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 연차는 쌓여가는데 통장이 ‘텅장’이 되도록 펑펑 썼다. 모아 놓은 돈은 0원이었고, 월급은 그저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 곧 결혼을 앞두게 되었는데, 결혼자금이 없었다. 1년 동안 어떻게든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그때부터 투잡, 부업이라는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겼다. 마침 만났던 친오빠가 친한 친구 부부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꺼낸 게 시작이었다.
OO네, 쉐어하우스로 부업하는데 잘 돼서 6개월 만에 7호점까지 냈다더라.
솔깃한 정보였다. 쉐어하우스에 대해 검색하자 똑똑이 SNS가 다양한 광고로 나를 안내했다. ‘집이 없어도 월세를 받을 수 있는 방법!’ ‘직장인 쉬운 창업, 쉐어하우스 VS 에어비앤비’. 다양한 정보를 익히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기로 했다. 쉐어하우스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쉐어하우스 준비 과정
2018년도라 코로나19 영향이 없을 때였다. 다양한 오프라인 모임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퇴근 후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하며 쉐어하우스 창업에 대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정확히 두 달 후, 내가 만든 브랜드로 쉐어하우스를 오픈해서 N잡러 대열에 합류했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하는 과정이 녹록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간절한 동기가 나를 밀어붙였다. 그래서 지역 선정을 위해 사전소라르 했고, 부동산 매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주말마다 직접 부동산 투어를 다녔다.
쉐어하우스는 특성상 부동산 중개인과 집주인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첫 번째 난관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계획한 프로젝트에 대한 PPT를 미리 만들어 갔다. 이 과정은 정말… 설명 및 설득했다고 쓰고 처절하게 빌었다고 읽어도 될 정도다.ㅎㅎ
그렇게 몇 번의 거절 끝에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다. 그때부터 무엇을 했을까? 당신이 쉐어하우스를 구하는 고객이라고 생각해 보자. 집주인이 “저 결혼자금으로 모으려고 시작한 쉐어하우스예요, 어서 오세요!”라고 말한다면 과연 가고 싶을까?
나는 사실 사업가에 대한 작은 꿈을 품고 있었다. 이왕 시작하는 거, 브랜딩의 ‘브’자도 모르는 이과 공대생이지만 제대로 마케팅을 해보고 싶었다. 브랜드명을 손수 붙였다. 그에 어울리는 로고와 B.I(Brand Identity)를 만들었다. 홍보를 위해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첫 고객은 예상보다도 빨리 받게 되었다. 오픈 준비에 대한 과정을 블로그에 적어 내려가던 중이었는데, 한 학생의 어머니께서 적극적으로 연락을 주신 것이다.
사장님의 쉐어하우스에 대한 마인드가 너무 좋아서, 꼭 딸을 보내고 싶어요.
그 진심이 와닿아서 보답하는 마음으로 오픈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퇴근 후 시간을 전부 갈아 넣었다. 몸이 아파서 열이 펄펄 나는데도 퇴근 후 달려가서 하나하나 다 준비했다. 겁이 극단적으로 많은 나인데도, 이불 하나 들고 가서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자고 왔다.
꼭 체크해야 했다. 학생들이 머물기에 어떨지, 여학생들이 주 고객층이 될 텐데 머물기에 주변이 무섭지는 않은지. 그래도 배우고 일한 게 건축이었다 보니, 예쁜 집에서 살고 싶은 학생들의 로망을 꼭 실현시켜 주고 싶었다. 그래서 쉐어하우스의 슬로건은 “멋진 라이프를 빛내주기 위한 공간”으로 정했다. 대충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아, 또 영혼을 다 바쳤다.
실수 없이 가구를 구입하고 배치하기 위해 실측을 꼼꼼히 쟀고, 아날로그 작업으로 공간을 배치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3D 플로어 플랜을 세워 최종 점검을 마쳤다. (이는 훗날 신혼집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완성한 나의 첫 번째 쉐어하우스를 살짝 공개한다.
만실 쉐어하우스가 나에게 안겨 준 것
쉐어하우스의 예상 수익은 보수적으로 잡아 놨다. 그래서 실제로 얻은 부수입은 예상보다 컸다. 줄줄이 만실과 대기가 이어진 덕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큰 수확은, 돈 개념이 없던 내가 돈을 모으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직접 사업을 하고 운영해 보니 단돈 천 원이라도 운용하는 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매 순간 감동이기도 했다. 취준생으로 들어왔던 친구들이 취업을 잘해서 연락 왔을 때에는 괜히 내가 다 자랑스럽고 뿌듯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결혼 전이라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았다. 그래서 쉐어하우스 메이트 간 어울리는 자리를 많이 마련했다. 학생 때의 경험을 되살려 머무는 하우스메이트들을 좋은 데 데려가 주기도 했고, 선배 또는 언니로서 고민을 많이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진심으로 그들을 아꼈다.
어떻게 내 쉐어하우스는 그렇게 성황리에 운영되었을까? 만실의 비법이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따로 홍보를 안 했다. 본업에 8시간 이상 보내다 보니, 남는 시간에는 운영에만 매진하게 되었다. 보통은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마케팅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만실이 이어졌다.
비법은 메이트들에게 잘해주는 것이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와 스토리로 쉐어하우스의 예쁜 공간과 내가 챙겨주는 일상을 자주 공유해 줬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소개의 소개, 대기의 대기로 이어진 것이다.
N잡러의 시작
쉐어하우스 운영을 하면서 직장에서도 틈틈이, 집에서도 틈틈이, 심지어 신혼여행을 간 하와이에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업을 유지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충분히 있다는 걸 알게 된 첫 번째 경험이었다.
확실히 퇴근 후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고되고 힘들다. 하지만 쉐어하우스는 정말 하기 잘했다. 무엇보다도, 돈 주고서라도 얻기 어려운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원문: 로키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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