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과,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역량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다른 말로 하자면, 주목받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과 더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를 만드는 일은 다르다).
그래서 ‘좋은 서비스를 만들다 보면, 좋은 회사로 성장해 있겠지?’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좋은 조직을 만들어 놓으면 언젠가는 좋은 서비스를 출시하겠지…’ 역시 틀린 생각일지도 모른다.
우선 주목받는 서비스는 아래의 요소에 의해 만들어지는 듯하다.
- 초기 서비스 설계팀의 촉(혹은 감)
- 빠른 개발·실행력
- 유저에 대한 지속적 집착
- 시국&운
초기 서비스의 프로덕트 마켓 핏은 결국 4가지의 조합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서비스가 주목받으면 유저는 계속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팀이 커지게 되면서, 팀은 조직이 되고, 조직은 회사가 된다.
문제는 이 과정이다. 팀이 조직으로, 조직이 회사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서비스 본연의 문제 외에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초기 멤버보다 해당 스타트업 경험은 부족하지만 커리어 경력은 훨씬 많은 시니어가 들어온다. 회사 내에서 조직 간 업무 성향 차이(예를 들어 디자인 조직과 개발 조직처럼)로 인한 문화적 갭이 생겨난다. 회사 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모두와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이 나타난다.
자연스럽게 ‘사람’으로 서비스를 만들었던 초기의 조직에 시스템·프로세스·조직·문화라는 컨셉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변수와 리스크는 지수함수로 커진다. 더 훌륭한 사람이 들어와도 문제가 생기고,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와도 문제가 생기는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문화, 대화, 시스템, 비전”
문제는 주목받는 서비스를 만든 팀이 회사적 관점으로 팀을 바라보지 못할 때 발생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해!”라는 건 너무나 맞는 말이지만, “좋은 서비스를 만들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일 수 있다. 후자를 고려하지 못하면, 서비스가 성장할수록 조직은 응집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문화-시스템-프로세스가 사람과 회사를 받쳐주지 못하니 서비스가 급격히 무너지는 참극이 벌어진다.
주목받는 서비스를 만드는 팀이 좋은 회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시행착오가 발생한다.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상처를 받고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초기 멤버들 간 갈등과 대립이 생겨난다. 설립자들이 물러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팀이 서비스적 관점을 넘어 경영학적·심리학적·인문학적 관점에서 얼마나 준비되어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주목받는 서비스에서 성공하는 회사로 빠르게 전환한 팀의 공통점은 ‘핵심에 몰입하는 문화, 상호 대화하는 조직, 회사와 개인의 흥미에 모두 연관된 시스템, 이를 아우르는 큰 비전’에 있다고 한다.
회사의 비전은 크고 높아야 한다. 그래야 회사의 서비스가 주목받기 시작할 때 이와 같은 모드 전환이 이루어진다.
우리 회사의 비전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는 아직 멀었지. 우리는 지금보다 1,000배는 더 성장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해. 그를 위해서는 더 똑똑한 체계를 만들어야 해. 그를 위해서는 데이터적·디자인적·인센티브적 준비가 필요하지. 큰 비전을 위해서는 지금 당장 열심히 일하는 것을 뛰어넘어 더 똑똑한 시스템을 설계해야 하고, 성장 지향적인 팀 문화를 만들어 놓아야 해.
팀이 이렇게 생각할수록 본질에 집중하게 된다. 아무리 서비스가 사회적으로 주목받는다 할지라도, 비전 달성을 위해서는 한참 멀었기 때문이다.
구성원을 모으는 힘: 한 박자 빠른 대화와 하나의 마음가짐
물론 전사 모든 구성원이 본질에 집중한다고 해도, 집중하는 방향과 성향은 다를 수 있다. 개발-디자인-마케팅-기획-PM-세일즈에는 업무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다 함께 본질에 집중하는 과정에서는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차이가 다양성으로 발전하여 시너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한 박자 빠르게 대화하고 소통하는 문화 정착이 선행되어 있어야 한다.
한 박자 빠른 대화는 상호 간 이해를 깊게 만들고, 이해는 팀워크를 쌓기 때문이다. 재밌는 사실은, 이 딱 한 박자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한 박자 늦은 대화는 갈등과 오해, 분열을 낳는 시초가 된다.
더불어 회사에 훌륭한 사람들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기존 멤버들과 빠르게 융합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하나의 마음이 필요하다. 이런 마음가짐이다.
우리는 회사의 interest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회사가 나의 interest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구성원 전체는 ‘내가 충분히 회사에서 보상받고 있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보다 큰 보상을 받는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도 ‘나는 저 사람에게 배워서(저 사람을 발판 삼아) 더 빠르게 성장해야지’ 혹은 ‘회사가 나로 인해 더 빠르게 성장하면, 회사도 나에게 계속 그 이상의 가치를 줄 거야’ 라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회사가 개개인의 interest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 개인도 회사의 interest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작용-반작용 법칙인 듯하다.
‘뛰어난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가 나아갈 길
주목받는 서비스를 더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로 만드는 과정이 바로 경영학의 본질인 듯하다. 물론 경영학은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법은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물론 서비스 개발은 광의의 마케팅 영역 중 하나다. 하지만 경영학에서 이론적으로 정의하는 마케팅은 브랜딩·프로모션·광고 협의의 마케팅 정도다. 서비스 개발을 이론으로 정의하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애초에 엔지니어링-디자인-기획이 조합된 영역이기에 경영학에서 포괄하기 어렵다)
다만 경영학은 좋은 조직을 만드는 법, 좋은 회사를 만드는 법, 회사의 관점에서 전략을 짜는 법을 가르쳐 주긴 한다. 다양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알려주는 MBA도 있고, 이론적 수업과 논문을 통해 가르쳐주는 학문의 영역도 있다.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광의의 경영학은, 서비스가 회사가 되어가는 시점부터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참 어렵다. 세상의 주목을 받는 서비스를 만드는 팀은 100팀 중 10팀도 안 될 것 같다. 그중 위대한 회사로 성장한 팀은 10팀 중 1팀 정도일 것이다. 좋은 서비스가 좋은 회사를 보장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링글은 좋은 서비스라 부르기에는 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 그래도 좋은 회사가 되기 위한 준비는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MBA에서 괜히 MGE(Managing Growing Enterprise)와 Interpersonal Dynamics를 가르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더 좋은 사람들이 들어와 기존 팀과 빠르게 융합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랑받는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 이 사실을 인지한 시점부터 나는 서비스적 고민 만큼이나 조직·회사적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도 저도 아닌 서비스나 팀이 아닌, 뛰어난 서비스를 만드는 성장하는 회사로의 여정을 잘해 나가고 싶다.