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첫 경험은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첫 등교, 첫 이성친구, 첫 직장 등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첫 피처폰과 첫 스마트폰을 기억할 수 있는 세대입니다. 우리 뒷세대는 피처폰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해질 테죠.
여러분의 첫 스마트폰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꽤 오래전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해왔습니다. 2004년 구입한 SC8000이라는 PDA폰이었습니다. 이후 형제 모델인 RW6100도 정말 잘 만든 기기여서 잘 사용했죠.
예전에는 스마트폰이라는 단어도 없었습니다. 대신 Personal Digital Assistant의 약자인 PDA 기능이 들어간 폰이라고 해서, PDA폰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옛날 국내 PDA 폰 시장은 LG가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피처폰에서는 싸이언, 초콜릿 등으로 우위를 지키면서도 PDA폰 분야에서는 삼성보다 빠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랬던 LG가 모바일 사업을 접는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삼성폰과 아이폰도 써 왔지만 최근에는 V40 – V50 – 윙으로 계속 LG폰을 사용 중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글은 LG의 유작이 될지도 모를 윙에 대해, 그리고 안드로이드의 미래에 대해 짚어보려 합니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벌써 ‘윙의 스위블이 LG 스마트폰 무덤에 넣을 십자가’라고 합니다. 슬프지만 의미심장한 표현이죠.
1. 듀얼 스크린, V50의 도전은 성공했나
윙은 특이한 폼팩터 덕에 출시 전부터 회자되어왔습니다. 저는 솔직히 기대 반 불안 반이었습니다. 이전의 V50사용경험 때문입니다.
V50은 높은 완성도의 폰이었습니다. 듀얼 스크린이 없이 본체만으로도 충분히 잘 만든 폰입니다. 듀얼 스크린도 잘 쓰고 있었지만 늘 가지고 다니진 않았습니다. (듀얼 스크린은 탈부착이 가능합니다) 무거운 것도 문제였지만 듀얼 스크린을 100% 활용하는 것은 상당한 덕심이 필요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자, 여러분이 스마트폰을 세계 최초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스티브 잡스가 되었다고 치고 잠시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모든 걸 처음부터 설계해야 한다면, 스마트폰의 가운데 버튼을 “무조건 앱을 나와서 바탕화면으로 돌아가는” 용도로 쓸 생각이 들까요?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사람의 UX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가 ‘홈버튼’ 이기 때문입니다.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저는 물리 버튼이 오직 하나인데 이걸 홈버튼으로 쓰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필요한 기능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중 왜 하필 홈버튼을 적용한 걸까요. 저는 폰에서는 ‘멀티태스킹보다 한 가지씩의 일에 집중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작은 창으로 보는 멀티태스킹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되도록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사용 패턴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폰 화면 사이즈로 인해서일 수도 있고, 입력 도구가 우리 손가락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V50은 듀얼 스크린을 구현해냈습니다. 안드로이드의 3 버튼(홈/뒤로 가기/여러 앱 보기)을 양쪽 창에 보여주면서 각각의 앱이 돌아가게 했습니다. 2개의 앱을 사용하거나, 1개의 앱을 와이드 모드로 사용하는 경험은 일단 접해보면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물론 강력한 경쟁자인 갤럭시 폴드 때문에 비교도 많이 되었습니다만, 폴드보다 더 낮은 가격에 탈부착이 되어 더 가벼울 수도 있다는 강점이 있었죠.
V50의 듀얼 스크린 경험은 벨벳과 V60으로 연결됩니다. 안드로이드 하이엔드 스마트폰의 평준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입니다. 가격과 브랜드 외에는 대동소이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LG전자는 다중 디스플레이가 강력한 차별화 포인트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어필할 프리미엄폰은, 너무 앞서가선 안 됩니다. 대중이 원하는 바를 다 맞춰주면서 한두 가지의 혁신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요. 저는 그게 불안했습니다.
2. 윙의 특징과 유니크한 사용법
윙에 대한 리뷰와 분석은 웹사이트와 유튜브 동영상에 차고 넘칠 만큼 많습니다. 다들 이야기하는 포인트도 천편일률적입니다.
- 전면 카메라 노치가 없어 좋다
- 카메라 성능 좋고 짐벌 기능이 좋다
- 스위블 모드(화면을 2개로 한 모드) 시에 미디어를 보기 편리하다
- AP가 최신을 쓰지 않아 아쉽다. 무겁게 느껴진다.
이 정도의 리뷰입니다. 저도 V50에서 윙으로 갈아타며 기대 반 불안 반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용해보니 위의 리뷰들은 다 맞습니다. 타 폰과의 차별화는 결국 스위블 모드에서 이루어집니다.
스위블 모드는 한글의 모음 ㅏ,ㅓ, ㅗ, ㅜ 형태로 사용됩니다. 오타 아닙니다 ^^;; 다행히 저는 매우 만족하며 썼습니다. 각각의 용처를 좀 소개해 보자면요.
A. ㅜ 형태
가장 기본적인 모습입니다. 여러 매체에 소개된 것처럼 유튜브 등의 영상을 보기 좋습니다. 거기에 저는 하나 더, 전자책을 볼 때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우리 눈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볼수록 책을 보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합니다. 윙의 ㅜ 모드는 아래쪽 보조 스크린을 터치하며 페이지를 넘길 수 있어 책을 보는 것과 정말 유사한 경험을 하게 해 줍니다. 잘 보지 않던 리디북스 앱의 활용도를 확 높여주더군요.
B. ㅏ 형태
평소에 가장 많이 쓰는 형태입니다. 보조 스크린에 보통 유튜브 영상을 띄워두고 왼쪽에서는 웹서핑을 하거나 커뮤니티 글을 봅니다.
이 형태가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는, 윙을 안드로이드폰 + 보조 모니터 형태로 쓰기에 좋은 형태라서입니다. 일반적인 사용은 왼쪽에서 하면서 오른쪽에는 유튜브를 틀어두거나 계산기를 보거나 구글 킵의 메모를 보는 용도로 사용하면 됩니다.
C. ㅓ 형태
ㅏ 형태와 동일하게 씁니다만 자꾸 양손으로 잡게 되는 점이 다릅니다. 그런데 최근 업데이트를 통해서 ㅓ 형태도 좋은 사용법이 생겼습니다. 좌측에 터치패드를 두고 오른쪽에 웹페이지를 보는 형태입니다.
OS 업데이트 전에는 터치패드에 스크롤바가 없어, 손가락 두 개로 내려야 했다는 점이 무척 불편했습니다만 이제는 왼손으로 파지 하며 스크롤해서 글을 읽기 좋아졌습니다.
(4) ㅗ 형태
제가 많은 리뷰와 동영상을 봤지만 ㅗ 형태를 보여주는 리뷰는 아스팔트 9 게임할 때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쓸 일이 없어 보이는 형태입니다. ㅗ 형태는 동영상을 보기도 불편하고, 파지 각도도 불편하기 때문에 쓸 일이 없을 것만 같은 형태입니다만… 뜻밖의 좋은 활용법이 있습니다.
LG는 V50부터 다른 스크린에 키보드를 띄워주고 있었는데요. V50은 책상 위에 올려두고 노트북처럼 타이핑하기엔 애매한 크기여서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죠. 하지만 윙은 ㅗ 형태로 하고 위에 메모장, 아래에 풀 스크린 키보드를 띄우면 꽤 타이핑하기 좋아집니다. 익숙해지면 정말 편하고요. 이 부분은 꽤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인데 아쉽습니다. (일해라 LG 마케팅팀)
3. 윙에 대해 아쉬운 점
많은 분들이 윙의 무게(260g)에 대해 말씀하시는데요. 현 기술력으로 액정패널 2개를 넣으며 무게를 줄이는 건 어려웠을 거라 봅니다. 폴드도 무게는 282g이니 무게를 뭐라고 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윙을 쓰면 쓸수록 상판과 하판의 두께가 달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상판이 얇고 하판이 두꺼운데요. 앞서 말씀드린 ㅏㅓㅗㅜ 형태로 사용하다 보면 상판이 두꺼울 때 훨씬 안정감 있게 들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후면 케이스를 고려한 것이겠지만 방법이 없었을지 아쉬운 부분입니다.
전용 앱의 부재를 많은 리뷰에서 지적하고 있는데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하나의 앱을 두 개의 화면에서 동시에 사용하면 멋있긴 하지만 (번들의 게임들…)
앱 개발사 입장에서는 고민이 되죠. 윙이라는 폼팩터가 구글 표준도 아니고 또 어떤 폰이 이런 스펙을 가질지 모르는데 회사의 리소스를 투입해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또 기존 UI를 넘어서는 고민도 필요하죠. 그래서 앞으로도 윙 전용 UI를 가진 앱은 나오기 어려울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윙 전에 잠시 초대형 스마트워치를 쓴 적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렘포(LEMFO)라는 중국제 물건입니다. 유심을 넣어서 통화도 가능한, 일종의 팔에 붙이는 안드로이드폰입니다. (…) 저는 윙의 보조 스크린 이전에 이미 특이한 스크린의 해상도 이슈를 경험해 본 거죠.
생각보다 많은 앱이 어떤 형태로든 특이 해상도를 지원해 주는 것에 놀랐습니다. 프레임이 깨지는 앱도 있고 정상작동이 되지 않는 경우도 물론 있었습니다만, 웬만한 앱들이 이 해상도로 쓰는 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윙의 보조 스크린은 작은 크기로 인해 사용도가 작을 것 같지만 의외로 막강한 성능을 보여줍니다. 전용 앱이 없어도 충분히 휴대성 좋은 듀얼 스크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론 : 안드로이드 멀티스크린은 계속될 겁니다
안드로이드는 애플보다 훨씬 더 다양한 폼팩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무한한 제조사를 등에 업은 안드로이드이기에 가능한 강력한 특징입니다. 철저히 정해진 폼팩터를 준수하는 애플에 비해 안드로이드는 과거 자바(JAVA)처럼 세상 모든 기기에 삽입될 기세죠. 스마트 TV, 자동차, 스마트워치, 전자액자 등 다양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에서는 변화가 더뎠습니다. 손가락이라는 UI의 특징, 사람들의 UX, 앱 제작사들의 지원 등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주는 탓이죠. 이런저런 변화가 가능하겠습니다만, 현시점에 아무래도 가장 크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게 디스플레이일 겁니다. 여기에는 물리적으로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아예 세상에 없던 방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갤럭시 폴드처럼 접히는 디스플레이나 롤러블처럼 늘어나는 스크린, 그리고 홀로그램 모니터 등이 해당됩니다. 문제는 제조수율, AS비용, 가격, 안정성 등에서 아직 대중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거죠
둘째, 기존의 디스플레이를 겹쳐서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V50, 윙 등으로 LG가 해 온 길입니다. 원래 만들던 것들이니 수율, 가격 등에서 안정적인 전략입니다. 중국의 많은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이 방식을 따라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서 빠르게 매스 프리미엄폰들의 표준 방식이 될 겁니다. V50이나 윙의 방식, 혹은 변형이요.
멀티스크린에 대한 현실적인 해답을 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고객들은 써 보기 전엔 장점을 잘 알지 못합니다. 과거 헨리 포드가 사람들은 차를 보기 전엔 빠른 마차만 생각한다고 했는데 비슷한 상황입니다. 써 본 사람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LG가 스마트폰 사업을 그만두더라도, 익스플로러 프로젝트는 누군가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힘들지만 계속 혁신을 이끌어온 LG를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원문: 길진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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