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사하겠습니다!
회사를 관뒀다. 그것도 1년 2개월 만에. 들리는 말이 많았다. 누군가는 오랜 시간 프리랜서로 일을 해 회사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드디어 지쳐 나가떨어진 것이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나는 9여 년을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다음에도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텨왔다. 입사를 했다고 해서 그 안간힘 쓰는 태도가 당장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다소 ‘튀는’ 직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퇴사가 쉽고 회사가 만만한 건 결코 아니었다. ‘내부자’로 일해보고 싶다는 간절함과 끈끈한 동료애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에, 회사는 내게 한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2. 하마터면 모르고 버틸 뻔했다
힘을 빼고 살자고 말하는 에세이들이 서점가를 장악하던 늦은 봄. 나는 한 스타트업에 입사를 했다. 원하던 직장 생활을 시작해 잔뜩 기합이 들어간 나는 적당히 힘을 빼고 살자는 트렌드에 좀처럼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언제든 해산할 수 있는 임시 조직이 아니라 한솥밥을 먹는 진짜 동료가 생겼는데, 이제야 누군가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제작자가 아닌 한 서비스를 만들고 이끄는 기획자가 되었는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패기 넘쳤던 내가 1년여 만에 퇴사를 하게 된 것이다. 대다수의 직원이 놀랐고 나는 더더욱 놀랐다.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회사와 몇 차례 면담을 했다. 처음엔 누구나 겪는 번아웃일 뿐이니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했고, 두 번째엔 이 회사가 아니면 어디에서 너를 이만큼 인정해 줄 것 같냐며 으름장을 놓았다. 급기야 프리랜서로 오래 일해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라며 모든 화살을 나에게로 돌렸다. 누구나 겪는 번아웃을 이겨내지 못한 어리석음과 부족한 끈기. 프리랜서 출신이라는 특수한 이력.
꺾여버린 열정과 고갈된 에너지의 원인이 모두 나에게만 있는 것 같았다. 면담 하고 퇴사 날짜를 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진짜 번아웃’을 맛봤다.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로 설득당할 때마다 늘 똑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하루하루를 그냥 버텨내기만 하면 그 끝엔 뭐가 남지?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 뻔한 질문이었지만, 그렇게 묻고 나면 결심이 더 확고해졌다. 내가 좋아했던 일을 미워하고, 사랑했던 직장을 원망하기 전에 이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수 차례 반복된 설득 끝에 마침내 나의 퇴사는 수용되었다. 꽤 복잡해 보였던 나의 내적 갈등도 회사가 정의한 번아웃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3. ‘나’는 어떠한 일꾼인가, 회사는 어떠한 조직인가
번아웃.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어 당시의 나는 눈을 뜬 거의 모든 순간을 오로지 일 생각만 했다. 같이 고생하는 동료들은 오랜 세월 함께한 가족 같았고, 내가 만든 서비스와 콘텐츠는 내 자식처럼 소중했다. 지나친 열정에 스스로 지쳐버린 부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번아웃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지쳤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할 즈음 일을 하는 이유나 동기도 흔들렸던 것 같다.
회사는 인력을 충원하고 새로운 기능을 늘려가며 빠르게 성장했다. 입사 후 새로운 서비스를 론칭해 운영해온 내게 팀장직 제안은 자연스러운 수순인듯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당혹스러웠다. 일단 새로운 걸 만들어본다. 괜찮은 것 같으면 사람을 뽑아 일을 나눠준다. 형태나 구색을 갖춰놓은 다음에는 실무에서 빠져나와 회의와 보고만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방향을 제시한다. 내가 만들어놓은 틀이 점점 더 완성되어 갈수록, 내가 어디까지 쫓아가야 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잘 되어가?”라는 대표님의 인사가 불편해졌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라는 후배들의 질문에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기분이랄까. 나는 관리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혹은 아직 그만큼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고, 성장에 급급한 회사는 개인의 성향이나 동기를 헤아려줄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의 저자 닐 도쉬와 린지 맥그리거는 ‘동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의 성과를 이끄는 ‘직접 동기’와 일을 방해하는 ‘간접 동기’를 합산한 것을 ‘총 동기지수’라 일컫는데, 총 동기지수가 낮을수록 일의 성과와 만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나의 경우 팀장 대행직을 맡은 기점으로 총 동기지수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일개 사원이었던 이전의 나는 새로운 서비스를 론칭하고 운영한다는 사명감을 안고 자발적으로 일을 벌였다. 배우고 성장한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타사에는 없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만든다는 자부심에 도취했다. 그래서 촉박한 일정과 줄지 않는 업무량도 달게 품을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실수와 불만족은 있었지만, 이다음은 더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자신감을 갖게 했다. 고객의 피드백을 모으다 보면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직접 동기들로 충만했던 것이다.
반면 팀을 지휘하는 일을 겸해야 하는 관리직이 되자 각양각색의 압박감이 늘어났다. 일의 즐거움보다 회사의 지시, 촉박한 일정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조금씩 성장한다는 믿음보다 우리 팀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가슴이 조여왔고, 일단 만들고 나면 내 손을 떠나게 된다는 걸 몇 차례 경험하고 나니 내 일인데도 내 일 같지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그저 ‘해야 하니 하는 일’이 되어버리자 매일 아침이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조직의 몸집이 커지자 들리는 말도 많아졌다. 이전엔 응원해 주었던 타팀의 동료들이 이제는 “너 때문에 야근을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일하는 티를 내야만 하냐”라고 불만을 제기해왔다. 회사는 비대해진 크기에, 나는 달라진 역할에 적응해야 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애써 위로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뾰족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동료가 아닌 경쟁자가 되어 있었고, 야근을 해서라도 해내는 것이 유별나 보이는 문화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조금만 실패해도 그 공격이 나를 향할 것이라는 공포가 나를 지치고 움츠러들게 했다.
전체 최적화를 방해하는 요소 ‘내부 경쟁’
- 내부 경쟁이 없을 때 → HOW TO. 왜 그렇지?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에 대한 고민”
- 내부 경쟁이 있을 때 → WHO, HOW MUCH. 누가 그랬어? 얼마나 할 거야? “책임 회피와 질책, 수치를 통한 평가”
내가 보는 나와 회사가 평가하는 나의 간극이 크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나는 직장인으로서의 경험이 적다는 것을 꽤 의식했다. 그래서 못하겠다는 말 대신 해보겠다고 했고, 그 경험을 내공으로 채우고 싶었다. 튀는 사원으로 주목받는 것이 불편했고, 열등감을 들키지 않으려 동료들과의 관계에 크게 의지했다.
반면 회사는 나를 리더십 있는 사람으로 봤다. 한 서비스를 론칭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조직을 자신감 있게 이끌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언론의 인터뷰 요청과 같은 대외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나를 뜻밖이라며 의아해했고 직접적으로는 “불안정한 프리랜서 생활을 길게 한 만큼 빨리 승진하고 한 회사에 정착하는 것이 너의 목표이지 않냐”라고 나를 단정 지었다.
‘내가 본 나(Reality)’와 ‘남이 본 나(Image)’ 사이의 거리는 꽤 멀었고, 스스로도 분명하게 정의하지 못한 ‘되고 싶은 나(Identity)’의 간극은 더더욱 넓었다. 한마디로 ‘나’라는 브랜드는 건강하지 못했다.
4. 다시 쓰는 자기소개서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첫 직장 생활을 훌륭히 해내지 못했다는 열패감은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그 상태로 구직하고 새 직장에 적응하고 또다시 구직하는 사이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우주를 품을 것처럼 기세등등했던 2018년의 내가 이제는 아주 작은 점이 되어 취업 시장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퇴사 사유. 구체적으로는 왜 1년 2개월밖에 일하지 않았냐고 물으면 납득할만한 이유를 답하기가 어려웠다. 다수의 기업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보다 ‘버텨낸 시간’으로만 나를 평가하는 것 같았다. 그 약점을 가리는 것에 급급해진 나는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며 자신감을 잃어갔다.
1차 인터뷰를 끝낸 어느 날, 한 면접관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2차 인터뷰에서는 나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신 있게 해보라고 했다. 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고. 선뜻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농담 같았다. 자신감은 그렇다 쳐도 ‘내 이야기’를 ‘더’하라니.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만큼 온통 내 이야기로 가득한 글을 써본 적 없다. 인터뷰 내내 나의 과거에 대해 떠들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더 하라는 말인가.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집요한 면접관이 되어보기로 했다. 시작은 10여 년 전. 왜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는지를 떠올렸고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고 행복하게 했는지 되물었다. ‘프리랜서 출신이라 번아웃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말끔하게 정리된 나의 첫 회사 생활도 다시 끄집어냈다. 내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추상적인 말들로나마 설명해 보였다. 꽤 긴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는 귀찮은 일이었지만 하고 나니 나라는 사람이 새롭게 정리되고 발견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가슴이 벅찼다. 면접관의 말이 갖는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았다.
그래서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덕에 보통 직장인들은 해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웬만한 변수에도 어찌어찌 대처해내는 임기응변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1년 2개월은 분명 짧은 시간이지만 그 기간 나는 무언가를 “했다”. 촉박한 일정, 무한대의 업무량에 지지 않으려 스스로 동력을 찾아 나섰고 없던 서비스를 만들고 안착시켰다.
물론 ‘나’라는 브랜드를 새로이 정리하고 태도를 달리한다고 해서 당장에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생겨나는 드라마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감 넘치는 에너지로 면접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하지만 실망의 농도가 달라졌다. 내 본모습을 솔직히 보여주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나의 그 회사의 핏이 맞지 않는 것일 뿐. 나에 대해 되묻고 쓰며 정리하면 할수록 나는 그리 나쁘지 않은 일꾼처럼 느껴졌다.
5. 非마케터도 알아야 할 브랜드, 브랜딩
20여 년간 SPC그룹의 마케터로 일하며 지금은 위기의 조직을 ‘오래가는 브랜드’로 탈바꿈 중이라는 ‘김수진Works’의 김수진 대표. 마케터도, 컨설턴트도 아닌 나는 그녀의 강의를 들으며 자연스레 나의 퇴사 경험과 구직 과정을 떠올렸다.
이 강의는 마케터만을 위한 강의가 아니다. ‘마케터가 어떻게 일해야 하며, 잘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라는 강의 소개 글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일꾼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꽤 많이 남은 직장인이라면, 한 회사에 평생을 바칠 생각이 없는 요즘 시대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들어야 하는 강의라고 말이다. 물론 버티는 것에만 가치를 둔 사람들은 예외일 수도 있다. 하지만 10명 중 단 1명만이 자신의 일에 만족한다는 대한민국에서. 평균 3.1회 회사를 옮겨 다닌다는 요즘 시대에. 행복과 만족을 버리고 기회만 좇는 것이 최고의 능사일까. ‘나’라는 브랜드의 경쟁력을 갖춰야만 한다.
물론 이 강의는 구직 활동을 위한 강의가 아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방법이나 효과적인 면접 노하우 같은 이야기는 단 한 문장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공한 직장인으로 살아남는 법’ 같은 것을 설파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30여 년간 실무자로 일한 한 마케터의 경험담과 실무에서 얻은 지식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의 경험을 대입하게 하고 ‘나의 일’과 연관 지어 집중하게 한다.
마케터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강의겠지만 나 같은 비 마케터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강의이다. 디자이너, 개발자, 사업가, 혹은 프리랜서 작가여도 괜찮다. 브랜딩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사람과 일에 관한 이야기이니까.
브랜드와 브랜딩 = 사람과 일
브랜드도 사람과 같아요. MBTI로 성격의 유형을 분석할 수 있듯이 브랜드에도 원형(archetype)이라는 게 있죠.
브랜드에는 그 사람의 특징과 히스토리, 생각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인터뷰는 브랜딩 과정의 필수죠. 운영 가치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책을 묻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2대째 이어져 온 피터팬제과점은 옛것을 이어 미래를 만들어요. 다른 빵집에서는 사다 쓰는 걸 그곳에선 만들어 쓰죠. 특히 팥빵이 인기인데 이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 상당이 길고 수고스러워요. 그래서 ‘팥을 짓다’ ‘아몬드를 빻다’와 같은 카피가 나오고, 그 과정을 상징하는 디자인이 나오게 되었죠.
미국에 본사를 둔 이원(EONE)이라는 시계 브랜드는 시각 장애가 있는 친구를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목적으로 시작됐어요. 그리고 만져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계를 완성했죠. 시켜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해요.
잘되는 브랜드는 기본에 충실해요.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에는 이런 대사가 있어요. “극진히 모셔야 해. / 모신다고요? 손님을요? / 아니, 팥들. 여기까지 힘들게 오셨으니까.”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담겨있는 대사예요.
- ‘김수진Works’ 김수진 대표
6. 강의를 듣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일 잘하는 마케터가 되기 위한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를 듣고 엉뚱하게도 나는 ‘나의 일’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정리했다. 이뿐 아니다. 부지런하고 호기심 많은 30년 차 마케터의 살아 있는 경험담을 듣다 보면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사소하게는 ‘빵’에 관한 것.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유년 시절부터 10년 넘게 부산을 대표하는 한 지역 빵집을 애용해왔다. 그런데 내 마음속 ‘그리운 고향 빵집’은 고작 2–3년 들린 게 다인 서울 연희동의 빵집 ‘피터팬 제과점’이다. 맛도 맛이지만 피터팬만의 ‘이야기’와 ‘차별성’에 매료되었고 설득당했기 때문인 것 같다.
‘시장조사’라 불리는 수집과 기록, 분석에 대한 관점도 달라질 것이다. 어떤 직군에서든 시장조사는 중요하다. 새로운 영감을 주고 남다른 관점을 갖게 하는 김수진식 시장조사의 노하우는 「관점을 바꾸는 시장조사, 엄청난 여행이 기다린다!」로 이어갈 예정이다.
이 글은 결국 김수진 대표의 강의를 알리고 홍보하는 콘텐츠에 지나지 않겠지만 순수한 나의 진심이 조금이나마 전해졌으면 좋겠다. 프로일잘러가 되고 싶은 욕심 많은 일꾼, 더 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은 성실한 리더, 일과 삶 사이에서 방황하며 자신감을 잃은 경험이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이 이 강의로 새로운 동력을 얻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나’라는 브랜드를 발굴해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켜가면 좋겠다.
[김수진] 김수진식 일하는 법 시즌 2, 세우는 힘과 유지하는 힘
죽어가는 회사와 브랜드를 살리는 김수진식 일하는 방법, 확장 특강 Zoom라이브! 2021년 1월 6일까지 얼리버드 40% 할인 중입니다.
🎯 이번 강의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예요
- ‘가치’에 대한 정의와 방향성: 내부 핵심 가치 vs 고객 가치 (린씽킹 관점으로)
- 지속가능한 브랜딩: 지속 가능을 위해선 오히려 변해라
- 로컬 브랜딩: 콘셉트에서 커뮤니티로
- 사업 계획의 본질과 형식: 제대로 하는 리뷰가 계획이다!
- 학습법: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남는 법, 멈추면 안 하느니만 못한 학습
🙆🏻♂️ 이 강의를 누가 들으면 좋을까요?
- 우리의 조직이나 회사가 더 커지길 바라는 분
- 마케팅과 브랜드, 업의 본질의 관점을 세우고 싶으신 분
- 경영과 마케팅, 브랜딩이 결국 다른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