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터는 인터넷이다. 더 정확하게는 공공기관 웹사이트. 정보공개운동을 하는 우리는 작업 현장을 돌듯이 공공기관 웹사이트를 돌며 행정기관과 의회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살펴본다.
오늘은 서울정보소통광장엘 들어가 본다. 어떤 위원회가 무슨 회의를 했는지 훑어보는데, 익숙지 않은 위원회의 회의자료가 눈에 띈다. ‘2021년 제1차 시민행복위원회.’ 2020년에 활동을 시작한 이 위원회는 얼마나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 곳이길래 개요와 안건을 제외하고는 회의에 누가 참석했는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전부 비공개다.
도대체 무슨 위원회인지 궁금해 조례를 찾아본다. 위원회 운영의 근거가 되는 ‘서울특별시 시민 행복 증진 조례’ 어디에도 회의나 위원 명단을 비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정보소통광장 웹사이트도 찾아본다. 아니! 문서에서는 비공개한 위원 명단이 웹사이트에는 버젓이 올라와 있다.
대체 웹사이트에 다 공개되어 있는 정보를 문서에서는 왜 굳이 비공개한 걸까. 이렇게라도 공개해줬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걸까. 궁금했던 정보를 보긴 했지만 후퇴하는 정책과 폐쇄적인 행정 관료주의의 단면을 함께 봐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누드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적극적인 정보공개 정책을 펼쳤다.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서울정보소통광장’이라는 정보공개를 위한 별도의 사이트를 만들었고, 결재문서와 회의록 등 주요 정보를 선도적으로 공개했다. 이전에는 비공개가 일쑤였던 위원회 관련 정보와 회의록도 공개되기 시작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 서울시는 처음처럼 정보를 잘 공개할까? 적극적으로 공개하거나 잘 공개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냥 공개할 뿐이다.
뒤늦은 정보공개, 안 하느니만 못해
투명한 행정, 책임지는 정책을 위해서는 정보공개가 필수다. 기존 권력 시스템이 독점하던 정보는 공개를 통해 불균형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정보공개는 민주주의의 바탕이다. 공개해야 할 수많은 정보 중에서도 위원회와 회의의 공개는 그 무게가 남다르다. 위원회 구조야말로 행정의 권한과 책임을 시민과 나눈 민주주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거버넌스 사회에서 제공자와 수혜자라는 정부와 시민의 전통적 역할의 경계는 흐려진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해 온 변화이고, 시민들의 참여 요구로 이뤄낸 성과다. 그래서 지금 행정의 많은 영역에서 참여민주주의, 협치 등의 이름으로 시민과 행정이 함께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많은 시민은 특히 차등 없는 정보의 제공이 실질적 거버넌스를 위한 중요한 요소라고 이야기한다. 정보가 제한적으로 제공되는 상태에서는 논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버넌스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시민들 역시 제대로 된 거버넌스를 위해서는 누락 없는 정보의 공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했는지, 어떤 내용으로 협의하고 결정했는지가 투명하게 공개될 때 거버넌스 시스템 자체가 신뢰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공개는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신뢰성, 참여의 충실성을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민의 참여를 위해 정보공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 공개하는 것이다. 나중에 말고 지금, 일이 벌어지는 지금 말이다. 정보는 타이밍이다. 철 지난 유행가 같은 정보는 힘이 약하다. 그래서일까, 정보와 데이터의 활용을 위한 많은 국제원칙에서는 ‘시의적절한 공개’를 정보 개방의 기본 원칙으로 삼기도 한다. 뒤늦은 개방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시민을 파트너로 생각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카메라를 켜고 행정이 지금 무슨 논의를 하는지 생중계해주는 시장을 보고 싶다. 의사결정 과정이 다 끝난 이후에 회의록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결정을 하는지,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시민에게 공개하는 시장 말이다.
회의 자체가 공개되면 회의록에서 발언자의 이름을 공개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무의미한 논쟁거리가 될 뿐이다. 회의 공개는 시민을 거버넌스에 더욱 깊숙하게 초대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시민의 실질적인 참여와 연결된다.
미국에는 ‘회의공개법’이라는 게 있다. 이름 그대로 연방과 각 주 정부의 주요 회의를 공개하도록 정한 법이다. 그동안 음지에서 부패하기 쉬웠던 정책 결정 과정에 햇볕을 비춘다는 의미로 ‘햇볕법’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기도 하다. 공공을 위해 권한을 부여받아 하는 일이라면 그 과정은 당연히 공개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담아 법을 시행하는 것이다.
데이터 혁신으로 코로나를 성공적으로 대응했다고 평가받는 대만 역시 회의 공개가 새로운 정부 운영 패러다임의 중요한 요소였음을 보여준다. 대만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는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은 그가 참석하는 회의를 원칙적으로 공개한다.
해커톤이나 민관이 함께 하는 회의 역시 온라인으로 송출해 원하는 시민들이 함께 보고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한다. 재미있는 점은 공무원들이 그것을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논의와 결정 과정의 공개는 결과적으로 위험을 줄이고 책임을 함께 나누며 신뢰를 높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에도 이번엔 본인의 회의에 카메라를 켜줄 시장이 나타날까 싶어 공약을 살펴보았다. 박영선 후보도, 오세훈 후보도 데이터 공약을 내놓았다. 하지만 데이터로 디지털 산업을 육성하겠다, 취업을 지원하겠다와 같은 성장 논리밖에 보이질 않았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맞는 새로운 민주주의 철학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서울시장에 요구한다. 아니, 부탁한다. 나중 말고 지금. 일이 벌어지는 지금 투명하게 공개해주기를 말이다. 시민에게 신뢰받고 싶다면, 시민을 파트너로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시장의 일을 공개하는 것이어야 한다.
원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 글: 정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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