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은 일종의 최면술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한 번도 읽어 보지 않고도, 아마 당신은 그의 하루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밤 9시에 취침을 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 글쓰기를 하고는 오후 달리기나 수영, 때론 둘 다를 한다. 그 외 시간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 이 반복된 생활은 25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도쿄에서 작은 재즈 카페를 운영하다 1981년 전업 작가를 결심했을 때, 불어난 체중과 하루 60개비 이상 담배를 피우던 자신의 건강 상태를 염려하며 시작한 일이다. 그는 채소와 생선으로 이루어진 식사를 하고 아내와 함께 아예 시골로 이사를 하고는 ‘자기중심적 시간표’를 그렇게 이어가는 것이다. 그의 지론은 이렇다.
예술적 감수성만큼이나 물리적인 힘(체력)도 중요하다.
소설가로서의 의무와 사명에 기댄 그의 생각과 다짐은 결국, ‘일상 루틴’이라는 신드롬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그 ‘일상 루틴’을 실천하며 새로운 작품을 쓰니 그의 ‘일상 루틴’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천에 기반한 ‘실재’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 반복을 통해 그는 기어이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일상 루틴은 고정값도 자동값도 아니다
시대가 어수선하고 월급만으론 만족이 안 되다 보니 ‘자발적 6일 또는 7일 근무’란 말이 생겼다. 본업인 주 5일 근무를 하고, 주말이나 남는 시간에 자신만의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을 말한다. ‘n잡’이란 말도 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만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짜이는 일상은 자발적인 것일까, 타의적인 것일까?
당연히 그 둘 다일 것이다. 직장 이후의 삶이 불안하다는 타의와 인간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자아실현을 위한 자기계발. 시대적 흐름과 개인의 욕구가 만나 사람들은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내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사실 ‘일상’과 ‘루틴’은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이다. 두 단어 모두 틀에 박혔다거나 반복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런데 기어기 그 두 단어를 붙여 사용하는 우리네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새로운 삶을 갈구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 생각은 허황될 수도, 명백할 수도 있다. ‘일상’의 소중함을 무시하고, ‘루틴’이라는 환상에 빠질 때 그것은 허황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상 루틴을 고정값이나 자동값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이는 매우 위험하다. 즉 일상 루틴을 잘 만들어 놓으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 자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착각. 고정값과 자동값을 기대하는 그 순간, 그 안에 ‘나’는 없다. 그러니 위험하고, 그 일상 루틴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으며, 잠시 돌아가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
명백한 경우는 ‘일상’이라는 소중함 그리고 내 일상이 무엇인지를 간파하고, 그 위에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내 ‘일상’을 부정하고 무시하면 ‘루틴’은 사상누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직장인 최고의 일상 루틴, ‘출근과 퇴근’
아니, 작가님은 참 대단하세요. 직장을 다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글을 쓰세요?
단언컨대, 나는 참 게으른 사람이다. 시간이 많이 주어질 때 오히려 글쓰기를 하지 않고 늘어져 있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본능을 충실히 따른다. 그래서 나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건네는 분들에겐 일종의 미안함을 느낀다.
위 대화를 보면, 한 가지 분명한 명제가 보인다. ‘직장인이면 바쁘고 힘들어서 글 쓸 시간이 없을 거야.’가 그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직장을 다니기에 글쓰기를 시작했고, 지금도 이어 나간다. ‘출근’과 ‘퇴근’은 내 최고의 ‘일상 루틴’이고, 직장생활을 제외한 모든 순간은 글쓰기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가끔 전업 작가를 꿈꾸며 종일 글만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간혹 열흘 정도의 연휴가 생겼을 때 내 일상은 무참히 어질러짐을 목도했다. 열흘 동안 그동안 못 썼던 글을 써야지 하지만, 오히려 퇴근 후나 주말에 글을 쓰는 것보다 더 효율이 떨어졌다.
내가 직장인인데도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있는 이유.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직장인이었기에, 그리고 출퇴근이라는 일상 루틴 덕분에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내 ‘일상’을 인정하고 그 위에 새로운 ‘루틴’을 세우는 것. 직장인이니까 못 쓰는 게 아니라, 직장인이라서 쓸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아무리 게으른 나라도, 어쨌든 출근과 퇴근을 해내고 마니까 말이다.
직장인의 글쓰기 루틴 만들기
자, ‘직장생활’은 힘들지만 게으른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최고의 일상 루틴이란 걸 알아챘다. 그래야 우리는 그 위에 ‘글쓰기 루틴’을 지어 나갈 수 있다. 언젠가 직장을 더 이상 다니지 않을 때가 오거나, 전업 작가로 거듭나야 할 때가 오더라도 직장인으로서 체득한 그 ‘일상 루틴’은 커다란 자산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직장인의 글쓰기 루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첫째, ‘출근’과 ‘퇴근’ 시간을 활용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리는 ‘출근’과 ‘퇴근’을 한다. 아주 강력한 ‘일상 루틴’인 것이다. 내가 게을러도 나에게 주어지는 소중하고도 고마운 시간. 그렇다면 그 시간을 득달같이 알아채고 활용해야 한다. 출근 시간은 비몽사몽일 경우가 많지만, 원래 사람의 무의식은 비몽사몽간에 활성화된다.
통근 버스나 전철에 몸을 싣고 잠시 눈을 감곤 한다. 그리곤 내 무의식을 돌아본다.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면 오히려 팔딱이면서 떠오르는 상념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글의 소재가 될 경우가 많다. 언젠간, 이 통근 버스가 회사로 가지 않고 바다로 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바다로 간 통근 버스’라는 짧은 소설을 쓰기도 했다.
퇴근 시간은 나에게 오롯이 주어지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직장인에겐 퇴근과 주말이 있다」란 글에서 이미 그 활용법을 이야기했다. 혼자만의 시간은 참으로 소중하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더불어 책상 앞에 앉았을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퇴근 시간 홀로 걷고 이동하며 쓸 글을 생각하고 구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운동하기 전 준비 운동이라 생각하면 좋다. 준비 운동을 해야, 우리는 비로소 본 게임에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다.
둘째, ‘왜 쓰는가?’를 명확히 한다.
글쓰기 강의를 할 때 수강생분들에게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이유를 세 가지 적으라 조언한다. 적었으면, 그것을 책상 앞에 붙여 놓으라고 종용한다. 예를 들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나는 ‘생산’하기 위해 쓴다.
- 나는 ‘선한 영향력’을 나누기 위해 쓴다.
- 나는 ‘나’를 인식하고 찾기 위해 글을 쓴다.
이것을 책상 앞에 붙여 놓으면 ‘글쓰기 일상 루틴’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나 또한 직장인이라 퇴근을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씻지도 않고 누워 있다가 내 글쓰기의 시작을 떠올린다. 소비적인 삶에 회의를 느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내 내가 글쓰기를 결심했던 이유를 보기 위해 일어난다.
‘생산’, ‘선한 영향력’, ‘나에 대한 인식’. 도저히 안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새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마주하고 한 개, 두 개… 세 개 이상의 글을 써 내려가는 나를 발견한다. ‘일상 루틴’은 만들어지고 자동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고 내가 계속해서 돌리는 것이다.
셋째, (물리적 환경과 존재가 결합하는) 환경을 만든다.
환경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환경은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다. 즉, 물리적인 환경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존재론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모니터, 노트북과 작업실이 마련되어 있다 한들 글쓰기가 쉬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는 물리적 환경과 존재의 결합이다.
장비가 아무리 좋아도 존재가 써 내려가지 않으면 글쓰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클래식 음악을 함께 듣는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이지만, 주재원 생활을 할 때 받았던 커다란 스트레스를 클래식을 들으며 풀었던 기억이 있어 자주 듣는다. 주말 아침이나 오후, 클래식을 들으며 글을 쓰면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젠 파블로프의 개처럼 클래식을 들으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고, 클래식을 틀어 놓으면 글쓰기라는 일상 루틴은 언제든 시작되는 것이다. (참고로, 각자의 기호에 맞추어 재즈나 뉴에이지 또는 백색소음 ASMR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넷째, 떠오른 글의 제목을 메모한다.
메모의 중요성은 익히 들어 알겠지만, 내가 말하는 메모는 단순한 단어 몇 자 적는 게 아니다. 바로 글감이 떠올랐을 때 적는 ‘제목 카피라이팅’이 그것이다. 즉, 내가 어떠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글의 서론 본론 결론을 미리 다 짜내려 하지 말고, 그 글의 ‘제목’을 먼저 생각해내고 메모하는 것이다.
잘 지은 제목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 제목을 잘 짓고, 잘 메모하고, 잘 기억해 놓으면 제목 하나 만으로부터도 글쓰기는 술술 이어진다. 출퇴근 시간에 했던 글쓰기 준비 운동에서 아마도 많은 영감이 떠올랐을 텐데, 이것을 제목으로 메모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다섯째, 글의 주제를 일상에서 찾는다.
글을 쓸 때 주제를 멀리서 찾으려는 정서가 가득하다. 뭔가 특별한 소재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파랑새를 잊게 마련이다. ‘일상 루틴’은 일상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위해 새로운 일상을 쌓으려는 시도다. 그러니 ‘일상’에 대해 쓰려는 시도가 많아야 우리는 일상을 달리 볼 수 있고,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오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은 반복되면서도 새로운 일이다. 누군가 때문에 기분이 좋았거나 나빴거나, 어떠한 일이 발생하여 난처하거나 보람을 얻었거나. 좋지 않은 일이었다면 빠르게 지워버리고 싶겠지만, 오히려 그런 경험과 에피소드가 좋은 글의 소재가 된다. ‘메시지’를 찾아낸다면 말이다. 우리는 ‘일상’을 그저 흘려보내며 그 안의 ‘메시지’를 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다못해 지금 자신이 숨 쉰다는 걸 생각한 사람이 있을까? 지금 이 글을 보고, 스스로가 숨 쉰다는 걸 인식하게 되고 그제야 아마도 공기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공기에 대한 고마움’이 바로 ‘메시지’이며, 우리는 지금 당장 ‘공기의 고마움’을 글로 쓸 수 있다. ‘일상의 고마움’은 추가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을 것이고.
마치며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은 천재가 아니고, 재능보다 규칙과 단련을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나도 적극 동의하며 몸소 증명을 해낸다. 나 또한 나의 성과를 말할 때 ‘필력’을 운운하지 않는다. ‘꾸준한 글쓰기’가 그 성공 요인이라 말한다.
포장하고 미화하려는 게 아니라, 내 삶이 그것을 증명했으니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글쓰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던 내가 쓴 글을 많은 사람이 읽고 공감하고 영감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꾸준한 글쓰기’로 답할 수 있어 참으로 후련하다.
‘직장인’과 ‘꾸준한 글쓰기’가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직장인의 ‘글쓰기 루틴’을 통해 그 둘을 어울리는 말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내일 당장 출근해야 하지만, 지금도 클래식을 들으며 기어이 이 글을 써내니까.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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