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오진영: 마켓보로의 기술기획실 이사 오진영입니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10년 정도 프리랜서 개발자를 하다가, 임사성 대표님을 만나서 10년 넘게 함께 일했습니다.
리: 몸이 엄청 좋아 보이는데, 운동도 하세요?
오진영: 전혀 안 합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안 좋아하고, 와우만 합니다(…) 얼마 전 시험 삼아 PT 받으러 갔는데, 트레이너님이 제 몸에 감탄하긴 하더라고요(…)
리: 아무튼… 개발기획실이면 CTO인 건가요?
오진영: 아닙니다. 마켓보로에는 CTO가 없습니다. 저는 마켓보로 창업멤버이기에, 다른 분보다 기존 코드와 아키텍처에 관한 이해가 깊습니다. 그렇기에 현재 일하시는 개발자분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리: 개발팀 인원이 꽤 되지 않아요? CTO가 없는데 딱딱 잘 돌아갈 수 있나요?
오진영: 저희 개발은 3개 서비스실로 나뉩니다. 그리고 각 실에 테크 리더가 있어요. 직함은 개발팀징님이지만, 3분이 각각의 CTO 역할을 합니다. 어차피 각 개발팀징님들이 다 15년 정도 경력이 있는 분들이라, 다른 회사 가면 충분히 CTO를 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리: CTO가 3개 서비스를 전체 총괄하지 않으면 나중에 꼬이지 않나요?
오진영: 프로젝트마다 코드는 분리돼 있어서, 코드가 꼬이는 일은 없습니다. 행여나 사이드 이펙트가 없도록, 개발실장님들과 기술기획실의 제가 주기적으로 논의를 하고요. 그러면서 ‘한 사람이 짠 것 같은 코드’를 이뤄나갑니다. 단순히 코드만 보는 게 아니라, 같은 사고방식의 개발, 같은 개발 논리 구조를 맞추려 하죠.
창업경진대회 금상 탔다가, 1억 가까운 빚만 진 이야기
리: …… 어쩌다 마켓보로에 합류하게 된 겁니까?
오진영: 대학교 때, 창업경진대회에서 금상을 받았어요. 교통경찰들이 쓰는 경광봉 있잖아요? 이걸 클럽 같은 데에서 쓰는 아이템이었어요. 흔들면 글자 보이고 하는… 그런데 생산할 돈이 없어서, 생산비용 벌려고 홈페이지 만드는 외주를 했어요.
리: 생산은 성공했나요?
오진영: 프로토타입만 만들고 망했어요. 막상 만들고 나니까, 기존 경광봉 대비 8배나 무거운 거예요. 게다가 기존 경광봉은 플라스틱 안에 필름이 있어서, 좀 험하게 다뤄도 돼요. 그런데 얘는 플라스틱 안에 LCD가 있으니 흔들면 깨지는 거죠. 한마디로 처음부터 설계가 개판이었던 거죠.
리: 그렇게 창업은 끝이었나요?
오진영: 그때가 한국에 PSP가 나올 때였어요. PSP는 소니의 독자규격인 UMD를 사용했거든요. 마지막 도전으로, UMD 전용 케이스를 만들자… 이것도 어찌저찌 잘 만들었어요. 그런데 또 생산비용이 없잖아요? 그때 귀인을 만났어요.
리: 귀인…?
오진영: 지하철에서 친구한테 사업 이야기하는데,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어요. 자기가 공장장이라고 명함 건네주며, 자기 회사에서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그분과 생산 계약을 맺고, 용산에서 두 번째로 큰 유통사랑 독점 계약까지 했어요.
리: 대박 났네요.
오진영: 그런 줄 알았죠. 근데 중국에서 선적한 다음 날, 친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용산에서 너희 물건 잘 봤다고… 어떻게 선적 다음 날 물건을 받아요? 가보니까, 우리 제품이랑 똑같은 제품이 풀려있는 거예요. 중국 공장에서 설계를 빼돌린 거죠. 우리 생산 원가가 3,400원인데 700원에 들여왔대요. 우리랑 계약한 유통사는 바로 물건 안 받는다고 했고, 우리도 빚만 지고 망해버렸죠.
반짝 국내 1위 음악 앱 개발, 결국 SI로 돌아간 이유
리: 빚지고 어떻게 되었나요?
오진영: 28살에 7,000만 원 빚이 생겼는데, 사업하느라 군대도 안 갔었거든요. 취업해서는 도저히 갚을 방법이 안 보여서 병특 끝나자마자 프리랜서로 뛰었죠. 그러면서 깨달은 게, 저는 개발바보더라고요. 그냥 방에 틀어박혀서 개발만 했어요. 오죽하면 6년 동안 합을 맞춘 디자이너와 영업, 두 분 얼굴도 못 봤어요. 그냥 혼자 개발만 했죠.
리: 저기… 개발 말고 취미생활은 없었나요?
오진영: 저는 놀 때도 개발했어요. ‘확산성 밀리언아서’ 같은 카드 게임 개발하며 놀았죠. 시간 남으면 와우하고… 그러다 임사성 대표님을 만났는데, 이분은 다른 사장님들과 달리 제가 개발하는 데 전혀 관여하지 않았어요. 큰 사업적 시각으로만 접근했기에, 서로 완벽하게 보완이 될 것 같았어요. 난 이제 개발만 하자… 쓸데없는 스트레스 받지 않고,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겠다…
리: 그래서 그 회사는 잘 됐나요?
오진영: 임사성 대표님이 아이디어는 되게 좋아요. ‘뮤직톡’이라는 앱을 냈는데 6개월 만에 300만 다운로드로 국내 1위 음악 서비스가 됐죠. 그런데 저작권 위반이라고 저작권협회에서 고소한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못 하고 망했죠. 은근 대표님이 좀 허술한 면이 있어서… 이후에도 대표님께서 뭘 하신다고 그러면 “그거 안 돼요”고 말리기 바빴죠. 그렇게 SI로 연명했습니다.
리: 그러다 마켓보로는 어찌?
오진영: 어느 날 회사 벽 화이트보드 전체가 시커먼 거예요. 이건 또 뭐야… 하고 봤는데, 되게 그럴듯했어요. 동네 식당에서 고기나 채소 같은 식자재 주문을 되게 힘들어한다, 이걸 스마트폰으로 쉽게 해결해주자… 그때부터 신나게 개발했죠. 어느새 또 4억 투자도 받아왔고요.
리: 신나게 개발한 만큼, 결과도 신났습니까?
오진영: 아니오. 4억 투자받은 건 금방 까먹고, 또 외주로 연명했습니다. 6명이서 시작했지만, 그때쯤 3명으로 줄었죠. 3년간 낮에는 SI하고, 밤에는 기능 개선하며 버텼습니다.
200억 투자 이후, 국내 최대 SaaS 개발사로 업그레이드 중
리: 어쩌다 그렇게 안 된 건가요? 개발이 힘들었나요?
오진영: 영업이 힘들었던 거죠. 개발 자체의 완결성보다, 고객의 눈높이를 맞추기 힘들었습니다. “나이 드신 순댓국집 사장님도 편히 쓰게 만들자”가, 대표님의 원칙이었거든요. 예로 식당 사장님들 중 노안이 오신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폰트 크기 조절이 세심해야 했습니다. 또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쓰는 분들이 많았기에, 크로스 브라우징 이슈도 해소해야 했죠. 지금도 이런 회사의 철학은 그대로입니다.
리: 3년간 돈 안 되는 일을 하며, 어떻게 버텼나요?
오진영: 처음부터 다들 ‘이 서비스는 3년 정도 가야 뭐가 된다, 1–2년 안에는 절대 빛 못 본다’ 이렇게 생각했죠. 그래서인지 지쳤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딱 3년간 개발에만 집중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신 좀 차려 보니까, 3년 만에 200억 가까운 투자를 받고, 남의 회사 쪽방 빌려 쓰다 판교의 대형 사무실을 쓰고, 개발자 3명은 30명이 돼 있고…
리: 뭔가 기적 같은 이야기네요. 이후 개발팀은 어떤가요?
오진영: 기존의 마켓보로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주로 월 1–30억 하는 유통사를 위한 식자재 유통 플랫폼이었어요. 하지만 그 이상, 예로 월 100억 정도 하면 좀 더 고도화된 시스템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대형 유통사가 필요로 하는 프로덕, 이른바 마켓보로 2.0을 만듭니다.
리: 그러면 유통사의 니즈에 맞춰, 온갖 커스터마이제이션이 가능한 ERP인 건가요?
오진영: 네. 아마 국내 SW 중 가장 큰 B2B SaaS가 될 겁니다. 패션은 동대문이 메카라 그렇게 여러 단계를 거치지는 않아요. 반면 식자재는 보통 원산지에서 식당까지 6단계를 거치기에 복잡도가 매우 높습니다. 품목이나 입력해야 할 옵션, 예로 생산일, 생산지 등도 너무 다양하고요. 그래서 저희가 마켓보로 2.0을 분석하고 설계하는 데만 8개월이 걸렸습니다. SAP를 커스터마이징한 수준의 기존 대형 ERP 분석도 쉽지 않았으니까요.
리: 나중에는 식자재 외에도 마켓보로 2.0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요?
오진영: 동대문 패션 도매 시장이 연 15조로 추산되는데, 식자재 유통 시장이 50조입니다. 그래서 당장에는 식자재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여러 커스터마이제이션이 가능한 만큼 가능성은 열어둡니다. 여기에 많은 개발자가 필요하고, 올해 중 20명은 추가 채용할 계획입니다.
개인의 코드와 생각, 생활 하나하나까지도 극단적인 존중이 원칙
리: 마켓보로 최장수 개발자인데, 이 회사 개발팀만의 특별한 문화가 있나요?
오진영: 문화요…? 서로 노 터치하는 거? 워낙 서로의 코드들을 존중해주십니다. 이렇게 개인주의가 강한 사람들이 딱히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게 문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리: 에… 보통 개발팀끼리 테크 스터디한다, 스크럼을 어찌한다… 이런 답이 나오는데…
오진영: 그런 시도를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뭐든 한다고 하면 회사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지만, 참여 여부는 자율입니다. 개발을 잘하자는 것 외에는, 웬만해서 건드리지 않겠다는 게 저희 개발팀 철학입니다. 개발 말고 다른 공부를 좀 합시다, 데브 블로그에 글을 올려 봅시다, 이런 요구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리: 개발팀이 아닌 회사의 문화 아닌가요?
오진영: 아닙니다. 영업이나 마케팅팀분들은 되게 떠들썩하고, 회식하면 술도 잘 마시고 그래요. 그런데 개발팀은 그냥 저녁에 커피에 맛있는 거 먹고 끝입니다. 물론 저처럼 술 좋아하시는 사람들끼리 모여 2차를 마시기도 하고, 다른 팀 회식에 끼이기도 하죠. 하지만 다 자기 결정입니다.
리: 일하는데 개발자에게 말도 못 붙이게 한다고 들었는데…
오진영: 네, 특별히 필요한 일이 없으면, 집중 깨지 말라는 거죠. 코로나 이전부터도 재택이 상당히 자유로웠습니다. 동료와 직접 이야기해야 하는 일이 없고, 집에서 일하는 게 더 집중이 잘된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특별히 워라밸을 중시한다기보다는, 개발팀 스스로 개발 일정을 결정하고, 적절하게 일을 배분해서 가능한 것 같습니다.
리: 너무 규칙이 없어 보이는데요;;;
오진영: 규칙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딱 정해진 규칙이나, 요즘 많이 유행하는 방식의 특정 개발론을 강요하는 회사는 아니에요. 규칙이라면, 꼼수 없는 표준을 지향합니다. 저희 개발 철학은 심플한데 ‘여러 사람이 짰지만, 누가 봐도 한 사람이 짠 것 같은 코드’입니다. 표준화에 대한 집착이랄까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코드를 존중하고, 온전히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리: 그렇다면, 개발자가 이 회사를 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오진영: 우선 자신의 개발 스타일대로 개발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 전적으로 개발자 개개인의 능력과 생각을 우선시하지요. 예를 들어, 레거시 코드가 좀 문제가 있는데, 그걸 수정하는 과정이 힘들고 해서 놔두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희는 신입 개발자가 뭘 바꾸고 싶을 때, 기존 안보다 새로운 안이 왜 좋은지 설명만 되면, 새로운 방향으로 갑니다.
리: 제품마다 개발팀장님이 있다고 하셨는데, 개발팀장님과 PO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오진영: 3개 서비스 개발팀장님이 곧 PO 역할을 합니다. 이분들 한분 한분 경력이 다 어지간한 회사 CTO급이니 당연한 일이죠. 물론 기획자들은 존재합니다만, 이분들의 기획안을 개발팀장님과 기술기획실이 개발 관점으로 먼저 검토합니다. 이건 뭐가 되고, 이건 뭐 때문에 안 되고… 이런 검토를 기반으로, 기술적인 요소들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개발과 기획 간 왔다 갔다가 드문 편입니다.
리: 그냥 개발팀 개짱짱, 개발팀장님 맘대로 다 되는 건가요;;;
오진영: 고객이 정말 필요로 해서 타협할 수 없는 건, 기획자들이 양해를 구하지요. 이럴 때 제가 있는 기술기획실이 뒷받침을 합니다.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라면 구현하되, 불필요한 리소스를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거죠.
리: 제품마다 개발팀장님이 있고 CTO가 없는데, 서비스가 엮일 때 코드가 꼬이거나 하진 않나요?
오진영: 개발팀 전체의 철학이 ‘한 사람이 짠 것 같은 코드’라고 했잖아요. 단순히 코드만 보는 게 아니라, 같은 사고방식의 개발, 같은 개발 논리 구조를 맞추려 하죠. 그래서 개발팀장님들끼리, 어떤 이유로 어떤 언어를 쓸지 항상 상의합니다. 또 진행 상황을 수시로 공유하며, 나중에 통합될 상황이 있을지도 모르니 항상 고민하며 개발하죠.
리: 음… 그래도 남들은 다 CTO 자랑인데… 특이하네요.
오진영: 결국 개발자가 개발에 집중하려면, 무엇이 중요할지가 우선순위 문제라 봅니다. 그래서 보통 회사면 CTO를 맡을 제가, 기술개발실을 통해 백업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판단한 거고요. 또 너무 중앙집권으로 갔다가 코드가 무거워지고 꼬이는 걸 경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한분 한분의 개발팀장님이 더 세심히 팀원들을 봐주고, 코드 리뷰도 서로 더 잘 볼 수 있지요.
각자에 대한 존중을 코드와 회사 문화에 그대로 녹여내는 회사
리: 몇 년 차 정도 경력의 개발자를 원하시는지요?
오진영: 프론트엔드, 백엔드, 양쪽 모두 3–7년 차 정도면 됩니다. 백엔드는 Java, 프론트엔드는 vue.js, 그사이 소통은 GraphQL을 주로 씁니다. 웹과 앱 서비스에 관련된 인력을 전방위적으로 구합니다. 저희 기업의 문화와 비전에 동의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든 환영입니다.
리: 앞으로 개발팀 문화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신가요?
오진영: 지금보다 더 갔으면 합니다.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고, 개인의 자율성을 극도로 존중하는 개발팀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극단적으로는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개발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른 팀의 반발이 걱정되긴 하지만, 개발에 있어서는 업무시간도 없고, 그저 한 팀 모두가 어떻게 더 개발을 잘할까 고민하고 실행하는 팀이 되었으면 합니다.
리: 서비스 사이즈가 커져도 그게 가능할까요?
오진영: 당연히 힘들겠지만 적응해야죠. 이미 코로나로 절반 이상이 재택임에도 잘됐어요. 그래서 정기적으로 코드리뷰를 굉장히 세심하게 합니다. Git을 이용해서 풀 리퀘스트가 들어오면, 이를 띄우고 마지막 병합 전 스타일 맞추고 왜 그리 짰는지 물어보고, 이에 대해 충분한 이유를 듣고, 토론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정합니다. 결국 시스템이 아닌 사람들의 의지와 커뮤니케이션, 각자의 방법에 대한 존중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리: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거군요.
오진영: 네. 심지어 저희가 전체 직원 50명, 개발팀 30명 정도인데… 그렇게 크지 않은 조직임에도, 자체적인 QA팀이 있습니다. QA팀에서 프로덕이 나가기 전 사용자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다 검사해요. 개발자가 실수한 것을 고객에게 바로 나가지 않도록 한 번 더 걸러주는 거죠.
리: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오진영: 남들이 보지 못한 아직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은 유통시장을 최신 기술을 적용해 바꿔 나아갑니다. 이러한 요소는 개발자에게도 큰 보람이고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개발이 필요합니다. 개발자 여러분, 마켓보로에 많이 지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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