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많은 연구자들에게 도움 될 내용이 있어 공유합니다. 모든 연구는 목표가 있습니다. 대체로 어떤 질문에 답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어떤 유형의 질문이 있는지, 어떤 연구가 좋은 연구인지, 연구자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김연아와 트리플 악셀
피겨 스케이팅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팬들은 피겨 스케이팅 관련 자료를 많이 보고 듣고 읽고 모을 겁니다. 김연아 선수의 사진도 모으고, 김연아 선수가 출전하는 대회를 알아 보고, 피겨 스케이팅 경기의 규칙도 찾아 보고, 김연아 선수와 같은 대회에 출전하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팬이기 때문에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 있는 여러 자료를 접합니다.
덕후 연구자들은 그저 이런 저런 자료를 접하기보다는 어떤 질문에 답을 하기에 필요한 자료들을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모을 겁니다. 예를 들어 “김연아 선수는 왜 트리플 악셀을 뛰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점프 기술의 성공률, 점수 배점, 기술의 난이도, 체력 소모 등 여러 자료들을 모을 겁니다. 그리곤 분석하고 답을 하겠지요.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도출해낸 답이 얼마나 정확하고 좋은 답인지 주장을 할 겁니다.
좋은 연구자는 질문의 답이 얼마나 좋은 답인지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질문이 좋은 질문인지, 대답할 가치가 있는 질문인지 이야기할 겁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면 다른 더 큰 주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될 것인지, 다른 더 큰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인지를요.
앞서 언급한 ‘김연아 선수가 왜 트리플 악셀을 뛰지 않는가’의 답을 찾아낸다면 아마 다른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에게 가장 적합한 기술 구성 요소들의 조합을 찾아내는데 도움 될지 모릅니다.
3단계로 말하기
모든 연구자는 3단계로 자신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공부하고 있나요?
1. 저는 X라는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 저는 피겨 스케이팅의 점프 기술의 배점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 그 주제를 공부하지요?
2. 왜냐하면, 저는 Y라는 질문에 답을 하고 싶거든요. (예: 저는 왜 김연아 선수가 트리플 악셀을 뛰지 않는지 알고 싶거든요.)
왜 그 질문이 중요하죠?
3. 그러면, 제가 다른 사람들이 Z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거든요. (예: 제가 다른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가장 적합한 기술 구성 요소 조합을 찾아내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요.)
제가 예제를 재미있게 만들어 본답시고 원래의 의미를 많이 망친 것 같습니다. 본래 책에 나오는 예를 알려 드립니다.
1. I am working on the topic of X
– I am working on the topic of stories about the Battle of the Alamo,
2. because I want to find out Y
– because I want to find out why its story became a national legend,
3. so that I can help others understand Z
– so that I can help others understand how such regional myths have shaped our national character.
아래 세 종류의 연구에 이 3단계 질문을 적용해보겠습니다. 세 종류의 연구는 개념적인 연구(Conceptual), 실용적인 연구(Practical), 그리고 응용 연구(Applied)입니다.
개념적인 연구
개념적인 연구에서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질문을 하고 연구를 합니다.
Q1. 무엇을 공부하고 있나요?
A1. X라는 주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Q2. 왜 그 주제를 공부하지요?
A2. 왜 Y인지 알고 싶거든요.
Q3.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3.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왜 Z인지 이해할 수 있게 제가 도와줄 수 있거든요.
이런 연구는 보통 순수학문이라고 불립니다. 그저 사람들의 이해도를 높일 뿐,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둥 실제로 어떤 행동지침 따위를 주는 데 도움이 되진 않기 때문이지요.
순수학문의 경우 세 번째 질문에 좋은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연구를 시작할 때는 그 연구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불명확한 경우가 아주 많고, 심지어 연구를 끝마친 뒤에도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알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세 번째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다. 좋은 대답을 내놓지 못하면 본인만을 위한, 다른 사람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연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실용적인 연구
실용적인 연구는 주로 학계 밖에서 회사를 운영하거나 사업을 할 때 더욱 필요한 연구 형태입니다. 종종 경영학이나 공학에서 이런 형태의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Q1. 무엇을 공부하고 있나요?
A1. X라는 주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Q2. 왜 그 주제를 공부하지요?
A2. Y가 어떤 건지 알고 싶거든요.
Q3.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3. 그러면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Z를 고치거나 더 낫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거든요.
응용 연구
경영학이나 공학에서는 실용적인 연구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개념적인 연구와 실용적인 연구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형태의 연구를 합니다. 실용적인 연구는 실질적인 행동 지침을 주지만 응용 연구의 경우 그러한 행동 지침을 향해서 계속 다가갈 뿐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Q1. 무엇을 공부하고 있나요?
A1. X라는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Q2. 왜 그 주제를 공부하지요?
A2. 왜 Y인지 알고 싶거든요.
Q3.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3. 그러면, 우리는 Z1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Q4.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4. 그러면, 우리는 Z2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Q5.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5. 그러면, 우리는 Z3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Q6.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6. 그러면, 우리는 Z4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Q7. 그걸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죠?
A7. 그러면, 아마도 정부가 Z5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맺음말
제 학생들과 연구 주제를 정할 때 위의 방식으로 정리해보려고 노력합니다만 항상 좋은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건 아니더군요. 특히나 석사 학생들과 함께 일할 때 더 큰 어려움을 느낍니다. 박사과정 학생의 경우에는 첫 번째 연구를 제가 이끌어 주면 그 뒤로는 학생이 경험이 생겨서 혼자서도 잘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석사 과정 학생은 박사 과정 학생과 비교해서 학생의 지식과 주어진 시간이 부족합니다. 결국엔 제가 갖고 있던 연구 주제 중 하나를 줄 수 밖에 없더군요. 석사 학생과 함께 좋은 논문도 많이 쓰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항상 아쉽네요.
위의 방식은 연구비 수주를 위해서 제안서를 작성할 때도 유용했습니다. 제 연구를 위의 방식으로 3단계로 설명하면 모두에게 명확한 설명이 되므로 제안서를 심사하는 분들께도 도움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3단계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랜 기간 생각이 쌓여야 하더군요.
위의 내용이 실린 책은 『영어논문 바로쓰기』의 원서 『A Manual for Writers of Research Papers, Theses, and Dissertations』입니다. 원래 시카고대학교에서 학생들의 학위 논문을 편집하고 교정 보는 일을 돕던 케이트 트레이비언(Kate Turabin)이 참고 문헌 인용, 문장 부호 사용 방법 등을 정리해서 출판한 책입니다. 소위 말하는 ‘시카고 스타일’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 분입니다.
이 책이 7판이 넘어가면서 시카고대학교 출판부는 새로운 내용을 덧붙입니다. 「연구와 글쓰기: 계획에서 완성까지(Research and Writing: From Planning to Production」입니다. 『The Craft of Research』이라는 책을 축약 및 정리한 부분인 듯 보입니다. 좋은 연구 문제를 찾고 연구를 진행하는 데 도움 되는 내용이 많아 두루 권합니다.
영어로 쓰인 글을 제 마음대로 자르고 붙이고 번역하다 보니 글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네요. 번역 일 하시는 분들께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원문: 잡생각 전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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