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쓰기 조언하는 글에 종종 등장하는 말이 ‘짧게 써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굉장히 경멸한다. 두 입장 모두 이해가 가는데… 진짜 문제는 조언 내용보다는 조언을 하는 이유이다. 짧든 길든 글쓰기 조언들을 읽어보면 대부분 ‘자기 습관과 선호’에 그 이유가 있는 듯싶다. 이런 게 이유라면 결국 “각자 알아서 네 맘대로 써라”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말을 글로 쓸 때는 짧게 쓰는 게 좋다. 한국말의 구조 때문이다. 영어 문장은 주어 바로 다음에 동사가 나오기에 주어와 동사의 간극이 짧다. 그래서 그 사람이 말하는 바를 바로 알 수 있다. 동사와 목적어 뒤에 나오는 말은 다소 부수적인 경우가 많기에 사람들은 앞에서 대강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알 수 있다.
한국말은 동사에 해당하는 말이 주어 바로 뒤가 아닌 문장 맨 뒤에 나온다. 그래서 말이 길어지면 주어와 동사의 간극이 벌어져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그것의 풀이가 헷갈리게 된다. 그래서 한국말을 쉽게 하려면 중간에 주어를 설명하는 동사를 적절하게 넣어줘야 한다. 의도적으로 주어와 동사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말은 짧게 쓰면 좋다.
2.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한국말과 영어는 문장의 구조가 너무 달라서 영어의 문법처럼 ‘주어’ ‘동사’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봉영 선생님은 주어는 ‘곧이말’ 동사는 ‘지님말’ 혹은 ‘마침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으셨다.
‘곧이말’은 대개 말의 처음에 나오고, 그 뒤에 ‘곧이말’을 맞이하는 ‘맞이말’이 나온다. 그리고 맨 뒤에 ‘곧이말’과 ‘맞이말’을 함께 풀어주는 ‘마침말’이 나온다. 그래서 한국말은 ‘곧이말’과 ‘맞이말’이 길어질수록 ‘마침말’의 등장이 늦어져 주술관계의 연결이 깨지게 된다. 읽는 독자 또한 내용 전개를 놓치고 말하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영어는 주어와 동사가 일찍 등장하기에 문장이 길어져도 상관없지만, 한국말은 그 구조적 특징상 문장이 길어지려면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 문장이 길던 짧던 한국말을 잘 구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동사에 해당되는 ‘마침말’을 말 중간중간에 잘 섞는다. 그래서 문장이 길어져도 독자는 내용을 놓치지 않고, 이해도 쉽게 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문장을 길게 쓰기 어렵다.
3.
이 원칙은 이야기에도 적용된다. 짧은 이야기는 상관없지만 긴 이야기를 할 경우에는 결론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좋다. 특히 책을 쓰는 사람들은 항상 첫 문장을 고심한다. 어떤 첫 문장으로 멋지게 시작해야 좋을까?
가장 멋진 시작은 첫 문장에서 책 전체의 핵심을 담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첫 문장은 “분노를 노래하소서, 무사의 신이여”이다. 호메로스는 이 책의 주제가 ‘분노’이고 그 노래의 주체들이 ‘신’이라는 것을 첫 문장에서 밝히는 것이다. 그래야 독자는 긴 내용의 전체를 흥미롭게 읽어 갈 수 있다.
나도 책을 쓸 때 첫 문장을 가장 많이 의식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의 첫 문장은 “누구나 디자인을 말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디자인’만큼 논의가 빈곤한 분야도 없다”이고, 『역사는 디자인된다』의 첫 문장은 “새로운 디자인 역사책을 써야겠어요”이다. 이 문장은 비록 책의 첫 문장이지만 가장 마지막까지 고민한 문장이다.
말하기 방식에 정해진 표준이나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말하는 습관이 있기에 글쓰기 조언은 항상 조심스럽다. 하지만 한국말과 이야기 구조를 알면 한국말은 되도록 짧게 쓰고, 이야기의 시작은 되도록 핵심부터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원문: 윤여경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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