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에서의 삶은 유유자적하겠네요. 〈리틀 포레스트〉 영화 같은 삶. 근데 경제적으로 힘들지는 않으세요?
이 작은 시골 마을, 한산에 방문한 많은 이들이 꼭 물어보는 질문이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도시에서 다이나믹한 삶이 일상이던 사람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게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이다. 나 또한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이 질문에 지금의 난 이렇게 대답한다.
시골 생활은 도시보다 더 다이나믹한 것 같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기회가 정말 많아서… 물론 그 치열한 하루의 일과를 보내고 낮은 산등성이 위로 걸친 노을, 무리 지어 하늘을 나는 철새들에게 치유를 받을 땐 정말 영화 리틀포레스트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시골에 정착한 청년들은 여유롭게 유유자적할 것 같지만, 각자 해야 할 일과 업무가 있어 시간을 내서 약속하지 않으면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다. 도시처럼 인프라가 갖춰져 있거나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만큼 1부터 100까지 스스로 만들어내고 맡은 일을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아늑한 시골집에서 힐링하고 요리하며 살아갈 수는 있다. 단, 그리 간단하고 쉽게 얻어지는 삶의 방식은 아니다.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느린 여유를 동반하는 것 같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만큼의 빈 시간을 채우느라 오히려 더 바쁘고 부지런해진다. 본인의 꿈을 마음 한편에 품고 답답했던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본인의 삶을 재설계하고 하고픈 일을 하면서 지속 가능하게 먹고 살기 위해서다.
한산에 온 지 벌써 5년, 마을 빈집 얻어 제2의 고향이 된 지 3년 차
대학 시절 서울에서 팍팍한 반지하 원룸 생활을 하던 중, 고향인 천안에서 정보기술(IT)을 결합한 문화콘텐츠개발기획사의 창업 멤버로 합류하게 되어 서울 생활을 다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8년 동안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들이 지역의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자 수많은 문화콘텐츠 개발을 하는 일을 해왔다.
도시에서의 삶은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고, 기성세대의 시스템 안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선배들이 해왔던 일을 매뉴얼처럼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경험도 없고 실력도 없는 어린 친구들에게 무슨 일을 주겠나, 라는 말이 듣기 싫어 같은 분야의 선배들을 경쟁 상대로 여길 때도 있었고, 기존의 청년들에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 기회의 시스템을 변화와 혁신으로 바꾸자고 시작했던 우리의 꿈들은 회사의 연차가 쌓일수록 기존 관행을 고수하게 되었다. 변화 없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하루하루 버티는 것에만 급급해졌다.
그런데도 지역에서도 충분히 청년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 환경을 만들고 싶은 비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고민이 ‘삶기술학교’를 만들게 된 배경이 되었고, 함께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동료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지쳐있다
어릴 때부터 서울로, 대도시로 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 지내왔다. 대학부터 수도권으로 가지 못하면 실패한 듯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삶. 태어난 시점부터 무수한 경쟁을 하며 살아왔는데 지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 갑갑한 현실을 넘어서고자 사람들은 대안적 삶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바로 디지털 노마드다. 인터넷과 노트북 하나만 있어도 제약 없이 여기저기 이동하며 업무를 보는 이를 일컫는다.
이미 시선을 돌려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의 미래로 디지털 노마드를 꿈꿔봤을 것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여행하듯 일할 수 있다는데 누가 마다할까? 하지만 꿈꿔본 모두가 실현 가능하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회사로 출근하고 할당된 업무와 시간을 채워야만 생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역시 디지털 노마드는 꿈일 뿐일까? 노마드들을 위한 자연에서 치유하며 일할 수 있는 마을과 커뮤니티가 생긴다면 실리콘밸리의 페이스북처럼 지역에서도 유니콘을 꿈꾸는 IT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성공할 가능성이 생기진 않을까.
대한민국은 인터넷 강국인 만큼 일하기 편리한 환경과 특색을 지닌 ‘로컬’이 많아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로컬’이라는 건 단순히 지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 자체는 물론 그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먹거리, 놀 거리, 볼거리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즉, 로컬 문화 콘텐츠 전체를 소비하게 되는 것.
‘삶기술학교’는 그런 디지털 노마드들이 함께 일할 수 있고, 로컬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며 지내볼 수 있는 노마드타운을 만들어 가고 있다. 더불어 한산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제2의 고향이 되어 나만의 기술을 가지고 삶의 방향성을 재설계하고 실험해보며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커뮤니티로 성장을 꿈꾼다.
늘 느끼지만 결국은 사람이더라
굳이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살아도, 심심하고 지루한 날 속 믿음 가는 사람들은 필요하다. 그들이 있어야만 반복되는 일상이 여행이 되고, 그 하루가 쌓여 삶이 된다. 다행히 한산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가고 알아간다.
우리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1부터 100까지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가는 일에 성취감을 느낀다. 지역이라고 해서 인프라가 부족해서, 자본금이 없어서, 기성세대들이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을까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혼자가 아닌 마음 맞는 여러 동료가 함께 먹고, 자고, 머리를 맞대고 커뮤니티 속에서 일을 만들어내면 된다. 그리고 협업하면 뭐라도 된다는 것을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깨닫고 다이나믹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도시에서의 경쟁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삶을 바라고 있다면, 내 고향 또는 제2의 고향을 찾아 지역에서 기회를 찾고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남은 삶을 리틀 포레스트처럼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원문: 이로운넷 / 작성: 김혜진 삶기술학교 한산캠퍼스 공동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