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진리’처럼 통용되는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무언가 찜찜함이 남는다. 공부에 왕도가 없다는 이야기가 진정 사실이라면, 열심히 하는 사람은 무조건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BS 클래스 e에서 이러한 의문을 품은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강의를 준비했다. 말 그대로 공부하는 법, ‘공부법’에 관한 내용이다.
강사는 베스트셀러인 <라틴어 수업>의 저자로 유명한 한동일 변호사.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의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참고로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유럽과 교회법의 오랜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라틴어 및 기타 유럽어에 숙달해야 하며, 라틴어로 진행되는 사법연수원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을 무사히 마치는 데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합격률이 고작 5~6퍼센트에 불과한 변호사 자격시험에 따로 통과해야 한다.
말인즉슨, 이러한 모든 과정을 거친 한동일 변호사는 바로 공부에는 도가 튼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부의 신’ 한동일 변호사가 말하는 공부의 비결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1. 공부는 원래 어렵고 힘든 것임을 받아들이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 일을 시작하고 나서 한동일 변호사는 유난히 공부법에 관한 문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마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저렇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특별한 공부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는.
하지만 그는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매우 곤혹스러워했는데, 그가 하는 공부란 단기간에 많은 지식을 바짝 외워 잠깐 써먹고 잊어버리는 형태의 공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공부의 비결을 알고 싶어하는가? 역설적으로 공부가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공부는 왜 어려운가?
그에 의하면 공부가 힘든 가장 큰 이유는 한 장소에 몸을 가둬 두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래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설계된 인간의 몸과 마음을 공부를 하는 동안은 묶어 두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본래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거기에 더해 결과물을 반드시 내야 한다는 이유도 있다. 아무리 긴 시간을 투자하여 열심히 공부했더라도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면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런 압박감 때문에라도 공부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잘하는 것의 핵심은, 공부가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한심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본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2. 공부의 첫 비결: 쉬운 선택과 합리화를 하지 않을 것
그렇다면 한동일 변호사가 생각하는 공부의 비결이란 무엇일까? 쉬운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공부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각종 합리화를 하지 않는 것이다.
공부하는 도중의 합리화란 무엇일까? 졸릴 때 바로 자버리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가 나올 때 다음에 풀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넘어가는 것이다. 완벽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면 됐지’ 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는 온갖 ‘쉬운 선택’을 거부하고 그 순간 자신의 공부에 집중하는 것, 그게 바로 공부를 잘하는 것의 출발점이라 그는 말한다.
3. 심리적 독립: 남이 아닌 자신으로부터의 동기 부여가 필요
또한 그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부모님이 원하니 공부한다는 단순한 마음가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에 매몰될수록,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는 류의 일차원적인 목표의식밖에 꾸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모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누구도 나의 인생을 대신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꾸려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장기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궁극적인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동기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4. 공부만큼 준비 단계도 중요: 웜업 루틴을 만들어라
한동일 변호사는 학창 시절 줄곧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새벽같이 도서관으로 출근해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했음에도 그랬다고 한다. 로마로 유학을 간 이후에도 라틴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매일같이 괴로운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한동일 변호사는 공부가 안되든, 성과가 안 나오든, 공상을 하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작은 요령을 하나 터득했다. 바로 공부에도 웜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공부를 하겠다고 생각해도 머리가 바로 공부 모드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래서 본격적인 공부 전에는 일정한 루틴을 가진 ‘쉽고 뻔한’ 작업들을 반복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라틴어 단어를 외우는 것, 공부와 연관이 없는 책을 읽는 것 등.
뻔한 작업은 의외의 성과를 낳았다. 뇌는 점차 공부 모드에 적합하도록 변환하는 법을 깨우쳤다. 또한 비로소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성과 없이 공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는 어떻게든 성취감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소소한 일상의 루틴은 그에게 작게나마 성취감을 쥐어 주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공부를 지속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는 것이다.
5. 공부를 그만두고 싶은 사람에게: 감정을 받아들이고 흘러가게 내버려 두어라
공부를 그만두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겪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분노를 느끼며 세상을 원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동일 변호사 역시 공부가 너무 싫어 졸리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잠을 청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공부는 원래 괴로운 것이고, 열심히 했는데도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상심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다만, 그렇게 행동하여 실제로 마음이 편해졌는가? 고민, 걱정, 분노는 공부를 그만두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동일 변호사는 잠깐 일탈하거나 휴식을 하더라도 다시금 공부할 자리로 돌아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다 보면 괴로움과 고통은 지나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순간순간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매몰되지 않고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
공부를 잘하는 것의 핵심은 ‘누가 쉬운 선택을 하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겹기도 하고, 당장 아무런 성과도 없을 것 같지만 어떻게든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빠른 스피드를 가진 사람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일지언정 그 거리가 쌓이다 보면 성취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뻔한 일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존재감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6. 공부를 평생 하고 싶은 사람에게: 단순한 목표를 넘어 의미를 찾아라
마지막 강의의 주제는 한동일 변호사가 평생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공부의 비결보다는 이미 공부를 지속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질 것인지를 일러주는 내용에 가깝다.
그의 인생은 끊임없는 공부의 연속이었기에, 결국 마흔이 넘는 시점까지 누군가의 밑에서 배우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자연히 자신의 처지를 타인에게 설명하는 것이 곤혹스러운 경우가 많았고, 주변에 의존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계획을 달성하든 아니든 꾸준히 그날그날의 작업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 작업 중에는 라틴어 사전 편찬, 그러니까 타인에게 의존하고 사회에 진 빚을 갚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비로소 공부에 대한 보람을 느꼈고, 인간이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는 이유와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7. 매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공부
결국 두 시간에 이르는 한동일 변호사의 공부법 강의는 다시금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진리에 도달하는 과정에 가깝다. 하지만 어찌하여 공부에는 왕도가 없는지, 왜 성과가 없음에도 공부해야 하는지, 공부하기 싫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등 “공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친절하고 자세히 알려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공부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듣다 보면 인생 전반에 대한 강의를 들은 듯한 느낌도 받게 된다. 그도 그럴 게 글쓰기와 운동, 일 등등 많은 것이 공부와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만사 모든 일이 그렇다. 재능과 노력 중 어떤 게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자주 토론하곤 하지만, 결국 재능의 유무 또한 끝까지 그 길을 가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고의 재능은 아마도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저 자신 앞에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말이다. 하나의 터널이 언제 끝날지는 터널의 끝에 도달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매일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캄캄한 어둠을 뚫고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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