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을 읽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몇 가지를 메모하고 있는데요. 그중 간단하고 재미있는 것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카네만은 인간 심리를 소개하면서 두 가지 현상이 우리의 선택을 왜곡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인간은 이익보다는 손실에 훨씬 민감하다는 것, 또 하나는 인간은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경우에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거의 생길 가능성이 없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경우와 일어나지 않을 리 없는, 다시 말해 거의 확실히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전자와 관련된 경우를 가능성 효과, 후자와 관련된 것은 확실성 효과라고 부릅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우리는 확률적·논리적으로 따졌을 때 나오는 결과와는 다른 선택을 하려고 하는 심리적 압박을 겪게 됩니다. 두 가지 현상은 각각 두 가지의 경우가 있으므로 총 4가지 경우가 생깁니다. 우리는 인간 심리의 압박과 의식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비합리적 행동을 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것은 정도의 문제입니다. 즉 위험이나 기대를 지나치게 하는 것이 문제지, 반대로 그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도 안 되겠죠. 우리가 싸워야 할 것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1. 너무 이른 꿈과의 타협
이것은 선택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손에 확실히 들어온 이득과 미래에 있을 수 있는 더 큰 이득을 비교합니다. 문제는 손안에 있는 것은 확실한데 미래에는 크지 않더라도 모든 것이 날아갈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이득을 비교적 간단히 포기합니다. 사실은 아주 약간의 불확실성만 감내하면 훨씬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경우에도 확실하게 손안에 들어온 것에 만족하고 맙니다. 물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문제는 실험으로 드러난 인간 심리를 보면 인간은 확실한 것에 너무 많은 가치를 지불한다는 것이죠.
99% 확실한 것과 100% 확실한 것 사이에는 1%의 불확실성 차이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90만 원을 확실하게 얻는 게 내일 불확실하게 100만 원을 얻는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며 만족해 버립니다. 후자의 경우 기댓값이 99만 원으로 90만 원짜리 선택보다 더 큰데도 말이죠.
이런 경우를 너무 이른 꿈과의 타협이라고 부른 것은 접니다. 구체적인 예를 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 현실에 안주합니다. 인간 심리가 이렇다면 우리는 그것과 싸워야 하겠지요.
2. 손절매를 하지 못한다
이것은 손실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 집이 있습니다. 이걸 오늘 팔면 나는 3,000만 원을 손해 봅니다. 그런데 팔지 않고 기다리면 손해 없이 팔 가능성이 아주 조금은 있습니다. 문제는 손해를 더 많이 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확실한 손해를 인정하는 것을 지나치게 싫어합니다.
사실은 더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아주 낮고 내버려 두면 손실이 엄청날 경우에도 확실한 손해를 인정하고 손절매를 하지 못합니다. 이런 것 때문에 종종 문제는 악화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손해가 나는 즉시 무조건 인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확률에 따라서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00만 원을 오늘 확실하게 손해 볼 것인가, 1%의 확률로 전혀 손해를 보지 않을 수도 있는 대신 200만 원을 손해 볼 확률이 99%인 미래에 걸 것인가. 이런 경우 기댓값으로 판단하건대 오늘 확실하게 손해를 보는 쪽이 합리적이지만 인간은 1%에 종종 희망을 걸어서 손해를 키웁니다.
많은 사람이 집을 사기 전에는 손절매에 과도한 자신감을 가집니다. 문제가 생기면 조금 손해 보고 팔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집값이 0원이 되더라도 손해 보고는 못 팔겠다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팔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손절매 고집 때문에 엄청난 돈을 날리겠지요.
3. 너무 많은 복권을 산다
앞의 두 가지는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큰 경우, 즉 안 일어날 확률이 아주 적은 경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앞으로의 두 가지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작은 경우입니다. 우선 이득이 작은 확률로 일어나는 경우부터 봅시다.
복권 당첨금이 제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이 당첨될 확률이 지나치게 낮으면 복권을 사는 일은 현명한 일이 못 됩니다. 실제로 복권의 기댓값을 보면 그냥 저금하는 것보다 훨씬 못하죠. 그런데도 복권을 사는 이유는, 사람들은 작으나마 가능성이 있는 경우 지나치게 그 가능성을 주관적으로 크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런 심리적 압박에 저항하지 않으면 우리는 복권에 돈을 낭비하게 됩니다. 인생에 있어서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은 복권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가능성이 아주 작은 일에 과도하게 많은 돈과 시간과 인생을 겁니다.
사기꾼의 ‘○○가 가능하다’는 말에 가능성이 진짜로 얼마인지, 어느 정도를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생각하지 않게 되죠. 어느새 가능성 따위는 잊어버리고 커다란 당첨금에만 눈이 멀게 됩니다. 노름에 빠져드는 것이죠. 인생을 허비하는 다른 지름길입니다.
4. 너무 많은 보험을 산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손실이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카네만은 인간은 이런 경우에도 작은 확률에 지나치게 크게 반응한다고 말합니다. 작은 확률로 일어나는 손실을 없애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보험입니다. 카네만은 보험을 가리켜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위험을 전가하고 돈을 지불하는 행위’라고 표현합니다.
1억은 가난한 사람에게 큰 위험이지만 부자에게는 엄청난 위험이 아닙니다. 암이나 교통사고 같은 위험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1,000분의 1이라면 손실의 기댓값은 10만 원입니다. 그런데 인간 심리는 작은 위험에 지나치게 반응하도록 만듭니다. 100만 원짜리 보험에 드는 것이죠. 부자가 그 보험을 팝니다. 결국 확률적으로는 지속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에게 돈을 지불하는 상황이 됩니다.
사실 보험회사의 광고 때문이겠지만 너무 많은 보험을 드는 사람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행운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너무 기울여서 그렇습니다. “암 수술을 했는데 마침 암 보험이 있어서 돈이 안 들었다더라, 안 든 정도가 아니라 보험을 몇 개나 들어둔 덕분에 아예 돈을 좀 벌었다더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솔깃할 것입니다.
애초에 이익을 목표로 하지 않는 국가의 보험은 몰라도 자신들의 수익을 목표로 하는 사적 보험에 큰 기대를 거는 건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너무 작은 손실 가능성에 너무 크게 반응해 또다시 손실을 보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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