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표맥주, 대체 무슨 싸움을 하신겁니까
요즘 편의점 맥주칸을 수 놓는 음료는 테라나 카스도, 바다를 건너온 해외맥주도 아닌 ‘수제맥주’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수제맥주라는 이미지는 가혹하게 말한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회사의 비싸고, 뽑기운이 존재하는 한국맥주’가 아니었을까? 이 놀라운 장벽을 건너뛴 시도가 있다. 바로 ‘위트있는 콜라보’다.
지난해 밀가루 브랜드인 곰표와 맥주의 만남으로 인기를 끌었던 ‘곰표맥주’는 수제맥주계의 허니버터칩이 되었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국민브랜드와 수제맥주의 콜라보는 재미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줬다.
오늘의 마시즘은 익숙하면서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만들어 낸 (끔찍한) 콜라보 맥주다. 사실 사약을 마시는 장희빈의 심정으로 삼켰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놀랐어…
“비어리카노” 제주유동커피 X GS25 X 코리아 크래프트 브루어리
과거 ‘막걸리카노’ 한 사발을 리뷰한 후 마시즘은 음료의 이름 돌림자에 ‘-카노’만 붙어도 덜덜 떠는 병에 걸렸다. GS25에 <비어리카노>가 나온 것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리뷰를 하게 된 것은 큰 용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캔에 그려진 얼굴이 무섭게 생겼잖아(유동커피의 감성 간판이다).
비어리카노를 따랐다. 짙은 흑색의 맥주와 함께 떠오르는 갈색 거품, 그리고 커피향이 제법 괜찮은 스타우트 같아서 놀랐다. 비어리카노에는 유동커피 대표가 직접 제조한 콜드브루 커피가 들어있다고 한다. 제법 달달한 향과 함께 마시기 좋았다. 사실 편의점에 가는 사람들이 엄청난 스타우트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잖아?
물론 커피계에서는 이렇게 커피의 풍미가 적은 게 비어리카노냐! 맥주계에서는 이렇게 스타우트의 풍미가 적은 게 비아리카노냐! 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원래 대중성이란 언제나 그 중간 어딘가가 아닐까?
금성맥주: GS리테일(50짤) X 제주맥주
2021년 곰표밀맥주에 가장 가까운 맥주다. 무려 하루에 10만캔, 이틀만에 20만캔이 출고되고 있다. ‘금성’이라는 상표는 어릴적 할머니집에 놀러갔을 때 텔레비전에서 봤다. 금성맥주라는 제품의 이름이 금성에서 LG로, LG에서 따로 독립 분가한 GS리테일의 기념맥주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없지만, 진품명품이 될수도 있는 디자인을 세련되게 잘 살렸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기계 맛이 아닌, 맥주 맛이 난다는 평가 때문에 마셔보았다. 생각보다 퀄리티는 확실하다. 은은하게 나오는 향도 좋고, 한국맥주 치고 쌉싸레한 맛과 끝도 깔끔했다. 맥주를 양조한 것은 ‘제주맥주’다. 가전제품에 금성이 있다면 수제맥주에는 제주맥주가 있는 것이다.
마시즘은 나름 호불호 없이 맛있게 마실 맥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불호가 있다는 게 더욱 신기하다. 누군가는 4캔의 만원의 구원자, 퀸즈에일 이후 최고의 한국맥주라고 극찬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값비싼 필라이트라는 혹평도 있다. 둘 다 극단적이지만 이는 기대치와 유명세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쥬시후레쉬 맥주: 롯데제과 X 세븐일레븐 X 더쎄를라잇 브루잉
세븐일레븐이 또 한 번 해냈다. 잠깐 흘겨본 것만으로도 주변에 있는 맥주의 이미지를 모두 잊게 만든다. 보자마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고, 홀린 듯 구매를 했으며, 편의점 카운터에서는 쥬시후레쉬 맥주와 마시즘을 2번 쯤 번갈아 보면서 둘 중에 무엇이 더 이상한 것인지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쯤 사야 플렉스지.
쥬시후레쉬 맥주를 따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적당히 쥬시하게 과일향을 넣었을 것이란 나의 기대를 격파하고, 쥬시후레쉬 껌향이 그대로 났다. 실제 쥬시후레쉬 껌생산에 사용되는 원액을 넣었다고 한다. 드디어 눈 꽉 감고 마셔봤다. 가벼운 라거에 향긋한 과일향 때문에 머리가 멍해졌다. 왜 멀쩡하지? 맥주가 쥬시하지는 않지만 맛은 있어.
생각보다 평이 괜찮아서 이렇게 ‘프레시민트’ ‘스페아민트’까지 만들어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맥주를 만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단점을 찾았다. 안주와 함께 먹는 순간 헬파티가 열린다. 안그래도 들숨 날숨 쥬시후레쉬 향이 나는 맥주에 안주를 먹으면 마치 껌을 씹으며 밥을 먹는듯한 기분이 든다.
질러 맥주: 샘표 X 세븐일레븐 X 플래티넘크래프트 맥주
안주 코너에 있을 것 같은 디자인이 또 맥주계에 침범했다. ‘질러’는 육포이름이 아닌가. 쥬시후레쉬에 이어 깨달았지만 세븐일레븐 PB 수제맥주 컨셉과 디자인에는 촌스러운데 뇌리에 강렬하게 남는 그런 힘이 있다. 뭔가 한 번 사는 인생에 안 마셔보면 자꾸 생각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질러맥주는 또 하나의 진화를 이뤄냈다. 캔의 남은 반쪽(뒤쪽)에는 정상적인(?) 메뉴와 라벨이 그려있다. 아 플레티넘맥주의 ‘대한IPA’구나. 다행히 육포맛 맥주가 아니라 이 맥주와 어울리는 안주를 캔의 전면에 그려넣은 것이다. 이런 전략이라면 조만간 대한민국 수제맥주의 절반은 치킨디자인을 해야겠구나.
대한IPA는 이파(IPA를 이파라고 부르면 맥주 찐)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가볍게 마시기 좋은 맥주다. 홉향도 괜찮고, 끝에 살짝 올라오는 고소한 맛도 좋다. 확실히 달콤하고 짭짤한 육포와 먹으면 좋은 조합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육포는 어떤 맥주와 마셔도 좋다는 점이겠지만 말이다.
이벤트에서 일상으로! 수제맥주 콜라보는 이제 걸음마
대중과의 접점을 더욱 만들어야 하는 ‘수제맥주’에게 콜라보는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다. 가격적인 면에서도 다른 맥주들과 겨뤄볼 만 하다는 것또한 긍정적이다. 다만 순간의 재미를 떠나 맛에 있어서 다시 한번 수제 맥주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를 어떤 맥주가 먼저 해결하게 될까?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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