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부정수급을 막으려면, 현행처럼 가족 단위의 종이 보험증으로는 불가능하며, 전국민에게 사진이 들어간 보험 카드를 발급한 후 부정 수급 방지에 대한 철저한 홍보와 함께, 요양기관 (병의원, 약국) 방문 시 반듯이 각자 본인의 보험 카드를 지참하여야 건강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시행되어야 할 것은 무시한 체,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은 결국 7월부터 “요양기관이 수진자격 여부 확인”을 의무화한다며, 법이 규정하지도 않는 의무를 의료기관에게 지우고 있다. (관련 기사)
자료는 내놓지 않고, 병원에 책임을 떠넘기는 공단
그런데, 눈여겨 볼 것은, 공단 스스로 “무자격자가 부당하게 진료를 받은 진료비 누적액은 3조800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지난 5월 26일 기사를 보면, 건보공단 경인 본부는 건강보험 무자격자의 증 부정사용에 따른 <환수 결정액>이 2011년 8억4300만원에서, 2013년 9억3200만원으로 늘어났다고 밝힌바 있다.
공단 정승열 급여관리실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해 주장한 부당 진료비 누적 금액 3조 8000억과는 크게 차이가 있는 금액이다. 만일 전국의 16개 시도마다 공단 본부 (지사)가 있고, 각 지사의 부당 진료비가 년간 10억원이었고, 30년동안 누적되었다고 해도, 5천억원이 안 되는 금액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추정컨대 의료보험 제도가 생긴 이래, 무자격자에 의해 부당하게 사용되어 환수키로 결정한 총 금액은 이보다 훨씬 적은 2~3천억원 미만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승열 실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공단은 무려 3조8천억원이라는 부당하게 쓰인 공단 재정 중에 환수키로 결정한 금액은 최대 5천억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또 이중에서 실제 환수한 금액은 얼마인지를 밝혀야 한다. 이 역시 추정컨대, 1천억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공단이 밝힌 자료는 없다. 국감을 통해 공개해야 한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공단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공단의 핵심 업무는 “보험료의 징수와 수진자 자격관리”이다. 즉, 국민 중 누가 건보 대상자인지 확인하고, 막강한 정보 권력을 휘둘러, 국민 개개인의 개인 정보에 접근해 재산 상태를 파악해 내고, 그에 따라 보험료를 거두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걸 하겠다고, 국내 정부 기관 중 가장 강력한 국민 개인 정보 접근성을 가지고 있고, 수만 명에 달하는 직원들을 고용하고, 년간 무려 1조원에 달하는 급여와 경상비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수수방관하면서, 수진자 관리 업무마저도 병의원에게 “불법적으로” 떠 넘기겠다는 이야기이다. 수진자격 확인은 병의원의 법적 의무가 아니다. 그럼에도, 단일 보험자의 모노폴리로 행정 편의주의,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단의 고질병 “욕먹기 싫어서”
그런데, 왜 공단은 부정수급자로부터 환수를 하지 못하는 걸까?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욕먹기 싫어서”일 가능성이 제일 커 보인다. 부정 수급자 중에는 생계가 곤란하여 보험료를 내기 힘든 국민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소득은 없는데, 처분이 불가능한 부동산 등의 재산을 가졌다는 이유로 과다한 보험료를 징수하는 경우가 상당수에 이른다. 보험료 산정이 소득 기준이 아니라, 재산 기준으로 하는 지역보험의 고질적 문제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득이 없는 노인들에게 건강보험료 고지서는 악마의 독촉장과도 같다. 이런 비현실적 문제는 애초 의료보험 제도를 설계할 때 깊이 관여한 현재의 김종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그 책임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김 이사장 역시 이에 대한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이를 알면서도, 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의료기관에게 떠 넘기려고 하는 건, 대단히 비도덕적인 일이다.
또 공단이 환수 결정을 하고도 실제 제대로 환수하지 못하는 것은 환수의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환수지, 실상은 채권 추심에 해당하며, 환수하려면, 악덕 채권자들의 채권 추심과 같은 방식을 쓸 수 밖에 없다. 즉, 재산을 압류하고 경매 처분하거나 재산 추적을 해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일반 국민의 경우, 1년 밀려봐야 기껏 수백 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인데 이를 받아내겠다고 재산을 압류하고 경매해 길 바닥으로 내 몰 경우, 돌아올 국민적 지탄을 받기 싫기 때문이다.
년간 40조 원을 주물럭거리는 입장에서 그 수백 만원은 사실 눈에 들어오는 금액도 아닐 것이다. 병의원에 대고 기침 한번 하고, 목 한번 조르는 게 그보다 수십, 수백 배를 더 줄일 수 있으니, 국민에게 욕을 먹느니, 이래저래 만만한 의료계를 쥐어 짜는 편이 더 낫다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부정 수급자들에게 고작 한다는 결정이 보험 자격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대단히 의미 심장한 이야기이다. 건강보험은 강제지정제를 두어 의료기관만 강제로 건보 제도 안에 편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역시 건보에 의무 가입하도록 하여 누구나 다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적당히 “개기고”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란 것이다. 만일 국민들에게 건보 가입 의무를 해제할 경우, 그래도 국민들이 건강 보험에 가입을 하고, 보험료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적어도 20, 30% 국민들은 건보를 탈퇴하고 아예 의료보험을 들지 않거나, 민간보험에 가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명확하다. 상당 수 국민들은 자신이 낸 보험료에 비해, 받는 혜택이 적다고 “체감”하기 때문이다. 만일 건보 의무 가입이 해제될 경우, 민간보험사 들은 경쟁적인 상품을 내놓을 것이고, 국민들은 더 저렴하고 현실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민간보험으로 갈아탈 것이다. 물론 건강보험 공단 역시 그제서야 민간보험과 경쟁하기 위해 정신을 차릴지 모른다. (고 기대한다.)
건보의 독점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험료를 체납하면, 보험 자격을 주지 않겠다는 결정은 이런 맹점이 있는데, 강제로 환수할 방법도 마땅하지 않고, 그렇게 해서 욕먹고 싶지도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내린 편법인데, 이 편법은 악마의 제도, 건보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압류된 재산이 없을 때 이야기이긴 하지만…
공단도 이를 알고, 부정 수급자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없으니, 부정 수급을 받지 못하도록 사전에 이를 차단하겠다고 수진자 조회를 의무화하고 이를 의료기관에 떠 넘기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의료기관과 국민들의 갈등과 불만만 증폭시킬 뿐이다. 병의원의 행정 업무를 증가시키고 공단이 짊어져야 할 업무를 병의원이 떠 안을 뿐이다.
진료에 힘써야 할 의사와 간호사, 공단이 할 일에 힘을 쓰고 있다
이미, 전국의 병의원, 의사, 간호사들은 공단 심평원이 해야 할 막중한 일을 떠 안고 있었다. 그건 바로, 전자 차트를 통해 병의원에서 발생하는 의무 기록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일이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의사, 간호사들이 의무기록을 작성한다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걸 볼 수 없다. 심지어 환자 수술 기록이나 진찰 결과 역시 녹음기에 녹음을 하면, 누군가 대신 이를 타이핑하지 이걸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직접 입력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사, 간호사의 노임 단가가 비싸기 때문에 단순 작업은 단가가 싼 근로자에게 맡기기 위한 것이고, 그걸 할 시간에 더 환자에게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료실에 가보면, 의사들은 환자에게 눈을 맞추지 못하고, 모니터만 응시한다. 병동에는 아예 경력이 많은 간호사는 환자를 보지 않고, 스테이션에 앉아 컴퓨터만 만진다.
의사, 간호사들의 잘못이 아니라 개 같은 제도 때문이다. 사실 이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은 의료 행위를 심사하는 심사평가원이며, 이들의 업무이다. 과거 손으로 기록하는 수기 차트를 쓸 때는, 병원의 전산 직원이 이걸 컴퓨터에 입력하거나 아니면 수기로 쓴 자료를 심평원 (과거 연합회)에 보내면, 그곳에 있는 전산 직원이 이를 모두 컴퓨터에 입력했다. 심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컴퓨터에 입력을 하든 말든, 그것이 의사 간호사의 의무는 아니다.
그런데, 이 업무를 의료진에게 떠 넘기고, 그 대신 심평원은 수백 명의 전산 직원을 없애 다른 부서로 보냈다. 물론 일부 계약직은 해고했을 지 모르지만, 심평원이 해마다 국감에서 지적 당하는 건, 직원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심평원은 그 비난을 피하기 위해 법이 규정한 심평원의 업무를 일탈하는 사업을 벌이려고 해 쓰고 있다. 의사들이 입력한 정보를 모아 빅 데이터로 가공해 말도 안 되는 자료를 쏟아내며 빅 부라더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 의료계 현실이다.
한번 한 짓을 왜 두 번은 못할까? 수진자 조회 의무화는 같은 짓거리이다. 보다 더 실질적 대처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이란, 공단이 할 수 있는 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이 들어간 보험카드를 발급하는 것이고, 정치권이 할 일은, 건보 공단의 독점 체제를 허물고, 다보험자 체제로 이행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은 정부와 국회에 이를 요구하고, 표로써 힘을 보여 주는 것 뿐이다.
불행히 의료계가 할 수 있는 건, 한 마디 비명을 지르는 것 뿐이고. 이게, 한국 의료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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