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쓴 포스팅 ‘거시 경제정책의 흥미진진한 실험대 아베노믹스‘에서 통화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주된 경로가 경제 주체들의 ‘기대’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한 미 연준 버냉키의장의 발언에서 보듯이 중앙은행이 보내는 ‘신호’와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크리스티나 로머가 지난 4월 12일에 전미경제연구소(NBER) 거시경제 연례 컨퍼런스에서 했던 강연이 꽤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흥미있으신 분들은 이어지는 내용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Ⅰ. 서론
지난 주, 우리는 1930년대 이후 가장 흥미진진한 통화정책 결정의 전개과정을 목격했다. 일본의 중앙은행이 진심으로 레짐의 변화(regime shift)를 시도한 것이다. 일본 은행은 애매모호한 약속과 립서비스를 넘어선 극적인 행동을 취했으며, 디플레이션을 끝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왜 레짐의 변화가 중요한지에 대한 이론적 근거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은 잘 이해하고 있다. 지속적인 디플레이션과 무기력한 성장은 일본이 수요의 부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고통받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일본의 정책 금리는 이미 제로 금리하한(Zero Lower Base)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더 위험하고 장기인 자산의 수익률도 또한 매우 낮다는 것은 대규모 자산 매입과 같은 비전통적 정책도 명목 금리를 더 낮추는데 별반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보유한 주된 수단은 경제 주체들의 ‘기대’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Paul Krugman, Gauti Eggertson, Michael Woodford 등이 논의한 바와 같이 만약 비전통적인 통화 정책이 기대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킬 수 있다면, 명목 금리가 더이상 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실질금리(명목금리 – 인플레이션율)를 하락시킬 수 있다. 연이어 이는 금리에 민감한 지출을 자극하여 총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다.
아마도 더욱 중요한 점은, Ivan Werning의 최근 논문에서 논의되었듯이, 만약 과감한 통화정책이 실질 성장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낸다면, 이는 소비자의 지출과 투자에 더욱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곧 직업을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소비자는 그렇지 못한 자보다 차량을 구입하거나 자신의 부엌을 리모델링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기업은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거나 새로운 기계를 구입할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가 일본에서 목격하고 있는 레짐의 변화는 인플레이션과 성장에 대한 기대 모두를 상당한 정도로 변화시키는데 실제로 성공할지도 모르는 과감한 행동이다. 그 결과로 이는 견조한 경기회복과 동시에 디플레이션을 끝내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도있다.
나의 이러한 결론에 대한 지지는 이론 보다는 경제사 쪽에 더 기반하고 있다. 지난 세기, 주요 국가 안전자산의 단기 금리가 제로 금리하한에 도달한 경우는 세 번이 있었다. 1930년대의 미국, 1990년대~2000년대의 일본, 2008년 이후 많은 선진국들의 사례가 그것이다. 이중, 단 하나의 진정한 성공사례는 1930년대의 미국이다. 일본과 최근의 미국 및 유럽은 통화정책을 사용하여 제로 금리하한에서 탈출, 경기 회복을 위해 경제의 엔진을 재시동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 우리는 해냈다.
여러 정책들의 조합을 통해 – 그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통화정책 –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경제의 방향을 즉시 전환시킬 수 있었다. 루즈벨트 행정부의 첫 4개월 동안 산업생산은 57% 상승했다. 그리고 1933-37년 실질 GDP는 매년 평균 10%로 지속 성장했다.
루즈벨트 정책의 근본적인 특징은 바로 레짐의 변화였다. 이는 1990년 간행되었을 때 내가 이해하는 데 실패했던 Peter Termin과 Barry Wigmore의 오래 전 논문의 결론이었다. 지금 나는 이 논문이 올바를 뿐 아니라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루즈벨트의 정책은 이전의 것들과 확연히 구분될 수 있을 정도로 과감해서 사람들이 그 차이를 알아차릴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저녁 강연에서 나는 경제사학자들과 거시경제학자들이 축적해 온, 레짐의 변화가 경제 대공황으로 부터의 회복에 정말로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증거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그 다음에는 그 증거가 오늘날의 통화 정책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논의할 것이다. 이는 2009년 이후 미 연준의 조치가 경기회복을 자극하는데 그다지 효과가 없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확히 미 연준이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은 레짐의 변화이다. 나는 또한 왜 새로운 일본의 통화정책이 과거와의 정말 중요한 단절이며 따라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다.
Ⅱ. 루즈벨트의 레짐 변화
루즈벨트는 1933년 3월 4일 취임했다. 당시 미국은 4년 째에 접어든 절망적인 경제 공황기였다. 새 대통령은 과연 무엇을 했던 것일까?
레짐 변화의 성격
Termin과 Wigmore는 루즈벨트의 가장 극적이고 결정적인 조치는 금본위제를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1800년대 후반부터 일종의 금본위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1930년대 초반 동안, 금본위제는 미국이 취할 수 있는 통화 및 재정정책을 제한하는 것으로 광범위하게 인식되었다. 따라서 금 본위제의 포기는 루즈벨트가 국내 경제문제에 집중할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다른 정책을 사용할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였다.
Termin과 Wigmore의 논문에서 인용한 그림 1.은 1930년대 초반 달러/파운드 환율과 면화의 미국내 가격을 보여준다. 달러화는 영국이 1931년 9월 자국 화폐를 평가절하 함에 따라 영국 파운드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상되었다. 기술적으로, 미국이 1933년 4월에 실시한 것은 달러화의 금태환을 중지하고 달러화의 가치가 변동하도록 한 것이다. 이 조치로 달러화는 대폭 평가절하 되었다. 그리고 이는 교역상품 – 특히 농업상품 -의 가격에 즉각적이고 커다란 충격을 주었음을 볼 수 있다. 면화의 가격은 불과 몇개월 안에 거의 90% 상승했다.
비록 달러의 평가절하가 레짐 변화의 가장 극적인 신호이기는 하지만, 이는 공격적인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뒷받침 되었다. 그림 2.는 대공황기 통화량 M1의 양상을 보여준다. Milton Friedman과 Anna Schwartz가 강조했던 1930년대 초반 통화공급의 급격한 감소가 확연히 보인다. 그러나 레짐 변화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루즈벨트 집권기 통화량의 막대한 증가이다. 1933년의 선은 변화시점을 볼 수 있도록 추가한 것이다.
오래 전에 쓴 논문에서 나는 이 통화팽창의 원천을 묘사했다. 그것은 마침내 자신들의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게된 미 연준이 아니었다. 이 때는 근현대 미국 역사에서 행정부에 의한 통화팽창이 실시된 유일한 시기였다. 1934년 1월, 미국은 금본위제로 복귀하며 금 가격을 루즈벨트가 취임하던 때의 거의 두 배로 설정했다. 이러한 금의 재평가는 미국으로 금의 대량 유입을 야기했으며 미 재무부는 이 유입을 용인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나서 미국에는 행운이고 유럽에는 불행인 우연의 일치 – 유럽의 누적되는 정치적 긴장 – 으로 인해 금은 계속해서 대량으로 미국에 유입되었다. 그림 3.은 이러한 금의 유입을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미 재무부는 계속해서 유입된 금을 화폐화(monetize) 시켰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통화공급의 극적인 증가였다. 이는 레짐 변화의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진정한 레짐의 변화는 단순한 몇 마디 말의 변화가 아닌 바로 행동인 것이다. 루즈벨트는 평가절하를 급격한 통화팽창으로 뒷받침했다.
많은 사람들이 강조했듯이, 루즈벨트는 또한 재정확대로도 정책을 변화시켰다. 그림 4.는 1930년대 대략적인 high-employment surplus를 보여준다. 비록 재정확대의 규모는 GDP의 1.5% 정도로 그다지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934년 high-employment surplus가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루즈벨트는 레짐의 변화를 일관되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지원했다. 그는 자주 가격과 임금수준이 대공황 이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예를 들어 1933년 5월의 두 번째 노변담화(fireside chat)에서 그는 평가절화와 리플레이션(reflation)에 주제를 집중했다.
“행정부는 상품 가격을 돈을 빌린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그들이 빌렸을 때와 같은 종류의 돈으로 상환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상하기 위한 절대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이는 행정부에게 필요하다면 신용확대를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이유이기도 하다.”
Robert Hetzel이 최근 출간한 책에서 묘사된 멋진 옛날의 영상은 이 아이디어가 보통의 미국인들에게까지 전파되었음을 시사한다. 이 영상은 1933년 6월에 제작되어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 상영되었다. 이 영상은 루즈벨트의 인플레이션 정책의 장점을 칭송하고, 이 정책들이 어떻게 소비자와 기업의 지출을 자극할 지 명확하게 설명했다. 이는 루즈벨트가 착수한 변화들이 주목을 끌기에 충분히 과감하고 일관성 있었음을 시사한다.
레짐 변화 영향의 증거
1933년에 레짐의 변화가 있었다고 믿을만한 증거는 매우 강하다. 그 변화가 경제에 유익한 영향을 주었다는 증거는 어떠할까?
레짐의 변화가 중요하다는걸 보여주는 하나의 사실은 경제가 불황으로부터 전환되는 속도 그 자체이다. 그림 5.는 Termin과 Wigmore로부터 인용한 산업생산 그래프이다. 저점은 1933년 3월이다. 산업생산은 4월과 5월에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언급했듯이 전반적인 산업생산은 1933년 3월과 7월사이 57% 상승했다. 다른 산업생산의 선행지표인 철강생산은 더욱 빠르게 증가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전환을 더욱 주목할만 이유는 루즈벨트가 취임할 때 미국 경제는 끔찍한 금융 패닉의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혼란의 마지막 파도는 루즈벨트가 취임 2일 후에 선언한 전국 은행들에 대한 영업정지 조치로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생산이 1933년 봄에 급등했다는 것인 일반적인 회복력 이상의 그 무엇이 작용했다는 걸 시사한다.
아마도 더욱 설득력 있는 것은 기대에 대한 지표가 루즈벨트의 정책과 대략적으로 일치하여 전환했다는 사실이다. 다우 존스 주가지수의 월평균 그래프인 그림 6.은 1933년 3월에 시작된 주식 가격의 완전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4년간 거의 계속해서 하락한 다음, 주식 가격은 1933년 3월과 6월 사이 70% 급상승했다. (사실 상승율의 일부는 기저효과로 인한 것이다.)
왜 이 주식가격의 턴 어라운드가 의미심장한 것인지에 대한 한 가지 이유는 이것이 실질 성장에 대한 기대가 전환했음을 표시해주는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전에 묘사했듯이 성장 기대에 대한 이러한 변화는 경제 학자들이 보통 강조해 온 기대 인플레이션의 변화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기대 인플레이션 또한 전환되었다. Jamee Hamilton은 상품 선물가격으로부터 추정된 시계열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수집했다. 그의 시계열 데이터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1930년대 초반의 기대와 과연 1930년과 1931년의 디플레이션이 예측되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림 7.은 Hamilton의 기대 인플레이션 시계열 데이터를 보여준다.
1933년에는 기대 인플레이션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이들 일년을 3등분한 데이터에 따르면 1933년 중반에는 여전히 디플레이션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당해 년도 후반부에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강하게 반전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엄청났다. 1933년 초반의 기대 인플레이션 -7%에서 당해년도 후반에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6%로 전환된 것이다.
이 변화가 얼마나 예외적인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1933년 경제 산출량은 대공황 이전 추세의 50% 미만이었으며, 실업률은 25%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왜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기대하게 되었을까?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루즈벨트의 정책이 대중의 심리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최근의 논문에서 David Romer와 나는 당시 비지니스 언론의 눈을 통해 1930년과 1931년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통화 수축이 1930년대 초반의 디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통화팽창이 1933년 이후 반대의 충격을 주었다는 주장을 설득력있게 만든다. 매우 도움이 되는 것은 1933년 봄의 기대 인플레이션의 변화에 대한 서술의 증거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는 실증적 추정을 공고히 하거나 부인하는데 도움을 준다. 더욱 중요한 점은 기대가 왜 변화했고 변화가 언제 일어났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루즈벨트의 레짐 변화의 중요성에 대한 더욱 상세한 증거는 여러 생산물 증가의 조합을 통해 제공된다. 그림 8.은 내구재와 비내구재의 산업생산을 보여준다. 이는 레짐의 변화가 기대 인플레이션과 실질금리 하락에 영향을 준 시점과 일치한다.
Termin과 Wigmore는 물가에 대한 기대가 특히 농민과 그들의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지적한다. 만약 달러화 평가절하와 통화팽창이 농업 생산물 가격에 대한 기대를 상승시켰다면, 이는 농업의 기대 소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농업 분야의 지출이 빠르고 그리고 극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림 9.는 1933년 4월 부터 트럭 판매가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버클리대 대학원생 Joshua Hausman은 그의 논문에서 1933년의 경기회복을 다루었다. 그의 새로운 발견 중의 하나는 1933년 봄의 주(州)별 자동차 판매의 변화는 주(州)별 농업관련 인구 비중과 매우 강한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Ⅲ. 현 정책에 대한 시사점
오늘날의 정책에 대한 시사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경제 대공황의 증거는 왜 지난 수년간의 통화정책이 효과적이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더욱 중요한 점은 대공황의 교훈은 현재의 제로 금리 하한(Zero Lower Bound)에서 고통받고 있는 경제를 구하기 위한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책
최근 미국의 통화정책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며 논의를 시작해보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미 연준이 금융 위기를 다루었던 방식과 비전통적 수단을 통한 최초의 노력이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고 믿고 있다. 2008년 가을 얼어붙은 금융시장을 해동시키기 위한 비범한 수단들은 경제가 붕괴되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게 했다.
그리고 1조 달러 이상의 공기업 부채와 주택 담보부 채권 매입을 포함한 첫번째 양적 완화는 과감하면서도 효과적인 것이었다. 이는 주택 담보대출 금리를 하락시키는데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경제 주체들의 기대를 개선시켰고 금융시장을 더욱 안정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2010년 초반부터 작년 9월까지 미 연준은 상당히 주의 깊은 행보를 취했다. 비록 미국의 통화정책 담당자들이 동 기간에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기는 했지만, 그 수단들은 기대에 대한 효과를 최소화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 2차 양적완화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의 규모와 지속기간은 모두 미리 명시되었으며, 따라서 그 효과는 본질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추가적인 움직임은 악화되고 있는 상황과 우울한 전망에 대한 직설적인 자료들을 통해 정당화되었다. 게다가 2010년 11월 3일 제2차 양적완화를 발표한 미 연준 보도자료는 상호 충돌하는 메세지를 담고 있었다.
“9월 개최된 연방 공개시장 조작 위원회 이후 입수된 정보는 생산과 고용회복의 속도가 계속해서 느릴 것임을 확인해주었다…..비록 올해 초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장비 및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업지출은 증가했다. 비록 위원회는 물가가 안정된 상태에서 자원 활용정도가 높은 수준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목표 수준으로의 진전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느리다.”
이러한 표현은 FOMC 위원들 사이의 합의를 도출하는데는 도움이 될 지 모르나, 실질 성장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상승시키는 데는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대의 상승 없이는 각종 정책들은 제한된 영향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지난 9월, 미 연준은 어조와 정책실행을 상당한 정도로 변화시켰다. 제3차 양적완화가 실시되었으며 미 연준은 의도적으로 양적완화의 종료일자와 총 규모를 밝히지 않았다. 이러한 조치를 정당화시켰던 우울한 표현은 더욱 낙관적인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버냉키 의장은 경기 회복을 지원하는 통화정책은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해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12월, 양적완화를 가이드할 조건이 전달되었다. 완화적 통화정책은 실업률이 6.5%에 도달하거나 인플레이션이 2.5%로 상승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발표는 더욱 일치단결된 기대 관리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조치들도 충분치 않았다. 가장 핵심적인 사실은 미 연준은 레짐의 변화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통화정책은 경기 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다. E. Cary Brown의 경제대공황의 정책에 대한 유명한 결론을 다시 인용해보자.
“통화정책은 최근 수 년간 강력한 회복의 도구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통화정책이 작동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큰 충격을 주기에 필요한 정도의 규모와 형식으로 시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책
이제 내가 오늘밤의 강연을 시작한 곳 – 일본에 대한 논의 – 으로 돌아가 보자. 일본이 20여년이 넘게 저성장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은 모두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림 10.이 보여주듯이 지난 15년간 대부분 일본의 물가는 하락했다. 지금 이곳은 1990년 이후 일본 은행의 정책을 재방송하는 장소는 아니다. 그러나, 큰 맥락은 이 기간 중 대부분의 일본 통화정책 담당자들은 디플레이션을 끝낼 수 있는 그들의 능력에 대해 비관적이었으며, 그러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매우 다르게 보인다. 12월 새행정부는 다수의 지지를 얻으며 선출되었다. 그리고 수요를 되살리기 위한 강령을 채택했다. 일본의 문제가 전적으로 구조적인 것이라는 견해를 거부한 것이다.
신정부가 옹호하는 비통화적 정책중에는 재정 확장, 구조조정, 엔화 평가절하가 있다. 명백하게 통화정책은 역시 환율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애초에 이 노력은 단순히 엔화가치를 하락시키겠다고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엔화의 가치는 심지어 선거전에 그 결과를 기대라도 하듯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통화정책 측면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 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를 1%에서 2%로 상향하도록 압력을 가했으며, 곧 목표는 상향되었다. 아마도 더욱 중요한 점은 아베 총리는 전 일본 은행 총재가 조기에 사임하도록 권유했으며, 그 결과 아베 총리는 동시에 신임 일본 은행 총재 및 두 명의 부총재를 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
신임 일본 은행 구로다 총재는 빠르게 통화팽창을 집행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발표는 어느 누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확장적인 것이었다. 일본 은행은 정책의 중심을 금리에서 통화량으로 옮겼고, 2014년 12월까지 통화량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이 변화는 루즈벨트의 금본위제 포기보다는 덜 극적일지 모르나 목표에 도달하고 있다.
일본 은행은 미 연준이 실행했던 것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더 큰 매달 $770억 규모의 자산 매입을 공언했다. 이는 현재 미 연준 정도의 자산매입 규모를 미국 경제 1/3 크기의 국가에서 실시하는 것이다.
아마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은행의 행동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이다. 일은의 결정은 거의 대부분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했고, 광범위하게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구로다 총재가 강조했듯이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을 끝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초기의 지표들은 일본의 정책이 진정한 레짐의 변화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림 11.은 12월 이후 엔화 가치가 약 20% 하락했음을 보여준다. 지난 주 통화정책에 대한 발표 직후에는 5% 하락했다. 니케이 주가지수는 11월 이후 30% 이상 가파르게 상승하여 실질 성장에 대한 기대에 영향을 주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최근 일본 은행에 의해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물가 상승을 기대하는 가계 비중은 지난 12월 53%에서 3월 74%로 상승했다. 더 직접적인 기대 인플레이션에 대한 데이터는 명목 채권금리와 실질 채권금리의 관계에서 유도할 수 있다. 그림 12.는 이 방식으로 일본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선거이후 대략 1% 정도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지금, 이 레짐의 변화를 망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 일본 은행 내부에서 의견 충돌이 발생하여 확장적 통화정책이 단기간에 끝날 수 있다. 또한 정책의 효과가 매우 느리게 나타날 수도 있다. 10년 이상의 디플레이션을 겪은 뒤 시행되는 정책은 불가피하게 쉽게 변하지 않는 기대와 직면하게 마련이다. 내가 가진 또 하나의 우려는 만약 상황이 빠르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통화팽창과 다른 친성장 정책을 선호했던 정치적 합의가 증발되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정책 입안자들이 새로운 레짐을 고수한다면, 일본 경제의 실적이 급반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다. 이것이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부터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교훈이다.
Ⅳ. 결론
정책 입안자와 경제학자들은 중앙 은행장의 핵심적은 캐릭터는 겸손함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이 겸허함은 우리가 통화정책과 이것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겸허함은 두 가지 매우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
종종 겸손함은 마비 상태를 야기한다. 정책 입안자가 정책의 효과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거나, 막대한 비용이 있을거라고 두려워한다면, 아무 것도 하지않거나 오직 최소한의 조치만을 취하고자 할것이다. 정책이 효과가 있을 지 없을 지 모른다면 왜 위험을 감수해야 하겠는가?
최근의 논문에서 David Romer와 나는 이러한 관점이 매우 파멸적임을 논의했다. 우리는 미 연준의 역사에서 가장 큰 실수 두 개로 간주되는 것을 예시로 들었다. 그것은 대공황 초기 은행의 패닉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과 1970년대 치솟는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둘 다 모두 불필요한 겸손함의 결과이다.
정책이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거나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공포는 정책 담당자들이 가장 신중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양 시기 모두 정책이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는데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책 입안자들이 가질 수 있는 더욱 긍정적인 방향의 또 하나의 겸허함이 있다.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에 대한 겸허함은 정책 담당자들이 때때로 어떤 것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해준다. 이는 그들이 의견을 수정하고 새로운 증거를 받아들일 수 있게한다. 긍정적인 겸허함은 실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가정하는 대신에 정책 입안자들이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입수 가능한 최선의 증거에 기반하여 적극적인 정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일본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겸허함으로 보인다. 왜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였는지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재탕하는 대신에 일본은 거대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입수가능한 최선의 증거에 기반하고 있으나, 이 증거는 매우 다른 장소와 시간대에서 관찰된 매우 불완전한 것(미국 경제 대공황을 의미)이기도 하다.
통화정책 레짐의 변화를 통한 일본의 실험이 작동할 지 안할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이 실험을 시도할 담력이 있는 덕분에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참고 문헌]
Christina Romer (2013), “It Takes a Regime Shift: Recent Development in Japanese Monetary Policy Through the Lens of the Great Depression“,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원문 : Orca의 잡상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