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2000년을 즈음한 ‘논객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논리로 협객질을 한다는 ‘논객’이라는 컨셉은 뭔가 환타지였을 따름이다. 애초에 ‘승부에 패배하면 굴복한다’는 룰이 전제되거나 준수된 적이 있던가? 그런 논객의 ‘시대’는 원래 없었다. 그래도 세상에는 늘 넘쳐났던 감성 말고도 여전히 이성이 필요하고, 그렇기에 이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은 어쨌든 계속 움직여왔을 뿐이다.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는 꽤 복합적인 작용이다. 마치, 고기 굽는 것처럼 말이다. 섬세하고 미묘함이 예술적이기 그지 없다.
숯불에 해당될만한 것이 바로 시민들의 감정, 열정 같은 것이다. 혹은 감정을 좀 더 역사적/사회적 흐름 속에 두루뭉술 뭉쳐 만든 ‘문화’ 같은 것도 있겠다. 이것이 바로 사회를 움직여주는 강력한 에너지다. 불은 강하고 고르게 붙고 끈질길수록 좋다. 탄이 좋으면, 향이 더욱 죽여준다.
불판에 해당될만한 것이 바로 시민들의 이성이다. 혹은 팬시한 말로 ‘시민성’이라고 할 때도 있고, 혹은 논리적 정당성이나 전문적 지식에 기반한 절차 개발에 대한 존중, 뭐 그런 류의 것들이다. 불의 열기와 향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실제로 이뤄낼 수 있는 기반이다. 그런데 불판이 엉망이면 고기가 타서 눌러 붙거나 중금속이 묻어 나온다. 혹은 너무 두껍고 구멍이 없으면, 도저히 열이 전달이 잘 안된다. 기름을 빼야할 때도 그냥 쩔어 붙고.
고기에 해당될만한 것이 바로 제도, 정책, 집행 뭐 그런 것들이다. 즉 실제로 이뤄지는 것 말이다.
그런데, 불판도 없이 고기를 곧바로 숯불에 쳐넣으면 그건 고기 굽는게 아니라 그냥 방화광이다. 불도 없이 불판만 있으면 도저히 고기가 저절로 구워질 리 없다. 감성을 얻지 못하고는 움직임을 만들지 못한다.
반면 전략과 방향을 논해야 하는 장면에서조차 감성의 힘을 강조하며 이성적 논리와 정확한 팩트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냥 감성만 잠깐 키우고 끝난다. 아니, 고기도 없어지고 유독가스까지 풍긴다.
이성과 감성 함께 갖추면 좋기는 하겠지만… 식으로 얼버무릴 것이 아니라, 이런 각자의 기능과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감성은 배제할 대상이 아니고, 이성은 뜨거운 가슴으로 대충 건너뛸 수 있는게 아니다.
물론 이게 감성인가 이성인가 흔히 헷갈려 하기 쉬운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 편 의식’은 흔히들 (자기 편의 경우) 정치 전략이니 역사적 명분이니 하는 이성의 영역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아무리 좋게 봐줘도 대부분은 ‘의리’라는 감성의 영역이다. 의리든 죄의식이든 감동이든 신뢰든, 불 지피는 기능이지 고기 올려놓을 불판이 아니다.
고기를 둘러싸고 여러 군상들이 나타난다. 집게와 가위 든 자는 정치인 등 사회운영 역할자들, 즉 집고 뒤집고 나눠주는 기능에 배치된 이들이다. 지금쯤 뒤집어! 라고 훈수 두는 자들이 지식인 역할자들이다. 이런 역할에 엉터리 놈들이 들어가 있으면, 생고기 먹고 디스토마. 그런 상황을 테이블의 모든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 저널리즘일 것이다(“어, 저쪽에서 벌써 고기 뒤집으려고 하는데?”). 그 속에서 여러 양상들이 나타난다. 사회 부패란 집게를 든 자가 구우면서 혼자 다 쳐먹는 것이고, 참여와 분권이란 더 많은 집게를 나누어주며 사람들이 함께 뒤집는 것이다. 가끔 ‘공유지의 비극’으로 인하여 날고기를 먹는 문제가 생기고, 고기 뒤집는 자를 잘못 뽑아 망하기도 한다.
집게를 적절하게 돌아가며 들기. 가장 잘 굽는 인간에게 맡기기. 그 인간보다 강한 발언권을 지닌 이 또는 여러 이들이 힘을 모아 고기 굽는 과정을 늘 감시하기. 그런 것을 잘 못해내면? 고기맛도 못느끼고, 술만 들이키며 투덜대게 된다. 아니면 개인이 눈치를 최대한 발휘해서 남에게 술을 먹이며 정신을 팔게하며 그 동안 후딱 집어먹거나. 정치혐오/무관심, 편법출세 뭐 그런 비슷한 것들이 나타나는 셈이다(…).
개별 요소가 잘 갖춰져야 하고, 잘 돌아가도록 서로 규범적으로 명시적으로 협력과 감시를 해야 한다. 이글거리는 숯불, 튼튼하고 투과성 좋은 불판, 좋은 고기, 능숙한 뒤집기, 적절 신속한 배분. 그럴 때 따뜻 쫀득한 살결이 어금니를 호강시키고 고소한 육즙이 진득하게 입속에 가득차 흐르며 대자연의신비님 인류를 잡식동물로 진화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를 마음 속으로 외치게 만드는 행복의 종소리가 식탁 가득하게 울려 퍼진다.
저녁 한 끼 고기 구워 먹는 것도 이리 섬세복잡미묘하게 갖춰야 굴러가는데, 민주사회 전체라면 오죽 하겠어.
PS. 숯불과 불판의 비유는 원래 각각 민의와 대의에 대한 비유로 써서, 직접 참여와 대의제는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처음 생각했던 것인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써먹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