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인터뷰
지난 금요일은 무척 바빴다. 우선 동료 교수 클래스의 학생들이 과제로 ‘장애인 삶의 나라별 차이’를 주제로 한 그룹이 공동으로 탐구하여, 조사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을 준비하는데, 나를 인터뷰하러 온 것이다.
학생들 네 사람이 내 연구실로 찾아 와 1시간 반 이상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어 오후에는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의 바티칸까지 커버하는 로마 지국장인 기자가 교황의 한국방문을 앞두고 기획한 특집기사 취재를 위해 내 연구실을 방문했다.
이미 약속된 일정이었기 때문에 그의 취재에 응하고, 비교적 오랜 시간 이런 저런 한일 종교관련, 한일 역사관련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더구나 친구 교수들과 저녁 약속이 잡혀있는 날인 데다가, 비교적 간단하지 않은 인터뷰를 연거푸 당해야 하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참 분주하구나 하는 느낌이 든 날이었다. 그러나 그 날 저녁을 최고로 가까운 친구교수들과 함께 나누며, 편안한 분위기로 즐거웠던 탓에 피로감은 이내 가셨다.
장애인 주제의 과제를 수행하는 학생들은 실제로 장애인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하자고 하니, 처음엔 무척 긴장한 양이었다. 무엇을 물을지, 어떻게 공손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할지 어려워했다. 물론 그것을 알아차린 내가 나서서 젊은 학생들의 긴장을 편안하게 풀어주었다. 이미 무엇을 묻고 싶을지 감이 왔기 때문에, 그들이 질문하고 싶은 것을 자문자답하듯이 답해 나가자 이내 학생들의 볼이 발갛게 상기되며, 오히려 나와 이야기 하는 것이 즐거워지는 것 같았다.
장애인과의 동행은 불편하기만 하지는 않다
평소 내가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관한 핵심적인 생각이나 경험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과, 미국 등에서 경험한 실제적 사례들, 현장에서 내가 직접 느꼈던 느낌까지를 소상히 말해주자, 그네들의 용기가 좀 생긴 것 같았다. 인터뷰 후반부 질문이 걸작이었다. 즉 이야기를 마무리 해갈 즈음 그들이 내게 한두 가지 한 질문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교수님, 이런 상태로 우리가 그냥 어떤 시스템 안에서 의무감 같은 것으로만 생각 없이 살아간다면, 일본이든, 한국이든, 그 어느 나라든, 근본적으로 장애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상적 사회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교수님 생각은 어떠세요?”
“우리는 자꾸 장애인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원할까, 혹은 그들이 무얼 더 해주려고 하면 오히려 미안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교수님 생각은요?”
나름 생각들을 많이 한 것 같다. 나는 동문서답처럼 대답을 했다. 우선 교육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장애인친구들과 같이 놀고, 공부하고, 살아간 경험을 지닌 이들이 제일 수준 높은 장애인 전문가가 되고, 그들은 장애인과 어떻게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의 방법을 체득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평소 생각처럼 이렇게 예를 들어 주었다.
장애인관련을 전문으로 전공하고, 그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보다, 오랫동안 나와 친구가 되어서 함께 여행하고, 함께 인생을 살아간 가족, 친구들이 훨씬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라고 말해 주었다. 혹시 그런 특별한 기회가 없더라도, 거리에서, 역에서, 공원에서 장애인을 만나 단 한 차례라도 도움을 주거나 이야기를 나누어 본 사람이 지니게 되는 생각은 그 어떤 이론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역으로 질문을 했다. 장애인과 함께 파트너가 되어서 사는 사람, 혹은 특별한 친구가 되어 같이 일을 하는 사람, 자의든 타의든 장애인과 관계를 맺고 사는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더 힘들고 부담스러운 삶을 살 것 같으냐고 물은 것이다. 그네들은 조금 망설이더니, 자신들은 사실 경험이 없어 잘 모르겠으나, 생각해 보면 분명 그러리라고 여긴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일반적인 생각, 예상 다 존중해 주었다. 그러나 내 스스로 이렇게 단언하기는 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해주었다.
장애인과 함께 어떻든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인생이 훨씬 더 보람 있고, 행복하다는 것은 이미 거의 증명된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 한 걸음 더 뻔뻔스럽게 말해 주기를 나와 관련을 맺고 사는 사람들이 모르긴 몰라도 적어도 내 장애 때문에 더 힘들거니, 부담스럽거나 후회스럽기 보다는 더 보람 있고, 의미 깊으며, 행복했을 순간이 더 많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해주었다.
인간 엘리베이터와 발상의 전환
그런 생각에까지 와 닿아 있는 나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절대로 내 장애로 인한 미안함은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그들에게 오히려 미안한 일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학생들은 놀라워하면서도 그 근본적인 생각에 깊은 공감을 표하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체험적 지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혹 이 글을 읽은 나의 고교시절, 아니면 대학시절 친구들이 있다면 아마 입가에 웃음이 번질 것이다. 내 학창시절만 해도 학교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문 시대였다. 5,6 층 건물까지도 그대로 계단밖에 없을 시절이다. 그 때 내 친구들이 만든 방식이 두 사람이 양어깨를 끼고 계단을 뛰어 오르는, 이른바 ‘인간 엘리베이터’방식이다.
그건 내 일생, 고교시절부터 시작해서, 대학, 직장, 여러 학회, 그리고 그것을 철저히 계승하여 나를 도운 이들이 내 제자들이다. 그리고 모든 시스템이 잘 되어는 있지만, 혹 세밀한 부분에서 허점이 있는 이곳 일본에서도 내가 주변에 그 방법을 전수하여 도움을 받고도 있다.
특히 여름날 그 높은 계단 몇몇 층까지를 나를 어깨로 들고 뛰어 올라간 친구들은 숨을 몰아쉬며, 온 몸에 땀이 흠뻑 베인다. 나라고 왜 아니 미안하며, 마음가득 고마운 마음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나는 간혹 이렇게 그들에게 말했었다.
“이눔들아, 어서 나에게 고맙다고 해라. 나를 들고 올라오고 나니 무척 기분 좋지? 그리고 오늘 벌써 착한 일 하나는 했으니, 약분하면 좀 나쁜 짓 한 가지는 해도 하느님이 봐 줄 거야 아마, 어서 고맙다고 하라니까.” 그러면 내 착한 친구들은, “그래그래 정말 고맙다 착한 일 하게 해주어서.”
나중에 들으면, 첨엔 뭐 이런 친구가 다 있나 했다가도 그런 나의 뻔뻔함 때문에, 언제부턴가 나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살며, 그것이 하나의 일상이며, 기쁨이었다고 말해주는 친구들도 많았다. 요즘도 가끔 고교시절이나, 대학시절의 친구들은 만나면, 그렇게 내 어깨를 끼고 계단을 올려주고 싶어 한다. 그럴 때면 어떤 친구는 간혹 아직 널 이렇게 올려 줄 정도로 자신의 허리가 젊다고 자랑을 한다. 그러고는 그 시절 널 올려주느라 허리운동이 되어 그런가 보라고, 여전히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준다.
학생들은 내 경험이야기에 보충할 질문도 다 사라졌다고 하며, 시진 한 장 찍고 눈물 그렁그렁 내 방을 떠났다. 학생들 인터뷰 덕택에 나 또한 아스라한 지난 날 친구들과의 따뜻한 기억과 보고픔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요즘의 제자들이 해 준 말 중에도 생각나는 말이 있다. “선생님이 몸이 불편하시지 않다면, 저희가 어떻게 감히 선생님을 들쳐 업고 들고 뛰며, 선생님 땀 냄새를 맡으며 같이 살 수 있겠어요? 감사합니다.”
장애는 힘든 역경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또 다른 행복도 가능하다. 그렇게 믿고 산다. 멋진 예술적 디자인으로 혹은 실용적 공간 활용으로 만들어지는 계단이 지체장애인들에게는 대부분 ‘골고다’의 고행으로 보인다.
원문: 서정민 교수의 동경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