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물? 원한다면 주도록 하지…. 잘 찾아봐. 이 세상의 전부를 거기에 두고 왔으니까.
해적왕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아 떠나는 만화 ‘원피스’의 이야기는 방구석에서 자급자족하는 코로나형 인재 마시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 만화는 세계적인 히트를 쳤지만 아이들이 해적으로 취업하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만화 속 이야기일 뿐이고, 불확실한 보물보다는 따뜻한 일상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숨겨놓은 보물의 정체가 ‘위스키’라면 어떨까?
그렇다. 영하 30도의 남극에 100년 동안 숙성된 위스키가 있다는 소식은 많은 덕후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그리고 찾아내고야 말았다. 꽁꽁 얼어붙어 있는 상자 속에서 얼지 않고 찰랑거리는 위스키를. 그리고 이 위스키를 두고 간 위대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춥고, 어둡고, 귀환을 보장하지 않지만 위대한 모험을 할 사람을 모집합니다
그의 이름은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 영국의 해군이자 탐험가로 아직 인류가 남극을 정복하지 못했을 때에 2번의 남극점 탐험(1901년, 1907년)을 했던 인물이었다.
당시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아문센’과 ‘스콧’이 누가 먼저 남극점을 찍고 탐험왕이 될 것인가 경쟁하던 대남극의 시대였다. 1907년 아깝게 도전에 실패했던 섀클턴은 다시 한번 탐험대를 꾸리기로 하며 신문에 역사적인 모집 광고를 냈다.
구인공고
어렵고, 보수도 적고, 혹한의 추위, 몇 달간 지속되는 어둠, 계속되는 위험과 안전한 귀환을 보장하지 못하는 모험. 성공할 시 영광과 명예를 얻을 수 있음.
어니스트 섀클턴, 뷰링턴 가 4번지.
이건 무슨 원양어선을 태우겠다는 것도 아니고(더 심한 모험이기도 하다), 신고를 해도 모자랄 것 같은 이 솔직한 공고는 많은 영국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무려 5,0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는데, 섀클턴은 면접에서 노래를 부르게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압박면접, 아니 어떤 상황에서도 대장의 명령을 따르는지 혹은 당황스러운 상황에서의 멘탈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장교부터, 예술가, 과학자,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27명의 대원이 남극을 향해 떠났다. 아니, 어리기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배에 몰래 탄 밀항자까지 27+1명의 모험이 시작된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얼음에 배가 갇혔는데요?
신문광고에 예고했던(?) 내용대로 모험은 순탄치 않았다. 바로 그들의 배 ‘인듀어런스호’가 남극의 얼음에 갇혀 꼼짝도 못 하게 된 것이다. 1915년 1월 20일부터 10월 27일까지 그들은 항해를 하지 못하고, 얼음 위에서 자급자족하면서 봄이 되기를 기다렸다. 문제는 봄이 되어 얼음이 녹으며 배까지 파손이 된 것.
10월 27일 섀클턴은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배를 포기한다.’ 그들은 급하게 생필품, 그리고 작은 조각배를 챙겨 배를 벗어난다. 녹아가는 얼음을 피해서 도착한 곳은 ‘엘리펀트 섬’이었다. 새똥만 가득한 무인도였고, 구조선이 지나갈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섀클턴은 위기 속에서도 리더십을 발행했다. 좋은 품질의 침낭을 두고 제비뽑기를 할 때 사기를 쳐서(?) 일반 대원들에게 모두 좋은 침낭을 쓰게 했다. 그래고 브리테니커 사전을 불쏘시개로 쓰면서 연료를 아꼈다. 하지만 냉장고 같은 환경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조각배 한 척으로 1300Km를 건너간 남자
섀클턴은 무모한 계획을 발표한다. 바로 남극해를 건너가서 구조대를 불러오겠다는 것이다. 대원들은 드디어 대장이 추위에 미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가진 배는 갑판도 없고, 동력원도 없는 10M도 안 되는 작은 조각배에 불과했고, 그걸로 건너야 할 바다의 거리가 1300Km가 넘었다. 서울에서 오키나와까지 조각배를 타고 간 것이다. 그것도 남극의 추위와 함께.
항해는 미친 짓이었다. 폭풍과 추위, 파도와의 전쟁이었다. 섀클턴은 맑은 날이 오기를 기도하다가 드디어 하늘이 맑아 보이자 희망에 가득 찼는데. 그것은 구름이 아닌 집채만 한 파도의 하얀색 물마루였다고 한다. 성공은 뒷전이고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 조건에서 섀클턴 일행은 16일 만에 고래를 잡는 선원들이 거주한다는 ‘사우스 조지아 섬’에 도착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사는 정반대 편에서 내렸다는 것.
섀클턴 일행 세명은 파도를 넘어 한 번도 등반한 적이 없는 산맥을 건너야 했다. 그들이 가진 것은 3일분의 식량과 나사못을 박은 신발 3켤레, 그리고 도끼 한 자루였다. 문제는 이때까지 이 산맥을 횡단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섀클턴 이후 30년 뒤에나 풀세트를 차고 성공한 이가 나타났다).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쪽잠을 자야 하는 대원들의 유일한 희망은 매일 조금씩 마시는 ‘홍차’였다고 한다.
얼어 죽거나, 지쳐 죽기 일부 직전에 있는 대원들에게 섀클턴은 제안했다. 내리막길은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자고. 그렇게 섀클턴과 함께한 일행 두 명은 선원들이 사는 기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구조선을 수배해 엘리펀트 섬에 남아있는 선원들을 구하러 갔다(이 또한 3번이나 실패했다). 구조선이 드디어 엘리펀트 섬에 도착했다. 섀클턴은 대원들에게 무사하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어떤 성공담보다 감동적이었다.
전원 무사합니다.
전설이 된 어니스트 섀클턴, 그가 남극에 남긴 위스키가 있다고?
최악의 조건에서 전원 생존하여 고향에 돌아왔다. 섀클턴과 일행은 영국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다. 남극점을 정복한 아문센 마저 자신이 그런 상황이 닥쳤다면 포기하거나,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영국의 지질학자 레이먼드 프리슬리는 “과학적 리더십이 필요하면 스콧을, 신속한 정복을 원한다면 아문센을, 절망적인 상황에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섀클턴을 보내달라고 기도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후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가 이전에 1907년에 나섰던 남극 탐험(그것 또한 대단한 귀환이었다. 목적지를 100마일을 남겨놨기 때문)에서 위스키를 캠프에 묻어놓고 왔다는 소식이 들린 것. 또한 도수가 높은 위스키는 얼지 않고 100년의 시간 동안 천천히 숙성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남극은 몰라도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군침을 흘릴법한 보물이 아닌가.
위스키를 찾았다. 섀클턴이 가져간 위스키는 1896년 혹은 1897년 산으로 추정되는 ‘화이트 앤 멕케이’의 스카치위스키였다. 문제는 이 제품을 만든 회사가 금주법 등으로 위기를 겪다가 제조법을 소실했다는 것이다. 오직 남극에만 있는 원본 제품을 고국에 돌리기 위해 화이트 앤 맥케이는 전용기를 띄워 위스키를 모셔왔다. 자 이제 까서 마시고! 행복한 엔딩!!!
… 은 아니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간을 가르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만들어진지가 100년이 훨씬 지났지만 맛을 잃지 않은 위스키는 세계적인 마스터 블랜더들에게 보내졌다. 그리고 화이트 앤 맥케이는 잃어버린 레시피를 복구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세상에 나온 위스키의 이름이 바로 ‘섀클턴’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를 한 사람. 또 위스키 역사상 가장 꽁꽁 술을 숨겨놓은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말이다.
위대한 위스키에는 모험과 낭만,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단순히 마시고 즐기는 위스키에도 수많은 모험과 사연이 담겨있다. 미지의 세계와 낭만을 담은 섀클턴 위스키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무용담을 던져준다.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낭만을, 또 사라졌다가 다시 찾은 위스키의 맛의 비법을. 오늘 우리가 마실 음료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Long-Lost Whisky Brought Back to Life from 1907 Shackleton Antarctic Expedition, Ian Harvey, Vintage News, 2019.10.16
- Spirits of the Wouth Pole, Dean Rovinson, New Work Times Magazine
- 인듀어런스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캐롤라인 알렉산더, 뜨인돌, 2002.9.5
- 돌아온 28인, 지식채널e, EBS
- [세상은지금] 남극 유빙 사이에 갇힌 유람선, 송인근, SBS, 2009.11.18
- 남극에 100년 묻혀있던 위스키 상자 개봉, 연합뉴스, 2010.8.13
- 탐험가 섀클턴 100년전 남극에 숨겨둔 위스키 발견, 내일신문, 20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