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한스 로슬링은 오늘날 세계가 어떻게 더 나아지고 있는지를 눈에 확 들어오는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세계적인 테드(TED) 스타에 올랐고, 2012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그의 사후 그의 아들과 며느리가 펴낸 『팩트풀니스(Factfulness)』는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빌 게이츠는 이 책을 미국의 모든 대학 졸업생에게 선물했으며, 학술지 네이처는 이런 찬사를 보냈다.
이 위대한 책은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모두에게 선포한다. … 그의 유명한 발표처럼, 이 책은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편견에 제대로 된 도전장을 내민다.
스웨덴의 노벨상 재단은 로슬링 집안과 함께 “매년 봄 학기 첫날 우리는 한스 로슬링을 기억하게 될 것이며, 이는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팩트풀니스는 오늘날 세계 경제 발전이 만든 생태학적 문제나 향후 인구 증가가 가질 문제를 회피하는 등 부정적인 흐름을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세계의 진짜 모습을 감추며, 고도로 편향된 통계만을 보여주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점을 비판하려 한다.
팩트풀니스에 대한 비판에 앞서, 이 책이 가진 몇 가지 장점을 말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스 로슬링은 이 책을 통해 세계의 빈곤과 삶의 질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그는 자신의 여러 강연에서 많은 청중이 여전히 60년대식 세계관, 즉 서구 유럽과 북미의 소수 부자나라 대 나머지 다수의 가난한 국가로 구성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팩트풀니스』는 이러한 이분법이 진작에 깨졌다고 말하며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4분법을 제안한다. 곧, 하루 1달러를 버는 1단계, 하루 4달러를 버는 2단계, 하루 16달러를 버는 3단계, 하루 64달러 이상을 버는 4단계가 그것이다.
『팩트풀니스』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 인구 중 1단계(절대 빈곤층)에 있는 이들은 10억 명이며, 전기와 어느 정도의 교육, 의료의 혜택을 받는 2단계와 3단계에는 30억 명과 20억 명, 그리고 4단계(부유층)에는 10억 명이 있다. 2016년, 한스 로슬링이 강연을 시작한 지 14년 만에 세계은행은 이 구분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UN은 여전히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분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팩트풀니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까?
이 책은 세계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정말 이러한 과감한 주장에 맞는 내용으로 책을 채우고 있을까? 짧은 답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내가 보는 이 책의 세 가지 주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 이 책이 선택한 통계치들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세계의 변화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 이 책은 오늘날 기술 기반 경제의 전제 조건과 생태학적 파급 효과에 대해 침묵하며, 이는 이들이 보여주는 낙관적 변화가 실은 피상적인 사실일 뿐임을 말한다.
- 이 책이 보여주는 세계 인구 증가에 대한 무비판적, 결정론적 태도는 정치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1. 오직 긍정적 변화들만
팩트풀니스에는 ‘줄어드는 나쁜 것들’과 ‘늘어나는 좋은 것들’의 그래프가 끊임없이 나온다. 하지만 늘어나는 나쁜 것들에 관한 그래프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바다에 유출되는 기름의 감소를 보여주는 그래프는 있지만, 해양 미세플라스틱의 증가나 이들이 새와 물고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그래프는 없다. 전 세계적 기아의 감소는 그래프로 보여주지만, 비만의 증가는, 비록 책 곳곳에서 비만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보여주지 않는다. (사실 유엔세계식량계획은 2018년 최근 전 세계의 기아 인구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1인당 이산화황의 감소로 측정하는 공기 질의 향상은 보여주지만, 디젤 매연의 증가나 아시아의 공업화된 지역에 나타나는 대기오염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지역에는 수십 년 전부터 “대기 갈색 구름”이 발견되고 있다.) 인도에서만 대기 오염에 의해 사망하는 이는 2017년 11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는 1990년보다 50% 증가한 수치이다.
이 책은 자연보호의 긍정적 변화만을 담고 있으며, 검은 코뿔소나 판다, 호랑이과 같은 몇몇 대표적인 희귀종의 보존 상태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만을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연구자들이 제6의 멸종이라 일컫는 거의 모든 야생동물의 감소를 포함한 지구적 생물 다양성의 감소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그저 서구의 문제로 다룰 뿐이다.
이들은 유럽연합의 환경부 장관이 “중국은 미국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인도는 독일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고 말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며, 1인당 방출량에 주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구의 관점에서는 전체 이산화탄소 방출량이 중요하다. 중국이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사실이다.
게다가 저자들이 최근 수치를 조사했다면, 그 1인당 배출량조차 중국이 7.45톤으로 유럽의 6.4톤보다 앞선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특히 유럽은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책의 EU 환경부 장관에 대한 비판은 기본적인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또한 국가별 소득의 차이라는 개념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모든 국가는 내부적으로 소득 격차의 분포를 가지고 있지만 국가들끼리는 그 분포가 겹친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이 말하는 사회적 변수의 분포는 사회과학에서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가 간의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인은 1인당 하루 67달러를 벌지만, 멕시코인은 1인당 하루 11달러를 번다. 팩트풀니스의 저자들은 이 차이가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았고, 이는 바로 소득을 나타내는 X축을 로그 스케일로 그리는 것이다. 이들은 이 방식이 실제 세상을 더 잘 보여준다고 말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오늘날 소득 격차는 거의 사라졌다.
물론 이는 X축을 로그 스케일로 바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며, “거짓말, 뻔한 거짓말, 통계”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만든다. 미국인은 평균 하루 67달러를 벌지만, 멕시코인은 평균 하루 11달러를 번다는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런 식의 선별적인 통계 선택이 계속된다. 이 책의 몇몇 통계는 실제로 중요한 결과이지만, 그에 반하는 근거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마다 이 책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며 이들이 이야기하는 좋은 소식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된다.
2. 오늘날과 같은 경제 발전이 가지는 생태학적 파급 효과에 대한 무시
인류의 의료, 교육, 수명의 장기적 변화에 대한 로슬링의 연구는 이 책의 전체 주제다. 그러나 이를 가능하게 만든 오늘날의 기술 기반 경제에 대해, 그리고 이러한 발전이 화석연료와 지구 자원의 대량 소비를 통해 가능했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이에 관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말해서는 안 된다. 윌리엄 스테픈과 그의 동료들이 1750년부터 산업의 발전과 자원의 소모, 그리고 이에 따른 환경적 영향을 연구한 결과는 팩트풀니스의 주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들의 연구 결과, 인류의 발전은 팩트풀니스가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 50년 동안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스테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흔적이 지구 전체에 서서히 미쳤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 인간의 흔적은 1950년 이후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 시기는 거대가속(The Great Acceleration)이라 불리며 2004년 나온 책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2010년 시점까지 업데이트됐다. 이 거대가속 개념은 여러 사회경제적 변화를 포함한다. 여기에는 인구 증가, 도시화, 에너지 사용량, 수자원 소모량, 비료 사용량, 교통량 등이 포함된다. 이 모든 수치가 1950년 이후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러한 흐름은 연구자들이 “지구 시스템 흐름(earth system trends)”이라 부르는 개념에도 나타난다. 이산화탄소, 산화질소, 메탄 배출량, 해양 산성화, 열대 우림의 감소, 생물권 훼손이 그것이다. 거의 모든 수치는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유일한 예외는 극지방의 오존으로, 몬트리올 의정서 이후 1990년대부터 다시 회복되고 있다.
거대가속은 고도의 물질 중심 문명화의 결과이다. 1940년에서 2015년 사이 구리 사용량은 240만 톤에서 1870만 톤으로, 알루미늄 사용량은 80만 톤에서 5830만 톤으로, 철 사용량은 1억 1천만 톤에서 11억 톤으로 증가했다. 같은 시기,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와 시멘트 생산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또한 수십 배 늘어났다.
글로벌 생태발자국 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는 이러한 지구 자원의 남용을 계산해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를 계산했다. 이는 인간의 전체 소모량이 당해 자연이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만큼을 넘어서는 날이다. 30년 전에는 그날이 10월 15일이었지만, 2018년에는 8월 1일로 당겨졌다. 이 단순한 개념에 대한 반박들도 존재하지만, 지구가 가진 자원의 한계를 계산하는 다른 방법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팩트풀니스의 기본 가정은 거대가속을 가능하게 만든 경제 성장이 21세기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며, 그 시점에서 지구 인구는 50% 정도 증가하리라는 것이다. 앞으로 50년 뒤, 모든 인류가 로슬링의 3단계나 4단계에 도달할 경우 인류의 지구 자원 소모량은 지금보다 8~10배 많아진다. 이 일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오늘날의 기술 기반 경제를 어떻게 바꿔야 대부분의 인류가 적당한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을까?
팩트풀니스는 이런 질문은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문제로 서구 기업들이 어떻게 해야 새로운 시장을 놓치지 않을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 만약 당신이 구세계인 서구의 회사에 근무한다면, 당신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중산층 소비자가 탄생할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시장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 서구 시장은 진짜 시장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팩트풀니스의 이러한 결론은 자신들이 선택한 통계들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이런 편향적인 통계에 기반한 예측이 신뢰성을 가지기는 힘들 것이다.
3. 지속적인 인구 증가의 가능성: 이건 그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세계 인구 예측은 팩트풀니스의 중요한 주제이며, 이 책이 주장하는 낙관적 미래를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용한 분석 방법은 여러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 가장 최신 예측인 UN이 2017년 발표한 인구 예측은 세계 인구가 팩트풀니스의 예측보다 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약 70억 명의 지구 인구는 2100년, 100~130억 명 사이가 될 것이다.
팩트풀니스는 다르게 말한다. 금세기 말이 되면 아이들의 수가 더 이상 늘지 않아 전 세계 인구가 안정화되리라 전망한다. 특히 저자들은 유아 사망률의 감소는 직접적으로 출산율의 감소를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생존자가 늘어날수록 인구는 줄어듭니다.
금세기 말 인구가 안정화될 것이라는 주장, 미래의 인구 성장은 오늘날 아이들의 수가 결정한다는 주장, 유아 사망률 감소가 출산율 감소로 이어지며 인구 성장을 억제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모두 검증된 것이 아니다.
우선 UN의 인구 예측이 21세기 들어서도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인구 예측은 특히 차이가 크다. 2010년 UN은 금세기 말 아프리카의 인구가 36억 명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7년 뒤 그 숫자는 9억이 늘어난 45억 명으로 바뀌었다. 특히, 베이지안 확률에 기반한 새로운 예측은 2100년의 세계 인구에 매우 큰 불확실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세계 인구가 안정될 확률을 30% 내외로 보고 있다.
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유례없는 출산율 감소가 일어나지 않는 한 세계 인구가 안정화되기 힘들다는 뜻이다.
둘째, UN의 보고서는 오늘날의 아이들 수가 미래의 인구 증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미래의 인구가 아이들의 수보다는 미래의 출산율에 크게 의존한다고 말한다. 곧, 높은 출산율을 가진 국가들의 경우 “겨우 15년 뒤인 ‘2030 지속가능개발을 위한 어젠다’에서도 인구 예측에 매우 큰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 출산율 감소가 예상보다 느릴 경우 이후 모든 시기에 인구는 더 크게 증가한다.”
셋째, 낮은 유아 사망률과 낮은 출산율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팩트풀니스는 이집트의 유아 사망률이 1960년 30%에서 오늘날 2.3%로 낮아졌으며, 이를 ‘공공의료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이집트의 부모들은 모든 자녀가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 따라서 대가족을 꾸려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만약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이집트의 인구는 이제 안정됐어야 한다. 하지만 2000년 7천만 명이던 이집트 인구는 2017년 9,700만 명이며, 2100년에는 2억 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 또한 비슷한 경향을 가진다. 예를 들어 나이지리아의 유아 사망률은 1980년대보다 1/3로 줄었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증가했으며 이는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유아 사망률의 감소와 높은 출산율에 따른 아프리카 국가의 인구 증가는 두 숫자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UN은 2017년 1억 9100만 명인 나이지리아의 인구가 2100년에는 8억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했다. 5,700만 명인 탄자니아의 인구는 3억 400만 명으로, 8,100만 명인 콩고민주공화국은 3억 3,900만 명이 될 것이다. 같은 발전 단계를 거친 아시아보다 아프리카가 더 높은 출산율을 가지는 이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팩트풀니스에는 설명이 없다. 사실 이 문제를 언급하지도 않는다. 다른 연구자들은 대가족을 지향하는 지역적 특성, 피임에 거부감을 가지는 종교적 특성, 그리고 인구를 국력으로 생각하는 정치인 등을 이유로 꼽는다. 탄자니아의 대통령인 존 무구풀리는 국가가 사람을 필요로 하는 이때, 피임하는 여성은 게으른 여성이며, 피임약의 복용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1960년대, 여러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가 발전했고, 의료 상황이 개선되었고, 교육 수준이 높아졌으며 유아 사망률과 출산율이 낮아졌다. 그러나 출산율과 사망률의 감소는 경제발전에 따른 유아 사망률의 감소가 출산율의 감소로 인과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란과 중국, 한국에서 출산율의 감소를 만든 것은 국가가 주도한 가족계획이었다. 중국의 경우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기 전에 출산율은 절반으로 줄었으며, 이러한 출산율의 하락이 오히려 급격한 경제 발전과 빈곤의 감소를 이끌었다.
기예보(Guillebaud)는 낮은 출산율이 경제 발전에 선행하며, 경제 발전이 다시 낮은 출산율을 이끈다고 주장한다. 여러 연구자는 오늘날 개도국 원조의 1%만이 가족계획에 사용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과 함께 오늘날 국가적인 가족계획이 사라진 현실을 비판한다. 사하라 이남 국가에서 여전히 높은 출산율이 유지되는 것이 이들의 경제 성장을 늦추고 빈곤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일 수 있다.
양가적 입장과 결정론
가족계획에 대한 팩트풀니스의 입장은 양가적이다. 이들은 1984년 여성 1인당 출생아가 6명에서 15년 뒤 2명으로 줄어든 이란의 ‘가족계획의 기적’을 언급한다. 팩트풀니스에 따르면,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콘돔 공장과 젊은 약혼자들에 대한 의무적 성교육 등 국가가 직접 이에 투자한 결과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이란의 성공에서 어떠한 결론도 끌어내지 않으며, 앞서 말한 이집트의 성공과도 비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란의 전략이 다른 나라, 예를 들어 무슬림 국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몇 년 전, 한스 로슬링은 한 스웨덴 일간지 기자로부터 인구 예측을 상향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인지 질문받았고 이렇게 답했다.
그건 그냥 일어나는 일입니다. 마치 내일 태양이 어떻게 떠오르는지를 묻는 것과 같지요.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결정합니다. 인구 증가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건 어떤 상수와 같습니다. 이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의 이런 답변을 보면 팩트풀니스가 왜 인구 증가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저자들은 모든 인류가 오늘날 가장 부유한 10억 명이 누리는 삶의 수준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인구 증가가 이런 삶의 수준에 도달하는 데 어떤 영향을 줄지, 그리고 자원의 사용과 생물 다양성, 전 지구적 탄소 배출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크리스트(Crist) 등에 의하면 인류는 현재의 인구 및 증가율의 수준에서도 생물 다양성의 감소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의 빈곤 국가가 부를 쌓고 자원을 소모하게 될 미래에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 말한다. 어떤 연구자들은 변곡점에 다다른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오늘날의 탄소발자국만 감소시킬 것이 아니라 미래의 탄소발자국 감소를 위한 인구 감소에도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구 증가와 지구 자원 감소는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형평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폴 에를리히는 안나 에를리히와 함께 1960년 출간한, 종종 오해받는 고전인 인구폭탄(The Population Bomb)에서 “지구를 파괴하는 것은 많은 인구와 부유한 이들의 과소비의 조합”이라고 주장했다. 팩트풀니스는 국가 간, 대륙 간의 격차 감소에 관한 수많은 그래프를 보여주지만, 국가 내 불평등 증가에 관한 그래프는 단 한 장도 보여주지 않는다. (매년 발간되는 세계 불평등 보고서 등 이에 관한 자료는 셀 수 없이 많다)
팩트풀니스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양가적’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인류의 발전과 백신, 교육, 수명 등의 다양한 통계로 드러나는 그들의 에너지와 열정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 책의 제목이 『팩트풀니스: 세계의 긍정적 변화들』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팩트풀니스는 편향적 통계 선택의 잘못만 저지른 것이 아니다. 이 책의 분명한 주제인 세계의 인구 증가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금세기 말까지 50%의 인구 증가는 오늘날의 아이들 수에 의해 결정된 것이며, 정부 정책으로 바뀔 수 없을 뿐 아니라 2100년이면 정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언급한 보고서에서도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그 보고서들은 향후 수십 년 동안의 출산율이 미래의 인구 증가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주제와 다른 여러 주제에서 팩트풀니스는 경제개발 결정론을 따른다.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의 ‘남성 중심 성차별주의’는 ‘겨우 60년 전 스웨덴에서도 존재했던 가부장적 가치처럼 사회적 경제적 발전에 따라 사라질 것’이라 말하는 식이다. 문화, 정체성, 종교, 관습, 법률, 국가기관보다 경제 발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2017~18년 스웨덴 왕립학회의 여러 스캔들과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인공기관 이식술의 실패로 노벨상의 명성은 상처를 받았다. 노벨 재단은 자신의 영향력을 되찾을 방법으로 로슬링의 이름을 다양한 행사에 활용하고 있으며, 모든 스웨덴 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팩트풀니스를 선물받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 유명인의 세계관을 전파하는 것은 학계의 가장 뛰어난 연구자를 찾아 보상을 주는 노벨 재단의 원래 목적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노벨 재단이 팩트풀니스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자신들의 과학적 명성을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행동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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