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써지는 글의 조건
글쓰기에 가장 찰떡 같이 달라붙는 연관어는 바로 ‘꾸준함’이다.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분들 중에 ‘나는 꾸준하지 못해서…’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꾸준해야만 글쓰기를 할 수 있다고 믿어온 것이다. 그런 신념과 고정관념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글쓰기’ 자체가 가진 그 어떤 포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꾸준하지 못한 내가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으니, 글쓰기의 전제 조건이 ‘꾸준함’이 전부가 아니란 걸 내가 증명해내었다고 할 수 있다.
글쓰기와 전혀 관련이 없었고 꾸준하지 못한 자의 글쓰기, 어떻게 가능했을까? 나조차 궁금했던 이 과정을 돌아보니 다섯 단계가 그려졌다. 언뜻 단순하고 당연해 보이지만, 과정 하나하나에 큰 의미가 숨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꾸준한 글쓰기 5단계
꾸준한 글쓰기를 하기 위한 5단계는 다음과 같다.
- 1단계: 소재 구상
- 2단계: 카테고리 제목 짓기
- 3단계: 첫 글은 프롤로그로
- 4단계: 각 글의 제목 짓기
- 5단계: 차곡차곡 글 쌓기
(feat. ‘문어발식 글쓰기’)
그렇다면, 단계마다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1단계: 소재 구상
소재가 잘 잡혀야 꾸준한 글이 이어진다. 소재는 앞서 살펴본 대로 ‘나의 페르소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내가 가장 많이 알고 있고, 가장 할 말이 많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평범하다고만 생각했던 소재들이 반짝반짝 특별해지는 건 글쓰기의 선물이다.
더 중요한 건, 그 소재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가 아닌 ‘왜’로 접근해야 한다. ‘내가 이걸 왜 쓰고 싶은 거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왜?’가 핵심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어떻게’에 매몰되어 더 중요한 ‘왜’를 고민하지 않는다. ‘어떻게’로 시작하면 글쓰기는 단기적으로 끝난다. 반면, ‘왜’로 시작하면 더 길고 오래 글쓰기가 이어진다.
이 5단계에선 내 책인 『직장 내공』과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의 예를 들어 본다. 내가 이 이야기들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떻게)왜?
- 직장생활을 돌아보고 싶어서 (오랜 직장생활을 힘들게 했는데, 남는 게 없으면 억울할 것 같아서)
-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후배들에게 도움 주고 싶어서
-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싶어서
- 직장인의 자부심을 찾고 알리기 위해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장르는 각각 ‘업세이(직장 내공)’와 ‘에세이(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로 정했다.
2단계: 카테고리 제목 짓기
브런치라면 매거진, 블로그라면 메뉴·게시판을 말한다. 내 글을 담아낼 큰 폴더라고 보면 된다. 그 폴더의 제목을 짓고 글을 모아가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으므로 브런치 매거진의 제목을 짓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 제목은 내 책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아래의 조건을 염두에 두어 만든다.
- 팔릴 만한 제목
- 다른 사람이 흥미를 가질만한 제목
- 내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제목
『직장 내공』의 매거진 제목은 ‘젊음이 젊음에게 멘토링’이었다.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의 매거진 제목은 ‘직장인의 품격’이었다. 전자에서는 꼰대스럽지 않은 조언을 쓰고 싶었다. 후자에서는 직장인에게도 품격이 있을까, 라는 의문을 던졌다. 출판 과정에서 제목이 바뀌긴 했지만 많은 독자 분들이 원제와 글에 공감해 주셨다. 더 나아가 출판사 에디터님께서도 제목을 보시고 전체 콘셉트를 이해하여 연락을 주셨다.
3단계: 첫 글은 프롤로그로
이제 첫 글을 쓸 차례다. 무엇을 쓸까 고민할 필요 없다. 책의 머리말을 쓴다는 느낌으로 프롤로그를 써 내려가자. 내가 왜 이 글을 연재하려 하는지에 대한 이유. 즉, ‘왜’를 상기하며 쓰면 된다.
프롤로그의 글은 글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길을 잃거나 무언가에 막힐 때 카테고리의 방향을 상기시켜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젊음이 젊음에게 멘토링’ 매거진의 내 첫 글은 「멘토 노트 그 서막」이었다. 나를 돌아보고 얻은 깨달음과 의미를 멘티들과(꼰대스럽지 않게) 나누겠다는 내용이었다. 프롤로그 글은 곧 초심을 박제하는 과정이다.
4단계: 각 글의 제목 선정
첫 글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글쓰기에 대한 과도한 의욕이나 열정을 잠재워야 한다. 의욕만 앞서 달려들면 그다음 글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자신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꾸준한 글쓰기는 시작도 못하고 멈추게 된다.
당장 완벽한 글을 쓰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제목’부터 써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목은 멋있게 잘 지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읽히고, 쓰는 나도 제목을 살리고 싶어 안달나게 된다.
글쓰기의 시작은 제목이다. 제목 안에는 글의 소재와 서론·본론·결론은 물론 핵심 메시지까지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목 하나만 잘 지어 놓아도, 글은 방향을 스스로 맞추어 가며 잘 써질 수 있다.
그렇다고 책 쓰는 것처럼 목차부터 구분할 필요는 없다. 어줍잖게 목차 제작을 시도했다간 소재만 국한할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제목으로 만들어 모아 놓는 게 중요하다. 목차는 글이 쌓인 후 얼마든지 새로 정렬할 수 있다.
제목은 결국 본문의 한 줄 요약이다. 제목만 잘 쓰고 모아도 생각보다 훌륭한 글이 많이 탄생한다.
5단계: 차곡차곡 글 쌓기
이제는 쌓을 때다. 네온사인의 전구를 하나하나 모으듯, 내 글을 모으는 거시다. 몇 개 안 되는 전구는 네온사인을 만들 수 없지만, 차곡차곡 수량이 쌓이면 불이 들어와 새로운 문자와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브런치에 쌓인 내 글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쌓인 후 내 글의 패턴과 세계관을 만들어 다음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출판사 관계자 분들이 연락을 주시는 것도 이 즈음이다. 그 네온사인을 보고 연락을 주는 것이다. 글을 차곡차곡 쌓아 가야 하는 이유다.
feat. 문어발식 글쓰기로 확장하기
자, 그런데 인생 참 만만하지 않다. 이렇게 5단계를 차근차근 쌓아 가도 문득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이 방향이 아닌 것 같고, 쌓여 봐야 의미가 없어 보이고, 내가 뭘 쓰는지 회의감이 들고, 소재가 고갈되기도 하고, 지금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1단계로 돌아가야 한다. 나 또한 쓰다 중단하고 1단계로 돌아간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 브런치 매거진은 종종 주제가 바뀐다. 쓰다 남은 글은 ‘습작 노트’라는 매거진에 별도로 잘 보관한다. 언젠가 쓰일 날을 기다리면서.나는 이 모든 과정을 ‘Nice Try’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글쓰기의 선물을 받을 때도 있다. 쓰다 보니 다른 소재가 떠오르고, 다양한 영감을 받을 때다. 주제와 주제가 연결되거나 또다른 소재로 확장하는 경우. 이때는 1단계를 ‘추가로’ 실행한다. 말 그대로 글의 카테고리를 벌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문어발식 글쓰기’를 추천한다. 시작할 때부터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함께 시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 가지 주제라도 제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에 집중하려고 할 때 글쓰기가 멈춘다. 소재는 금세 고갈되고, 글쓰기의 호흡은 답답해지기 때문이다.
최소한 ‘업세이’ ‘에세이’ ‘취미 관련 글’ 이렇게 세 가지는 동시에 시작해야 한다. 가장 잘 아는 ‘업’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가 막히면 조금은 더 편한 ‘에세이’를 쓰고, ‘에세이’를 쓰다 막히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을 쓰면 된다. 반대로, 이 글을 쓰다가 저 글이 떠오르고, 저 글을 쓰다가 그 글이 떠오르는 시너지가 나기도 한다.
나는 시작부터 5~6개의 카테고리 글을 벌이고 써 나갔다. 글이 수북하게 쌓이는 이유이자, 책이 연달아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위의 다섯 단계를 따른다고 글쓰기가 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각 단계의 의미를 잘 살펴야 한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가? 글쓰기는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즐거움이자 고통이다. 그 감정이 모여 글이 된다. 글은 나의 자산이 된다. 나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각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갔으면 한다. 의미는 결국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란 걸,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될 것이다.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