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홍일입니다. 지난 글에 이어 오랜만에 주니어 마케터분들께 바치는 편지를 쓰네요. 저희 팀 마케터분에게 말씀드렸던 내용이 퇴근 전에 생각나 끄적여 봅니다.
본디 저는 마케팅팀의 회의·미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앉아 의자를 맞대고 함께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타 팀과 협의할 부분이 있거나 집단지성이 필요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회의실·미팅룸으로 가지만요. 그게 요즘 트렌드에 맞는 것 같아요. 방금 전까지 책상에서 하던 업무를 멈추고 회의실에 들어가서 헛기침하며 “아젠다가 뭐냐면…” 하는 미팅 정말 극혐합니다.
밀도 있는 이야기를 못 하지 않느냐?
이런 반문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데이터 뽑아보고,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도 서로 모니터 돌려가며 하는 쪽이 더 쉽습니다. 각자 모니터 보면서 이야기한다 해도 모두가 마케팅에 열정적이면 밀도와 온도가 높습니다. 회의실 책상, 회의실 의자가 결정하는 게 아니죠.
오늘 드릴 이야기도 ‘무릎 미팅(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말 그대로 무릎 맞대고 자리에서 의자 끌고 와 이야기하는 미팅이죠)’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시작해 보겠습니다.
1. 콘텐츠
잠시 ‘라떼’를 따라 보겠습니다. 제가 막 마케팅을 시작했을 때는 SNS와 GDN이 지금처럼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메인은 키워드 광고였고, 네이버 검색광고는 ‘슈퍼 갑’이었죠. 입찰도 수동으로 봤습니다. 순위를 차지하거나 지키기 위해 반영 속도가 10분씩 걸리는 입찰 시스템과 10원 단위로 씨름했죠. 그러다 등장한 SNS는 정말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담벼락(피드)라는 곳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올라왔습니다. 그러다 중간중간 흥미로운 것들이 보여 눌러 보면 쇼핑몰이었습니다. 그걸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온라인 마케팅을 관통하는 단어가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마케팅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느 타이밍에 얼마를 넣는지, 어느 자리를 차지하는지, 배너에 얼마만큼의 예산을 부어 몇 개 안되는 소재를 사용하는지의 싸움에서 유저 친화적인, 유저가 참여할 수 있는, 충동구매를 일으킬 수 있는 등의 다양한 요소가 소재에 녹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적은 금액으로도 유저의 반응을 살필 수 있게 되었고, 생각해볼 수 있는 수치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지금, 콘텐츠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마케팅이라는 영역을 떠나 공감각을 다루는 모든 영역에서 강조되기 시작했죠.
우리는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콘텐츠죠? 충동구매(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그렇다면 자꾸 충동구매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래야만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에 의해서 인터넷 쇼핑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장 신발이 떨어져서, 샴푸가 떨어져서, 쌀이 떨어져서, 잘하는 변호사가 필요해서 등등이 그렇죠. 이들은 대부분 검색을 합니다. 그래서 검색 광고의 CTR은 대부분 높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옷장에 옷이 그득그득 쌓이다 못해 내다 버리는 와중에도 우리는 옷을 사들입니다. 냉장고가 미어터져도 음식을 삽니다. 쓰레기통이 있어도 또다른 쓰레기통을 구매합니다. 면도기가 있어도 더 좋아 보여서, 예뻐 보여서, 이 앱을 설치하면 시간이 금방 갈 것 같아서, 이 서비스를 사용하면 삶의 질이 올라갈 것 같아서 구매하고 가입하고 설치합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컨텐츠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충동구매를 일으킬 수 있는 컨텐츠는 어떤 것일까요?
2.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확실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마케터가, 회사가, 디자이너가 생각했던 대로 유저들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A/B테스트가 필요한 것 입니다.
10년 정도 마케팅 일을 하면서 뵌 분등 중 ‘디자이너 출신 마케터’ 분들도 계셨습니다. 대부분 콘텐츠 마케터 분들이시죠. 소위 잘한다는 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10분 중 8~9분은 이 말씀을 하시죠.
아, 소재에 디자인을 강조했던 과거가 부끄러워요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디자인은 보기에 예뻐 보이고 미적인 부분을 강조할 수 있지만, 충동구매욕을 자극시키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대부분 “와, 이 광고 정말 예쁜데?” 정도의 리액션에서 그칩니다. 그 다음 단계인 “사볼까?” 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소구점이 미약했거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1억을 들여 심미적으로 끝내주는 소재를 만들 바에야, 100만 원을 들여 소구점을 가진 소재를 만드는 게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콘텐츠는 디자인이 아니고, 예술이 아닙니다. 소구점을 품은 소비재일 뿐 입니다. 어설프게 예술하지 마세요. 지금 짜쳐보이는 컨텐츠가 내일 엄청난 전환율을 가질지 모르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예뻐 보일까, 독특해 보일까를 고민하지 마시고 소구점을 고민하세요. 우리가 집중해야 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3. CTR과 CPC
콘텐츠의 상태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지표가 무엇일까요? 클릭율과 클릭 단가입니다. 흔히 CTR과 CPC라고 부르죠. 이외에도 콘텐츠가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는 지표로는 ROAS가 있습니다.
콘텐츠의 조건을 잡아주는 것은 CTR과 CPC입니다. 기본적으로 CTR과 CPC가 안 좋으면 전환율이 좋게 나올 확률이 대단히 저조하죠. 그럼에도 전환율이 좋게 나왔다면, 집착하세요. 누구나 다 나오는 CTR 3~4% , CPC 100원, 90원에 만족하지 마시구요. 전환·판매·리드 캠페인에서 CTR 3~4% , CPC 100원~200원에 만족하시고 찾아내세요. 꼭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4. 전환 그리고 책임
이 부분은, 논란의 소지도 있긴 하지만 제가 대표님들과 주니어분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전환은 마케팅의 영역이 아닙니다. 적어도 주니어 마케터 분들의 영역은 확실히 아닙니다. 이유를 풀어보겠습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잘 나온다고 하는 전환율이 몇% 정도 될까요? 3~4% 정도입니다. 100명이 들어와서 고작 3~4명 사는 거죠. 남은 96~97명은 어떻게 될까요? 그냥 이탈합니다. 이유는? 97가지가 넘겠죠. 홈페이지가 별로라서, 리뷰가 없어서, 다른 데랑 똑같아서, 비싸서, 카드 한도가 막혀서 등등.
이것을 마케터가 다 커버할 수 있을까요? 마케터는 신이 아닙니다. 마케터가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은 전환·매출이 아니라, 이탈율을 높일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낮은 이탈율과 전환율의 상관관계는 분명 존재하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많습니다. 체류시간을 분석하고, 페이지 이동을 분석하고, 코호트를 분석하고, 스크롤을 분석하고, 상세페이지를 분석하고, 후기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케터가 혼자 커버할까요? 아닙니다. 디자이너와 함께하고, 대표가 함께해야죠. 상세페이지를 10%만 읽고 이탈하면 20%까지 늘려보는 방안을 마케터 혼자 커버할까요? 타 부서와 해야죠. 품질이 안 좋다는 후기가 많은데 이걸 마케터가 개선하나요? 아니죠, MD팀 혹은 대표님이 해야죠.
이걸 1~4년 차 주니어 마케터가 해결하는 건, 평범한 초등학생에게 대학 수학이 주어진 것과 비슷한 난이도입니다. 시니어가 담당해야 하는 겁니다. 제안을 하고 미팅을 잡고 커뮤니케이션을 하셔야 합니다.
사실 가장 근본적으로는 대표가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고민을 혼자 할 수 없으니 시니어를 고용하는 것이고, 경력직 마케터를 고용하는 것입니다. 대표는 그들의 시간과 고민,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주니어 마케터 여러분, 제가 위에서 드린 말을 꼭 기억해주시고 기억해주세요. 여러분의 책임이 전혀 아닙니다. 여러분께 매출과 전환으로 책임을 묻는 곳이 있다면, 제가 말한 논리로 싸워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미련 없이 이직하세요. 세상에 마케터를 필요로 하는 기업은 마케터만큼 많으니까요.
5. 마치며
이번 글은 요약으로 맺어보겠습니다.
- 컨텐츠에 집중하세요.
- 소구점을 고민하세요.
- CTR과 CPC에 집착하세요.
- 전환은 당신의 영역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