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에도 발행된 글입니다.
누구나 일요일 아침이면 늦잠 자며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마다 “TV 동물농장!” 소리에 잠옷바람으로 거실에 나와 본방을 사수한다. 놓치는 편이 있을 땐 재방송을 찾아볼 정도로 애청자다.
2020년의 끝자락, 12월 20일과 12월 27일 이틀에 걸쳐 1000회 특집 방송이 방영되었다. 시청률 10%를 기록했다. 2001년 5월 1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에는 20년간 10,128마리의 동물이 출연했다.
1,000회가 방송되는 동안 동물농장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최근 967회 아파트에서 청설모 출생 이야기, 981회 국내 최초 아기 판다 출생 이야기를 비롯해 장애견을 위한 휠체어와 3D 의족 제작을 시도하여 성공하기도 했다.
397회에는 레트리버 ‘샌디’ 이야기가 소개된다. 샌디는 얼굴만 한 혹을 달고 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보호자의 동의 아래 각막을 기증하여 또 다른 생명 초롱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하고 떠난다. 최초로 각막 이식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MC들을 비롯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웃음과 감동을 넘어 진실을 알린
반면 동물농장은 단순히 웃음과 감동만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가려져 있는 어둠 속 진실을 알리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첫째로, 765회에서는 펫숍과 강아지 공장의 현실을 담았다. 우리는 길을 지나다니다가도 펫숍에서 투명 칸막이에 갇혀 기다리는 꼬물이 강아지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어디서 왔을까?
동물농장 촬영팀은 한 곳의 강아지 공장에 들른다. 창고 안 켜켜이 쌓여있는 박스처럼 철창 케이지들이 쌓여있다. 좁은 케이지 안에는 강아지가 있다. 사람이 들어오니 반가움에 꼬리를 흔들며 짖는 강아지가 있고 경계하는 목소리로 짖는 강아지도 있다. 씻지 못한 강아지들의 몰골은 둘째치고 바닥에는 분뇨에 강아지의 털이 엉켜있다. 네모난 TV 화면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듯했다. 지옥이 있다면 이 곳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처참한 환경이었다.
번식장 운영자의 인터뷰도 나온다. 정액이 담긴 주사기를 보여주며 인공수정이 임신이 잘 된다며 설명을 덧붙인다. 동물병원에서 어깨너머로 배워 제왕절개 수술도 할 수 있다고 당당히 이야기한다. 765회가 방송되던 시기에 펫숍과 강아지 공장에 대한 기사와 뉴스가 다른 매체에서도 연이어 나오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고 결국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번식장은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로 개정되었다)
펫숍에서 구매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지양되어야 하는 일이다. 방송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번식장에서 태어나 분양되지 않은 강아지들이 식용견 농장으로 가는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해를 거듭할수록 유기견은 늘어나고 있고 안락사당하는 유기견도 많아지고 있다. 펫숍에서 구매하지 않는다면 안락사를 당하는 생명도, 유기되는 생명의 수도 줄어들 것이다. 1,000회 특집에 나온 다니엘 헤니가 말했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둘째로, 973회에서는 실험동물 비글의 현실을 담았다. 비글은 온순하고 다루기가 쉽다는 이유로 실험동물로 이용된다. 973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실험동물로 평생을 살았던 비글 29마리가 실험실을 떠나 보호소에 첫발을 내딛는 장면이었다.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보면 꼬리를 흔들고 이리저리 뛰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들판을 뛰는 것도,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동료 비글의 냄새를 맡는 것도.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부끄럽고 한없이 미안한 순간이었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주말에 이런 불편함을 준다는 사실이 우려스럽기도 했지만 진실을 알리기로 했다. 강아지 공장 편은 6개월 간의 은밀한 조사와 취재를 통해 준비되어 방영되었다. 강아지 공장은 폐쇄되고, 강아지들은 입양되었고 실험동물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이외에도 ‘모피의 불편한 진실’ 편(497회)을 방영하며 의류산업에 대한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강아지 공장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사는 강아지들, 펫숍에서 강아지를 구매하는 이들, 실험동물로 살아가는 동물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변화를 기대한다
1,000회를 거듭하는 동안 대중의 인식에 맞춰 콘텐츠의 방향도 변화되었다. 강아지 공장과 실험동물 비글에 관한 회차도 인식의 변화에 따른 시도였다. 동시에 동물농장으로 인해 대중의 인식도 변화되었다. 명칭이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이 되도록 변화하는 데에 크게 공헌했다. 또한 올바른 반려동물 에티켓 문화를 정착시켰고 반려동물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널리 확산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기후위기와 채식에 대한 이슈가 급증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축산업이 제기되고 있고 한국채식연합(KVU)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채식 인구는 약 150만 명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농장동물의 현실을 외면하고서 동물을 이야기할 수 없다. 강아지의 눈을 보고서 돼지와 소의 눈을 보아야 한다. 이러한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선 대중의 인식 변화가 따라야 하고 시청자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만, 동물농장이 대중의 인식 변화에 앞장서서 깃발을 드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주말 오전 시간에 불편한 진실을 다루고 싶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따뜻한 이야기보다 불편한 이야기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시청률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농장동물 이야기를 다루는 건 제작진 입장에서는 모험과 같다. 그래도 사회의 변화에 따라 프로그램의 컨셉의 변화도 일부 필요하지 않을까?
동물농장을 진행하는 정선희 씨는 1,000회 특집에서 신동엽 씨가 동물농장을 진행하며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했다. 이는 이미 동물농장이 단순히 주말 아침에 유희와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을 넘어 동물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모든 동물을 사랑한다
동물농장에는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우리와 가까이 있는 반려동물과 길고양이, 동물원과 수족관에서 볼 수 있는 전시동물,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야생동물까지. 973회에는 실험동물까지도 다뤘다.
하지만 유일하게 ‘산 채로’ 등장하지 않았던 동물이 있다. 바로 우리가 먹는 농장동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농장동물은 거의 매회 ‘죽은 채로’ 등장한다. 동물농장에 협찬을 제공하는 하림 사료 말이다. 상품으로 출연한다. 수많은 생명의 생과 사에 대한 진실은 빛나는 포장재에 가려져 있다. 반려동물 사료는 대부분 농장동물을 사육하고 도축함으로써 생산된다. 동물농장은 1,000회가 제작되고 방영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농장동물에 대해 다루지 않았다. 인간과 법은 종에 따라, 용도에 따라 동물을 구분한다. 그러나 모든 동물은 동물(動物)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이 동물농장을 만들고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이 동물농장에 출연한다. 그리고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이 시청한다. 나는 동물농장 애청자로서 모든 동물의 다양한 얼굴을 비춰주길 기대한다. 밝히 빛나는 곳만 본다고 해서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둠에 빛을 비춰야 어둠이 사라진다.
사람에게만 행복한 동물농장이 아니라 종의 구분 없이 모든 동물에게 행복한 동물농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원문: 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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