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튼 TV에선 〈아침마당〉과 비슷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날의 주제는 ‘세 명사의 행복론’. 시청자의 고민에 대해 스님, 목사님, 신부님 세 종교인이 조언해주는 포맷이었다. 주부들의 현실적인 고민에 중년의 종교인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삐딱한 시선으로 방송을 시청했다.
시청자: 매번 취업하면, 결혼하면, 아이가 생기면 행복하겠지 하며 다음을 기약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신부님: 혼자서 보내는 여유로운 일상, 행복한 시간을 휘게라고 해요.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보세요.
목사님: 삶이 연극이라면, 항상 주인공이나 스타가 되려고 하면 불행합니다. 스타가 되려고 하지만 말고 연기를 즐기며 살아보세요.
자기 삶인데, 조연으로 살라고? 세상의 순리대로 아내, 며느리, 엄마의 역할을 살아왔지만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에게 그나마 그 역할이라도 잘 수행하며 살라는 말이 적절할까? 옆자리에 앉은 스님은 신부님의 숙명론에 반박하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어떻게 개척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괜찮아지기로 했다’ 식의 조언이 먹히던 시기는 지났다. 현실은 변하지 않는데 다들 나만 정신 승리를 하라고 한다. 휘게 라이프와 소확행을 즐기면서… 구조는 건들지 않은 채 개인의 인내력만 강요하는 피상적 해결책이다.
직장인들도 이런 쓸모없는 조언을 많이 듣는다. 특히 회식 자리에서. 높은 임원들과 술을 마실 때면 언제나 임원의 아름다운 인생 스토리가 일장 연설로 이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출퇴근을 할 때마다 몇십 년간 창문 밖으로 내 차가 사라질 때까지 아내는 나를 응원해줬어요. 그들 때문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죠.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차라리 폭탄주를 마시고 싶다. 가끔 눈치 없는 척 “저도 그런 아내를 만나고 싶습니다. 전무님!” 하고 소심한 반발을 할 뿐이다.
임원이 말하는 성공은 여성의 무급 가사 노동을 기본으로 하는 가부장제에서나 가능하다. 나 같은 전일제 직장을 다니는 미혼 여성에게 임원의 조언은 쓸모없는 수준을 넘어 분노를 유발한다.
결혼과 가정의 중요성을 말하는 임원은 나에게 가정을 꾸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남편을 배웅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라는 걸까? 그럼 나를 왜 뽑은 거지? 조언을 받는 상대보다 조언하는 본인에게 취해 자가당착에 빠진 경우다.
조언하는 사람은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조언을 받는 사람과 얼마나 사회적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 자신의 상황과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비슷한지, 그럼에도 내가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는지, 그것이 너무 보편적인 말이라 안 하느니만 못하지는 않는지, 이 모든 것을 고려하고 난 후에도 내 말이 쓸모가 있을지.
그런 자기 인식에 실패한 사람들은 후배들이 모두 본인처럼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성공이 유일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서로 겪은 세계, 사회, 경제, 삶이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펴낸 심리 치유서 『당신이 옳다』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충조평판하지 않기’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말라는 거다. 저자는 ‘충조평판’은 도움을 주기 위해 하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가 만만해서 하는 것이며, 개별적 존재로 존중하지 않는 증거라고 말한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의심은 하지 않은 채, 너는 어리석은 자라는 전제가 깔려 있을 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마음을 물어보라”고 제안한다. 계속 물어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공감하게 되며, 공감하게 되면 타인을 개별적 존재로 대할 수 있다.
그러니 조언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모르면 알려고 노력이라도 해라. 지금 주부로 사는 한국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덜어낼 수 없는 이중 노동을 하는 자에게 휘게 실천이 얼마나 맥락 없는 조언인지,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도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는지, 과거에 비해 실업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퇴사를 고민하는 후배들이 바라는 조직문화는 어떤 것인지….
듣는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은 채 조언을 하면 “맞벌이하시는 경우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 미안하시죠. 이럴 땐 방법이 있어요. 엄마가 아이들이 일어나는 새벽 여섯 시부터 45분 정도를 같이 놀아 주는 것이에요”와 같은 말을 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조언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