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 <그레고리 맨큐>교수가 집필한 <맨큐의 경제학>은 현재 경제학 원론을 가르치는 교재로선 가장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경제학의 입문자들에게 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이 만큼 잘 설명하는 책도 없다는 뜻일 것이다. 주변의 경제학교수들도 이 교재말고 더 나은 대안의 책을 찾기도 힘들어서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훌륭한> 경제학 교재를 집필한 사실이 곧 경제현상을 제대로 파악 할 수 있는 능력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수학의 정석>을 쓰신 <홍성대>이사장과 <성문종합영어>를 집필하신 고<송성문>선생님이 최고의 수학자와 영문학자가 아닌 것이랑 같은 논리이다.
맨큐의 헛발질, 상속재산이 경제성장을 돕는다고?
<맨큐의 경제학> 은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전제하는 경제<모델>들을 동원함으로서, 경제학 입문자에게는 복잡한 경제개념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런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한 경제모델을 현실경제에 적용해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또 다른 분석틀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여기에는 카네만 교수와 트베스키 교수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맨큐교수가 부시(Bush)정권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전파한 자신의 전력에 걸맞는 컬럼을 자신의 경제학 교재에 근거해서 쓴 것 같다. 이름하여, <상속재산이 뭐가 문제인가? >라는 취지의 글이다. (번역문: 뉴스페퍼민트)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토마스 피케티의 소득 불평등에 대한 해법에 딴지를 거는 글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신고전경제학의 대표격인 <한계효용이론>을 내세워서 부모가 자식에게 상속을 해야 하는 세가지 이유를 지적했다.
1. 세대간 이타주의 (Inter-generational Altruism)
2. 소비 평탄화 (Consumption Smoothing)
3. 평균으로의 회귀 (Regression toward the mean)
쉽게 설명하면, 자식의 효용도 본인의 것이므로 그 효용의 극대화는 전체 효용을 증가시키게 되며, 또한 소비도 본인 혼자 하는 것보다는 자식들과 나눠서 하면, 그 효용이 극대화될 뿐아니라, 그렇게 되면, 결국 자손들의 소득수준은 평균으로 회귀되면서 불평등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경제학자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이 믿기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이 야기한 광풍에 어느 정도 이의를 제기해 보겠다는 취지에서는 이런 주장만큼 더 자극적인 글을 찾기도 쉽지 않을성 싶다.
고전경제학의 한계효용이론에 매몰된 낡은 맨큐
<토마스 피케티>의 책에서 주장하는 불평등에 대한 원인과 해법은 사실 이미 경제학계 뿐아니라 경제사학계 그리고 비교문명학등에서 여러 입증자료로서 제시된 바 있는 것이였다.
다만, 피케티의 연구가 가장 방대한 빅데이타에 근거한 작업이였고, 그 해법이 극단적인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하면서 인구에 회자된 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피케티의 연구과정과 결론에 아무리 문제가 있었더라도, 그와 의견을 달리한다는 이유만으로, 저명한 경제학자가 이리도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적 이성(Rationality)에 바탕을 둔 사회과학이였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인간은 이성 뿐아니라 감정 특히 공감력(Empathy), 지배욕(Dominance), 인지오류(Cognitive Bias)와 같은 인간본성을 탑재한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문제는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 내지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의 영역으로도 접근해야 하는데, 맨큐가 오토마톤(Automaton) 같은 이성을 가정하는 고전경제학의 한계효용이론으로만 설명하는 것 자체가 오류이다.
왜나하면, 소득 불평등의 문제는 경제학의 한계효용이론과 같은 효율적 생산 및 분배방식에서 야기된 <부산물>이므로, 그 <부작용>이 사회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간의 지속가능한 <사회적 협력과 경쟁>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본성>에 촛점을 맞춰서 풀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맨큐교수는 이미 신고전경제학이 인간본성에 대한 잘못된 전제로 말미암아, <예측력>과 <응용성>에서는 사망선고를 받은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나 보다.
왜 굳이 상속만이 효용을 증가시키나?
그럼에도, <자신의 효용이 자기 자식을 통해서 극대화되고, 그것이 결국 평균적인 소득분배를 가져올 것>라는 취지의 이번 컬럼에서, <자식> 대신에 <사회> 라는 말을 집어넣어보니, 이제야 제대로된 친족선택이론(Inclusive Fitness or Kin Selection)에 기반한 글이 완성되는 것 같아서, 혹시나 맨큐교수가 <자식 > 대신에 그 자리에 < 사회 >라는 말을 넣을 것을 잠시 착각한 것으로 생각되어서, 그가 한 말을 내가 다시 써본다.
즉, < 자신이 속한 사회의 효용도 본인의 효용이므로, 그 극대화는 전체 효용의 증가이며, 소비도 본인 혼자 하는 것보다는, 사회의 구성원과 나눠서 하면, 그 효용이 극대화될 뿐아니라, 그렇게 되면, 결국 사회구성원들의 소득수준이 평균으로 회귀되면서 불평등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
껍데기는 가고, 이제는 좀 내 놔라 !!
참고자료
* 경제학계의 피케트의 연구와 유사한 결론을 이미 제시했던 작업들
1. 비교적 최근 경제학계의 연구 Barry Z. Cynamon, Steven M. Fazzari의 연구
2. 글로벌 불평등을 다룬 세계은행의 논문: What it is and why it matters?
* 경제사학계와 비교문명학계 쪽에서의 연구
1. 피터 투친(Peter Turchin)교수가 역사동역학(Cliodynamics) 입장에서 분석한 글 (링크)
2. 그레고리 클락교수의 불평등에 관한 두 저서 (링크1 / 링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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