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년 전 인터넷상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한 피자 배달노동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한 재개발 예정 지역과 고급 아파트 단지에 1년간 배달을 다니며 느낀 단상을 들려주었다.
부자 동네를 가면 자신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아이와 그 옆에서 그렇게 하도록 아이를 가르치는 부모의 모습을 보았고, 가난한 동네에서는 인사는커녕 자신을 하대하는 태도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부모의 부족한 인성과 여유, 혹은 낮은 교육 상태가 자식들로 하여금 낮은 자존감을 갖게 하고 사회적 성취를 어렵게 만든다고 결론지었고, 그 밑에는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댓글들이 우후죽순처럼 달렸다. 가난한 사람들은 물질적 자원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태도, 취향, 지식, ‘올바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능력까지 부족하다고 보는, 빈곤을 바라보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서사일 것이다.
2.
국제 학술지 <건강과 질병의 사회학>에 실린 영국 엑시터 의대 연구진들의 논문은 이렇게 우리 시대의 빈곤을 다루는 서사와 정신건강의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논문 바로가기☞ 서사의 폭력: 빈곤 관련 스트레스에 대한 책임을 구체화하기). 영국은 정신건강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와 전폭적인 지원을 정책목표로 정한 이후, 잉글랜드 전역에서 2006년 3억 4천700만 건이었던 항우울제 처방이 2016년에 6억4천700만 건으로 10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처방 건수에 있어서 지리적 차이가 컸는데, 박탈지수가 높은 저소득층 지역에서 우울제 처방이 더 많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처방 건수가 가장 많았던 블랙풀 지역은 잉글랜드 전역에서 남성의 기대여명이 제일 낮고 알콜 관련 입원 일수가 가장 높은 지역이기도 했다.
연구진들은 이처럼 정신건강에 대한 치료가 정치적 의제로서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될 때, 빈곤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험하는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들이 어떻게 일차진료의사(GP)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들과 GP 사이에는 어떤 상호작용이 발생하는지를 분석했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가 소득, 고용, 건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공표하는 종합박탈지수 5분위 가운데 가장 낮은 1분위에 해당하는 지역 중 두 지역에서 18-65세의 연구참여자 97명을 모집하고 16회의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시행했다. 또한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말하기 치료(talking therapy)를 같이 받거나 혹은 이러한 개입들을 거부했던 57명의 연구참여자들과 이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10명의 GP를 인터뷰했다. 그 결과, 연구진들은 빈곤과 관련한 정신적 고통에 자기 책임의 서사가 자리해 있다고 보았다.
우선 복지를 남용이라 부르며 수급권자에 대한 제한을 늘려가는 지금의 복지제도 자체가 수급권자들에게 자신의 빈곤과 관련한 정신적 고통을 개인의 실패라는 서사로 해석하게끔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경제위기 때 수급권자가 된 연구참여자들은 ‘내가 이런 걸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좌절감과 죄책감, 자기혐오를 드러냈다. 나아가 복지제도를 거부하거나 탈피하는 것이 ‘책임있는’ 태도라고 보기도 하였다.
연구진들은 이들이 ‘염치도 없이 복지를 통해 먹고 산다’는 지배적인 서사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 역시 스스로를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그 지배적인 서사에 기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복지제도가 ‘수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되는 ‘순수한’ 사람으로서의 증거를 요구하고, 죄책감을 부추기는 것 또한 수급권자들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자녀가 있는 한 연구참여자는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 생활습관이나 부모로서의 행동에 관한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충분한가? 내가 아이를 망치고 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게 내 우울증의 근원”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들은 과밀한 주거환경, 양질의 음식을 사거나 여가 및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경제적 자원의 부족 등 아이를 키우기에 열악한 환경보다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느끼게 되는 수치심과 자신을 무가치한 사람으로 느끼는 감정은 자신들의 정신적 고통을 의료적 치료가 필요한 병리적인 문제로 이해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경제적 압박과 사회적 고독을 겪고 있던 한 연구참여자는 의료적 개입을 받는 것이 ‘올바르고’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말했고, 제공되는 ‘도움’이 있는데도 이를 거부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로부터도 공감을 얻지 못해 사회적으로도 배제될 것이라고 여겼다. 연구참여자들은 더 좋은 부모와 더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해, 자신이 가족에게 끼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GP와의 신뢰관계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GP의 처방을 따랐다.
GP들 또한 복지시스템이 ‘혜택’을 제공할 ‘정당한’ 건강 상태에 대한 증거를 점점 더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급자격 유지를 위해 환자들을 보호할 필요를 느낀다고 답했다. 그러기 위해 환자들에게 정신의학적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전 이 서식에 우울증과 불안장애라고 쓰겠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이게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또한, 환자들의 질병에 끼친 사회구조적인 요인을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진료실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이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다거나 주변에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GP들의 항우울제 처방은 “변하지 않는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볼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빈곤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약간 조금 더 낫게 느끼도록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연구진은 환자를 도우려는 이러한 GP의 선의가 한편으로는 빈곤한 환자들의 정신적 고통이 뇌 기능 이상 또는 행동과 생활습관에서 주로 유래한다고 보는 지배적인 관점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GP들은 빈곤한 환자들에게 말하기 치료보다 약물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일종의 감정적 노력과 헌신이 요구되는 말하기 치료에 환자들이 몰두할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저소득층 지역에서의 다량의 향정신성 약물 처방은 다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있었다.
3.
이 연구는 빈곤과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삶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정신의학적 개입의 무용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논의의 초점이 빈곤을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가 아니라 개인의 정신적 불건강 상태에서 유래하는 결과로 볼 때 제기되는, 자기책임의 강조하는 서사에 대한 우려를 다루고 있다.
빈곤과 정신건강의 관계에서 인과적 방향을 사고하는 것은 단지 사람들의 정체성과 그들이 받는 복지서비스의 유형에만 차이를 낳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국 정신건강 악화의 책임을 어디에 물을 것이며, 그래서 어느 부분에 가장 변화가 필요한가라고 따지는 일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이후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예상되고 코로나 블루 또한 깊어지는 상황에서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서사보다 사회적 수준의 책임을 묻는 서사가 필요한 이유다.
원문: 시민건강연구소
※ 서지정보
- Thomas, F., Wyatt, K. and Hansford, L. (2020), The violence of narrative: embodying responsibility for poverty‐related stress. Sociol Health Illn, 42: 1123-1138. https://doi.org/10.1111/1467-9566.13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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