년대 중반 야간 전투 교리를 설정함에 있어 일 해군 참모본부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다. 이 중 하나의 시나리오를 소개하는 것은 독자 여러분들이 야전 계획과 각 단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야전 시나리오 구상
시작단계에 있어서 3가지 전제조건이 미해군의 주력함대에 맞서는 일본 야전군의 공격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첫째, 미 함대는 일몰전까지 위치가 파악되어야 한다.
둘째, 일본 야전군은 미 함대로 부터 60km (33 마일) 이내에 위치하고 있어야 한다. (비록 미 함대 가 회피운동을 해도 일본 야전군은 자정까지 이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일본 야전부대는 미 함대의 진로와 속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지속적인 접촉을 유지한다.
미 함대를 발견하면 일 야전군 지휘관은 즉시 모든 부대에 대하여 사전에 결정된 포위망 <그림1> 을 형성하도록 명령한다. 단, 이 과정에서 미 함대에 발견되는 것은 최대한 회피한다. 야전군 지휘관이 모든 부대가 자기 위치에 있는 것을 확인하면 그는 중뢰장함(重雷装艦)과 제4(순양함)전대(CruDiv 4)를 제외한 전 중순양함 전대에 은폐된 장거리 어뢰 공격을 명령한다. 촘촘히 짜여진 130개의 어뢰는 미 함대를 향하여 질주하게 될 것이다.
어뢰 발사 명령을 수신한 후 일 지휘관은 “거리를 좁히고 공격준비” 라는 명령을 내린다. 미 함대가 현재 진행방향에서 반대로 진로를 변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후방에 위치한 제4(순양함)전대(CruDiv 4)는 2개로 분리되어 미 함대 후방의 우측과 좌측 사선 방향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서치라이트와 조명탄을 사용하여 미 함대를 지속적으로 조명한다.
“전군돌격” 명령이 떨어지면 야전부대는 수상기의 정찰, 미 함대 상공의 낙하산 조명탄, 그리고 미 함대 진행 방향의 물위에 떠있는 조명탄 등에 유도되어 전력을 모아 미 함대를 강습한다. 전군돌격 명령 이후 수 분 이내, 처음에 발사되었던 어뢰들은 두 방향으로 부터 미 주력함대 전열로 수렴되어 선체에 부딪혀 폭발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뢰의 명중률을 15%로 가정하여 일 해군 참모들은 약 20여개의 어뢰가 명중되어 적어도 미 함선 10여 척이 손상되거나 대파될 것을 자신했다.
이제 고속전함과 더불어 후방에 위치한 제4(순양함)전대를 포함한 일본의 중순양함들은 미해군의 원형진 내부로 질주하여 격돌, 그들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 수뢰전대의 어뢰공격을 위한 길을 열기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야간 전투의 가장 마지막 단계이자 절정의 순간은 모든 구축전대의 세력이 일치가 되어 실행되는 수뢰전대의 육박공격이다.
이는 경순양함에 선도되는 구축함들에 의하여 “육박필중”의 신념으로 실행될 것이다. 구축전대들은 거리 2,000 미터를 조준과 발사를 위한 표준으로 삼고있었다. 최초의 공격이후 각 전대의 선도함들은 어뢰 재장진중인 구축함들의 전열을 재정비하고 다시 구축함들은 모든 어뢰를 소진할 때까지 연속적인 어뢰공격을 가할 것이다.
최초 포위진의 형성부터 수뢰전대의 공격까지 야간 전투 전 단계는 3시간에 걸쳐 실행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해군참모 본부는 이러한 공격 순서와 시간 들이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극적으로 바뀔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물론 공격은 야전군 지휘관의 확고한 통제하에 이루어 지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제반 조건이 변화할 경우 각 휘하 전대 들은 전투상황이 제공하는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도록 기대되었다.
기묘함과 결점
서구 해전 전술을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이 작전의 두 가지 측면은 매우 충격적이다. 첫째는 미국 주력함대를 견제하기 위하여 계획된 조밀하게 짜여진 최초의 장거리 어뢰공격의 복잡성이다. 다른 하나는 작전개념상 중순양함들과 심지어 고속전함들도 구축 전대들의 성공적인 공격을 위한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전통적으로 구축함을 소모가능한 함종으로 보고 주력함을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보호한다는 서구의 전통적인 전술교리와는 정반대였다.
일본의 주력 전함 전대는 이 야간공격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1936년 참모 본부는 아주 예외적인 사항 – 야전 함대의 공격이 매우 성공적이며 미국 함대의 잔존세력을 파괴하기 위하여 주력 전함군의 협조가 필요할경우 – 을 제외하고는 주력 전함군은 야간공격에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예외적인 경우에 일본의 야전함대는 지속적인 공격을 실시하며 주력 전함군은 주간 결전까지 기다리는게 아니라 미 해군의 잔존 세력을 전멸시키기 위한 공격에 가담할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주력함대는 야간의 전장에서 떨어져 기동하면서 여명의 공격을 준비할 것이다. 만약 필요하다면 야전부대의 일부 전대들은 주력함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합류하게된다. 만약 총사령관이 미 함대와 여명에 교전할 것을 결정하면 야전부대는 일출 3시간 전까지 야간의 전장에서 점진적으로 이탈한다. 그리하여 일출 한시간 전까지 이들은 주력부대와 합류하여 주간 결전을 위한 진형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일본 해군 참모본부의 작전 계획을 6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 되돌아 볼 때 우리는 두 가지 명백한 결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 계획의 복잡성과 그들의 가상적(미해군)의 배치에 대한 낙관적인 가정이 그것이다. 비록 전간기 다른 국가의 해군들도 정교한 전술 계획을 준비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일본 해군의 그것은 복잡성 측면에서 타 국가들의 계획을 능가했다. 일본의 계획 입안자들은 그들의 함대가 일련의 복잡한 작전을 완수하기 위한 정확한 시간계획과 함대 운동 조정의 희망사항들에 탐닉했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참모 본부의 전술가들은 일본 함대가 자신들의 전술을 전개하는 동안 미 함대는 수동적으로 그들이 예상한대로 움직인다는 너무나 순진한 가정에 의존하고 있었다. 사실상 미 해군의 전열은 일본이 파 놓은 함정에 쉽게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고 미국인들의 조심성은 일본 함대가 사전에 정확한 위치에 배치되는 것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예를 들어 1930년대 미 해군의 작전 계획은 피켓함들을 함대 중심에서 75~100마일 까지 떨어진 동심원상에 배치하도록 상정하고 있었다. [ 그림2 ]
오직 소수의 일본 장교들 만이 그들의 전략 및 전술 입안과정의 자기기만적 형식주의를 비난했다. 전후 호리 테이키치 제독은 미국을 상대로하는 도상 연습과 계획은 언제나 미 함대가 미리 결정된 가정에 따라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일부 일본의 작전입안자들은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제쳐둔 체 대규모 해상 결전의 성공에 대한 확률에 대하여 거의 신비주의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영광스러웠던 과거처럼 다시 한 번 천운(天運)이 승리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여줄 것이라고 가정했는지도 모른다.[2]
원문 : Orca의 잡상노트
이 글은 Kaigun : Strategy, Tactics, and Technology in the Imperial Japanese Navy, 273~280 p, 288 p 를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