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저녁과 밤 내내 미국 언론은 국가 비상사태 분위기였다. 주요 방송사들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워싱턴 DC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미국이 이 정도로 충격에 빠지는 모습은 9/11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코리 부커 상원의원은 의회연설에서 “미국의 의회가 습격을 당한 건 두 번이다. 한 번은 1812년(영국군의 침략)이었고, 다른 한 번이 이번에 일어난 폭도들의 습격”이라면서 “둘 다 개인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쳐들어왔다. 한 번은 국왕을 따르는 군인들이고, 다른 하나는 트럼프를 따르는 폭도들”이었다고 규정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펜스 부통령에게 지금 당장 트럼프의 대통령직을 정지시키라고 요구했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의 요구에 동참한 거다. 트럼프의 임기는 약 2주 남았다. 하지만 4명의 사망자를 낸 의회 습격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정치권은 트럼프가 남은 2주 동안 또 무슨 일을 할지 알 수 없다며 긴장 중이다.
트위터가 폭력 선동을 이유로 트럼프의 계정을 12시간 정지한 직후 페이스북도 24시간 계정 정지했는데, 결정을 바꿔서 트럼프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계정을 정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페이스북 역시 트럼프가 앞으로 2주 동안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판단한 거다.
트럼프가 사임하지 않겠다면 그를 끌어내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탄핵을 다시 시도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헌법 수정조항 25조를 발동하는 거다. 대통령 유고 시에 부통령의 직위 승계를 규정하는 25조에는 대통령이 직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부통령이 내각, 혹은 의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직을 강제로 정지시키고 자신이 직위를 승계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문제는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unable to discharge the powers and duties of his office)에 대한 정의다. 원래는 대통령의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져서 직무를 수행하지도 못하고 사임하지도 못하는 경우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인데, 이걸 트럼프에게 쓸 수 있느냐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다: 지난 선거 이후로 트럼프는 심각할 정도로 비정상적인(erratic) 행동을 하고, 심지어 자신의 측근들도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하는 부정선거를 혼자만 주장하는 망상에 빠져 있다. 특히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의회로 몰려가라는 사주를 한 것은 민주주의 핵심기관을 공격하라는 지극히 무책임한 짓이었다. 그런데 그가 남은 기간 그런 행동을 고칠 거라고 믿을 근거가 없다.
트럼프를 즉시 하야시키라는 건 민주당 의원들만의 주장이 아니다. 6일 사건이 벌어진 후 애틀랜틱에는 「Remove Trump Tonight」라는 칼럼이 올라왔고, 1월 7일 CNN은 「Vice President Pence, remove Trump now」, 슬레이트는 「Impeach Trump Now」, LA 타임스는 「Don’t let Trump retire comfortably. Impeach him now」라고 요구했다.
7일 낸시 펠로시는 펜스에게 25조를 발동하라고 요구하면서, 하지 않겠다면 당장 탄핵(impeach)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2주밖에 남지 않았지만 의회가 회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원하면 표결을 할 수 있고, 트럼프는 임기가 한 시간만 남았어도 탄핵당할 수 있다. 통과되면 역사상 두 번 탄핵당하는 대통령이 되는 거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헌법은 바이블이라고 썼는데, 미국인들에게 국회의사당은 ‘temple’이다. 실제로 신성한(sacred) 장소라고 거침없이 말할 만큼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고, 미국인들은 정말로 그렇게 믿고 행동한다.
그런 장소에 트럼프라는 개인을 숭배하는 폭도가 쳐들어가서 시설을 부수고 물건을 훔치는 야만스러운 행동을 한 거다. 7일은 교통부 장관인 일레인 차오가 어제 일의 충격으로 더 이상 내각에 남아 있을 수 없다며 사임했다. 차오는 미치 매코널의 아내이고, 지난 4년 동안 트럼프의 동조자였다. 따라서 양심선언이라기보다는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는 쥐에 가깝다.
어차피 쥐들은 배를 떠날 거다. 하지만 사람들이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지난 4년 동안 트럼프에게 조언을 하고 그가 황당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트럼프는 ‘소독제를 몸에 주사해보거나 햇빛을 몸 안에 넣는 방법을 생각해보자’던 사람이다) 보이지 않게 말리던 측근들이 거의 다 떠났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이미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이 정도라도 대통령 꼴을 유지했던 것은 주위의 비교적 정상적인 인물들 때문인데, 그들이 없이 남은 2주를 보내면 미국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주위에 사람이 없어지고 고립되면서 행동이 전과 다르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많은 사람이 이런 상황을 계속 경고해왔지만, 결국 그 참상을 본 후에야 (혹은 트럼프의 패배가 확인된 후에야) 공화당원들이 움찔하기 시작한 거다.
펠로시 하원의장과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앞으로의 2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당장’ 해임을 추진하는 거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이런 만행을 저지른 트럼프를 조용히 ‘전임 대통령’이 되도록 놔두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많은 미국인이 생각하는 게 그거다. 중대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정치적인 이유로 눈감아주는 건 지금 당장의 정치적 편의를 위해 국가의 미래를 위협할 ‘민주주의의 적들(enemies)’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일이다.
국가의 원수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정치적인 선처로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선례를 남기는 일은 민주주의가 앞으로도 그만큼 후퇴할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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